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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원로인가?

김영관 2011. 5. 17. 10:43

 

 

           <한 용운 님>

 

          어떤 사람이 원로인가?

                   

                              김 영관(실개천)


  헤밍웨이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인기(reputation)와 인격(character)이 어떻게 다른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기란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밖으로 드러난 일면을 보고 일시적으로 좋아하는 경우이고, 인격은 어떤 사람이 내면의 품격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인기인이 인격까지를 갖춘 경우는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금상첨화의 경우이다. 그렇지만 인기인이 인격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명 인사나, 인기 탤런트가 약물 중독자라든가, 음주운전 후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가 훗날 매스컴에 밝혀지면 사람들은 매우 실망을 한다. 인기인이  반드시 고매한 인격까지를 갖추는 경우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미리 명심해두고 있다면 그게 그리 큰 충격으로 우리에게 엄습해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요즘 TV에서 자주 등장하는 달인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어느 분야에 오랜 세월 종사해서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의 기능을 보이는 소위 달인이라는 사람들의 온갖 재주를 보며 감탄을 한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달인에게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인품이나 인격까지를 갖추었는지까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한 나는 원로라는 단어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어떤 분을 지칭하여 원로라 하면 나는 이런 귀한 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며 나는 늘 흡족해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방향 감각을 잃고 허둥대는 마치 표류하는 배에 타고 있는 우리를 안전하게 도착지까지 이끌어줄 것만 믿음직한 이 세상의 원로란 분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래서 어느 한가한 시간에 원로(元老)의 사전적 의미를 고찰해본다. 원로란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륜과 경험을 쌓은 어른”이다. 여기에다 필자가 몇 마디 더 보태 정리를 해본다면 원로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을 매진한 어른이신데 후배들이 그분의 업적과 경륜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물어야만 그 해답이 가능했던 것들을 급속도로 발전해버린 인터넷 매체를 통해 그 궁금증을 다 해소해 버린다. 그래서인지 원로라는 분들의 권위가 많이 상실된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과학 발명품들이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정신문화의 발전 속도가  더디어 그 불균형으로 인한 폐해가 곳곳에 나타난다. 이릴 때일수록 정신문화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줄 원로 철학자, 원로 문인이 필요한 것이다.

  후세인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고통스럽지만 몸소 행동으로 보여 오며 살아온 삶과 그 결실인 저서를 통해 후세인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원로들이 해야 할 책임이니 그분들의 사명은 정말 막중하다 할 것이다. 있으면 편리하기 그지없는 물질에 대한 부단한 추구로, 자칫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추구의 소홀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는데 그야말로  원로의 역할은 크다 할 것이다.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위치에 있어야할 원로는 그야말로 후손들의 지탄이 되는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사를 위해 공을 뒤로 하거나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하는 행위 다시 말해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 배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매는 행위 따위는 결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평생을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왔다할지라도 한 순간의 실수로 원로가 나락으로 추락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지 않았던가? 원로라는 칭호를 듣기는 참으로 어렵고 그분들이 가는 길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지난번 TV <진품명품> 시간에 출연한 심사위원 중  한 분의 말씀에 나는 적극 동감한다. 서예 작품 가격을 매기는데 그분 삶의 행적도 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생을 한 길로 살아오신, 그래서 우리 시대의 원로이신 한 용운 선생님의 작품 가격은 명문장가인 최 남선, 명필가인 이완용의 작품 가격과는 비교가 안 되게 높다는 것이다. 원로 칭호는 그가 이 세상에 살면서 행해온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사후에 평가받는 그야말로 후손이 주는 존경의 이름값인 것이다.


  살아서 시 자체로는 대단한 명성을 누렸던 어떤 시인은 독재자의 사후 평가도 아닌 권좌에 앉아 있는 순간에 쓴 시로 인해 오랜 세월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  시인은 본인의 소신으로  칭송시를 썼노라 주장하겠지만, 그분은 그 시를 쓴 이후 그 독재자로부터 “문화 대사”인가로 임용 받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그 독재자의 몰락과 더불어 그 노 시인에게 원로라는 칭호 사용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많다. 원로란 나이 든 분들 모두에게 드리는 칭호가 결코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