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이란 무엇인가?
극이란 무엇인가?
김 영 관 (희곡작가) /실개천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를 잠시 우쭐대며 걷다가 사라져 가는 배우에 불과한 존재”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하고 있다. 우리 인생살이를 극에 비유한 그의 착상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맡아 하는 역은 참으로 다양하다. 오늘 만남에 내가 친구를 돋보이게 하는 단역을 맡아해야할 자리라면 그 역할에 충실할 때 그 만남은 성공작일 수가 있다. 단역이 오버 액션으로 주인공보다 더 돋보이는 역을 하려 한다면 그 극의 결과는 뻔하다. 삶을 무대에 그대로 재연 시키는 것이 극이라면 이보다 더 매력 있는 예술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희곡 작품으로만 극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극 공연을, 공연 관람만으로 만족해하는 관객들에게는 극작품을 필독할 것을 권장해보며. 이번 <대한문학> 에서는 극 사조 고찰을 통해 희곡이라는 장르와 친숙해지는 기회의 장으로 삼고 싶다.
희곡은 소설이나 시처럼 문학 장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희곡은 문학 장르이면서도 공연을 염두에 두고 쓰는 조금 특별한 경우의 문학 장르이다. 희곡은 인쇄된 문자로 읽힐 때는 문학이요, 그것이 무대 위에서 배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 전달 될 때는 연극이라 할 수가 있다. 이런 문학성과 연극성의 내포가 희곡의 특징인 것이다.
희곡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살아 있는 현재적 연기이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보고나 단순한 감정, 사상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희곡의 언어는 과거시제를 사용하는 소설과는 달리, 현재 시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생동감 있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희곡을 문학 작품으로 읽는 독자는 그 내용을 잘 소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희곡 작품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연출가가 되고 연기자도 되고 무대 감독도 되어야 하고 분장, 조명, 의상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가공 무대를 연상하며 읽어가야 한다. 고로 희곡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하는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생동감 극 문학도 패션의 유행처럼 시대의 흐름이나 정황에 따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반기를 들고 나타나는 다른 극 사조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가 밀리는 쪽이 사라지곤 했다.
지금은 극작가가 자기 작품 한편 속에서도, 1막은 고전주의로, 2막은 상징주의로, 3막은 표현주의로 쓴다거나, 어느 한 극 사조에 몰두해 극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특성에 따라 여러 문예 사조 중 하나를 택해 극을 쓰곤 한다. 그렇지만 극작가들이 자신이 신봉하는 문예 사조 어느 한가지로만 극을 써야한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극 사조는 애써 폄하했던 시대가 있었다.
극 사조를 이해하며 극작품을 읽거나 극을 관람하면 그 시대 작가와 보통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도움이 클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1. 고전주의(Classicism)극
고전주의란 그리스나 로마인들의 삶의 태도와 정신 및 가치관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이들은 질서와 균형을 사랑하고 합리성과 실용성을 근간으로 한 인본주의와 개인의 자유의식을 갈구했다. 유럽인들이 바로 이러한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상에 다시 관심을 쏟게 된 것이 르네상스 이후 이었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17,18세기에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일어난 문예운동은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혹은 의사 고전주의(pseudo-classicism)로 불린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 심취하여 고전작가의 작품을 자기들의 문학 모범으로 삼았으며, 그리스인들이 강조했던 형식과 이성을 숭상하여 그들의 합리적 질서 의식을 본받고자 했다. 이 시대는 질서의 고전적 개념을 부활하고, 규범을 중시하며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이성은 신고전주의 비평과 창작원리가 되었다. 따라서 이 시대는 합리주의요, 지성주의라 볼 수 있다.
지를 숭상하고 행동의 원리로서 이성을 중시한 고전작가들은 창작의 근거로 Aristotle과 Horace의 예술론을 따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문학, 예술)는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 자연은 인간성과 질서를 의미하며 따라서 자연의 모방은 인간성의 모방과 질서의 모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관은 르네상스를 거쳐 신고전주의 문학이론의 중심이 되어왔다. 17세기에는 자연을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고 불변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정연한 하나의 조직체로 상상하였다. 인간의 이성으로서만이 자연법칙의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낼 수 있으며 인간 행동 원리를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개인의 감정과 사상의 억제를 통하여 보편적 합리성에 도달하는 것이 이상이므로, 자연 형식적 제약을 수반하게 된다.
신고전주의는 고전문학에서 발견한 자연의 보편성, 조화, 균형, 합리성을 따르기를 주장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전주의에서의 모방이 자연의 모방을 의미한데 반하여, 신고전주의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이나 타고난 재능보다는 후천적인 훈련의 결과인 기술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문학의 까다로운 법칙을 준수하도록 강요하였다.
