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의 살인/T.S.Eliot
성당의 살인
작 / T. S. 엘리어트
연출 / 김지후
제 1부
등장인물
켄터베리 여인들의 합창단
제관 세사람
전령
대승정 토마스 베케트
유혹자 네 사람
시종 수명
장면 : 대승정의 홀
때 : 1170년 3월 2일
합창단 자, 여기에서 있자. 대성당 가까이 이 근처에서 우리 기다리기로 하자
위험이 우리를 잡아끄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안전을 찾는 지능이 대성당으로
우리의 발을 이끄는 것이냐? 무슨 위험이
이 가난한, 가난한 켄터베리의 여인들에게 있을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재난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우리에게
위험이란 없다. 그리고 안전도 없다. 이 성당 안에는 무엇이 일어날
징조가 우리의 발을 성당으로 향하게 한 것이니,
그것을 우리의 논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금빛 시월은 음산한 십일월로 바뀌고
사과는 채집되어 저장되고, 대지는 갈색으로 변하여, 진흙탕 황무지에 죽음이 솟아날 때
새해는 숨 쉬며 기다린다. 어둠 속에 속삭인다.
노동자들은 진흙 묻은 장화를 벗어버리고 손을 뻗쳐 불을 쬐고,
새해는 기다린다. 운명은 다가오는 앞날을 기다린다.
불에 손을 쪼이며 만성절의 성도들을 회상한 자 누굴까?
때를 기다리는 순교자나 성도를, 불에
손을 쪼이며 자기 스승을 거역하는 자 누굴까? 불가에서
몸을 데우며 자기 스승을 거역하는 자 누굴까?
칠년의 세월, 그리고 여름도 지났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그 분,
대승정이 가신 후 칠년이 지났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게 나으리라
국왕이 통치를 하고, 귀족들이 통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불안을 겪어왔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해결의 길을 찾아왔고,
우리만이 남은 것을 스스로 만족한다.
제각기 자기 집안을 정리하는 데 노력하고,
상인은 세심히 조심성 있게 조그만 재산을 모으고
노동자는 저희 땅에 몸을 굽히고, 대지의 색깔을 자신의 색깔로 하여,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기를 오히려 좋아한다.
이제 이 고요한 계절은 깨지려 한다.
겨울은 바다에서 죽음을 끌고 올 것이다.
파멸의 봄은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뿌리와 가지가 우리의 눈과 귀를 삼키리라.
처참한 여름은 시내 밑바닥까지 태워버릴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쇠진하는 시월을 기다릴 것이다.
가을의 모닥불과 겨울 안개 대신,
어째서 여름에 위안을 기대하는가?
불모의 과수원에서 다시 시월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여름 더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재난이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우리는 기다린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성도들도 순교자들도 기다린다. 순교자와 성도가 될 사람을.
운명은 신의 손 안에서 그 미완성체를 형성하며 때를 기다린다.
이런 것을 한 줄기 햇빛 속에서 나는 보았다.
운명은 신의 손안에서 기다린다. 정치가의 손안에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선행도 하고 악행도 하며, 계획하고 측정하나, 그들의 목적이란 때의 형상을 따라 그들의 손안에서 변화한다.
오라, 행복한 십이월이여, 과연 누가 너를 주시할 것인가, 누가 너를 보존할 것인가?
경멸의 집 위에 다시 인간의 아들이 태어날 것인가?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행위는 없다.
다만 기다려 볼 수밖에
제관들 등장
제사장1 칠년의 세월, 그리고 여름도 지났군. 대승정이 가신 후 칠년이 지났군.
제사장2 대승정께선 어떻게 하시려는지? 그리고 로마 법황은
완고한 국왕과 그리고 프랑스 왕과 밤낮 끊일 새 없이 옥신각신을 계속하니
프랑스 내에서 여기저기
날마다 회의, 그리고 회견을 수락하시는가 하면 거절하시고,
그것이 언제까지나 계속될지 모르니.
제사장3 대체 현 정부의 하는 짓에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야.
게다가 폭력, 표리부동, 빈번한 사건뿐이니
국왕이 지배하고, 귀족들이 지배하고,
강자는 강경히, 약자는 제멋대로.
그들의 정칙은 단 한 가지, 권력을 잡고 그것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
그리고 강자는 타인의 욕망을 농락하고,
약자는 자신의 욕망에 먹혀버리고 말지.
제사장1 아,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결국 문 밖의 가난한 자들이
저희들의 친구 대승정을 잊어버리고,
저희들에게도 돕는 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계속될 것인가?
전령 등장
사령 신의 충복, 성당의 수호자들이시여, 삼가 말씀드리나이다. 딴 말씀 제폐하고,
지금 대승정께서는 영국 내에 계십니다. 바로 이 도시 가까이에 계십니다.
영접하실 준비도 있을 것이라,
가급적 빨리 말씀드리려고
급히 파견되어 온 것입니다.
제사장1 무어라구, 추방이 해제된 것인가? 그러면 대승정께서는
국왕과 화해하신 건가? 자존심 높은
두 분 사이에 무슨 화해의 길이 있었을까? 망치와 새모탕 사이에
무슨 화평이 성립될 것인가? 말하시라.
오랜 분쟁이 끝났단 말인가? 두 분을 분리시킨
자존심의 벽이 무너졌단 말인가? 그러면 전쟁인가 평환가? 그분은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고 오시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다만
법황의 권력의 보호하에서인가? 귀족들의
증오와 질투를 경멸하고, 정신적 지주로서
권리의 수호자로서, 인민의 친우로서 오시는 건가?
사령 그런 의심을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하십니다.
대승정께선 모든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시고,
인민들의 신심을 확신하시고, 자랑스럽고 한편 슬픈 마음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인민들은 그분을 영접하는 데 흥분과 열광의 장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거리에 도열하여 테이프를 던지고, 잎과 철 늦은 꽃을 길에 뿌리며 사뭇 야단입니다.
곧 시내의 거리는 숨막힐 지경으로 사람에 가득 찰 것이고,
타신 말은 꽁지가 빠져 그 털 하나하나가 귀중한 성물이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승정께선 법황이나 프랑스 왕과 화해하신 겁니다.
프랑스 왕은 대승정을 당신 나라에 머무르게 하려고까지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왕님께 있어선 그것은 문제가 다릅니다.
제사장1 다시 묻겠는데, 전쟁인가 평환가?
사령 평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아닙니다.
제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하나의 미봉책이지요.
저에게 물으신다면, 대승정은
결코 어떤 환상을 꿈꾸시는 분이 아니시고,
그뿐 아니라 당신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굽히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 평화가
하나의 끝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의 시작인 듯합니다.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대승정께서 국왕님과 작별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왕이여, 내 떠나면 죽기 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확실히 말씀드리겠는데 이것은 아주 정확한 소식으로 들은 것입니다.
어떠한 의도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합니다.
여하튼 그것이 어떤 행복의 징조라곤 아무도 생각지 않습니다.
퇴장
제사장1 나는 대승정의 신상을 염려하는 바다. 그리고 교회의 일을
돌연한 행운 속에 자란 자존심이
냉혹한 역경으로 더욱 굳어지기만 했으니
대승정의 과거를 나는 알고 있다. 대법관으로서 국왕의 아첨을 받으시고
오만한 궁인들의 사회에서 그들의 호감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언제나 고립하신 채 그들과 융합하시지 못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혹은 경멸을 받으시고, 혹은 그들을 경멸하셨던 것이다.
당신의 자존심은 언제나 자신의 고결한 성품 위에서 자랐으니
공평무사한 성품이 그 자존심을 떠받쳤고,
넒은 도량이 또한 그 자존심을 떠받쳐
일시적으로 맡겨진 권력을 싫어하시고
다만 신에게 귀의할 것만을 바라셨다.
만일 국왕이 좀 더 강대하셨던지, 또는 대승정이 좀 더 약하셨더라면
아마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제사장2 하여튼 대승정께선 돌아오신 거다. 당신 자리로 돌아오신 거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때의 12월부터 이 음울한 12월까지.
대승정께선 다시 우리의 지도자가 되셔서 이 음울과 회의를 헤쳐주실 거다.
우리의 할 바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명령을 주실 것이고,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법황과도 화해하시고, 또한 프랑스 왕과도 화해하셨다는 것이니
우리는 이제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이고, 우리의 기반은 확고부동하여
귀족들이나 지주들의 끊임없는 세력다툼에 휩쓸리지 않게 된 것이다.
반석 같은 신의 기반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자, 우리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대승정을 맞이하자.
우리의 대승정, 우리의 대승정은 돌아오신다. 돌아오시면
우리의 의혹은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 모두 즐거워하자.
기쁘다. 기쁜 낯으로 환영하자.
나는 대승정의 종복. 대승정을 환영하자!
제사장3 돌아라, 운명의 수레바퀴여, 결과야 어떻든 지난 7년간 그 수레바퀴는 정지했었다. 그리고 좋은 일은 없었다.
돌아라, 수레바퀴여, 결과여 여하튼.
그 결과의 좋고 그른 것을 누가 알랴?
드디어 맷돌이 멈추고,
거리에선 문이 닫히고
모든 노래하는 가시내들 멸망할 때까지.
합창단 여기에 영원한 도시는 없다. 여기에 영원한 의지처는 없다.
바람이 불순하고, 때가 불순하고, 이익은 불확실하고, 위험만은 확실하다.
아, 늦었다, 늦었다, 늦었다. 때가 늦었다. 너무 늦다. 늦고 썩었다. 세월이.
바람은 불순하고, 바다는 사납고, 하늘은 음산하다, 음산하다, 음산하다.
아 토마스 각하, 돌아가시라 대승정. 돌아가시라. 돌아가시라 프랑스로.
돌아가시라 빨리, 지체 없이. 우리를 조용히 죽어가도록 버려두시라.
환호성과 더불어 오신다. 기쁨과 더불어 오신다. 그러나 당신은 캔터베리에 죽음을 인도해 들인다.
이 집 위에, 당신 자신 위에, 이 세계 위에 마지막 운명은 다다랐다. 아무것도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7년간 우리는 조용히 살아왔다.
훌륭히 경고를 피해 가며
살아왔다. 희미하게 생명을 지녀왔다.
불안과 쾌락이 있었고
빈궁과 방종이 있었고
작은 부정이 있었다.
그러나 한결 같이 살아왔고, 살아왔다. 희미하게 생명을 지녀왔다.
때로는 흉년을 겪고
때로는 풍년,
어느 해는 홍수에
어느 해는 한발
어느 해는 사과가 풍년이었고,
어느 해는 자두가 흉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 같이 살아왔고
살아왔다. 약간의 생명을 지녀왔다.
축제일도 있었고, 미사도 있었다.
맥주를 빚어 넣고, 사과주를 짰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를 긁고
노변에서 도란도란
길가에서 소곤소곤
그러나 무엇 하나 거리낌 없이
살아왔다. 희미하게 생명을 지녀왔다.
출생도, 죽음도, 결혼도 있었다.
추문도 가지가지 있었고,
세금에도 쪼달렸고,
웃음에, 잡담에 꽃도 피웠다.
몇 명의 처녀들은 가버렸다.
까닭도 없이 몇 명은 그러지도 못했고.
우리는 각기 남 모를 공포가 있었고,
저만의 어두운 그림자, 저만의 두려움을 지녔었다.
