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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독립군단장과 하와이 <산 넘어 병학교兵學校>

김영관 2012. 9. 28. 19:53

 

 

계간평-2012년  광주문학 여름호-희곡

 

           박용만 독립군단장과 하와이 <산 넘어 병학교兵學校>

 

                                                     김 영 관(실개천)

 

 

   필자와 같은 대학에서 영미희곡을 강의해온 오 인철 교수는 본인이 직접 작품을 쓰기도 하는 희곡작가이며 또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한때 하와이 대학 교환교수로 미국에 1년간 체류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함 영숙, 김 사빈 등을 포함한 교포문인들에게 열성적으로 문학 지도를 하여 그들이 <하와이 문학>을 발간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귀국 후 그는 <하와이 이민 100년사>라는 귀한 저서를 발간하여 해외 교민들에 대한 관심을 보인 독특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광주문학 2012년 여름 호에 발표한 <산 넘어 병학교 兵學校>를 읽으며 미주 및 하와이에서 독립활동을 한 우성 박용만을 조명하는 것에 대해 해외 교민들에 관심이 많아온 작가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들이 종종 위인을 작품 주인공으로 다루는 경우를 본다. 미국에서 최초로 희곡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유진 오니일은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권장키 위한 <위인전 Great Achievers>에서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을 발견하고 그가 진정한 위인인가를 재조명해 보고픈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유진 오니일은 <동방 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동방, 특히 중국에 들어와서 중국의 풍성한 문질에만 관심과 탐욕을 보일 뿐, 중국인들의 내면 깊이 존재하는 정신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 인물로 그렸다. 그래서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물질만능의 풍조로 인해 정신문화가 균형을 잃어가는 안타까운 세태를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을 통해 매우 비판적 안목으로 조명해보려 헸던 것이다.

  평소 하와이 교민들에게 관심이 많은 오 교수는 하와이 체류당시 그곳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에 관한 이야기와 자료들을 접했을 터이고 외교적 독립운동을 중시한 이승만과 무장투쟁 병행을 주장한 박용만,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하와이 교포사회에 엄청난 갈등을 야기한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미국 본토 및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박용만을 비롯한 병학교 학생들과 그들을 물심앙면으로 돕는 미국 선교사들과 해외 교민들에 관한 이야기를 극 형식을 빌어 써보고자 한 것이다.

  계간평을 쓰기 위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박용만 선생에 관한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자료 수집처 등에 관한 궁금한 사항들에 관해 오 인철 작가에게 묻고 싶었으나 필자가 직접 박용만 선생을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행적에 관해 추적 연구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대본으로만 읽고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극 감상자가 되려면 대본을 읽어본 후에 반드시 그 극 공연을, 공연을 본 사람은 반드시 대본으로 감상해서 놓친 부분을 보충하라고 필자는 극 애호가들에게 권하곤 한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헨리 8세>를 감상해야할 경우, 극을 감상하기 전이나 후에 헨리 8세에 관한 역사서를 읽어 볼 필요가 있음도 강조하곤 한다.

  4장으로 구성된 <산 넘어 병학교乒學校>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극 감상 전이나 후에 우성 박용만 독립군단장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어 보도록 권하는 바이다. 필자는 이 극에 관한 효과적인 감상을 위해 우성 박용만 독립군단장에 관한 자료를 먼저 소개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는 1881년 7월2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면 궁전리에서 태어나 미국 네브라스카, 필라델피아, 하와이, 호놀룰루, 1914년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8년 10월17일 중국 텐진에서 생을 마감한다.

  1904년(광무7년) 보안회의 일제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 이승만을 옥중에서 만나 의기투합, 옥중 동지가 되었다. 출옥 후 그는 숙부 박희병이 있는 평남 순천의 사립시무학교로 가서 유일한 등의 소년을 가르치다가 1904년 12월 미국으로 건너 갔다. 1906년 여름 숙부 박희병과 함께 미국의 콜로라도 덴버로 가서 노동 이민자를 위한 한인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며, 헤이스팅스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1908년 12월 박용만은 네브라스카 주정부에, 정한경은 커니 지방청에 교섭하여 마침내 헌법상에도 없는 묵허를 받아냈다. 그리하여 1909년 네브라스카 주의 커니에 있는 한인 농장 내에 한인소년병학교(The Younh Korean Military School)을 열어 항인 청년 생도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1012년 첫 졸업생 13명을 배출하였다.