신고전주의 작가의 대표적인 시인이며 극작가인 T.S. Eliot의 유명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이 있다. “훌륭한 문인이 되려면 18세 이전에 이미 동서고금의 작품을 다 읽어 그의 머릿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어느 것이 자기 생각이고 또 어느 것이 작품에서 읽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그의 머리는 용광로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3일치의 준수, 적격(decorum)의 준수 등도 고전주의자들의 주장으로 빼놓을 수가 없다. 신고전주의 대표적인 극작품은 라신느의 <페드라>라는 작품을 일반적으로 꼽고 있다.
2. 낭만주의(Romanticism)극
신고전주의 약점은 합리적인 것에 극단적으로 치우치고 있으며, 표준화될 정도로 단순화되어 있고 또 창작상의 불모성이나 아니면 적어도 일정한 유형의 반복만을 유도할 정도로 엄격하다. 이 모순들이 드러나게 됨에 따라 이 이론 전체에 대한 불안이 점차 고조되었다.
예술에 대한 모사론이고 합리적인 견해는 개개인의 상상력에 아무런 영역도 제공하지 않았으니, 이 점이야말로 그런 예술관이 지닌 가장 커다란 취약점이요, 또 18세기에 그 체계가 허물어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고전주의는 사람들에게 조리 있고 안정된 세계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것의 붕괴는 예술에 있어서 물론이요, 인생에 있어서도 안정감이 상실되고 말았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가 대변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모든 것들에 대한 혐오감에 도취 되어 있었다. 낭만주의의 혐오의 대상에는 무미건조한 규율, 피상적인 우아미, 형식성, 질서 존중, 한정적 견해, 인위성, 관습, 교훈주의, 궁중 문화, 현상의 유지 등이 있었다. 즉 모든 분야에서 합리적인 것과 대조되는 자연적인 것이, 계산된 것 대신에 자연발생적인 것이, 규제 대신에 자유가 각각 강조 되고 있었다.
신고전주의가 이성의 시대라면 낭만주의는 감성의 시대라 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사물을 보는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은 상상력의 눈으로서 이 눈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표현적 현실을 넘어서는 내재적 이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은 덧없이 변화하는 평범한 외양의 세계와 상상력을 수단으로 해서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진선미로 구성된 영원하고 무한한 영역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평범한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고 봤다. 여기서 낭만주의 천재의 개념이 정립된다.
영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었으나 프랑스에서는 희곡의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다. 빅토르 유고의 Hernani 성공 때문이기도 하다.
3. 사실주의(Realism)극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낭만주의 운동은 그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상상, 자유, 이상, 자연, 감정, 개성 등을 존중하던 낭만주의가 서서히 자신을 마감시켜야 헸던 이유는 첫째로 1815년 Napoleon 몰락 이후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정치적 변혁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삶의 의 위협을 느끼며 생활해야 했고, 둘째로는 19세기의 산업혁명과 그것을 뒷받침한 과학의 발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연에 치중했던 그들의 취미가 차츰 그들을 둘러싼 현실 사회와 환경으로 옮기게 됨에 따라 빈의 차,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 범죄와 빈곤만이 만연한 냉혹한 사회현실 등 여러 가지 사화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데 있어 인간의 이상적인 견해에서 찾으려는 낭만주의자들의 태도가 너무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들의 실상을 직시할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해결책을 위해서 몽상은 버려야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사회의 관찰, 예견, 통제가 새로운 이상으로 부각된 것이다.
새로운 사상에 대한 영향중에 August Comte(1798-1857)의 실증주의(Positivism)가 있다. 그는 사회 개선을 위해서는 개선을 위한 방법을 자연의 인과라는 견지에서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관찰과 실험에서 찾았으며 5감을 통해서 경험될 수 있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실주의 등장의사회적 배경의 또 하나는 Charles Darwin(1809-1882)의 The Origin of the Species였다. 여기서 설명되는 원리는 모든 생명의 형태는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점차로 발전되어 왔다는 사상, 즉 진화론과 그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자생존의 원리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동처럼 사실주의는 진실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운명을 개선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5감을 통해서 얻어진 지식에 의해 제한된 진리만을 보는 것이다. 진리를 보는데 있어서 그와 같은 현저한 변화는 예술과 극의 개념에 불가피한 영향을 주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극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주의 극에서는 사기꾼이나 도박꾼, 소매치기, 꽃뱀이 극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고전주의자나 낭만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쓰레기 문학이라고 공격을 했다. 그렇지만 사실주의자들은 사회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고 밑바닥 인생이 보기 추하면 그렇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실주의 극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현대극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노르웨이 출신의 극작가 입센이다. 그의 초기 극에서는 사회개혁 문제를 집중으로 다루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가 남편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짐을 꾸려 집을 나와 버리는 것이다. 그 당시에 가정주부가 집을 뛰쳐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사회의 기둥>,<민중의 적>등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사실주의 극에 기여한 공로 외에도 기존의 운문 극에 반대하여 산문 극을 즐겨 썼던 작가인데 오늘날 극은 거의 모두가 산문 극이다. 그 외에도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극에 자주 사용된 독백, 방백 등을 자연스럽지 못한 관행이라며 과감히 없애버렸다. 한마디로 입센은 지금 우리가 보통 접하는 현대 산문 극의 창시자라 할 수가 있다.
