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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김영관 2012. 10. 4. 09:52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김 영 관(실개천)

 

  정년을 앞둔 지난 2월까지는 내가 제법 삶을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가져왔었다. 영문학과에서 영미 희곡을 강의를 해온 나는 현대극 기원을 찾아 그리스 디오니서스 축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B.C. 5-6세기경의 그리스 드라마를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그 시대 최대의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외디푸스 왕>이 친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을 찾아내 처벌해야 테베시의 역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예언자 테레우스 말을 따라 그 원인 제공자를 찾은 결과, 그 사람이 바로 자기였음을 알고 자신의 눈을 파내 맹인이 된 채 딸의 손에 이끌려 테베시를 떠나는 비극의 순간을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그리고 외디푸스 왕의 마지막 대사인,

“세상을 마감하기 전까지 자신의 운명을 장담하지 마라”는 명대사를 소개하면서 문학이 시대를 초월해서 독자나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감명을 줄 수 있는가 와 그 명작 소개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영문과 교수인 나임에 무한한 자부심으로 살아왔었다.

또한 부조리극을 강의하면서 ‘세상은 그대로 인데 우리가 그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라든가, ‘세상은 비록 단조롭고 무의미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을 무의미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며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한다’ 고 주장하며 마치 부조리 철학과 문학을 나 혼자만이 깨달아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듯 강의 중 어깨를 으쓱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교육자로 한 평생을 살아 온 것에 나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중. 고등학교 인근 은행에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정문이 아닌, 모퉁이 지름길로 걸어들어 서려는데 학생인 듯싶은 남녀 아이들 너덧 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 희희덕 거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치려는데 아이들이 내게 “ 아저씨, 어서 빨리 지나가셔!” 라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들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꾸지람을 해야 마땅한데, 머뭇거리며 그곳을 지나쳐오고 말았다. 내 일이 바빠서라든가, 섣불리 이야기해서는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서 라든가, 라는 변명을 나 혼자서 몇 번이고 되뇌어 봤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한 평생을 바르고 당당하게 살아 왔다는 자존심이 한 순간에 뭉개져 버린 느낌이었다.

순간, 교단에 섰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았다. 서구, 특히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 아이들의 출세 지향적인 교육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그들의 인성 교육, 내면의 아름다움을 교육하는데 우리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소홀히 했던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른다.

더군다나 요즘 성폭행과 아동 성범죄가 급증하면서 세상 남자들은 온통 성범죄자들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이어린 딸을 가진 부모들은 낯선 남자들이 말을 걸어오거든 일체 대꾸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후진 양성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그곳에 여인네나, 여자 아이가 타고 있으면 내 집 층수인 7을 눌러놓고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안절부절해 하며 서 있는 내 꼬락서니가 참으로 가증스럽고 참담하기만 하다. 외국에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한적한 오솔길에서 조깅을 하다가 여인네를 만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면서 “하이”라거나, “원더풀 데이”라고 말하는데.

현직에 있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사람됨을 가르치지 못한 자책감, 출세지향적인 교육에 묵시적인 동조 또는 편승했다는 자괴감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 순간, 어린 시절에 어머님 손잡고 성당을 따라 다니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기도문이 내 머리에 떠오름과 동시에 가슴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