그러나 지금 큰 공포가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한 사람의 공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공포가
삶과 죽음만을 따로 진공 속에서 보았을 때의 그 삶과 죽음과 같은 공포.
그 삶과 죽음과 같은 공포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마주 쳐다볼 수도 없고, 아무도 해득하지 못하는 그러한 공포에 싸여 있다.
그런데 심장은 가슴에서 찢겨 나가고, 뇌수는 양파처럼 한겹 한겹 벗겨지고, 우리 자신은 그만 행방을 잃고 만다.
정체 모를 최후의 공포 속에. 아아, 대승정 토마스 각하, 아아, 우리의 대승정, 우리를 버려두시라. 미천하고 광채 잃은 이생의 테두리 안에 버려두시라. 버려두시라.
이 집의 운명과 대승정 자신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에 입회할 것을 요구하시지 말라.
대승정이시여, 운명을 확신하시고 어둠 속에 당황하지 않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보잘 것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인간들,
운명의 틀 안에 끌려든 이 보잘 것 없는 인간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집의 운명과 대승정의 운명과 이 세계의 운명에 입회하는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의 두뇌에 미치는 그 고통을 아십니까?
아, 대승정 토마스 각하, 우리를 두어두시고, 버려두시고, 음울한 두버를 떠나서 프랑스로 배를 돌리시라. 우리의 대승정 토마스, 비록 프랑스에 계신들 우리의 대승정. 대승정 토마스 각하, 음울한 하늘과 사나운 바다 사이에 흰 돛을 다시고 우리에게서 떠나시라. 프랑스로 떠나시라.
제사장2 이때에 당하여 그것이 무슨 말인가!
어리석고 버릇없는 시끄러운 여인들이로군.
대승정께선 지금 당장에라도
도착하실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가?
거리에서 군중들의 환호성은 사뭇 터져 나오는 판인데
너희들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은 개구리들처럼 깩깩거리고 있구나.
그러나 개구리라면 차라리 요리해서 먹을 수나 있지.
비겁한 근심에 싸여 도대체 무엇을 염려하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얼굴에 웃음이나 띄우고
우리의 착하신 대승정님을 진심으로 환영하도록 하자.
토마스 등장
토마스 쉬이, 조용히. 그들이 모두 마음이 들 떠있으니 그대로 두어라.
그들은 저희들도 모르는 일, 그리고 그대들도 모르는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실은 모르는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통이란 무엇인지를.
그들은 알면서 실은 모르는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은 고뇌하는 것이요,
고뇌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임을. 그야 행위 하는 자는 고뇌하지 않고,
고뇌하는 자는 행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행위, 영원한 고뇌에서는 양자가 결합한다.
거기에서는 모두 스스로 행위에 응해야 하고, 모두 달게 고뇌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패턴은 죽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패턴이란 행동이고
고뇌이기 때문에, 그럼으로써 차륜은 회전하며, 동시에 정지할 것이다.
영원히 정지하리라.
제사장2 아아, 대승정님, 용서하십시오. 오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어리석은 여인들이 지껄이는 데에 그만 정신이 팔렸습니다.
제발 용서하십시오. 좀 더 일찍 오시는 데 대한 준비를 했더라면
보다 융성한 환영을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정님께선 아실 것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린 7년,
기도 속에 보낸 7년, 공허한 생활의 7년은
우리의 마음속에 대승정님의 돌아오심을 한껏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7일 간에 캔터베리 사원을 정돈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십이월 추위는 심하옵고, 대승정님께선 그간 이곳보다 온화한
기후에서 습관이 되셨으니
쓰실 방마다 모두 불을 넣게 하겠습니다.
들어가셔서 보시겠지만 방마다 떠나시던 그대로 정돈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그것을 지금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대들의 호의에는 매우 감사하는 바이나,
이런 것은 사소한 문제다. 적은 쉴 새 없이 우리의 주위에서
날카로운 눈초리를 쏘고 있으니, 캔터베리에선 도무지 마음의 편안이 없다.
요크, 런던, 솔즈베리 등의 역모하는 승정들은
우리의 편지를 가로채려고
해안에 스파이를 늘어놓고, 나를
철저히 증오하는 자들을 보내어 나를 영접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행이 신의 가호 있어 그들의 술책을 알아채고,
편지는 다른 날에 보내고,
무사히 바다를 건넜던 것인데, 샌드윗치에서, 프록 위렌느에게, 그리고 켄트주의 장관에게 발각되었다.
그들은 맹세코 내 목을 베겠다는 자들이었다.
다만 솔즈베리 사원의 부감독 존이
국왕의 명예를 여려한 나머지 음모를 이면에 경고하여 하수를 막았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우리는 무사한 것이다.
제사장1 그러나 그들이 뒤를 쫓을 것인가요?
토마스 얼마동안 굶주린 매는
하늘을 날며 나지막하게 빙빙 돌고만 있을 거다.
그러면서 구실과 기회를 노릴 거다.
결말은 단순하다. 순간적일 것이고, 신의 뜻하신바 그대로일 것이다.
그때까지는 우리의 최초의 행위에 있어 그 실체는
그림자에 불과할 것이고, 그림자와의 투쟁에 지나지 않으리라.
일에 있어 완성보다는 중단한 시기가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일이 앞으로 오는 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경계를 요한다.
첫 번째 유혹자 등장
유혹자1 대승정님, 제가 이 판국에 무슨 참견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과거의 모든 쓰라린 일을 잊고 여기에 나타난 것은 현재의 장중하신 당신께서
유래했던 과거를 회상하시고,
나의 겸손한 경박함을 이해해 주시리라고 바라는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대승정께선 은총을 못 받고 있는 한 옛 친구를 경멸할 의도는 없으시겠지요?
정든 톰, 명랑한 톰, 런던의 베케트,
대승정님, 베임즈 강의 그날 밤을 잊으시진 않겠지요?
국왕님과 당신과 나, 정답게 한데 어울렸을 그 때를.
우정이란 시간이 깨물어 해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대승정님, 당신께서 국왕님의 은총을 회복하셨으니.
이제 여름은 지났다. 즐거운 시간은
오래 계속될 수 없다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목장의 피리소리, 홀에서의 바이얼린의 가락
물 위에 뜨는 웃음과 사과꽃,
석양의 노래 소리, 침실에서의 속삭임,
그리고 재담과 술과 예지를 주고받으며 쪼이던 그 불,
그 불에 추운 겨울철도 타 없어지고, 어둠도 먹혀버리고 말았지요!
국왕님과 당신과 화해가 된 판이니
이젠 승이나 속인이나 명랑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환락과 쾌락은 하등 근신을 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지난날의 얘기를 하는군.
덕분에 잊을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 생각난다.
유혹자1 그것은 또한 앞날에 대한 이야기지요.
겨울철에 봄이 온 셈이지요. 가지에 쌓인 눈이
꽃처럼 곱게 둥실 뜨고, 도랑의 얼음이
햇빛을 반사하며, 과수원엔 사랑이 넘쳐
수액에서 새싹이 틀 것이니, 이리하여 우울엔 환락이 깃들지요.
토마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같은 일이 되풀이 되풀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 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란 별로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에
같은 때가 두 번 돌아오지는 않는다.
밧줄을 끊어라. 껍질을 벗어버려라. 다만
어리석은 자만이 자기의 어리석음에 집착하여
제가 올라앉은 차륜을 제가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혹자1 고개를 끄덕하는 것도, 눈을 깜빡하는 것도 좋지요.
사람이란 싫어서 내버렸던 것을 좋아하는 수도 가끔 있지요.
즐겁던 지난날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에도 역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토마스 이번에는 안 돼.
행동을 조심해야지. 회개하기엔 전심하고,
네 주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무사할 걸.
유혹자1 이런 보조로 가선 안 됩니다.
그렇게 빨리 가시면 다른 치들은 당신보다 더 빨리 앞설지도 모릅니다.
대승정님은 너무 자존심이 강하시다니까.
짐승도 극성히 울어대면 편안치 못하지요.
우리 주인, 국왕님의 하시는 태도는 이것이 아니었지요.
대승정님께선 지금까지도 죄인들에 대해서 그렇게 냉혹하신 일은 없었지요.
더구나 그들이 친구일 때엔. 마음 편히 하십시오.
마음 편한 사람이 결국 살아서 최고로 멋진 음식을 먹는 법입니다.
친구의 충고를 귀담아들으시오.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댁에 있는 거위까지 다 먹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토마스 너는 20년이나 늦게 온 셈이야.
유혹자1 그러시다면 당신 운명에 맡겨두는 수밖에 없군요.
한층 고상한 악의 쾌락에 도취하시도록 내 상관 안하리다.
그것이 한층 값진 대가로 보상되고야 말 것은 틀림없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대승정님. 내가 이 판국에 참견하진 않겠습니다.
왔을 때처럼 모든 쓰라린 일을 잊고서, 다만 현재의 장중하신 당신께서 나의 겸손한 경박함을
이해해주시리라고 바라면서 떠나갑니다.
대승정님, 만일 당신이 기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신다면,
나도 키스하면서 층대 아래에서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토마스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 봄철의 환상,
한 가지 생각이 바람결 따라 휘휘 불려 간다.
불가능은 언제나 유혹의 원인,
불가능한 일, 바라고 싶지도 않은 일,
죽은 세계를 깨우는 꿈속의 목소리,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은 현재에서 완전하지 못한 모양이다.
두 번째 유혹자 등장
유혹자2 대승정님께선 어쩌면 나를 잊으셨을 겁니다. 나는 색각이 납니다만.
클라렌돈에서, 노샘프튼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메인의 몬미라유에서 뵈었지요. 그런 것이 생각났으니,
그렇게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생각난 대로 견디는 수밖에 없지요.
다른 기억들, 그보다 이전의 훨씬 중요한 기억들,
말하자면 대법관으로 계실 때의 기억 같은 건 그에 비하면 유쾌했습니다.
요새 것들의 으스대는 꼴을 좀 보시오! 누구나 인정했던,
대정책가, 그분이 다시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토마스 어떠한 의미인지?
유혹자2 당신이 대승정이 되시자,
대법관직을 사임하셨는데 - 그것이 당신에게 있어 과오였습니다.- 그러나 그리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승정님.
획득한 권리는 점점 자라서 찬란히 빛날 것이고,
평생 계속하는 영원한 재화로서
신전에 세운 묘표, 대리석의 기념비로 될 것이 아닙니까.
인민을 통치하십시오. 그것을 미친 짓이라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토마스 신의 종복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유혹자2 신만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슬픔 뿐이겠지요.
두 개의 그림자의 대열을 피하시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는 힘을 쾌락에 담그고, 유약에 매달리며
경멸과 조소를 짊어진 환락의 행각.
또 하나는 신에게 몰두하여 신만을 사랑하는 자들의 열망.
대체 확고한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자가
믿을 수 없는 그림자와 더불어 눈을 뜨고 헤매는 일이 있겠습니까?
권력은 현시의 것, 신은 후세의 것입니다.
토마스 그런데 누구 얘기요?
유혹자2 대법관 말입니다. 국왕과 대법관.
국왕은 군림하고 대법관은 마음껏 통치하고.
이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글귀는 아닙니다.
신의 권능 하에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보호하고, 인간이 이 이상 더 잘할 길이 있겠습니까?
악한들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법을 강화하사
대의를 위하여 통치하십시오. 그리하여
정의를 베풀어 만인을 공평하게 하시면
지상에 번영을 가져올 것이고, 어쩌면 천상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토마스 무슨 말인지?
