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제에 관한 단상
김 영 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인지라 얽히고설킨 일들이 많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지인 한분을 차에 태워 모시고 무등 계곡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을 달린다. 차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들이마셔 보는 산뜻한 공기로 인해 막힌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잠시 시간을 내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하여 행복한 순간을 만끽할 수가 있는데... 행복은 일상의 작은 것들로부터 라는 말을 줄곧 입으로는 증얼거리면서도 왜 우리는 잠시의 여유로움도 갖지 못하고 사는 건지.
동승인의 고향길이어서인지 그분은 그곳 작은 길목까지를 잘 알고 있는듯 하다. 이곳 역시 노인들만 살고 있어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어본지 꽤 오래됐을 거라며 동행한 지인은 말씀을 중단치 않는다. 어느 시골 마을 입구에 이르러 갑자기 내게 실로 궁금한 일이 생긴 것이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법하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20여 가구의 시골집이 모여 있는 동네는 들고 나는데 꽤 불편한 좁은 도로이다 이에 반해 동네 옆으로 난 길은 포장된, 그리고 꽤 넓게 난 도로였다. 도로 끝을 따라가 보니 호화로운 집 두어 채가 고작이었다.
무슨 여유인지 궁금하여 동승한 지인에 물으니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신다. “저 큰 집이 바로 이곳 군의회 의장 집이라네. 지금은 은퇴했지만 그가 의장이었던 시절에 군에서 말발이 설 때 그의 입막음용으로 군에서 특별히 그의 잡 앞까지 군비로 도로를 만들어 준 거라네”라는 말씀에 난 그만 쓴 웃음을 웃고 말았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큰 동네부터 넓은 길을 내어주어야 하는데, 그곳은 불편한 상태로 그냥 놔두고 군 의회 의장을 비롯한 한 두 지방 유력 인사들의 집을 들고나는데 저리도 넓은 도로를 만들어 주었다는 말인가? 큰 동네엔 노인네들만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청에 말발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란다. 잠시 큰 동네 마을 사람들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군에서 어떻게 다독거렸는지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것이다.
군 단위의 마을 길 다녀오면서 목격한 씁쓸한 장면이 고위공직자 임명 동의를 위해 국회에서 벌이는 청문회 장면과 오버 랲 되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 나라엔 언제인지는 몰라도 무결점 국무총리나 장관감이 없게 된 것인지. 왜 이 모양, 이 꼴의 나라가 되었는지,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나라가 바꾸어야 바르고 깨끗한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인지 하는 생각으로 내 머리는 그야말로 복잡해진다. 부와 명예를 위해 어느 정도 비리 안 저지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투의, 그리고 죄 없는 자가 이 죄인의 머리를 돌로 치라 했다는 청문회장에서는 도저히 나와선 안 되는 성격의 말을 내뱉는 철면피들을 보며 나는 그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은 유럽, 특히 영국 같은 오랜 왕정국가의 귀족들이 자기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솔선수범 정신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의 귀족들이나 옥스퍼드, 캠브리즈 대학 출신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솔선수범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고위공직자들과 장성들의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에 감화를 받은 국민들은 기꺼이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몇 안 되는 특권층에 해당하는 지도층이나 정부 고위층, 재벌들이 자신이 시회의 일원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할 순간엔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버리고 부와 명예가 생기는 자리에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발톱의 법칙을 보인다면 그런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서민들의 자식들과 공정한 잣대로 평가받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를 마다하면서 부와 명예를 대를 이어 누리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다시 한번 더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중요성을 각인 시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