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과 시나리오의 차이점
희곡과 시나리오의 차이점
김 영 관
오인철의 『함락되는 세겜 성(城)의 비극』
『광주문학 80호』에 게재된 오 인철 작가의 「세겜 성(城)의 비극」은 희곡작품이고 『광주문학 81』호에 게재된 이 희규 작가의 「벚꽃, 단풍에 지다」는 시나리오 작품이기에 희곡과 시나리오라는 장르가 갖는 독특한 매력과 그 둘 간의 차이점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고자 한다.
희곡은 대화체가 주를 이루고 약간의 지시문(무대 지시문, 행동 지시문)으로 구성되었다. 희곡작가에 따라 무대 지시문에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부분(시대, 장소, 등장인물들의 나이, 외모 등)을 대본에 소개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극단의 관계자들의 재량에 맡기는 작가도 있다.
희곡은 연극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대본, 시나리오는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대본이다.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연극과 영화를 존재케 하는 희곡과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독립된 문학 장르로 취급하고 이 분야의 작가를 희곡작가(playwright), 극작가(damatist)라고 칭한다.
희곡은 대화체가 주를 이루고 극히 적은 분량의 문장체인 지시문(무대 지시문, 행동지시문)으로 구성되었다. 무대지시문과 행동 지시문에 무대 구성을 위한 지시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세세하게 대본에 소개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극단 관계자들의 재량에 맡기는 작가도 있다.
같은 작품을 가지고도 감독이나 배우들의 능력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극 『햄릿』,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영화 『닥터 지바고』, 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희곡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하는데, 대본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이 작품을 극으로 만들 경우, ‘만약 내가 이 극의 감독’이라면, ‘만약 내가 이 역을 맡아하는 배우’이라면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해준다.
희곡 작품을 먼저 읽은 경우엔 연극 공연을, 연극 공연을 먼저 관람한 경우엔 희곡 대본을 읽게 되면 어느 한쪽만의 감상으로 인해 자칫 놓치기 쉬운 많은 것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다.
희곡은 무대 사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장면 이동에 제약을 받지만, 시나리오는 카메라 사용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장면 이동이 자유스럽다. 시나리오는 카메라 활용을 통해 여러 테크닉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시내 중심가를 걷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을 클로즈 업한 상태에서 그를 점차 멀리한다거나 그 반대의 기법을 사용하여 그것들이 관객들에게 주는 의미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것이다.
희곡에 등장인물들은 넓은 극장의 관객들에게 소리 전달이나 행동 전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연기를 하는 것에 비해, 영화배우의 연기는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도 관개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나라엔 창극이나 마당극은 존재했지만 연극이라는 장르는 없어서 (영화도 마찬가지) 주로 이 장르에 대한 용어나 기법은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 차용어들이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희곡의 경우 character라 하며 등장인물 소개를 하는데, 시나리오의 경우는 cast라 하여 등장인물 소개를 한다.
오인철 작가의 『시겜 성(城)의 비극』은 성탄절이나 사순절 무렵, 주로 교회나 성당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막(certain)을 사용하여 막 뒤편의 무대 장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관객들에게한 껏 높여야 했기 때문에 아레나(arena) 무대나, 돌출(thrust)무대 보다는 돌기둥(procenium) 무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시나리오에 사용되는 용어들, 예를 들면 S는 장면, CU는 클로즈업, OL은 오버랩, FO는 페이드 아웃 등이 자주 사용된다.
연극이란 원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교훈을 목적으로 해서 생긴 것인데, 종교극엔 이런 요소가 더욱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 중세 작품에 등장하는 코러스가 관객들에게 작품 진행에 관해 일정 부분 역할을 하듯이 네레이터(narrater)가 등장하여 그 역할을 맡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2. 히위족속(Hivitus)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녀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Dinah)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창세기 34)
를 바탕으로 해서 극을 만들었다.
1막 1장에서 6장까지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세겜의 심복 A, B, C 가 성읍에 등장하고 그들의 상전인 세겜이 눈독들인 디나를 납치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처녀 A: 밤도 이슥해졌고 포도주도 동 났으니, 애들아, 집에 돌아갈 시간 아냐. 그만들 정신 차리라지 않니, 응(손짓으로 모이라고 신호한다.)
처녀B: 그런데 웬일이니 아무리 둘러봐도 디나(Dinah)가 안보이니.
처녀C: 뭐, 디나가 사라졌다고. 아무렴, 잘 찾아보지도 않고 웬 수다 떨기냐.
처녀A. B. C: (일제히 두리번대다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디나(Dinah), 디나, 디나.....
