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희곡쓰기에 관하여
좋은 희곡쓰기에 관하여
김 영관
1. 최근 희곡 사조의 경향
유럽과 미국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융성했던 연극이 영화의 등장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TV의 등장은 한때 연극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극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까지도 영화나 TV의 즐거움과 연극의 재미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서로 보완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영화나 TV도 드라마라는 큰 영역 속에 포함시켜 공존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 20세기 말 현재의 상황이다.
20세기말까지 세계는 시와 소설처럼, 드라마도 여러 변혁을 겪었다. 훌륭한 극 창작을 위해서는 고전 및 그 관행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태리 및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신고전주의, 거기에 반발하여 등장한 낭만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며 20세기 세계를 풍미했던 사실주의, 사실주의에서 주장하는 5감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것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려는 한계에 반발하여 인간은 그 이상의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이의 표출을 위해서는 사실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등장한 상징주의, 허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부조리, 해프닝 등, 20세기는 한 마디로 드라마의 모든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다 걸쳤던 시기이다. 그렇게 해서 외설, 누드라는 극한까지 경험한 드라마는 이제 그때그때 그 작품에 가장 필요한 기법을 동원해서 창작 및 공연을 하는 절충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2. 시대적 상황과 극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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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계적 추세와 더불어 우리나라 역시 20세기는 수많은 사회적 격동과 변혁을 겪었다. 일본 침략, 이씨 왕조의 몰락, 해방,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이승만의 장기 집권 음모로 인한 3선 개헌, 이에 반발한 4.19, 그리고 시대를 역행한 5.16 군사 쿠데타, 그들의 몰락을 가져온 김 재규의 박 정희 암살, 서울의 봄, 다시 군인들의 집권,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역사는 숨 가쁘게 민주화 욕구와 그들의 숨통을 조이는 반민주 세력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양의 경우와는 달리, 짧은 기간동안에 서양의 오랜 전통의 수많은 실험들을 미숙하게 수용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고, 작가가 신변잡기 이상의 진지한 작품을 쓰는 데는 권력의 칼날 반대편에 서야하는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격동기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훌륭한 극작가를 배출하였다. 일제 시대의 애국 및 계몽적 입장의 김 우진, 6.25의 비극을 몸소 겪으며 그 처참한 아픔과 그 이후로 내내 계속되고 있는 동족간의 갈등을 그린 차 범석,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개인 갈등을 그려나간 함 수남, 정 조 등이 광주. 전남 연극의 맥을 끈끈히 이어 왔으며 21세기에들어서면서부터는 오인철, 김영관을 비롯한 극작가들이 "통일", "환경문제" "국제적 문제"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극 쓰기를 하고 있음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좋은 극 쓰기를 위한 몇 가지 제언
이런 훌륭한 많은 극작가들을 배출한 경험이 있는 광주. 전남이 오늘날 다른 장르에 비해 희곡분야의 활동이 왕성치 못함에 필자는 매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그 이유를 살펴보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지금, 이를 극복하는데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이유의 하나로는 문향, 예향이라는 도시에 걸맞지 않는 문인에 대한 관계 기관들의 편견이다. 성품상 자신들의 고고한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는 문인들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국가에게, 그리고 관계 기관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여건을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노벨 문학상까지를 기대하는 주변 여건에 비해 작가들이 전업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출판사의 고료 없는 원고 청탁은 비일비재하며, 관계기관의 문화 진흥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는 작가들의 현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 하에서 작가들이 창작 활동만으로는 굶어 죽기에 꼭 알맞은 직업이다. 어렵게 책을 출판해도 구입해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작가들끼리 서로 기증본으로 나누어 주는 정도, 그래서 서로를 격려하는 정도로 끝나는 우리의 출판문화로는 우리나라의, 광주. 전남의, 문예 진흥은 요원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신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인 작가들이 우대 받는 사회, 그들이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이 21세기에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기성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의 잘못된 견해이다. "문학의 꽃은 시"라는 생각으로 그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몰리는 반면, 같은 문학 장르인데도 희곡을 아예 문학의 이방인처럼 취급하는 그릇된 태도이다. 문학의 융성기 시절의 영국을 보라. 모든 장르의 문학이 고루 발달했고 셰익스피어는 희곡 작품을 쓰면서도 그 모든 언어들이 다 시이다.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은 모름지기 동서고금의 모든 장르의 작품을 고루 읽어 그것들이 머리 속에 용광로처럼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필요할 때 거기에 맞는 소재를 거기에서 끄집어내어 자신에게 맞는 장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세 번째 이유로는 기존 희곡작가들의 태도이다. 희곡 작가로서의 치열한 창작 의욕과 폭넓은 실험 정신의 결여가 오늘날 우리 희곡 장르를 침체케 만들고 있다. 지금 문인 협회에 가입한 회원 중에서 희곡 작가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의 최근 창작활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희곡 작가 스스로가 다른 장르에 심취해 있거나 희곡에 매력을 잃은 듯하다. 희곡 작가로 계속 활동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자신의 껍질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만의 틀과 관행에 안주해 있다.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 정신으로 진정 독자들이 원하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와 소재는 과연 무엇인지, 이의 표출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할지, 고뇌하는 진지한 희곡작가가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네 번째 이유는 독자들의 편향된 독서 습관이다. 바른 독서 방법은 모든 장르의 작품을 고루 읽어야 한다. 소설은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가 있듯이 희곡 작품은 그 나름대로의 감상의 즐거움이 있다. 책으로 읽을 때는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즐거움이 있고 읽어 가는 도중에 머릿속에 공연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우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는 장점을 또한 지니고 있다. 이미 읽었던 희곡 작품이 연극으로 공연되는 경우에 그것을 관람하는 순간 작품으로서 읽었던 것이 구체적인 배경과 인물로 그리고 액션을 통해 생동감 있게 무대에 재현되는 경이로움에 또 한번 독자들은 연극의 진미를 느끼게 된다. 독자들이 희곡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져 줄 때만이 계속 훌륭한 극작가들이 배출 될 수가 있다.
4. 좋은 극 쓰기를 위한 우리의 각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여러 교육기관들을 통하여 후진문인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작품 창작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우수한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면서 필자는 매우 자긍심을 느낀다. 또 어떤 대학에서는 희곡과목 수강 시간에 시내 극단에서 공연하는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강당으로 초빙해서 그들이 직접 연기하는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의 과정과 의도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로 하여금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직접 극작을 하게 하여 그것들을 모아 작품집으로 출간하고 있다. 단 한편의 작품 창작으로 수명이 다하지 않는 뿌리가 튼튼한 작가들을 대학에서는 계속 배출해서 희곡의 전성기를 맞이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여러 매체의 발달로 드라마 작품의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로 볼 때 드라마는 앞으로 매우 전망이 있는 장르이다. 21세기에는 희곡이 이제 우리나라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가히 서구 여러 나라의 희곡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가 우리나라 문학을, 우리나라 희곡을 주시케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극작가들도 세계 극작가들의 반열에 서야하고 그때쯤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도 결코 남의 나라의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