유혹자2 참된 권력은
일종의 굴복의 대가를 치르고 사는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시는 정신적 권력은 지상의 지옥입니다.
권력이란 현세의 것입니다. 그것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토마스 누가 그것을 잡는 것인가?
유혹자2 스스로 거기에 나아가는 자가 잡지요.
토마스 때는 언제?
유혹자2 언제든지입니다.
토마스 그에 대한 대가는?
유혹자2 가식적이고 성스러운 권력을 바쳐야지요.
토마스 왜 그것을 바쳐야 하나?
유혹자2 권력과 영광을 위해서지요.
토마스 안 된다.
유혹자2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감의 미덕은 깨어져 캔터테리 안에서 썩고 말 것이니까요. 그런 것은 영토 없는 군주이고,
무력한 법황의 종복으로서 스스로 손발을 묶어 맨 것,
사냥개에 포위당한 늙은 숫사슴이나 다름없지요.
토마스 안 된다.
유혹자2 좋도록 하십시오. 싸움판에선 전략이 필요합니다. 군주도
밖으로 적을 치자면 안으로는 동지의 단결이 필요합니다.
개인적 정략이 동시에 공적인 이익이어야 한다면,
위신에도 적당이라는 옷을 입혀야 할 것입니다.
토마스 너는 내가 파문시킨 승정들에 대하여 잊었구나.
유혹자2 굶주린 증오가 현명한 사리와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토마스 너는 귀족들에 대한 것을 잊었구나. 그들은 엉뚱한 특권의
지배를 언제까지나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혹자2 그들 귀족들에게 대항하자면
왕의 명분으로서, 평민의 명분으로서, 대법관의 명분으로서 해야지요.
토마스 안 된다.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쥔.
영국에서 최고 유일의 자리에 있는 나로서,
법황으로부터 권력을 받아, 묶는 것과 푸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내가 그래 미미한 권력을 탐내어 몸을 굽히겠는가?
인간의 지옥행의 운명을 좌우하고
왕에게 죄를 선언하는 것이 나의 공공연한 임무일진대 그 앙의 종복들 틈에 끼어 일을 하다니. 안 된다. 물러가라.
유혹자2 그러시다면 당신의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군요.
당신의 죄악은 태양을 향하여 솟아올라, 국왕의 머리 위를 뒤덮을 것입니다.
토마스 속세적 권력, 좋은 세계를 이룩한다는 그 권력, 현세에서 생각하는 질서, 그것을 유지하는 권력.
현세의 질서를 믿고
신의 질서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들은,
독단적인 무리에 빠져, 다만 무질서를 초래하여
그것을 조장하고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게 되면,
스스로 존중하던 것을 타락시키고 만다. 국왕에게 부여된 권력-
한 땐 나도 국왕이었다. 국왕의 팔이었고, 그의 현명한 두뇌였다.
그러나 이전에 느꼈던 득의의 영예는 지금에 와선 다만 비굴에 불과하구나.
셋째 유혹자 등장
유혹자3 저는 불청객입니다.
토마스 천만에, 기다리고 있었는걸.
유혹자3 그러나 나의 이런 모습에 대해선, 즉 나의 현재의 목적을 아신다면, 그러실 수 없을걸요.
토마스 어떤 목적이든 놀라지 않을게다.
유혹자3 그러십니까, 대승정님.
나는 농담꾼도 아니고 정객도 아닙니다.
빈둥빈둥 궁정에서 술책이나 꾸미는
그런 재간은 아예 없습니다. 우리는 궁인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은 말과 개와 계집이고,
내겐 내 영지를 관리하는 재간이 있을 뿐,
나는 내 일에나 머리를 쓰는 하나의 시골 지주올시다.
그래도 지방을 잘 아는 것은 우리들 지주이고,
지방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도 우리들입니다.
지방은 우리들 나라이고, 우리는 나라를 염려합니다.
우리야말로 국가의 간성입니다.
왕의 주위에 기생하며 책략을 꾸미는
아첨꾼은 아닙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저 입바른 말이나 좋아하는 배우지 못한 영국인이올시다.
토마스 계속해서 입바른 말을 하라.
유혹자3 목적은 명백합니다.
우정의 지속은 자기 자신들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나 그 환경도 덮어놓고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허위의 우정이 진실한 우정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 진실한 우정도 일단 끝나면 다시는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화한 사이에서 훨씬 쉽게 친목할 수 있지요.
우정이란 전연 몰랐던 사이가 차라리 쉽게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말에 연막을 쳐서 추상화하는 군
궁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유혹자3 제 말은 아주 단순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헨리왕과 화해하실
희망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저 고립해서
맹목적인 주장에만 의존하고 계신데 그것이 잘못입니다.
토마스 아, 헨리왕. 아, 국왕!
유혹자3 현상으로서는
달리 조력하는 사람이 찾으면 있을 것입니다.
국왕이 영국에서는 완전히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계시면서 앙주에서 싸우고만 계시니
그 주위엔 굶주린 신하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국을 위해 살고, 영국 안에 살고 있습니다.
대승정님, 당신이나 제가 노르만입니다.
영국은 노르만인이 통치할 땅입니다. 앙주인은 앙주에서 싸워
자멸하든지 내버려두면 되지요.
그분은 우리 영국의 귀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국민인데요.
토마스 이것이 어디로 귀착될 것인가?
유혹자3 현명한 이해관계 위에
행복한 합작을 이루게 되지요.
토마스 혹시 그대는 귀족들을 위해서 말하는 것은 아닌지-
유혹자3 당신이 나아가시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강력한 일단을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에게서 이익을 보고자 하지요.
우리에겐 교회의 조력이 유리합니다.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는 법황의 강력한 보호의
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대승정님, 당신이
우리와 함께 힘을 합하여 싸우신다면,
영국을 위하여, 로마를 위하여,
일거에 대 성공을 거두실 겁니다.
왕실이 승려를 억누르고
왕실이 귀족을 억누르는
폭압적인 권한을 종식시킴으로써!
토마스 그 권한을 수립하는 데 내가 힘을 썼던 것이다.
유혹자3 그것을 수립하는 데 힘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시간은 망각된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성ㅈ과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토마스 그런데 만일 대승정으로서 국왕을 믿을 수 없다면,
왕의 멸망을 위해서 공작하는 자들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유혹자3 국왕들이란 자신의 권력 이외는 어떠한 권력도 허용치 않습니다.
교회와 인민이 옥좌에 등을 돌리는 건 당연합니다.
토마스 만일 대승정이 국왕을 믿을 수 없다면,
그가 신 이외의 모든 것을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 가지 굶주린 욕구에 빠지는 것이나
천 가지 욕구에 빠지는 것이나 어느 쪽이 더 나은 것 없느니라.
이것은 장차 밝혀질 것이다.
나는 한 때 대법관으로서 정권을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너 같은 인간들이 자진해서 내 집 문간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궁중에서는 물론, 들에 나가서나, 창 시합장에서 나는 만인의 굴복을 받았다.
과거에는 비둘기 위에 군림하는 독수리처럼 지배했던 내가
이제 이리떼에 끼어 하나의 이리가 되어야 할 것인가?
너는 전과 같이 그 모반 행위나 계속하라.
나는 내가 국왕을 배반했다는 말을 들어선 안 되겠다.
유혹자3 그러시다면 대승정님, 나는 댁의 문전에 어른거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봄이 이르기 전에, 국왕께서
제발 당신의 충절을 가상타 여시기게 되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토마스 만들어선 부수고, 만들어선 부수고, 전에도 이런 생각이 나타난 일이 있었다.
꺼져가는 힘의 이 절망적인 애태움.
가자의 삼손도 이보다 더 했으랴.
그러나 다시 부셔버려야 한다면, 내 자신만을 부셔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넷째 유혹자 등장
유혹자4 장하게 하셨습니다. 토마스 각하, 불굴의 의지시군요.
이번에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곁에 친구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토마스 너는 누구냐? 세 사람은 찾아올 줄 알았지만 넷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유혹자4 한 사람이 더 왔대서 놀라지 마십시오.
날 기대하셨다면야 벌써 왔습지요.
나는 언제나 기대에 앞서는 사람입니다.
토마스 네가 누구란 말인가?
유혹자4 당신이 나를 모르시는 것처럼 내겐 이름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것이 내가 온 이유입니다.
당신은 나를 아시는데, 내 얼굴은 본 일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전에 만날 장소나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토마스 무슨 말이 있어 왔는가 말하라.
유혹자4 그것은 마지막에 가서 말하지요.
낚시에는 언제나 과거의 단편이 입감으로 꽂혀 있습니다.
변덕은 유약입니다. 국왕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분의 굳은 증오심에는 언제까지나 끝이 없었습니다.
역력히 아시겠지만, 국왕께선 자신의 친구였던 사람을 두 번 다시 믿으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힘을 빌리는 한 얼마든지 그것을 조심해서 이용하면서,
당신의 조력을 혹사할 뿐입니다.
결국 당신은 이용당한 후엔 덫에 채여 들어
일신의 파멸을 가져올 뿐이지요.
귀족들에 대해 말하자면, 대체 소인들의 시기심이란
국왕의 노여움 이상으로 완강한 것입니다.
왕에게는 공적인 정책이 있고, 귀족들은 사리에 빠져
질투심에 미친 아귀들인 셈이지요.
그 귀족들을 이용하여 서로 반목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다 큰 적이 왕을 치게 될 것입니다.
토마스 무엇을 권고하려는 거냐?
유혹자4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미 선택한 길 이외는
모든 길이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왕자다운 통치라는 것,
즉 위로 왕을 모시고, 아래로 만민을 다스리며
구석구석에서 술책을 꾸미며, 숨어서 계책을 세우는 그 일이,
온 정신적 권력을 한 손에 쥐는 대에 비하면 무엇이 기쁘겠습니까?
아담의 타락 이래 인간은 죄악에 억눌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묶을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권력을. 토마스 각하, 묶으십시오.
왕도 승정도 모두 묶어서 무릎 밑에 꿀리십시오.
국왕, 황제, 승정, 귀족, 국왕.
점차 무너져가는 군대의 믿음성 없는 지배,
전쟁, 역병, 혁명,
새로운 음모, 깨어진 조약.
지배자가 되었는가 하면 한 시간도 못되어 종으로 떨어지는
이것이 현세적 권력의 가는 길입니다.
노왕의 마지막 순간에 이것을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자식은 죽고, 국토는 빼앗기고, 이를 갈며 원통해 할 것입니다.
당신은 실 꾸러미를 쥐고 계십니다. 토마스 각하, 감으십시오. 감으십시오.
삶과 죽음의 영원한 실을.
당신은 이 권력을 쥐고 계십니다. 끝내 놓지 마십시오.
토마스 이 나라에서 최고인이란 말인가?
유혹자4 한 가지 경우 이외는 최고이시죠.
토마스 그건 알 수 없는 말인데.
유혹자4 그것이 왜 그러냐 하는 것을 일러드리는 것은 내 임무가 아닙니다.
나는 다만 당신이 아시는 것을 말씀드리려 왔을 뿐이지요.
토마스 얼마동안이나 그렇게 되는가?
유혹자4 당신이 이미 아시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묻지 마십시오.
그러나 토마스 각하, 생각해 보십시오. 사후의 영광을.
왕이 죽으면 다음 왕이 나타나고
다른 왕엔 다른 통치가 따르지요.