  1911년에는 헤이스팅스 대학과 협의하여 한인 조선 병학교를 헤이스팅스대학 구내로 이전을 한다. 같은 해 박용만은 김장호에게 소년 병학교의 전권을 맡기고 각 지역에서 원조를 받아 보낸다. 그리고 1910년 10년 캘리포니아를 돌아보고 돌아가는 길에 신한민보의 주필을 맡기로 결정하여 1911년 2월 신한민보 217호부터 252호까지 제4대 주필로 활약하였다.

  1914년 한인이 무려 5,000명이나 되는 하와이로 가서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게 의미 깊은 일이라 생각하고 그는 하와이 소재의 한 농장을 임대하여 동포 청년들이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며 항일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대조선 국민군단을 창설,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130여명을 독립전쟁에 대비한 임원으로 확보한다.

 

 <산 넘어 병학교兵學校>의 1,2,3장은 박용만의 미국 본토에서의, 4장은 하와이에서의 활동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우성 박용만 독립군단장의 재미 활약상만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독자를 위해 우성 박용만 독립군단장에 관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 안창호, 서재필과 함께 재 미국 한인 교민 사회의 초기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이승만의 사상적 동지였으며, 이승만을 하와이에 정착시켰다. 그러나 1914년 독립운동 방법의 차이로 이승만과 갈등을 겪다가 정적으로 변한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표를 맡았을 때 그 역시 임시정부 외무총장을 맡았으나 임정의 외교중심 전략에 반대하였으며, 1920년 북경에 도착하여 주로 대조선 군단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며 무력 투쟁에 전념한다. 그는 신채호 등과 더불어 효과적인 대일 투쟁을 위해서는 상해에 임정이 존재하기보다는 만주나 연해주에 임정 본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장개석계의 오패부 세력과 연계하는 노력을 기하기도 하다가 1928년 군자금 모금 차 중국 텐진에 체류하던 중 독립 운동 자금에 쓸 돈 1천만원을 내놓으라는 의혈단원 이구연, 박인식, 이구서 등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암살당한다. 그가 1923-4년 사이 일본을 거쳐 국내, 그리고 러시아로 이동해 간 행적에, 특히 조선 총독부를 들러 총독부 인물들과 만난 행적에 대해 변절의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김구 주석이 미국의 이승만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가 변절 의혹이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의혈단원들에게 암살되기 한 달 전, 우성이 중국 군벌 염석산에게 써 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항일 학병단 설립과 훈련을 위한 청원서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그의 변절설은 사실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정설이다.

  <산 넘어 병학교兵學校> 제1장은 정부 주선을 담당한 박용만은 정한경과 함께 키니 지방청정에 교섭 드디어 미국 헌법에도 없는 특허를 따냈다. 1909년 6월 천신만고 끝에 소년병학교는 13명의 한인 군사 학도를 모아 개교를 준비한다. 헤이스팅스 장로교회 내 학교 건물을 빌려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집기 도구를 장만하는 모습이 보인다. 역사상 실제인물인 조진찬, 임동식, 정한경, 권종흠, 김병희, 유일한, 정영기, 여기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소년병학교 건립의 의미와 그 설립에 박용만의 공로가 지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 광산, 농장 등에서 일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는 교민들이 독립운동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이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여름 군사 활동 훈련지인 헤이스팅스 대학에서 병학교에 배당한 농토가 80에이커가 넘는다는 것과 김유성 동포가 총기 15정, 다른 동포가 쌀 몇 섬 등을 기부했음도 이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제2장은 장로대학교 실권자인 존슨과 박용만을 포함한 무육학교 사인방 박장환, 임동식, 정한경이 소년병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1910년 여름학기에 병학교 식솔이 30명으로 늘었음과 재정적 어려움이 크다는 사실, 그런 와중에 존슨 이사의 물심앙면의 협조, 그리고 자활터전인 농장 임대에 감사해 하는 장면도 소개된다. 그리고 아주 귀한 자료가 될 <소년 병학교> 단가가 소개된다.

