카테고리 없음
봄비에 젖어
김영관
2007. 2. 10. 08:48
봄비에 흠뻑 젖은 늙은 생쥐는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 몇 잔을 거푸 들이킨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와 새끼 생쥐들이 생각나서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먹을 것 약간을 포장지에 싸서 안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 담는다. 지친 몸에다 그것도 공복에 마신 탓인지 취기가 한 순간에 온몸에 퍼져 나간다. 흘러간 노래들을 구성지게 불러 제치며 비틀 걸음으로 집앞에 와서 대문을 발로 쿵쿵 차는데 주인집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 동안 안집 고양이 기세에 눌려 대문간에 세 들어 살면서 목소리 한번 크게 내본 적이 없던 늙은 생쥐는 봄비 탓인지, 아니면 빈속에 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참고 살아온 고양이 멱살을 잡고 그의 목을 물어 뜯어 버렸다.
고양이는 겁에 질려 피를 흘리며 주인 집 방향으로 도망을 친다. 생쥐는 도망치는 고양이 뒤를 쫓아가 아예 끝장을 내줄까 하다가 "아서라, 고양이도 막판에 몰리면 쥐를 물려고 달려든다." 는 옛 속담이 머리에 떠올라서 더 이상 고양이 뒤를 쫓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 동안 내가 고양이에게 시달렸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면 이 고양이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봄비에 젖고 술에 취한 늙은 생쥐는 부은 간덩이가 제 자리에 있는지 손으로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 확인해 본 다음 제 집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