새로운 왕이 나타나면 전 왕은 잊어버려집니다.
성자나 순교자는 묘지에서 통치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토마스 각하. 낙담하고 있는 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땅을 기며 참회하고, 그늘을 보고 무서워하는 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대를 이어가며
기원의 무릎을 꿇고
보석이 찬란한 신전 앞에 열을 지어 서 있는 순례자들을
신의 은총에 의한 기적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또 한 군데에 있는 당신의 적도 생각해 보십시오.
토마스 그런 것들은 이미 생각한 것이다.
유혹자4 그렇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은 왕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으로 당신 자신을 강제합니다.
당신은 또한 생각하셨습니다. 때로는 기도하실 때에
때로는 층층대 굽이에서 주저하시며,
또는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귈 때,
잠이 깨둥만둥 한 그 경지에서 더욱 심한 경멸을 느끼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한 가지 영속하는 것 없지만 차륜은 돌고,
새 둥주리는 엽총에 맞아 새들이 비명을 올린다는 것도 생각하셨습니다.
신전은 약탈당하고, 황금은 탕진하고,
보석은 경박한 귀부인들의 장식품으로 되어버리고,
성소는 파괴되어 그 비품은 사당과 유부들의 가랑이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리라는 것도.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기적이 그치고, 신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사람들은 당신을 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게 되리라는 것도.
그리고 그 후는 더욱 악화하여, 그들은 당신을
비방하고 저주하는 정도까지 증오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성격적인 결함에 눈을 쏘고
역사적인 사실을 찾아내고자 애쓰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 사나이는 역사에 있어 어떤 역할을 했지만
신비란 없다고 펴놓고 말할 것인데, 그것도 생각하셨겠지요.
토마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알 일이 무엇이냐? 영원한 왕관을 획득할 수는 없느냐?
유혹자4 있습니다. 토마스 각하, 있습니다. 그것도 당신은 생각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신 앞에 머무르는
성도의 영광에 비할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국왕이나 황제의 지상의 영광이,
그 지상의 영화가, 그것이 빈궁은 아닐지라도
어찌 천국의 장엄한 풍족에 비하겠습니까?
순교의 길을 찾으십시오. 천국에서 높아지기 위해
지상에서는 몸을 가장 낮게 하십시오.
그리고 멀리 밑으로 심연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서,
영원한 고통 속에 정열은 고갈되고,
속죄의 길은 아득한 당신의 박해자들을 내려다보십시오.
토마스 안 된다!
내 구미를 돋우며 나를 유혹하는 너는 대체 누구냐?
다른 놈은 왔으되, 일시적인 유혹자들이었다.
분명히 쾌락과 권력을 대가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주려는 거냐? 무엇을 원하느냐?
유혹자4 나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것을 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내게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나는 소원합니다.
영원한 권위에 대한 투시력의 대가로서 그것이 그렇게 고가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토마스 다른 놈들은 실제의 것을 주는 것이었다.
가치는 없다 해도 실제의 것을. 그런데 너는 다만 파멸로 이끄는 꿈을 줄 뿐이구나.
유혹자4 당신은 그런 꿈을 자주 경험하셨지요.
토마스 나의 영혼의 병엔 달리 길이 없는가?
영광을 느끼며 파멸로 이끌리는 길밖에 달리 없는가?
나는 잘 안다. 이런 유혹이란
현재의 허영과 미래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을.
죄 많은 영광을 벗어버리자면
다만 죄를 더하는 길밖에 없단 말인가? 지옥행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내게 행동도 고뇌도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유혹자4 행동이란 무엇이며, 고뇌란 무엇인지를 당신은 알고 계시며, 또한 모르십니다.
행동한다는 것은 동시에 고뇌하는 것이고, 고뇌는 동시에 행동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며 모르십니다. 행동자는 고뇌하지 않고,
고뇌하는 사람은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영원한 행동, 영원한 고뇌에서 결합하고,
거기에서는 모두가 스스로 행위에 응하여야 하고,
모두가 달게 고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패턴은 죽지 않고 지속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차륜은 회전하며 동시에 정지할 것입니다.
영원히 정지할 것입니다.
합창단 이 집엔 평안이 없다. 이 거리엔 평안이 없다. 불안한 발자국 소리 들린다. 대기는 무겁고 숨은 가쁘다.
하늘도 무겁고 숨가쁘다. 그리고 대지는 발밑에서 밀어 올린다.
공기 중에 가득한 이 역한 냄새는 무엇인가? 시들은 나무에 걸린
구름에서 발산하는 암록색 빛은 무엇인가? 대지는 지옥의 태아를
분만하려고 사뭇 헐떡거리고 있다. 손등에 엉기는
이 끈적거리는 이슬은 무엇인가?
유혹자들 인간의 한 평생이란 기만과 실망,
모든 것이 허무하다.
허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다.
윤형 불꽃놀이나 팬터마임 놀이는 물론,
어린이회에서 수여하는 상으로부터
문학상에 이르기까지
박사학위나 정치가의 훈장 등,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비실재적이고,
인간은 허무에서 허무로 걸어만 간다.
이 분은 정말 완고덩이, 맹목적으로
자멸의 길로만 고집부리고,
기만에서 기만으로,
위세에서 위세로, 드디어는 구원없는 환상의 세계를 찾는구나.
자신의 위대함에 눈이 어두워
결국은 사회의 적, 자신의 적.
제관들 아아, 대승정 토마스 각사, 막아낼 수 없는 조류에 항거하지 마십시오.
거꾸로 부는 바람에 돛을 올려선 안 됩니다. 폭풍이 불 땐,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야 하고, 밤에는
동이 트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럼으로써 길손은 길을 찾고,
수부는 항로를 찾을 것이니까요.
합창과 제관들과 유혹자들 번갈아.
합창단 저 소리는 올빼미의 우는 소린가, 그렇지 않으면 숲속에서의 무슨 신호소린가?
제관들 창문의 빗장은 단단히 걸려졌는가, 문에 자물쇠는 채워졌는가?
유혹자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은 비인가? 문에 부딪치는 것은 바람인가?
합창단 홀에 횃불은 타고 있는가, 방에 촛불은 켜 있는가?
제관들 야경꾼은 성벽 밑을 순회하고 있는가?
유혹자들 개는 문간을 지키고 있는가?
합창단 죽음은 백가지 손을 쓰고 천 가지 길로 온다.
제관들 만인 주시하는 가운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게.
유혹자들 귀에 희미한 소리 들려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개골에 돌연한 충격 주면서.
합창단 밤에 등불 들고 걷다가도 도랑에 빠지는 수 있고
제관들 대낮에 층계를 올라가다가도 무너진 계단에서 헛디디는 수가 있다.
유혹자들 고기를 뜯으면서도 살에 오한을 느끼는 수가 있다.
합창단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나이다, 대정승님. 지금까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나이다.
우리는 무식한 여인들이 아닙니다. 바랄 것과 바라서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억압과 고통도 알고 있습니다.
착취와 폭력,
궁핍과 질병도 알고 있습니다.
겨울에 불이 없는 늙은이,
여름에 우유 없는 어린이,
직업은 빼앗기고,
죄는 우리에게 가중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지를 잘린 젊은이를 본 일이 있고,
능욕당한 소녀가 물레방앗간 시냇가에서 떨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 우리는 살아왔고,
간신히 생명을 붙여 왔습니다.
조각을 주워 모으고,
밤에는 나무를 모아
기둥만인 의짓간을 세우고
그 밑에서 자고, 먹고, 마시고, 웃었지요.
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소나마 이성과 희망을 주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공포에 휩쓸려 있습니다. 발밑에 물결치고, 하늘을 뒤덮는 그 공포, 아무도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습니다.
문 밑으로 흐르고 굴뚝 속으로 흘러들어, 귀로 입으로 눈으로 닥쳐오는 이 공포.
신은 우리를 버리신다, 우리를 버리신다. 삶과 죽음보다도 더 심한 이 고통.
숨막힐 듯한 절망의 취기가 쏟아져
어두운 공기 속에 흐뭇하게 넘쳐흐른다.
그 어두운 공기 속에서 여러 가지 형체가 나타난다.
고양이처럼 그르릉거리는 표범, 묵중한 발걸음의 곰, 종려나무를 탁탁 치며 끄덕거리는 원숭이, 그리고 사각 진 하이에나가 기다리고 있다.
웃음이, 웃음이, 웃음이 터지기를. 지옥의 주님들도 여기 저기,
당신의 주위에 매달리고, 발 뿌리에 뒹굴며 어두운 공기 속에서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아 대승정 토마스 각하,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당신의 파멸은 우리들의 파멸입니다.
토마스 이제 내 길이 뚜렷하다. 의미가 분명하다.
두 번 다시 이런 종류의 유혹엔 빠지지 않겠다.
끝판의 유혹은 가장 무서운 반역이었다.
그릇된 이유를 위하여 옳은 행동을 한다는 것,
가벼운 죄악 속에 담긴 자연의 생기는
우리의 생이 시작되는 모습니다.
33년 전에 나는 쾌락과 출세와 찬사의 길을 찾는
모든 방법을 추구하였다.
감각적 기쁨, 학문과 사상의 기쁨,
음과 철학, 호기심,
라일락 꽃나무에 앉는 자색 방울새,
창 시합장에서의 기교, 장기의 술책,
정원에서의 사랑, 악기의 반주에 부르는 노랫소리,
이 모든 것이 한결같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처음의 힘이 다 없어지고, 무엇이고 모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을 때 야심이 움텄다.
야심은 뒤로 남 보이지 않게 온다.
죄악은 선행과 더불어 자란다. 내가 국왕의 법률을
영국에 펴고, 왕과 더불어 툴루스에서 싸웠을 때
귀족들로 하여 ㅈ희들의 꾀에 저희가 쓰러지게 했다. 또한
나는 나를 경멸할 만한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을 경멸해버렸다.
그놈들의 행동범절이란 결국 저희들의 손톱 정도에나 겨우 관심이 미치는 그런 무례한 귀족놈들을
내가 국왕의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신의 종복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연 없었다.
신을 섬기는 자들이 왕을 섬기는 자들보다도 오히려 더 큰 죄와 슬픔에 빠질 기회를 갖는 것이다.
한충 명분 있는 일에 이바지하는 자들이 옮은 행동을 하면서.
그 명분이 도리어 자기들에게 쓰이도록 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치가들과 싸우고 있는 동안엔
그 싸우는 명분이 정치적으로 되고 마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자기가 무엇이라는 것을 잊고,
다만 싸우는 행동에만 치중하기 때문이지. 아직도
내 자신의 얘기에 대해선 할 말이 남아 있지만
그것이 너희들에게는 가장 흥미 없는 일일 것이고,
한 미치광이의 어리석은 자학이거나,
광신자의 오만한 정열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기엔 역사란 언제나
동떨어진 원인에서 기묘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악과 모든 신성 모독과
죄와 과오와 압박과 도끼날과
무관심과 착취 때문에, 너도 또 너도
그리고 너도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 너희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칼끝을 향하여 행동하지도 고뇌하지도 않을 것이다.
신께서 나의 보호자로 정하신 천사님이
지금 칼끝 위를 떠돈다.
