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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물>이로소이다

김영관 2013. 4. 30. 21:46

 

                                                              

나는 <속물>이로소이다

                            김 영 관(실개천)

 

표현주의자들 중 일부 사회개혁론자들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산업화로 인한 인간 정신의 타락이었다.

산업화와 물질 만능 풍토에서 벗어나야만 인간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누리게 된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에서 멀어져 간다. 결국 표현주의 문학은 이즘(ism)으로만 그 흔적을 남긴 채 단명하게 끝나버린다.

평생을 봉급쟁이로 살아온 나는 늘 절약과 검소를 삶의 신조로 삼아 왔다. 그렇지만 책에 대한 욕심은 대단해서 귀한 전공 서적이나 내 관심을 끄는 서적을 구입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대신 겉모양 내기에는 비교적 소홀한 편이었는데, 이에 대한 내 그럴듯한 변명은 ‘내면의 향을 풍기는 사람이고 싶다.’ 라는 것이었다.

 

비교적 외모 꾸미는 일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게 살아온 내가 어느 날 부턴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나도 기왕 구입할 거면 ‘메이커 용품’ 구입이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주거지에 대한 내 개념은, ‘하늘 가리고 살면 되는 것, 천년만년 살 집도 아닌데 뭘’ 이라는 정도였다. 직장 가깝고 이삿짐 옮기기 싫으니 그냥 사는 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미국의 대표적 부조리극인 에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할지 몰라도 밖에서 보면 동물들이 살아가는 우리(cage) 같은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런 개념으로 낡은 아파트에 그냥 살고 있는 나를 보며 정말 그 아파트에 그대로 살 것인지, 그리고 내가 편리해서 낡은 차를 그냥 타고 다니는데 왜 고급 승용차로 바꾸어 타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이젠 내가 헌차 타며, 헌 아파트에 그대로 눌러 살 것이라는 판단을 굳혔는지 주변 사람들은 내 앞에서 자신들의 분수에 맞지 않을 것 같은 외제 승용차, 비싼 아파트, 심지어 유명 메이커 옷, 용품 등을 내 앞에서 자랑해댄다. .

 

뉴질랜드 체류시절, 월 100달러의 그린피만 내면 한 달 내내 골프를 칠 수가 있어서 골프를 배워 한국에 왔다. 노 캐디에 카트를 본인이 끌고 다니는 값싼 운동이었다. 18홀 도는데 잔디를 16,000보 정도 걸을 정도이며 크리켓이나 게이트 볼 정도의 운동으로 뉴질랜드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중고 골프채, 중고 가방, 일이만원짜리 청바지를 입고서도 나는 아무 불만 없이 그 운동을 즐기다 왔던 것이다. 그런데 내 나라 와서 보니 이건 돈 없는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운동이라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고가의 유명 메이커 골프 옷, 장비, 턱 없이 비싼 그린피. 그래서 나는 취미를 바꿔 보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정년 후에는 일상에 얽매임 없이 지인들과 가벼운 산행이라도 다녀볼 생각으로 등산용품 가게에 들렸다. 증심사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유명 등산용품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음에, 그리고 등산용품 가격의 비쌈에 나는 놀랐다. 그렇지만 산행 선배들은 그 용품들의 비쌈을 남들은 다 아는데 왜 나만 모르고 있는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법 거금을 카드로 지불하고 등산용품을 사가지고 나오면서 산행을 시작하거나 마치고 내려오는 등반객들을 쳐다보니 마치 히말라야 고봉 등반하기 위한 차림새들이다. 거의 모두가 유명 메이커 상표가 달린 등산용품으로 중무장한 모습에 놀랐다. 산행 중에 상대방이 착용한 등산용품을 보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척도를 재는 세상이 되었음에 쓴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훗날 내가 오늘 구입한 것들을 착용하고 산행을 하게 되면 나도 ‘갖지 않은 자’의 대열로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갖는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속물이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등산용품을 구입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집에서 TV를 시청하던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유명 메이커 등산복이 같은 제봉 공장에서 만들어 져서 상표만 다르게 부쳐 전국 각 체인점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판매가 30-40%가 제봉 공장 몫이고, 30%는 유명 메이커 상표 값이고, 나머지 30%는 백화점 전시가와 판매원 수고료 얼마 등이라는 것이다. 돈 벌면 제일 먼저 성형 수술부터 하려는,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 보다는 외모 가꾸기에만 몰두하는 세속 풍조에 나 또한 일조를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광주는 전국 화폐 유통의 6% 정도의 비교적 빈약한 도시인데 반하여 외제 자동차 소유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전체 자동차 보험료 5%의 외제 자동차가 15%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보험료 지출을 하게 한다는 최근 통계자료 또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언젠가부터 나 또한 어떤 사람을 내면의 향기보다는 그가 소유한 물품으로 평가하는데 익숙해져 있음에 놀란다. 처음 소개 받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그가 고급스런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갑자기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세상을 무능하고 못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자괴감을 가져본 적은 없었는지 자문해본다. 주변 사람들과 별 다름 없이 살아온 나 또한 속물이 아니었던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나를 매우 감동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분 말씀이 백번 타당하다면서도 나 같은 속인이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문명의 편리함에 많이 길들여진 삶을 살아온 탓일 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못 하는 내가 참으로 속물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