제2장에서는 야곱이 외동딸 디나가 겁탈 당한 것을 알고 한탄하는 장면이다
네레이터: 야곱아,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놀라운 신앙 체험을 통해 여전히 편한대로 생활하는 너에게 사랑의 채찍을 던지신 것이다.
하몰이 세겜을 데리고 야곱 장막을 찾아가 사과하고 두 청춘 남녀의 결혼으로 결말짓기를 희망하고 그들이 퇴장한다. 반면에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동생 디나의 겁탈에 대해 이스라엘 가문의 수치와 모욕감으로 치를 떨며 분노한다.
레위: 열 번을 더 주억거리며 냉 차게 자신을 암만 구슬러 봐도 복수만은 그냥 헌 옷 벗듯 떨쳐버릴 순 없거든. (중략) 한번 악물고 작심한 내 시퍼런 칼날은 내 사랑스러운 디나를 피해 엉뚱한 허공을 겨냥할 순 없고말고.
시므온: 아우여, 넌들 어찌 잊겠니, 하란 땅 구차스럽던 나날 얼룩 배기 양떼를 치며 날밤 모르고 추근히도 이슬에 젖어 뼈골 쑤시는 모래바람 한 움큼 쥐고 깡 보리 씹던 시절, 오늘 같은 슬픔 되어 사무쳐 오니, 울 아버지 그간 애지중지 품안에 기르시던 외동딸 디나, 금지옥엽 매양 어르며, 머슴 팍팍스럽던 나날 끔직이도 사랑하던 외동딸 디나, 어쩌다가 추장 놈 뱃통아리 씌운 노리개 인형 된단 말까.
맙소서 하나님 아버지, 청컨대 이번만은 시커먼 올가미 씌움 당함만은 벗겨 주십시오. 제발,이는 정녕 민족의 수치가 아니겠소.
제3장에서는 거들먹거리며 하몰은 각종 예물과 통혼을 통해 양가화친을 들먹거리며, 어물쩍 이런저런 조건 제시로 디나와의 혼사를 제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겜이 상당한 금액의 결혼 지참금을 내놓겠다고 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사태수습책으로 제시한 통혼 제의를 받아 드릴 수 없다며 그 이유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하몰 남자 모두가 할례를 받는다면 결혼 제안을 받아드리겠다고 한다. 할례기간에 복수코자 하는 음모가 숨겨져 있음에 네레이터가 이 장면에 끼어든다.
제 4장은 세겜 성문 앞에서의 장면이다. 하몰이 성민에게 사태를 설명하고 이들을 설득한다. 할례를 받아들이고 야곱 족과 친목하고 이들도 이 넓은 땅에 거주케 하고 서로 간에 통혼토록하자는 말한다. 세겜 성 사람들은 하몰의 의견에 찬성을 한다, 그렇지만 시므온과 레위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복수 결행을 합리화 하려한다.
시므온과 레위: 본색이 상고, 장사치기 놈들이라. 돈만 밝히는 놈들이라서, 좀 속여 먹기로 대수겠냐. 사단(Satan)의 역사는 거짓말(사기쳐먹음)을 통해 종종 나타나는데, 공의의 하나님은 엄히 금하시지만, 요 망칙스러운 놈들은 고사리 꺾듯 목을 베도 시원찮을 악귀들이니 뭘 더 망설이겠느냐.
이어 네레이터가 관객들에게 이들의 사악함을 상기시켜 준다.
네레이터: 할례 삼일 째 고통당할 때, 디나의 오라비들은 기어코 시퍼런 칼날 휘둘러 부지 중 성을 엄습해, 성읍 그 모든 사람들을 도륙하고 말았다. 뿐이랴, 피로 물든 세겜성 대학살 사건은 히브리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대목이 되고 말았다.
제 5장은 야곱이 황망한 처지가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아들을 질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Perizzite)의 충돌로 자신의 가문이 멸망지화를 면키 어렵겠다고 한탄을 한다. ‘보복은 보복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사실을 두 아들에게 상기시켜 준다.
마지막 제6장에서는 야곱이 통제 불능한 두 아들 놈과 이 사건으로 가정 신앙 개혁을 미루고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 거하며, 형에게서 피해 도망하던 때 자신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겠다는 맹세를 한다. 무익한 분노가 쏟아놓은 엄청난 결과만을 탓할게 아니라 조속히 그 무익한 분노를 없애 줄 것을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는 교수 재직 시절 하와이 대학 방문 교수를 역임하면서 ‘하와이 문학’ 창립을 도왔고, 『하와이 이민 백년사(百年史)』 를 발간하고, 몇 년 전에는 하와이에서 활동한 “독립투사 박용만”이란 희곡 작품을 쓴바 있었는데 그 속엔 독립투쟁가를 포함한 귀한 자료를 소개하기도 한 원로 작가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창세기 야곱에 관한 두 세절을 근거로도 얼마든지 극 창작이 가능함을 오 작가는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특정 종교에 관한 극이라 말하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세상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이라며 서구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상관없이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이 희규의 『벚꽃, 단풍에 지다』
시나리오를 카메라의 자유스러운 이동을 따라 총 41장면을 감상하며 한편의 영화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장면1에서는 타이틀이 화면이 보이며 안개 속 지장 전 처마 풍경이 흔들리는 장면2로 바뀐다. 풍경 소리도 함께 울린다. 카메라 화면 쥼을 멀리하면서 안개 자욱한 사찰 전경으로 바뀐다.