막 간
1170년 크리스마스날 아침, 캔터베리 성당에서의 대승정의 설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제 2장 제 14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신의 아들딸들이여, 오늘 아침의 나의 설교는 극히 짧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크리스마스 미사의 깊은 의미와 신비를 숙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사를 올린 때에는 언제든지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크리스마스의 미사에는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인류를 구원하려 오신 것을 기뻐하는 동시에, 주님의 살과 피를 전 세계의 죄에 대한 속죄의 제물로 신에게 바치는 겁니다. 바로 간밤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목양자들 앞에 천사의 무리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한 것은, 일년 중 바로 이 때에 우리는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음을 동시에 축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여, 보통 세상 생각으로는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대체 이 세상에서 누가 동시에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기쁨이 슬픔에 억눌리거나, 슬픔이 기쁨으로 말미암아 구축당하거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이유로 동시에 기뻐할 수도 있고 슬퍼할 수도 있는 것은 다만 우리 기독교인의 의식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이 「평화」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에 휩쓸리고 전쟁의 공포에 싸여 있는데, 천사들이「평화」를 선언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까요? 천사들의 말은 잘못이었고, 약속은 헛된 것이며, 기만에 불과했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주님 자신이 어떤 뜻으로 평화라는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을 이제 생각해 보십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평화를 남긴다, 너희들에게ㅣ 평화를 준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평화라는 뜻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았을까요? 즉 영국은 우방국가와 평화를 유지하고, 귀족들은 왕과 화합하고, 가장은 평화스런 소득을 계산하고, 깨끗이 쓴 노변에서 친구와 식탁에 앉아 좋은 술을 나누며, 아내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는 그러한 평화와 같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이런 것을 염두에도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멀리 고행의 길로 나서, 육지에서 바다에서 고난을 겪고, 박해와 투옥과 절망을 체험하고, 결국은 순교의 죽음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을 알자면 다음과 같이, 또한 주님의 말씀하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알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지만, 세상이 주는 평화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시 또 한 가지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인 아마 누구나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의 제전에서 주님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 축하할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에는 최초의 순교자 스테판의 순교를 축하합니다. 이 최초의 순교의 날이 예수의 탄생일 직후에 있는 것이 하나의 우연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탄생과 수난을 동시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과 똑같이, 그보다 작은 상징인 순교자들의 죽음에 있어서도 기뻐하며 동시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순교하게 한 세상의 죄를 슬퍼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또 하나의 혼이 천국의 성도들 사이에 열석하게 된 것을 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여, 우리는 순교자를 단순히 그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살해당한 훌륭한 기독교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만이라면 다만 슬퍼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단순히 성도의 한 사람으로 올라간 훌륭한 기독교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만이라면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기쁨이란 세상의 그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의 순교는 결코 우연지사가 아닙니다. 성도는 우연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의지나 노력으로 지배자가 될 수 있지만, 기독교의 순교는 성도가 되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야심으로 강화되고, 거기에 사기와 감언과 폭력의 작용이 가해집니다. 결국 그것은 불순한 행동의 누적입니다.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순교자나 성도는 언제나 신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인간을 수호하고 인간에게 길을 가르쳐 신의 길로 인간을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순교는 인간의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순교자란 신의 뜻대로 되어버린 사람이므로, 그는 신의 의지 속에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맙니다. 아니 버린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는 거지요, 왜냐하면 신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는 자기에 대하여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순교의 영광마저 바라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지상에서는 교회가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동시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고, 그와 꼭 같이 성도들은 그들이 몸을 가장 낮게 하였으므로 천상에서는 가장 높여져, 우리가 그들을 보는 바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의 원천에 있는 신성의 빛을 받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의 아들딸들이여, 나는 지금까지 과거의 순교자들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그에 수반하여 특히 우리 캔터베리의 순교자, 대승정 엘헤즈에 대한 것을 상기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주께서 가져오신 「평화」란 어떤 것인가를 이 예수의 탄생일에 회상한다는 것이 적절한 일이기 때문이며, 또한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여, 나는 어쩌면 다시는 이 설교단에 설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하나의 순교자가 나타날 것이며, 하나로서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나의 말을 가슴에 새겨두고, 다시 어느 때에 그 말을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제 2부
등장인물
켄터베리 여인들의 합창단
제관 세 사람
기사 네 사람
대승정 토마스 베케트
시종 수명
장면 : 1장은 대승정의 홀
2장은 성당의 내부
때 : 1170년 3월 29일
합창단 남쪽에서는 새가 울고 있을까?
여기엔 폭풍에 몰려 육지로 날아온 해로가 울부짖고 있을 뿐.
봄철의 징조는 어디 있는가?
다만 낡은 것이 죽어가고 있을 뿐. 움직이는 것도 싹트는 것도 숨결도 없다.
해는 길어지기 시작하였는가?
낮이 길어지고 어두워짐에 따라 밤은 점점 짧아지고 차지는구나.
대기는 차분히 짓눌려 있는데, 동쪽에는 바람이 차있다.
들에는 굶주린 수탉이 쭈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 숲 속엔
올빼미가 공허한 죽음의 곡조를 되풀이한다.
쓰라린 봄철의 징조는 어디 있는가?
동쪽엔 바람이 차 있다.
주님의 탄생하신 이 크리스마스에
지상엔 평화 없고 인심엔 성의가 없단 말인가?
인간이 신의 평화를 지키지 않는 한 이 세상의 평화는 언제나 불안정하리라.
인간의 싸움은 이 세상을 더럽히지만, 주님의 죽음으로 그것이 갱생한다.
세상은 겨울에 정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에겐, 다만
음산한 봄과 조갈한 여름과 공허한 가을이 있을 뿐.
크리스마스와 부활제 사이에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
농부는 삼월에 들에 나가 전에 간 바로 그 밭을
또 갈 것이고, 새는 같은 노래를 또 부르리라.
나무에는 잎이 나고, 말오줌대와 아가위꽃이
시내 위에 활짝 피어 대기는 맑고 드높아
목소리들이 창문가에 들리고, 아이들은 문 앞에서 뒹굴며 놀 때, 그때까지
어떠한 일이 이루어져 있을까? 새소리가,
푸른 나무가, 어떠한 악을 은폐할 것이며, 싱싱한 대지가
어떠한 악을 싸 덮을 것이냐? 우리는 기다린다. 시간은 짧고
기다림은 길다.
네 사람의 기사 등장
기사1 우리는 국왕님의 종복들이요.
제사장1 알고 있습니다.
잘들 오셨나이다. 멀리서 말을 달리셨나요?
기사1 오늘은 그리 멀리서 온 건 아니지만, 일이 긴급하여
프랑스에서 온 것이요. 어제 심히 말을 달려
배를 타고 밤늦게 상륙한 것인데,
대승정님께 용무가 있소이다.
기사2 급한 용건이요.
기사3 국왕님의 용건이요.
기사1 부하들은 밖에 대기시켰소.
제사장1 아시다시피 대승정께선 내객에게 친절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막 만찬에 임하려는 판이었습니다.
용무를 보시기 전에 여러분께서 향연을 받으시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승정님께서 기분을 상하실 것입니다.
식사를 같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종님들에게도 접대해 드리겠습니다.
자, 용무 전에 우선 식사를. 로스트 포크를 좋아하시는가요?
기사1 식사 전에 우선 용무를 볼까하오. 우선 여러분의 음식을 굽고, 나중에 그것을 먹기로 하지요.
기사2 하여튼 대승정님을 뵈어야겠소.
기사3 우리에겐 대승정님의 환대가 필요치 않다고 말씀드리고.
우리의 식사는 우리들이 염려할 것이니.
제사장1 (시종에게) 대정승님께 말씀드려라.
기사4 얼마동안이나 기다리게 할 것이요?
대승정 등장
토마스 (제관들에게) 아무리 틀림없이 오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라도
그 순간이 오고 보면 그것이 뜻밖의 일같이
생각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긴급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 오는 것이다.
그대를 나중에 내 테이블 위를 보도록 하다.
서류는 정리해놨고, 문서에는 서명을 해 두었으니
(기사들에게) 잘들 왔소. 용무야 무엇이든
국왕으로부터의 용무렸다?
기사1 틀림없는 국왕님의 사신입지요.
혼자 계시는 데서 말씀드릴 일입니다.
토마스 (제관들에게) 물러들 가라.
자, 용건은?
기사1 용건은 이러합니다.
기사들 각하는 왕에게 거역하는 대승정으로서 왕명을 거슬리고 국법을 배반했소.
대승정이란 본시 국왕이 임명한 것으로서, 그 지위에서 왕명을 수행하도록 된 것이요.
각하는 국왕의 종복이고, 그 연장이고, 그 손발이며
국왕의 은총을 등에 입었고,
각하의 명예는 모두 국왕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지요. 권력, 그것을 상징하는 도장과 반지가 모두 국왕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본시 한 장사하치의 아들로 뒷골목에서 난, 뒷문으로나 드나드는 하층민이었던
그런 물건이 국왕을 타고 기어올라, 피에 부풀고 자만심으로 포만하게 된 것이 아닐까!
런던 거리의 먼지 속에서 기어나와
내의에 붙은 이처럼 기어오르며,
기만과 사기와 허위를 자행하고,
맹세를 깨뜨리고 국왕을 배반한 것이다.
토마스 그것은 옳지 않은 말.
반지를 받은 전후를 막론하고
나는 언제나 국왕의 충실한 신하였소.
내 명령을 삼가고 국왕의 명령에 좇는
전국에 으뜸가는 충신으로 자처하오.
기사1 자기의 명령을 삼간다고요! 차라리 그 명령을 발동하여 목숨이나 건지시지.
물론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야심을 억제했다는 것이겠고, 자만과 시기와 원한을 억제했다는 말이겠지요.
기사2 오만과 탐욕을 억제했다는 게로군.
자기 소원을 신에게 기도드려달라고 우리에게 청할 생각은 없나요?
기사3 글쎄, 우리 기도나 드려줍시다.
기사4 우리 기도 드려줍시다.
기사들 신이 각하를 도우시도록 우리 기도를 드립시다.
토마스 그런데 여러분, 그래 그렇게 긴급하다고 말한 용건이건만 결국 힐책과 모욕뿐이란 말인가?
기사1 그것은
충성스런 신하들로서의 우리의 의분에 불과하오.
토마스 충성스럽다고? 누구에게?
기사1 국왕에 대해서!
기사2 국왕에 대해서!
기사3 국왕에 대해서!
기사4 국왕님에게 신의 축복 있기를!
토마스 그렇다면 그 충성의 새 옷을
조심스럽게 입도록 하오. 더렵혀지고 찢겨지지 않도록.
달리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기사1 왕명에 의한 것이요.
지금 말해야 할까?
기사2 지체 없이,
이 늙은 여우가 달아나기 전에.
토마스 왕명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이 왕명이라면
공공연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비난하려면
나도 공공연히 그것을 반박하련다.
기사1 안 된다! 지금 당장!
그들은 토마스에게 달려든다. 제관들과 시종들이 돌아와서 조용히 사이를 가로막는다.
토마스 지금 당장에!
기사1 각하의 과거의 여러 가지 과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리다.
그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분쟁이 끝나고, 과거의 특권이
다시 부여된 후에 각하는 어떻게 사의를 표시하였는지?
그리고 각하가 추방된 것도,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닌데 영국을 탈출했던 것은 아시겠소. 다만
프랑스 영토 내에서 소요를 일으키자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지?
