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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에 관한 단상

김영관 2010. 11. 1. 09:49

 

 

 

 

  <개발과 보존>에 관한 단상


                               김 영 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일들을 우리가 경험하며 산다. 자고 일어나면 또 무슨 대단한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져 우리가 그것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며 살게 될지, 도대체 그 발전의 끝은 어디쯤일지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우리가 하는 일들이 편해졌고, 속도가 빨라졌음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일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삶이 편해진 만큼에 비례해서 우리가 행복해진 걸까?

비록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 전철이 2시간 10분이면 도착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며  두 도시가 일일 생활권이 되어 편리하다는 부산 시민의 밝은 표정과 인터뷰 기사를, 그리고 물류지로부터 빠른 운송 덕택으로 더욱 싱싱한 해산물을 서울 시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방송사의 코맨트까지를 시청하며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한 바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속도와 편리함의 잣대로만 가능한 것일까?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오래 보존해온 소중한 것들을 무모하게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고속도로로 인해 모든 상권이 서울, 대도시로 몰려들어 지방 상권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게 하고 인구가 도시로만 몰리는, 그래서 국가의 불균형적 발전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다보니 지방 도시의 숙박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업종이 도산하고 시골사람들까지도 서울이나 큰 도시 소재의 백화점 명품 을 사서 걸치고, 들고 다니는 웃지 못할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한마디로 재벌기업들이 시골 사람들의 땀내나는 돈까지를 저인망식으로 훑어가버리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국 모든 사람들이 재벌 기업의 배화점이나 마트에서 일용노동자쯤으로 전락하여 살아야 하는 참으로 해괴한 현실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과 보존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무조건 보존하려는 것만도 , 무조건 개발만도 안된다. 그렇지만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오랜 세월 소중히 보존해온 것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영국이나 프랑스를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엔 700년,미국엔 300년, 뉴질랜드엔 100년이 넘는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이것들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집수리가 필요하면 외형은 반드시 옛 모습의 복원이어야 하고 내부만 자기취향으로 리모딜링이 가능하다하는 그만큼 선조들의 숨결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 년 역사의 광주에 선조들의 얼이 담긴 옛 것들은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가? 수십 년 후엔 재개발해야 한다고 아우성칠 낡은 고층 아파트 숲뿐인 광주의 삭막한 앞날을 상상해보았는가?

광주호가 존재하기 전엔 극락강에서  무등산까지 작은 배가 오가는 갈대 우거진 숲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걸 보존하면서 광주를 가꾸었다면 지금의 광주와는 사뭇 다른 환경 속에 우리 광주시민들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화순 동복 댐을 건설할 때 고기가 오갈 길을 고려치 않고 턱을 매우 높게 만든 이유로 담양 천에 그리도 풍성했던 온갖 물고기 떼들의 왕래가 끊겨버렸다고 담양의 노인네들이 말씀하신다.개구리는 산란기에 물 밖으로 나와 물 그득한 논에다 알을 깐다. 그런데 저수지를 만들며 개구리가 들판으로 갈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여름 들판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개발이 불가피할 경우 문외한들끼리의 탁상공론이 아닌, 환경 전문가들과의 면밀한 검토 하에서 그리고 거주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조언 하에서 그야말로 후손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우리 금수강산을 물려준다는 각오로 개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편리를 위한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신문 <백악시론 2010,11.0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