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심, 또는 구체화 작업 하기
그녀를 알고 지낸지는 10여 년 쯤이다.
동해안 어느 바닷가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다며
내가 안부를 묻는 전화에 그녀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만족하다던 말이 기억난다.
바닷가 그녀의 삶이 궁금하기만 한 나는
어느 날 아침 또 전화를 걸었다.
전파를 통해서라도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 듣고 싶고
갯내음을 맡고 싶어서 였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어눌한 발음 소리에
당황해 하는 내게 그녀는 불쑥
아침부터 마신 맥주에 취했다는 것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녀의 전화 목소리로 만은
그려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안은 채
함께 해오던 모임이 해체되는 연유로
그녀와 그녀에 관한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우연케도
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우인을 통해
안부를 듣게 되고 그녀가 아직도 그 바닷가에 살고 있음을 듣게 된다.
그 순간 문득 그녀와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닷가 저택이
내게 그리움과 궁금증으로 내게 다가선다.
그녀의 친구들이 이번 여름 그녀가 살고 있는
동해안 포항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함께 갈 의향이 있는지를 내게 묻는다.
잠시의 망서림도 없이 동행을 약속한 나는
포항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나라이면서도 난생 처음 가보는 동해안 끝 포항
이국 어느 지역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던 곳인데
불과 3시간 50분 만에 나는 포항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린다.
만약 오늘 내가 이곳에 오겠다는 결심이 없었다면
내가 내린 고속 버스 터미널을 비롯하여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도 갖지 못 했 거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설래게 한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야릇한 감동이다.
그녀가 약속한 장소로 차를 가져와 그녀를 포함하여 우리 세 사람은,
그리고 늦게 도착한 또 한 사람이 동승하여 네 사람이 된 우리는,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닷가를 향한다.
해안 도로를 타고 차가 달리는 동안
이곳 장면들이 내 시선에 들어와
한 장면 장면 내 머리에 각인되기 시작한다.
10여 년 전 도저히 그녀의 전화 목소리로만은 그려낼 수 없었던
파란 망망대해의 동해안 포항이 내 시야에 펼쳐져 있다니.
아침에 일어나 그녀의 집 창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포항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흔치 않다는 일출 장면을
그녀의 2층집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감상하는 순간
지금 내가 살아 존재해 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비록 단 하루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왔지만
일년 중 가장 더운 지금
게다가 그녀가 사는 포항은 폭염경보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들은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어느새 나는 그곳에 아주 익숙해진 사람이 된다.
아마 아래층 베란다 그녀만의 휴식 공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우며
내 전회를 받으리라.
9살 된 <나리>라는 늙은 개가
주인인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있으리라.
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차 묻는 내 물음에
그녀가 어떻게 안 보고도 그리 잘 아느냐며
놀랍기 그지 없어 해 한다.
앞으론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가 없으면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면 달려가 내 눈으로 확인해서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여름 포항 방문은
내게 참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