각하는 분쟁의 씨를 국외에까지 뿌리고,
국왕을 프랑스 왕과 법황에게 참소하고,
국왕에게 불리한 그릇된 여론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기사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께선 인자하신 마음에서,
그리고 각하의 친우들의 권고도 있어 관대한 처치를 내리시어
화해의 길을 마련하시고, 분쟁을 끝내시고,
각하를 소원대로 각하의 관구에 돌려보내신 것이다.
기사3 그리고 각하의 죄를 기억 속에 묻어버리시고,
각하의 명예와 재산을 회복케 하였으며,
모든 간청을 다 허락하신 것인데,
다시 묻거니와, 각하는 그 사의를 어떻게 표시하였는지?
기사4 젊은 태자의 대관식에 협력한 자들을 면직하고,
그 대관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왕의 충실한 종복들, 자기의 부재중에
자기의 임무를, 아니 국무를 수행한 모든 사람을
파문의 사슬에 묶고,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한 갖은 수단을 다하였던 것이다.
기사1 이런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일 각하가 국왕의 어전에서
기꺼이 변명할 의사가 있는지 말하라. 그것을 알고자 온 것이다.
토마스 태자의 관을 벗기고,
그 명예와 권력을 박탈한 것은 나의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어째서 국왕은 나에게서 교구민을 빼앗고,
나를 그들에게서 멀리하고, 캔터베리에
혼자 앉아 있도록 명한 것인가?
나는 태자에게 하나 뿐이 아니라 둘 셋의 관이라도 씌워주고 싶다.
그리고 승정들로 말하면 그들에게 멍에를 씌운 것은
내가 아니다. 그 멍에를 내가 취소할 것도 아니다.
할 말이 있다면 법황에게 가도록 하라. 그들을 벌한 것은 법황이다.
기사1 각하를 통해서 그들은 면직된 것인데.
기사2 각하에 의하여 그것이 번복되어야 할 것이지.
기사3 그들을 석방하라.
기사4 그들을 석방하라.
토마스 그것이 나를 통해서 된 일이라는 것을 부정은 안한다. 그러나
법황의 명에 의하여 구속된 자들을
내가 풀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법황에게 가리라. 그들이
나를 모욕하고 교회를 모욕한 책임은 그분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기사1 그건 그렇다 하고, 국왕의 명령을 전한다.
각하와 각하의 시종들은 이 나라에서 떠나야 한다.
토마스 그것이 국왕의 명이라면 감히 답변하겠다.
7년간 나의 교구민들은 나 없이 살아왔다.
7년간의 불행과 고통.
7년간 나는 하나의 걸인처럼 외국의 동정을 구하며 헤매어 온 것이다. 7년간이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내겐 다시 회복할 수 없는 7년간이다.
결코 다시는 목양자와 그의 신자 사이에
바다를 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사1 국왕의 정의, 국왕의 존엄에 각하는 엄청난 모욕을 가하는구려.
불손한 미치광이, 종복들과 목사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는 별 짓을 다 할 인간이군.
토마스 국왕을 모욕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보다도 국왕보다도 더 높은 존재가 있는 것이다.
지금 그대들이 공격을 가하는 상대는 내가 아니다.
나 이 뒷골목의 베케트가 아니다.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베케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율법이고, 로마의 심판이다.
그러니 로마로 가라. 그렇지 않으면 로마의 심판을 내리게 하라.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인 너희들에게.
끊임없이 무모한 짓만 하고 다니는 어쭙잖은 관료배들!
그리스도의 율법을 깨뜨리는 자들은 로마만이 사면할 수 있을 뿐이다.
기사1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말하는군.
기사2 칼의 위험을 앞에 두고 말하는군.
기사3 그것은 배신과 역모의 말이다.
기사4 불의에 젖은 반역자.
토마스 내 문제는 로마의 심판에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무덤에서 나와
내 문제를 신의 성좌 앞에 내놓으련다.
기사들 목사놈들아! 시종들아! 잡아라, 붙들어라, 가둬라.
국왕의 이름으로 이놈을 구속하라.
그렇지 않고 만일 우리가 오기 전에 저 놈이 도망친다면 너희들의 몸으로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국왕의 정의를 위하여 오는 것이다. 다시 올테다.
퇴장
토마스 저 도망치는 놈들을 뒤쫓아라. 저 달아나는 놈들을 추적하라.
와서 체포하라. 칼을 가지고 오라.
여기에서 나는 언제나 주님의 싸움에 임할 태세가 되어 있다.
너희들도 언제든지 임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라.
아니 나는 그보다 오히려 순교에 임할 태세가 되어 있다.
합창단 냄새가 풍긴다. 죽음의 사자들의 냄새가.
이상한 예감으로 감각이 예민해진다. 밤중에
피리소리가 들렸다. 피리소리와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낮에는
젖은 날개가 비를 거슬러 하늘을 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기이한.
스푼에서 썩은 고기 맛을 보았다. 어둠이 내릴 무렵 대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불안하고 묘한 기분으로.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짐승들의 울음소리 속에 웃음소리를 들었다. 승냥이, 숫나귀, 갈까마귀들의. 그리고 쥐들의 살살 기어 다니는 소리며, 미치광이 같은 강오리의 킬킬대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또한
새벽의 안개 낀 햇볕 속에 회색말 모가지가 비틀리고 쥐꽁지가 감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멀렁멀렁한 아직 살아있는 짐승을 먹었다. 바다 속 생물의 독한 짠맛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리고
살아있는 가재, 게, 굴, 고동, 보리새우도 먹었다.
그것들이 내 뱃속에서 살아서 새끼 친다. 내 창자는 새벽 햇볕 속에 녹아버린다. 나는
장미 속에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접시꽃 속에, 완두콩 속에, 히야신스 속에, 푸리무라꽃 속에서도. 그리고 이상한 장소에서 허리통과 뿔, 어금니와 발굽을 보았다.
나는
바다 속에 누워 말미잘의 숨결에 따라 숨쉬고, 해면과 더불어 탐식했다. 그리고 흙속에 누워서 구더기를 비난했다. 공중으로
나는 연과 더불어 떠돌고, 연과 더불어 돌진하고, 굴뚝새와 더불어 움추렸다. 그리고
딱정벌레의 뿔, 독사과의 비늘, 코끼리의 딱딱한 감각 없이 움직이는 피부, 고기의 미끈미끈한 옆구리도 만져봤다. 나는
접시 속에서 썩은 냄새를, 변소에서 향내를, 향속에서 오물 냄새를, 숲속 길에서 향긋한 비누 냄새를 맡았고, 대지가 부풀어 오를 때 숲 속 길에 달콤한 지옥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맡았다. 그리고
빛의 둥근 테가 뱅뱅 돌며 아래로 내려와
원숭이를 놀라게 하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가 지금까지 몰랐단 말인가? 몰랐단 말인가? 여기에 다 있었다. 부엌에, 복도에
마구간에, 창고에, 외양간에, 신발장에,
그리고 우리들의 혈관 속에, 창자 속에, 또한 두개골 속에, 집권자들의 모의하는 가운데에도
권력자들의 밀담 속에도 있었다.
운명의 베틀 속에 짜여 진 것,
군주들의 회담 속에 짜여 진 것은
또한 우리의 혈관 속에도, 우리의 뇌수 속에도 짜여 져 있는 것이고,
산 벌레들의 패턴과 같이
이 캔터베리 여인들의 창자 속에 짜여 져 있는 것이다.
냄새가 풍긴다. 죽음의 사자들의 냄새가 지금에 와서
행동하기엔 너무 늦었고, 회개하기엔 너무 이르다.
최후의 굴욕에 응하는 자들이
수치스러워 기절해 쓰러지는 것 이외는 아무 일도 불가능하다.
대승정님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저 순응했습니다.
찢기고, 억눌리고, 더럽혀졌습니다.
영적인 자연의 육체에 묶이고,
동물적인 영의 힘에 지배되어
자기 파괴의 욕망과
영의 최종적인 완전한 죽음과
황폐와 치욕의 종국적인 황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아, 대승정 각하, 아 대승정 토마스 각하, 용서하십시오.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이 치욕의 밑바닥으로부터 당신에게 기도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토마스 진정하라. 가지 가지 생각과 환상을 가라 앉혀라.
이런 것들이란 당연히 왔어야 할 것이 왔을 뿐이니, 너희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느니라.
이것은 너희들에게 부과된 영원한 집의 한 몫,
말하자면 영원한 영광이다. 이 순간은 이렇다 하지만, 다음 순간 신의 목적이 달성되는 때에는
돌연한 기쁨에 가슴이 꿰뚫리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집안에서 가간사에 휘몰릴 때 너희들은 이런 것을 잊을 것이고,
노변에서 한가할 때 그것이 생각나리라.
세월과 망각에 싸여 기억이 상쾌해질 때
다만 하나의 꿈처럼 생각나리라. 자주 들어서
들을 때마다 이야기가 달라진 꿈처럼. 그때엔 그것이 사실처럼 생각되지 않으리라.
인간이란 너무 절실한 현실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제관들 (제각기) 대승정님, 여기에 머무르셔선 안됩니다. 성당 쪽으로 가십시오. 회랑을 통하셔서. 여유가 없습니다. 그놈들이 무장을 하고 돌아옵니다. 제단 쪽으로 제단 쪽으로. 벌써 당도했습니다. 신전으로 쳐들어옵니다. 성당의 문을 막고 못 들어오게 해야겠습니다. 여기 계셔선 안 됩니다. 모셔내라, 억지로라도. 몸을 잡아서.
토마스 그 놈들은 내 목숨을 빼앗고자 오고 있는 것이고, 나는
목숨을 걸고 기다린다. 죽음은 내게 그만한 가치가 없을 때엔 오지 않을 것이다.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위험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의지를 관철할 뿐이다.
제관들 대승정님, 그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당장 쳐들어 올 것입니다.
목숨이 위태하옵니다. 제단으로 가십시오.
토마스 진정하라, 조용히 하라. 그대들이 있는 곳과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기억해 두라.
놈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목숨뿐이다.
그리고 나는 위험치 않다. 다만 죽음의 가까이에 있을 뿐이다.
제관들 서두르십시오, 대승정님. 말씀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목숨을 빼앗기신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됩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됩니까?
토마스 그것은 다시 하나의 새로운 테마소서 시간의 패턴 속에서 전개되고 해결될 것이다.
나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도피하지 않는다.
즐겁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이
신의 율법을 지키고, 성규를 지킬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제관들 대승정님, 저녁 기도에 나가셔야겠습니다. 반드시 참례하셔야겠습니다.
신성한 임무를 등한시 하실 수 없습니다. 저녁 기도대.
성당으로 들어가십시오.
토마스 그대들이나 저녁 기도에 나가라. 그리고 기도할 때엔 나에 대해서도.
목자는 여기에 있어야 할 것이고, 양떼는 잘 은신시켜야 할 것이다.
지복을 알리는 소리 귓전에 떨린다. 천국의 눈짓, 속삭임 들려온다.
그리로 가는 길, 누가 나를 거부할 것인가. 모든 것은 기쁨에 찬 극점을 향하여 나아간다.
제관들 모셔내라, 억지로라도 끌어내 모셔라.
토마스 손을 떼라!
제관들 저녁 기도에. 그리로 모셔라. 몸을 일으켜 모셔라. 빨리.
제관들은 토마스를 끌어낸다. 합창단이 노래하는 동안 장면은 대성당으로 바뀐다.
합창단 (라틴어로 부르는 찬송가 「최후의 심판」이 멀리서 들린다.)
손은 마비되고 눈시울은 말라라.