그 외에 영국의 버나드 쇼 역시 사실주의 극 효시 작가 중에 한사람이라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과학을 증명하듯 오감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증명하려는 사실주의자들의 자세에 반기를 드는 극 사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4. 지연주의(Naturalism) 극
자연주의는 사실주의 이론을 극단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예술의 방법은 과학적이어야 하며 모든 행위가 유전과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주의는 1870년에 Emile Zola(1840-1902)를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그 특징으로는 우선 객관성을 지녀야 하는데 마치 과학자가 사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삶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묘사하여야 한다. 또한 솔직성을 지니고 인간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 충동을 탐구해야 하는데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한 충동은 공포, 기아, 섹스에 대한 충동인데 이 섹스에 의한 충동을 가장 강력한 것으로 취급한다.
자연주의는 인간의 유전과 환경의 강한 지배 하에서 희생된다는 환경론적 결정주의로 인간의 외적 힘에 희생되고 내적충동에 지배당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은 기계의 동작처럼 도덕적 판단에 지배받지 않고, 유전, 환경, 찰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즉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그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하여 운명되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하나의 의식적인 운동으로 시작해서 1900년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 운동은 인생에 대한 정확하고 직접적인 관찰을 주장하며, 환경과 사건의 관계를 지적해 내고, 현실의 외적 단면만을 보여줄 뿐, 인간 내면의 심리나 갈등, 내부의 심층을 파헤치는 데는 역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보다 포용력 있는 사실주의 운동에 흡수되고 말았다.
자연주의 대표 극은 Emile Zola의 소설 개작 극 Therese Raquina, Henry Beequi 의 The Vultures와 La Parisienne를 꼽을 수 있다.
4. 상징주의(Symbolism)극
상징주의(신낭만주의 혹은 이상주의, 미학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188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는데, 처음에는 시 분야에만 국한 되었으나 점차 연극이나 미술, 음악에 까지 영향을 미친 운동이다.
지나치게 기계적인 인과관계와 엄격한 환경과 유전 법칙 하에 인간의 운명을 음울하게 그린 자연주의 극에 관객들이 점차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낭만주의 연극에 집착하여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상상을 고취한 Edmond Rostand라는 작가가 나타나, 자연주의에 반발하고 낭만주의 연극을 부르짖었다.
일종의 반리얼리즘 운의 하나인 상징주의는 궁극적인 현실은 5감의 명확성이나 이성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그 대신 진리라는 것은 단지 직관에 의해서만이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궁극적인 진리는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 논리적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극작가의 직관과 관객의 감정이나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물건이나 행동을 통해 암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극에서는 표면에 나타나는 대화나 행동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 그래서 상징주의 대변인격인 Maurice Maeterlinck(1862-1949)은 사실주의 극에 반기를 들고 극이란 삶 뒤에 존재하는 어떤 힘을 암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상징과 내면의 대화를 강조한다.
대표작가 및 그 작품의 예로는 메테링크의 Pelleas and Melisande를 들 수가 있다.
5. 표현주의 (expressionism)극
20세기 초에 사실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표현주의 운동이다. 물론 표현주의적 요소가 초창기 예술에서도 나타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운동, 즉 표현주의 운동으로 나타난 것은 1910년경 독일에서다. 그 명칭은 반 고호와 고갱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화가들이 그림에 관해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곧 다른 형태의 예술에도 사용되었다. 표현주의가 무대에서 거둔 최초의 성공은 1914년 Walter Hasenclever의 The Son이란 작품에서 이었다.