 

소년병들아, 짓쳐 나가세

이 몸 미주 땅, 중원을 지키는 사자인가, 문지기련가

승냥이 떼 으르렁 대는 저 삼천리 강산

아아, 맨발로 누더기로 남루하게 찢기며

뚝뚝 피흘리며 떠나야했던 고토여.

나 이대로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

총칼 갈아 시퍼런 날로 깎으리

원수들을 물리쳐 갈아 뒤엎어

기어코 저 항일 가파른 언덕, 풀밭에 함성 울려,

그여 깃발 꽂는 날, 목터져라 외치리

조선 사나이의 기개를....

 

  제3장 무대는 헤이스팅대학 캠퍼스. 땀으로 뒤범벅이 된 농군들 풀밭 갈아 뒤엎고, 밭고랑 일구면서 제초 작업을 끝낸 뒤, 옥수수밭과 콩밭을 넘나들며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작업에 몰두한다. 유일한, 조진찬, 영숙, 김장호, 학생 A, 학생 B, 학생 C, 학생 D가 등장한다. 훗날 유한 양행 설립자가 된 유일한씨가 등장해서 조진찬과 나누는 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유일한: 처음 도미 유학길에 올랐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땀 흘려 농삿일하다보니, 차츰 선배님들 숨은 뜻을 알 것 같네요. 두고 떠나 온 조선 땅은 몰랐지만, 이곳 네브라스카 먼지 바람 속 흙덩인 꽤 지력(地力)이 강하네요, 선배님!

 

  덴버에서 우성을 모셨던 영숙이라는 사람이 네브라스카까지 따라 왔음도 우성의 인격이 고매함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학생 A, B, C, D가 나누는 대화 중 학생 B의 이야기에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학생B: 제 아무리 우리에게 독립 자주를 외쳐봤자 적국 무리들 앞엔 무릎 꿇고 말게 되었으니, 이를 갈아 부쳐서라도 못난 조선 사나이들도 총 쏘고 대포 쏠 줄이나 알아야 독립이고 뭐고 된다 아닙니까.

 

  제4장은 하와이 호놀룰루로 무대가 옮겨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우성과 영숙이 탄타루스 언덕, 전망대에서 태평양 전쟁 전몰자 기념관과 진주만 희생자들 묘역, 호놀룰루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서 나누는 대화이다.

그들이 미주 본토에서 이곳 하와이로 옮겨 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소개 되었으나 영숙은 우성에게 “호놀룰루에 와서 설립한 <산 넘어 병학교>가 미주 본토에서보다 활력이 넘치고 전망도 클 거란 기대 심리가 커서요. 박 장군님의 밝아진 표정서도 그렇구요.” 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성 역시 미주 본토에서 우성의 활동을 방해하는 개탄스러운 세력이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성: 왜놈 앞잡이들이 넘쳐나는 판국이요, 이런 난무하는 분자들 북새통에서도 우리 병학교 국민군단과 호놀룰루 시가지를 행진하는 행사가 치러지니, 하나님의 큰 가호와 은총이 넘치시기만 빌면서 우리는 이만 하산합니다.

 

  오인철 작가는 우성 박용만 독립군단장을 포함한 여러 애국자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미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음을 자신의 작품에 남기고자 했다. 역사의 죄인들이면서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 그들의 만행을 점차 잊어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광주 문학> 여름 호에서 오 교수의 <산 넘어 병학교兵學校>를 게재한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프레이타그의 ‘5단계설’이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간의 ‘갈등(conflict)’ 문제로 분석할 극작품이라기보다는 위인의 행적을 기술한 다큐멘터리 극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 영 관 약력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 교환교수,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 교환교수

*세익스피어학회 회원, 한국드라마학회 회원,, 21세기 영어영문학회 이사 역임

*(현)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현)국제펜 광주광역시 위원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 광주문인협회 회원, 전남문인협회 회원. 광주수필 회원

*조선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문학박사)

*저서: 미로(창작희곡집), 바람의 길목에서(산문집), 백만장자 마르코(번역희곡집) 외 다수

*광주문학상(2000년, 희곡 부문), 탐미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