그래도 아직 공포는, 더욱 무서운 공포는
창자에서 눈물 질 때보다도 더욱 무거운
그래도 공포는, 더욱 무서운 공포는
손가락이 비틀리고
두 골이 빨개질 때보다 더욱 무서운.
소리 없는 낭하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보다도,
문간에 어릿거리는 그림자보다도,
홀 안에서의 광란보다 더욱 무서운.
지옥의 사자는 간 데 없고, 인간은 점점 졸아들어, 드디어
바람에 불리는 먼지로 화하고, 망각 속에 사라져 다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죽음의 하얀 평평한 얼굴, 신의 말없는 종복이 있을 뿐,
그리고 그 죽음의 얼굴 뒤에는 심판이,
그 심판의 뒤에는 지옥 내의 살아 있는 형체들보다 더욱 무서운 진공이 있다.
그것은 공허, 무, 신으로부터의 이탈
공막한 땅, 아니 그것은 땅이 아니라 다만 공허이고, 무이고, 진공일 뿐,
그리로 향하는 헛된 여행의 공포,
거기에선 전에 인간이었던 자들이 더 이상 기분전환이나 망상에
마음을 돌릴 수 없고, 꿈과 가장으로 도피할 수도 없다.
거기에선 영혼이 기만에 빠지는 일이 없다. 기분전환의 대상이 될
물체도, 음조도, 색깔도, 형체도 없고 영혼은
그 자체를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영원히 보기 흉하게 결합된 그 자체를, 무와 결합된 무를,
소위 죽음이라는 것도 아니고, 죽음 밖의 죽음이 아닌 그것.
무섭다, 참으로 무섭다. 그러면 나의 긴급한 경우에
누가 나를 대변해 주고, 나를 두둔해 줄 것인가?
나무 위에서 죽은 우리의 구주이시여,
당신의 고난이 헛되지 않기를
구원하옵소서. 주님이여, 나의 최후의 공포에서.
흙으로 태어나 흙을 좇고 있는 이 몸을
다가오는 최후의 운명에서
구원하옵소서. 주님이여, 죽음은 가까웠나이다.
대성당 안에서. 토마스와 제관들.
제관들 문을 잠거라, 빗장을 질러라.
문은 잠겼다.
이젠 안전하다. 위험은 없다.
밖에서의 소동은 헛되고 말리라.
안으로 쳐들어올 수도 없을 것이고,
감히 쳐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들에겐 힘이 없다.
이젠 안전하다. 위험은 없다.
토마스 빗장을 빼라, 문을 열어라!
이 기도의 집,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 성소를, 성채로 만들고 싶진 않다.
교회는 스스로 그 자체를 자체의 방법으로 방어한다.
나무나 돌은 필요 없다. 나무나 돌은 썩는다.
지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는 영원하다.
교회는 그 문이 열려져야 한다. 우리의 적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라!
제관들 대승정님! 그놈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미친 짐승 같습니다. 성소를 우러러 받들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달려옵니다. 사자나, 표범이나, 이리, 산돼지들이 온다면 문을 닫으실겁니다.
그러시다면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영혼을 가진 짐승에 대해서나,
짐승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승정님! 대승정님!
토마스 문을 열어라!
나를 무도한 자포자기의 광인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너희들이 한 행동이 선이냐 악이냐를 결정하는데 있어 이 세상에서 하듯이 결과만으로 논하려고 한다.
너희들은 사실 앞에 복종하고 만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생과 하나하나의 행동에
반드시 선과 악의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는 중에 대부분의 행위의 결과가 분간할 수 없게 되듯이
선악도 결국에 가선 혼동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 죽음이 시간 안에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내 결의, 만일 그 것을 결의라고 한다면,
나의 전존재가 완전히 호응한
나의 결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 밖에서이다.
나는 내 생명을
인간의 법칙 그 위에 있는 신의 법칙에 내 맡긴다.
나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너희들이 나의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저기 문을 두드리고 있는
미친놈들에 대해서나 생각이 미치지, 그 이상 무엇을 알겠느냐?
문을 열어라! 빗장을 빼라!
우리들은 싸우고, 책략을 세우고, 저항하여 승리를 거두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짐승과는 싸워서
정복해 왔다. 우리들은 다만 고난을 받음으로써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승리의 첩경이다.
지금에 있어선 십자가의 승리가 있을 뿐, 자,
문을 열어라! 명령이다. 문을 열어라!
문이 열린다. 기사들이 들어온다. 다소 걸음이 허둥거린다.
제관들 이쪽으로, 대승정님! 빨리요, 계단을 오라셔서 옥상으로.
지하실로, 빨리요. 자, 내 모셔라.
기사들 (한 사람이 한 행씩 말한다.)
베케트는 어디 있느냐, 역적은?
베케트는 어디 있느냐, 주제넘은 목사놈은?
내려오라, 다니엘, 사자굴로.
토마스 주님을 위하여 지금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주님의 교회에는 평화와 자유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의 마음대로 하라. 그것이 너희들의 손실이요, 불명예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선, 평민이건 성직자이건,
신의 이름을 걸어 손을 대선 안 된다.
이것을 엄금한다.
기사들 역적! 역적! 역적! 역적!
토마스 레지날드, 너는 삼중의 역적이다.
속세의 것이긴 하나 나의 지위에 대한 반역,
너희들의 정신적 주에 대한 반역,
신의 교회를 모독함으로써 신에 대한 반역.
기사1 한 배신자에게 충성을 다할 의무는 없다.
내게 의무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갚아주겠다.
토마스 이제 나는 전능의 신에게, 성처녀 마리아에게,
세례자 요한에게,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에게, 순교자 데니스에게, 기타 모든 성도에게 나의 정의와 교회의 정의를 맡긴다.
기사들이 토마스를 죽인다. 그동안에 코러스가 들린다.
합창단 대기를 씻어라! 하늘을 씻어라! 바람을 씻어라! 돌에서 돌을 떼어내어 그것을 씻어라.
대지도 부정하고, 물도 부정하고, 우리들의 짐승들도, 우리 자신들도 피로 더럽혀졌다.
피 비에 흐려져 내 눈은 보이지 않는다. 영국은 어디에 있는가? 켄트는 어디 있고, 캔터베리는 어디 있는가?
아아, 멀리, 멀리, 멀리, 멀리, 과거 속에 묻혀져 버렸다. 나는 잎이 다 진 가지 사이를 방황한다. 가지를 건드리면 피가 듣는다. 나는 메마른 돌 틈의 땅을 거닌다. 돌도 건드리면 피가 듣는다.
어떻게 나는 부드럽고 고요한 계절로 돌아갈 것인가?
밤은 우리에게 머무르고, 태양은 서고, 계절은 움직이지 않고, 밤은 오지 않고, 톰은 오지 않는다.
다시 낮을 보고, 거기에 나타나는 일상적인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피 내리는 커튼을 통하여 피에 젖은 그것들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는 사사로운 불행도 이해하고,
개인적인 손실이나 전체적인 비참도 모두 겪어가며
살아왔다. 가냘픈 생명을 비어왔다.
낮의 행동이 시작되자 끝나는 밤의 공포,
잠들자 사라지는 낮의 공포.
그러자 시장판에서의 잔소리, 비 들은 손,
잿더미가 쌓여지는 밤,
새벽에 불 지핀 장작 등
이러한 행동으로 해서 우리의 고통에는 한계가 지어졌다.
모든 공포에는 한정이 있고,
어떠한 슬픔에도 일종의 끝이 있었다.
인생에는 언제까지나 슬퍼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은 생의 바깥, 시간의 바깥일이다.
악과 과오의 영원한 일순
우리는 씻을 수없는 오물에 더럽혀지고, 초자연의 해충에 물렸다.
더럽혀진 것은 우리뿐이 아니고, 이 성당뿐이 아니고, 이 도시뿐이 아니다.
이 세계 전체가 부정하다.
공기를 씻어라! 하늘을 씻어라! 바람을 씻어라! 돌에서 돌을 떼내고, 팔에서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어 그것들을 씻어라. 돌을 씻고, 뼈를 씻고, 뇌수를 씻고, 영혼을 씻어라. 전부 씻어라, 무엇이나 모두!
기사들은 그 일을 치르고 나서, 무대 전면으로 걸어 나와 청중을 향해 말한다.
기사1 잠깐 동안 저희들의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마 저희들이 행한 일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영국인입니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 정신을 신봉하고 계신데, 단 한 사람이 네 사람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보셨을 때 여러분의 동정심은 지는 편에 집중하셨을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감정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의 명예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국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구를 심판할 때 그 사건에 관계되는 쌍방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의 배심재판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건을 여러분에게 진술하는 데 있어서 내 자신은 실상 적임이 아닙니다. 나는 행동가이지 구변가는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여기에서 나는 다른 변사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칠까합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각자 다른 견지에서 이 극히 복잡한 문제들 여러분 앞에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 일단 중에서 가장 연소한 윌리암 드 트레이시에게 부탁하기로 하겠습니다.
기사2 나는 얘기하는 데 별로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소개한 레지날드 휘스 어스만큼 내 얘기가 여러분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염려되는 바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장 그 문제를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지요. 즉 이러합니다. 우리가 한 일은 그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간에 우리에게는 조금도 사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기사들 「그렇지, 그래」) 우리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소득이 없는 것입니다. 소득은 그만두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네 사람의 영국인입니다. 사실은 아까 들어왔을 때 우리의 기분이 썩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맡은 일이 대단히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평소에 술을 먹는 사람도 아닌데 용기를 내기 위해 한 잔 마시고 왔던 것입니다. 당장 그 경우에 이르고 보면, 대승정 같은 이를 죽인다는 것이, 특히 훌륭한 교회의 전통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대단히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소 난폭하게 보였더라도 그 이유를 양해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입장으로선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일을 하는데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일에서 한 푼의 소득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돌 것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헨리왕 - 국왕님에게 축복에 내리시기를 - 께서는 국가적인 이유에 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당신에게는 이런 일을 일으킬 의도는 없으셨다고. 그러면 불가불 상당한 소동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잘 돼야 겨우 우리의 여생을 해외에서 보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대승정은 아무래도 처치되었어야 한다는 것이 혹 사리에 밝은 사람들에 의해 장차 인식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나도 상당히 그를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만, 종말에 이르러 그가 매우 볼 만한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것만은 여러분도 반드시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에게 영광이 부여되진 않을 겁니다. 아니, 우리가 우리자신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점 오해가 있어선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일에 있어 우리에겐 조금도 사심이 없었다는 것만은 최소한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이상 더없을 것 같이 생각됩니다.
기사1 윌디암 드 트레이시가 잘 말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점에 언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가 말한 요점은, 즉 우리는 조금도 사심이 없었다는 것,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 자체는 그 이상의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그 점 다른 변사의 말을 들어주셔야겠습니다. 다음으로 휴 드 모빌에게 부탁하겠습니다.