지장 전, 앞산, 지장 전 뜨락, 스님의 방안, 경내 연못 앞, 요사 채 방안, 대웅전, 덕은의 방, 지장보살 석상 앞, 길 위, 오러 랩으로 국밥집, 시장 옷가게, 복덕방, 거리, 병원 응급실, 미자의 집, 다시 대운사 벚꽃 길, 뜨락, 또다시 오러 랩으로 대학 병원 응급실, 수술실, 그리고 다시 대운사 일주문 등으로 관객들의 시선이 따라 오게 한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대운사의 자욱한 안개, 서리 내린 낙엽, 나무 사이로 나는 직박 구리, 붉은 색 모자를 쓴 동자승 불상, 노랑 은행잎, 앞산 절정의 단풍, 벚꽃의 바람 따라 흔들림 해승의 독경 소리, 연못 물고기, 풍경소리, 낙엽 지는 소리, 방문 빗살무늬, 틈새로 이파리 그림자 등의 장면과 소리를 제공하면서 미자와 현승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인연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빠른 장면 이동을 하면서 덕은과 미자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과 그들의 대화 중 덕은이 미자에게 30년이 지난 일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라는 말하는 장면도 보인다. 미자는 어미로서 자식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지금도 미안해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미자가 신장 이식수술을 받은 후 쾌유 되어 가는 과정 중에 이곳 절에 머무르고 있음도 관객들이 알게 해준다. 현성과 미자의 대운사와의 인연들과 소식 두절된 아버지 현성을 찾아 대운사를 찾아온 유희가 우연히 미자를 만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대운사 돌담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작은 불상들을 보여주며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 유래를 관객들에게 알게 해준다. 대운사에만 있는 붉은 모자를 쓴 동자승 불상이 수자 령 또는 태아 령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태중에 이승을 마감한 아이들을 위한 불상인 것이다.
급경사 커브를 돌아 내려오는 트럭 짐칸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짐 통으로 인해 미자가 배를 잡고 움츠리는 장면, 교포 2세와 결혼을 앞둔 유희가 로펌에 1년 휴가를 내어 놓고 집을 가출해 소식 없는 아버지가 평소 인연이 있는 대운사를 찾아온 현성의 딸 유희, 미자가 이 절 중창에 관여했음도 관객이 알게 해준다.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신장이식을 받아 회복되고 있음을 유희에게 이야기를 한다. 국밥집, 시장 통 옷가게 등에서 억척스럽게 사는 미자의 삶을 오버랩을 통해 보여주다가 에서 엠블란스 경광등, 경적 울리는 거리등이 클로즈 업 된다.
수술실에서 미자가 콩팥 이식 수술을 받은 장면, 링거를 달고 들어가는데 김 현성의 얼굴이 보이고 덕은에게 현성이 자신이 그녀의 이식 수술에 콩팥 제공자임을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 장면이 오버 랩 된다.
유희가 잊고 놔둔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가족사진에서 현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자 유희가 현성의 딸임을 미자가 알게 된다. 대운사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유희에게 미자가 휴대폰을 건네준다.
이 두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덕은이 오버 랩 되면서 그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덕은: 김 변호사님, 아이고 입이 가려워서 혼났습니다. 따님 잘 키우셨던데요. 그리고 보살님의 건강도 날로 좋아지고 있어요. (중략) 김 처사님의 신장이 살아서 박 보살님의 몸에서 살아 숨 쉬니 업장이 다 소멸.....
라며 안개사이로 사라지는 덕은, 일주문 이파리하나, 벌레 먹어 구멍 난, 빨간 이파리, 청량한풍경소리, 그 벚꽃을 타고 벚꽃이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며 이 극은 끝을 맺는다.
비록 단막극 분량의 시나리오 『벚꽃, 단풍에 지다』를 통해서도 작가 이 희규는 대운사와 동자승 불상,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삶과 인연, 업보를 그려, 속세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더욱더 치열한 창작열로 독자들의 가슴에 깊게 와 닿는 작품 창작을 그에게 기대해본다.
광주문학82호 게제 계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