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외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김 영 관
이번 네가 스위스 여행 때 외할아버지인 내게 선물로 사다준 분홍색 수제품 모자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자랑삼아 그 모자를 쓰고 셀프사진을 찍어 페이스 북에 올렸더니 페친들이 나이에 비해 내가 훨씬 더 젊어 보인다며 외출 시에 꼭 쓰고 다니라고 하더구나.
모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가 모자를 왜 쓰고 다니게 되었는지를 말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혈통 반은 내 딸인 네 어머니이니 외갓집에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유전인자가 어떤 것인가를 외손주인 네게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런 이야기는 나아니면 아무도 네게 해줄 사람이 없을 것이니 귀를 쫑곳이 하고 잘 들어두어야 한다.
외증조 할아버님 할머님. 다시 말해 내 부모님께서는 유전적으로는 전혀 이질적인 특징을 지닌 분들인데 부부연을 맺고 7남매인 우리를 낳아 기르며 백년해로 하셨단다.
내 아버님, 다시 말해 네 외증조 할아버님께서는 전북 고창에 뿌리를 두신 광산김씨 36대손으로 전남 함평군으로 3형제가 내려 오셔서 손불면, 대동면, 함평읍 하느리에 정착하고 살으신 선조들의 둘째분의 후손이시란다.
40대에 대머리가 되신 분인데다가, 술이라곤 전혀 못하셨던 분이란다. 가무엔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이신 반면 외증조 할머님은 머리숱이 많으신 분이며 애주가에 가무도 즐기시는 분이셨다. 나 어린 시절 술 한잔 두신 후 “타향살이”라는 노래를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나는 술을 별로 마시지 못했는데 직장 생활하면서 직원들과 퇴근 후 자주 갖는 회식 분위기에 맞춰 겨우 술 몇 잔 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단다.
네 외증조 할머님 쪽 유전인자를 받아서인지 머리숱이 많아 이발할 땐 이발사가 머리카락을 솎아내는 수고로움을 끼치게 까지 했을 정도였단다.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놀라는 걸 보니 넌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말이다. 40대 이후에 갑작스럽게 반백의 머리가 되기 시작하더라. 염색약을 잘못 사용해서 인지 머리 피부가 안 좋아져 고급 천연 염색약이라며 사용하기를 권하는 미용사 사장 말에 따라 머리카락 보존에 많은 공을 들여 보았다만 지금의 이 모습이 되고 말았구나.
정년까지 어렵게 버텨 나가다가 직장 문을 나서는 순간 염색도 중단하고 모자를 애용하기 시작했단다. 그러니까 중절모를 쓰고 외출하는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는 걸 명심하거라.
기왕에 모자를 쓰게 될 거라면 이것도 내 취향에 맞는 모자를 골라 쓰고 다니면 더 나아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냐. 어쩌다 쇼핑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모자 파는 코너에 들러 이런 저런 모자를 세심하게 골라 거울 앞에 서서 써 보며 동반한 친구들에게 어느 모자가 내게 더 잘 어울려 보이는지를 묻기 시작했지 뭐냐.
등산 시작할 무렵엔 증심사 입구 등산복 코너에서 동반 친구들이 추천하는 모자들을 동시에 몇 개씩 구입해 집에다 모아두기 시작했단다. 국내외 여행 시에도 모자 코너에 들러 모자를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네가 보는 저기 옷장 모자 코너에 검은 중절모는 영국에서 사온 거란다.
지금은 60여개의 여러 종류 모자들이 내가 외출 시 자신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니? 외국 여행 시 방문 기념 핀만을 모으는 사람이 있듯이 내 대머리를 카버해주는 모자 코디를 위해 모자 수집광이 된 거란다.
지난번 외할아버지 고향에서 만난 작은 외할아버지는 형제인데도 술 못하는 나와는 달리 애주가에 취중엔 노래도 곧잘 부른 모습이 어쩌면 외증조 할머니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더라. 60대까지 잘 버텨온 나에 비해 40대부터 대머리 모습인 것은 어쩜 또 외증조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 인지.
모자 선물 고마워서 시작한 네 외갓집 혈통이야기를 하다가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구나.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어른이 앞으론 없을 거라는 것도 명심하거라.
그리고 내가 백내장 수술 이후로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눈 보호를 위해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는 안과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단다. 그 이후로 외출시 선글라스 착용도 내 코디의 일부가 되었지 뭐냐. 막내 이모가 북유럽 여행 때 사가지온 선글라스가 저건데, 네 엄마아빠에게도 잊지 말고 이야기 해드려라. 국내외 여행 시 별로 비싸지 않고도 멋진 선글라스가 많다는 내 말을 네 엄마아빠에게도 꼭 전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