기사3 우선 우리의 지도자 레지날드 휘스 어스가 아주 적절하게 말씀하신 점을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여러분은 영국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동정심은 언제나 패자에게 쏠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국인의 페어플레이 정신입니다. 자, 그런데 그 훌륭한 대승정, 그분의 높은 인품에 대해 나도 상당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만, 그 분은 시종일관 패자로서 여러분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이 그러할까요? 나는 여러분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이성에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여러분은 머리가 명석하고 현명한 국민입니다. 결코 감정적인 술책에 넘어갈 국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주십사하는 것입니다. 대승정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이 문제의 열쇠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국왕의 목적은 시종 완전히 일치합니다. 돌아가신 마틸다 여왕의 통치 시대, 그리고 불행한 찬탈자 스티븐의 압정 시대에 이 왕국은 분열 될 대로 분열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국왕께서는 질서의 회복이야말로 급선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주로 이기적인 목적에 쓰일뿐만 아니라, 자주 선동적인 목적으로 행사되는 지방행정제의 과대한 권력을 억제하고, 사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 때야말로 완전한 무질서상태였습니다. 재판관에도 세 부류가 있었고, 법정에도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왕에게 속하는 것, 승정에게 속하는 것, 귀족에게 속하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었지요. 앞서 말한 사람이 지적한 점을 한 가지 되풀이해야겠습니다. 죽은 대승정이 아직 대법관으로 있는 동안에는 진심으로 국왕의 의도를 받들었던 것입니다. 이 점이 중요한 점입니다. 그 점 필요에 따라서는 증거를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 국왕께선 이미 극히 유능한 행정가로서 인정을 받은 베케트에게 - 이 점을 아무도 부인하진 않을 것입니다. - 대법관과 대승정의 지위를 겸하게 할 의향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것을 불평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직을 겸임할 사람은 그 분 이외는 달리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베케트가 이 국왕의 소망에 순응했더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국가를 이룩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즉, 중앙정부하에 영적 통치와 지상적 행정의 일원화를 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 가지 공적 관계로 베케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관 최고의 지위에 이 사람만한 적격자가 달리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요? 베케트가 국왕의 요청에 의해 대승정에 임명되자마자 대법관의 지위를 사퇴하고, 다른 목사 누구보다도 가장 목사인 척하고 이것 보라는 듯이, 그리고 싫어할테면 싫어하라는 듯이 금욕주의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선 지금까지 자기가 지지했던 생활원칙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공공연히 파기하고, 국왕과 그 국왕의 종복으로서의 자신이 그때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수립하기에 노력한 그 질서보다 한층 고차의 질서가 있고, 그 두 질서는 결코 서로 용납될 수 없다고 -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 당장에 그렇게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승정의 간섭이 우리들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의심치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해오는 동안 나는 여러분께서 내 말에 찬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얼굴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반대하시는 것은 다만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내가 부득이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방법에 대해서 뿐입니다. 폭력을 사용했던 것은 누구에 못지않게 우리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불행히도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데 있어 폭력만이 유일의 방도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지금 같은 때가 아니면 여러분은 대승정의 의회의 투표로 응징하고, 반역자로서 정식으로 처벌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야 더 후세에 가면 이러한 온건한 방법마저 필요치 않게 되겠지요. 그러나 만일 교회의 권리를 당장 국가의 안녕하에 종속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거기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 우리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분이 찬동하시는 사태를 초래하기 위해 도구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이익에 이바지 한 것이니, 여러분의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일에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면,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그 죄를 나눠져야 합니다.
기사1 모빌의 말에는 우리가 생각할 문제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거의 결정적인 최후의 말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의 미묘한 이론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합니다. 적어도 그의 미묘한 이론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한 분의 변사가 있습니다. 그 분은 아마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납득이 안 가신 분이 있다면, 리처드 브리토의 말로 이제 납득이 갈 것입니다. 자, 리처드 브리토씨.
기사4 우리들의 지도자 레지날드 휘스 어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앞에 말한 여러분들이 이미 요점을 충분히 설파하신 겁니다. 하나하나 그 세론에 들어가서 더 첨가할 것이란 내게 없습니다. 내가 말씀드려야 할 것은 한마디의 질문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즉 “대승정을 죽인 자는 누구냐?”고 직접 이 슬픈 광경을 목격하신 여러분으로서는 이와 같은 나의 말에 대해 어떤 놀라움을 가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건의 경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서 간단히, 바로 내 전의 변사가 고찰한 사건의 배경을 다시 고찰해봐야겠습니다. 죽은 대승정이 아직 대법관으로 있을 때, 국왕을 모신 자 중에서 국가의 단결을 이룩하는 데 있어 그분만큼 진력한 사람은 달리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절실히 요구되었던 국가의 통일, 안정, 질서, 평화, 공정을 위해 누구보다도 진력한 것입니다. 대승정이 되는 순간부터 그는 정책을 일변하여 국가의 운명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해졌고, 사욕에 미쳐 사회에 대한 하나의 위협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 사욕은 점차 그의 마음에 깊은 뿌리를 박아 결국에는 의심할 수 없는 광증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를 무마하고자, 그를 제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 일체의 수단방법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에 그는 다수의 증인을 앞에 놓고 자기는 여명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영국에서 피살당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분명히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갖은 방법을 다하여 도전적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처음부터의 그의 행동이 순교에 의한 죽음을 결심하고 있었다는 것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습니다. 전에는 하나의 중요한 공직자였던 이 사람이 파괴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최후에 있어서도, 그가 뜻만 있었다면 우리에게 이유를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신 바와 같이 끝내 우리의 질문을 회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인간으로선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사뭇 격분시켰을 때도, 아직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의분이 진정될 때까지 몸을 숨겼더라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런 데 그것을 그는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격분해 있는 것을 알면서 문을 열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러한 사실을 앞에 놓고, 여러분은 주저 없이 “정신상의 상태에 있어서의 자살”이라는 판결을 내리실 줄로 생각합니다. 결국 한 위대한 사람이었던 그에게 이것만이 여러분이 내릴 수 있는 유일의 관대한 판결인 것입니다.
기사1 브리토, 수고했네. 더 말할 것이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거리의 모퉁이 같은 데서 떼를 지어 배회한다든지, 공공연한 소동을 일으키는 일은 아예 하지 않으시도록 각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들 퇴장
제사장1 아아, 아버지, 아버지는 가셨구려. 우리에게서 떠나셨구려.
어떻게 하면 다시 뵐 것인가요? 얼마나 먼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나이까? 당신은 지금 천국에 계시니,
누가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고, 지휘할 것인가요?
얼마나 더 무서운 여행을 겪어야
당신을 다시 뵐 건가요? 언제
당신의 힘을 이어받을 것인가요? 교회는 빼앗기고, 외로워지고, 더럽혀지고, 황폐했습니다. 이교도는 이 폐허위에
신 없는 세계를 구축하겠지요. 그것이 보입니다. 눈에 보입니다.
제사장3 아니 그렇지 않다. 이런 일로 교회는 더욱 강해지고,
역경에 처하면 더욱 번창하는 것이다. 교회는 박해를 받음으로써
강화되고, 그것을 사수하는 인간이 있는 한 최고의 존재다.
가라, 슬퍼하는 심약한 자들이여, 잘못 방황하는 영혼들이여, 지상에도 천국에서 살 곳없는 무리들이여.
가라, 석양이 브리타니의 최후의 회색 암석을 물들이고, 헤라클레스의 문을 붉게 물들이는 그곳으로.
가라, 난파를 각오하고 무어인들에게 포위당한
그리스도 교도들이 있는 우울한 해안으로.
가라, 죽음의 입김이 손의 감각을 마비하고, 머리를 우둔하게 하는
얼음으로 에워싸인 북해로.
사막의 태양 아래에 오아시스를 찾아가라.
가라, 가서 이교도 사라센과 결합하여
그 더러운 의식에 참례하고,
그 음탕한 궁전에 도취하든지,
대추 야자수 곁의 샘에서 망각을 즐겨라.
또는 아퀴테인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앉아 있어라.
너희들은 두개골 내의 작은 고통의 세계에서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짜는 대로 풀려나가는 하나의 가공의 얘기를 짜가며
결코 신앙이 아닌 그 거짓의 지옥 속을
영원히 헤매며 하나의 끝없는 생각의
테두리를 언제까지나 뱅뱅 돌 것이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너희들의 운명일 것이니.
우리는 더 이상 너희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아 대승정님,
우리들은 당신께서 새로 드신 나라의 영광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신의 눈 앞에 계시며
먼저 간 모든 성도, 순교자들과 합석하신 당신이시어, 저희들을 염두에서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의 감사가
켄터베리에 새로운 성도를 낳게 해주신 신에게 미치도록
합창단 (멀리서 라틴어로 부르는 테 데움성가가 들린다.)
아아, 신이여, 찬송하나이다. 당신의 영광은 지상의 모든 생물에 보입니다.
눈에, 비에, 바람에, 폭풍에 나타나고, 사냥꾼이나 사냥감을 막론하고 모든 당신의 창조물에 당신의 영광은 깃들었나이다.
모든 것은 당신에게 보임으로써, 모든 것은 당신에게 알려짐으로써, 모든 것은
당신의 빛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고, 당신의 영광은 당신을 부정하는 자에게도 뚜렷하고, 어둠은 빛의 영광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자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부정은 결코 완전하지 못합니다. 만일 완전하다면 그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음으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모든 것은 살아 있음으로써 당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공중의 새도, 매, 방울새는 물론, 땅위의 짐승도, 늑대나 양이나 모두가. 땅 속의 벌레나 뱃속의 벌레는 물론
그러므로 당신을 의식하도록 당신께서 만드신 인간은 그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 당연히 당신을 의식적으로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비를 손에 들었을 때나, 불을 지피려고 허리를 구부렸을 때나 난로를 소제하고 무릎을 굽혔을 때에도 우리들 켄터베리의 소제부들은
고약에 시달려 허리가 굽고, 죄가 무거워 무릎이 굽고, 공포에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슬픔이 차서 고개를 숙인 채
당신을 찬양합니다. 겨울의 코 훌쩍거리는 소리, 봄의 노래 소리, 여름 날 벌떼의 웅웅대는 소리, 심지어 새소리, 짐승소리까지도 모두 당신을 찬양하는 우리의 계절의 목소리입니다.
당신께서 피로 자비를 베푸시고, 피로 속죄해주신데 대효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순교자와 성도들의 피는
대지를 살찌게 할 것이고, 성스러운 고장을 이룩할 것입니다.
성자가 살던 곳, 순교자가 자기의 피로 그리스도의 피에 보답한 곳,
거기에 반드시 성지가 있고, 비록 군대에 짓밟히고 손에 안내서를 든 관광객들이 무심코 바라보며 지나간다 해도 그 신성미는 길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쪽 바다가 아이오나의 해안을 물어뜯는 그곳으로부터
죽음을 삼키는 사막에 이르기까지, 패잔한 제국 군대들이 망각의 지대에서 드리는 기도,
이런 땅에서 영원히 부정되지만 영원히 대지를 새롭게 하는 것이
솟아오릅니다. 그러하옵기에 아아, 신이여, 켄터베리에 이 같은 축복을 내리신 당신에게 감사를 드리나이다.
아아, 신이여, 용서를 비나이다. 우리들은 전형적인 범인으로 자처하나이다.
문 닫고 불가에 앉아 있는 남녀들이올시다.
신의 축복을 두려워하고, 신의 밤의 고독을 두려워하고 신의 요구 있을 때 내맡기기를, 빼앗기기를 두려워합니다.
인간의 부정을 두려워하지만 신의 정의를 더욱 두려워하고,
창문으로 디미는 손, 이엉에 붙은 불, 술집에서의 주먹, 도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신의 사랑을 더욱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약함과 과오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죄가 우리의 머리 위에 내리고, 순교자의 피와 성도의 고민이
우리를 뒤덮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십시오.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십시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십시오.
성스러운 토마스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