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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사이

김영관 2017. 11. 2. 23:29

은밀한 사이/실개천

 

소설을 쓰시는 선배 문인과 함께 나는 어느 시인의 시집 출판 기념회 식장에

들어서는 중이었습니다. 선배 문인께서는 아리따운 여류 문인 한 분과 인사를

나누더니 내게 귓속말로, "방금 나와 인사를 나눈 여류 문인이 나하고 어떤

관계인 줄 아나?"라고 묻는 겁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내가 지어 보이자

그녀가 자신과는 아주 특별한 관계, 다시 말해 옷벗고 만나는 관계라는 것

아니겠어요?

식이 진행되는 내내 선배님과 그 여류가 그렇고 그런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쩜 저들은 저토록 시치미를 뗀 채 태연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복잡한 생각에 나는 사로 잡힌 겁니다.
2부 다과회 시간에 그들 두 사람은 서로 오가며 마주쳤는데도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것을 보며 참으로 지독한 가면을 쓰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출판 기념회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나는 다시 소설가 선배 문인께 두 사람은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냐고 물으니, 그분은 아주 태연스럽게, 그

리고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운동 삼아 실내수영장에 나가면서 부터"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은 "수영장에서 옷 입고 수영하는 사람 봤어,

자넨?" 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게 아니겠어요?

아무 것도 아닌 사실을 가지고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기심에 빠져들게

만들어 하루 종일 사람 혼을 빼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선배를 보면서 소설가는

역시 뭔가 다르다라는, 그래서 소설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