표현주의는 사실주의가 외부적 현실의 묘사에 급급한 나머지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지 못하는 그 한계점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의 자율성과 주관적 가치를 중요시하여 외형 밑에 내재한 인간의 심리적, 내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한다. 극에 있어서 표현주의 극작가들은 인간을 진실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부세계, 즉 무의식의 욕망, 기대감, 좌절, 갈등, 비밀 등이 간직된 내적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이런 주관적 실체를 탐구하여 무대 위에 올리려 했던 것이다.
표현주의 극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첫째, 등장인물의 전형화라 볼 수 있다. 즉 등장인물의 개성적 요소를 제거하여 단지 남자, 시인, 직공, 농부 등으로 지칭된다. 따라서 이들은 개성을 갖춘 인격체가 아닌 개성을 상실한 3인칭적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리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가면을 사용하게 된다.
둘째, 언 어상의 변화로 표현주의 희곡에서는 논리적인 대화체와는 달리 작가의 내적 고백 또는 단편적인 어휘의 나열 등으로 그것은 일종의 부르짖음이며 절규요, 신음, 비명이고 환성인인 것이다. 따라서 이 단절된 언어 표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음향 효과를 강렬하게 사용하여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주는 것이다.
셋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희곡 구성이 아닌 장면 나열식 기법으로 변한 것이다. 여러 갈래로 분열된 자아는 한 인간의 영혼에 동시에 존재하므로 한 순간 여러 장면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 장면들은 각기 분열된 자아들을 나타내므로 자연히 장면 나열식 구성이 되며 상호 논리적인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구성은 사건의 전개, 발전, 절정, 파국에 이르는 선형적 전개가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제자리를 맴도는 순환적 구성을 보여준다.
넷째, 무대 장치면 에서 표현주의 극은 색채와 분위기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장면 전환과 함께 몽환 장면도 만들었는데, 특히 조명을 통한 색상의 도입으로 극중 장면의 상징적 의미를 강렬하게 표출해냈다. 이런 무대상의 요소들은 표현주의 극에 있어 전개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다섯째, 표현주의 극작가들은 독백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등장인물들의 외형을 뚫고 들어가 내면세계의 사상과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표현주의란 인간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무대 위에 표현하는 수법으로 사건을 정상적인 방관자의 객관적 눈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건 속에 휘말려 는 참가자의 왜곡된 눈을 통해 보인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그 표현이 솔직하고 대담하여 과장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는데, 이는 작가에게 있어 진실이라는 것은 개인 각자의 비전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므로, 현실, 사건, 현상ㄴ에 대한 자기의 비전이 개인적이거나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에 관계없이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표현주의 극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극작가는 August Strindberg(1849-1912)이다. 그는 스웨덴 출신으로 11권의 자선적인 소설을 포함하여 56편의 희곡작품을 쓴 대가이며. Henrik Ibsen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 명성의 현대 극작가 중의 한사람이다.
스트린드베리는 사실 뒤에 구체화 시킬 수 없는 t그리고 사실적인 방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꿈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진실을 표현하고자, 이른바 몽한 극이라는 독창적인 극을 시도했다. 그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꿈과 같은 분위기를 창출했는데, 왜냐면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극 Dream Play 서문에 그사 사용한 말- 필자 주*)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Georg Kaiser(1878-1945)이다. 그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중요시하여, 표현주의 수법으로 사회 개혁의 의지를 실현코자 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극작품인 From Morn Till Midnight에서 물욕과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중산층에 대한 풍자와 현대의 황폐한 물질 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은 틀에 박힌 듯한 무미건조한 생활에 권태를 느낀 나머지 회사 돈을 횡령하여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도망가 새 인생을 설계하지만 타락하고 개성 없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 결국 자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주인공은 하나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이 인물이 대표하는 계층의 유형적인 인물로 인간의 정신적 편력 (일종의 순례 형태- 필자 주*)과 자아에 대한 탐구 과정을 그린 것이다. 표현주의 극이 소멸한지 한참 후인 1960년대 미국에서 Eugene O'Neill의 The Emperor Jones를 비롯한 표현주의 극이 다시 출현하여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최대의 적은 <물질 만능주의와 산업발달>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매우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명의 발달로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을 과거의 삶으로 될 돌릴 수는 없게 한다. 그래서 표현주의 극은 극 사조에 큰 족적을 남기긴 했지만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점차 밀려나게 된다. 그렇지만 사물의 외면 못지않게 내면의 중요성을 주장은 매우 값진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6. 부조리 (Absurd Drama) 극
부조리극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구미에서 일어난 일련의 연극 운동이다. 2차 대전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하여 Samuel Beckett 외에 Eugene Ionesco, Arthur Adamov, Jean Genet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
2차 세계대전 후의 환멸로부터 그리고 안정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부조리극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무의미함과 그로 말미암은 공포를 그리고 있는데, 줄거리의 발전이나 심리적 진전 같은 것은 없고 단지 부조리한 인간 존재의 모습만을 그대로 보여주는 극이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의지도 없으며 그저 반사적인 행동으로 반응을 보일 뿐이며 대화 역시 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어휘의 나열식 전개이다.
