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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돈 줘... 지금 빨리!

김영관 2007. 4. 19. 10:11

 

 

30여년 전 누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간 고향 친구 이수

미국 체류 중
수소문 끝에

그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찾아 갔다
델라웨어 백인 동네,
동화에나 나옴직한 그림 같은 집...

그곳에서 곱게 늙어가는 이수 부부와
든든하게 자란 세 아들들...

야외에서 바베큐에 술잔이 돌고
고향과 고향 친구들
이야기로 밤 새는 줄 모른다

세 아들 중 막내 아이가
제일 자신 있게 하는 한국 말은
"아빠, 돈 줘, 지금 빨리!"란다

한바탕 웃고 넘긴 이야기 였지만
친구 얼굴엔
엷은 그늘이 스친다

밤이 깊어
친구와 단둘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그 동안 가슴에 묻어 왔던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는다

상가 건물에서 세 받고,
모퉁이 가게는
세탁소로 자신이 경영하며
생계를 꾸려간다는
그는
비교적 미국에서는 물질적으로 성공한 편이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 놓는다

그중에 막내 아이 때문에
제일 가슴이 아팠단다

백인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면서
열등감 모르고 자라던 막내 아이가
어느날부턴가 부모를 학교에 모시고 오라면
그 말을 전해 주지 않더란다

사연을 알아 보니
학교에서 미국인 친구들과 사용하는 영어 다르고
집에서 부모와 주고 받는 토막 영어가 다름이
막내 아이는 부끄러웠기 때문이란다

막내 아이가 이성을 눈뜨기 시작하면서
겪었던 아픔을 이야기 하는 순간
내 친구 이수는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린다

철이 들어 가면서
백인 여자 아이들이 유색인 친구를 꺼려 하고
막내 아이와 같이 다니기를 싫어 하는 기미를 보이더란다

막내 아이는 좋아 하는 백인 여자 아이가
자기와 같이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도 모르고
집에 와서 남몰래 흐느껴 울더란다

막내 아들을 거울 앞에 세워 놓고
"너는 백인이 아니다.
그들과는 다른 인종이란 걸 거울 보면서도 모르겠니?"라고
말해 줄 때 친구 마음은 찢어질 것 같더란다

막내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 눈치란다

한국말 제일 못하는 막내 아이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장하게 자라 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며
빙긋 웃던 내 친구 이수...

그와 그 가족에게
항상 행복이 함께 하기를

 

    * 이번 총기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