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망각>이라는 것에 관하여
인천 공항에 내려 학교에서 준비한 스쿨버스로 귀향길에 오른 나는, 정안 휴게소에서 얼큰한 소고기 국밥을 먹으며, 내 얼마나 이 맛을 그리워했던가 라며 몇 번이고 나는 감회에 젖었다. 그날 밤 나는 몇 개월 만에 내 집에 돌아와 참으로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출근한 뒤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나서 그 동안 그리도 보고 싶었던 분들과 부재중에도 늘 내 머릿속에 그리던 연구실에 들려 보고픈 마음에, 직장에 출근할 준비를 서둘렀다. 세수하고 외출복을 입은 후 양말을 신으려는데 양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직장으로 전화를 해서 내 양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더니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평소 잘 찾아 신던 양말 함에 넣어둔 양말도 못 찾아 신느냐고 아내는 핀잔을 내게 한다.
우리네 인간은 망각을 쉽게 하는 존재이기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크나큰 아픔도 견디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허지만 이런 일이 내게 실제로 일어나고 보니...아주 익숙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잠시 사이에 까맣게 잊혀질 수 있음에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밤이면 광주에 온 내 육신은 뉴질랜드에 두고 온 내 집과 자동차가 머리에 떠오르고 그와 더불어 그곳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웰링턴 시내 한 바퀴를 돌다가 잠이 들곤 하는 것이다..
웰링턴에서 잠들기 전에 고국과 광주에 관한 수많은 사념들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경우처럼 말이다. 인간이라는 게 다른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금새 그리도 익숙했던 지난날의 것들을 망각해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이들어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예전에 써 놓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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