부조리 연극은 사르트르와 카뮈를 주축으로 하는 문학 ·배경과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축으로 하는 철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Nietzsche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후 이 우주 공간에는 신적 질서나 자연의 질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다만 부조리한 상황과 부조리한 인간 존재가 서로 대면한 가운데 이 부조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의 인간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자기 혼자만의 가치를 찾아내서 그에 따라 행동하면 그 뿐인 것이다.
부조리란 말을 연극에 적용시킨 사람은 Martin Esslin으로 그의 책 The Theatre of The Absurd에서 정의 내리기를, 부조리 연극은 인생의 무의미, 이상과 순수성과 목적의 가치 절하, 존재의 불안감, 이론적 언어의 파괴, 플롯의 붕괴와 일관성 있는 성격 창조의 포기, 시적 이미저리 등을 작품 속에 도입하고, 이 같은 특징 속에서 연극의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몇 가지 부조리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옥스포드 사전에는 부조리에 관한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1. 불협화음의
2. 이성이나 양식의 조화가 안 된, 현대 용법으로서는 이성과 명백히 반대되는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은
John Russel Taylor는 <연극의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부조리 극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부조리 연극은 1950년대의 한 그룹의 극작가들에게 붙인 용어. 그들 자신들은 하나의 유파로 의식하지 않으나 세계에서 인간이 처해 있는 곤란한 입장에 대해서 일종의 공통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것은 Albert Camus가 Myth of Sysyphus에서 요약한 태도로서, Camus는 인가의 현상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존재, 목적 없는 존재로 판정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묵적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라는 의식은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나았고, 그것은 부조리 극작가들, 예컨대 Samuel Beckett, Eugene Ionesco, Arthur Adamov, Jean Jenet, Harold Pinter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이들을 선배작가들로부터 구별시켜 주는 것은 그들이 부조리 내용은 물론 형식에도 적용시켰다는 점이다. 논리적 구성, 또는 지적으로 전개되는 논리 속에서의 관념과 관념의 합리적인 연결 같은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 대신 체험의 불합리함이 그대로 무대에 옮겨졌다.
Ionesco는 1950년 5월 11일 공연된 The Bold Soprano 라는 자신의 연극을 이른바 반연극(anti-play)이라 부름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연극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희곡에는 action도 없고, 등장인물도 거의 구별이 없고 무의미한 것이 되풀이 될 뿐이다. 즉 Ionesco의 극은 관념의 연극5이 아니고 인물의 연극도 아니며, 언어의 연극도 아니다. 플롯도 없는 그야말로 반연극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는 극이라 하겠다.
영국에서의 대표적인 부조리 극작가로 Samuel Beckett와 Herlod Pinter를 들 수가 있다. Beckett의 Waiting for Godot는 플롯이 없기 때문에 앞뒤 맥락이 잡히지 않고, 극적 상황도 조성 되지 않으며 극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대화도 없고, 문제도 없고, 해결도 없다. 이 극에서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심리적 갈등도 없고, 해결도 없다. 무의미한 말들만 뇌까리고 있을 뿐이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아, 아무도 가지 않아, 정말 지긋지긋해.” 라는 극증 인물의 대사는 바로 이 작품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Pinter의 대표작으로는 The Dumb Waiter와 The Birthday Party를 꼽을 수가 있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앞뒤가 안 맞는 대사,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 활동을 불합리한 것으로 보려는 의식 등은 희극적인데 반해, 그 속에는 항상 협박적인 느낌, 피난처로부터 안전을 위협하는 느낌의 것들이다. 이런 위협적인 근원은 왜부적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나, 그것이 등장인물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불안의 시대에서 이 불안은 무의미의 파악으로 파악 할 수가 있는데 Beckett가 공허의 무의미를 강조했다면 Pinter는 거기서 오는 불안을 극화했다고 볼 수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극 사조들 외에도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소외효과, <초현실주의>, <해프닝> 등은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참고 문헌
1. Oscar G. Brockett(1979), The Theatre. Harcourt Brace College Publisher
2. G .B Tennyson(1967), An Introduction to Drama, Holt, Reinhart, and Winston
3. 김 용 락(1991). <현대희곡론>. 서울: 한신 문화사
4. 이 상 오(1988). <연극론>. 서울: 한신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