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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김영관
2010. 8. 8. 14:18
눈을 감으면 접시꽃이 저만치 서서 나를 부른다.
그를 따라 길을 나서다 보면
나는 어느새 고향집 골목 입구에 와 있다.
흑백 활동사진 속에 비쳐진 나는
삶의 무게 따위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책가방을 등에 메고 골목길을 들어선다.
골목길을 몇 발작 더 걸어가다 보면
키 큰 오동나무가 제 몸을 흔들어 오동 꽃을
동네 우물터에 내려놓는다.
고향 누나들은 부는 바람에도 가슴 설레고
떨어지는 오동 꽃에도 수줍어한다.
우물터를 돌아서면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가슴을 풀어 헤친 채로 서 있는데
작년부터 건너편 은행나무와 눈이 맞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대문 앞까지 걸어 나오신 어머님은
하얀 접시꽃 뒤에 서 있다.
내 유년의 고향 집 대문 앞에는
세월흐름과는 상관없는 어머님이
하얀 접시꽃 뒤에 서서
접시꽃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