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관 2022. 3. 28. 13:51

실종

 

등장인물

 

정미

현미

전화 목소리

웨이터

현수

미연

 

 

 

 

1

 

 

 

(아직도 앳되고 귀여운 그러면서도 관찰력이 뛰어나 보이는 가정 주부형인 현미가 부엌에서 거실로 걸어 나온다. 1년간의 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이제 막 집에 온 현미의 언니로 대학 교수인 정미가 전화중이다.)

 

정미: 학장님, 그 동안 배려해 주신 덕택에 아무 탈 없이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가 이제 막 돌아 왔습니다. 미국에서 골프도 제법 배워 왔거든요. 언제 한번 학장님께서 저를 필드에 데리고 가 주시겠어요? 하여튼 이삼일 내로 학교에 올라가서 학장님 찾아뵙고 귀국 인사드릴 게요 (그녀가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다른 곳 전화번호를 찾는다.)

 

현미: 언니 피곤할 텐데.. 내일 전화하지 그래, 언니?

 

정미: 그래, 알았다. 그래도 몇 분께 귀국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현미: 언니 아주 건강해 뵈는데? 그 동안 미국에서 잘 지냈나 봐.

 

정미: (밝은 표정으로) 그래, 몸도 마음도 다 건강해 지려고 무척 노력했거든.

 

현미: 잘 생각했어, 언니. 지난 일은 다 잊어 버려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런데 언니?

 

정미: 왜 그래? 심각한 얼굴로?

 

현미: 아무래도 나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정미: 뭐가?

 

현미: 형부 죽음 말이야.

 

정미: 왜 너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거니?

 

현미: 내겐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정미: 지난 일을 잊고 새 출발하려는 내게 왜 네 형부 이야기로 나를 우울케 하는 거니?

 

현미: 미안해 언니, 전혀 그럴 뜻은 없어. 그렇지만

 

정미: (궁금하다는 듯) 장거리 여행 후라 내가 좀 피곤하다만, 도대체 네 형부의 뭐가 그리도 수수께기처럼 느껴진단 말이냐?

 

현미: 언니 피곤하다면 다음에 이야기할게.

 

정미: 미국이라면 이제 낮 시간이어서 인지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안 오는구나. (일어서서 부엌으로 가면서) 너 술 한잔 할래?

 

현미: 언니 지금도 잠들기 전에 술 마시는 거유?

 

정미: 아니, 예전처럼은 아냐. 그렇지만 집에 돌아오니 잊었던, 아니 애써 지우려 했던 것들이그래서 한잔하려는데

 

현미: 그럼 한잔 줄래요? 하지만 언닌 예전처럼 술독에 빠지면 안 되우...

 

정미: 걱정 마라, 이젠 술 별로 안 마신다. (그녀가 양주 두 잔을 칵테일해서 양손에 들고 소파 쪽으로 오면서) 아까 말한 수수께끼라는 게 뭔지 말해 보려 무나.

 

현미: 그 당시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몰랐는데지금 생각해보니

 

정미: 지금 생각해보니?

 

현미: (한참 말이 없다가) 아무래도형부는 자살한 게 아닌 것 같아.

 

정미: 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무슨 뚱단지 같은?

 

현미: (혼잣말처럼) 자살할 사람이 왜 하필 바다로 갔는지

 

정미: 그게 어때서바다로 갈 수도 있는거지 뭘.

 

현미: 장대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밤, 왜 하필 방파제로 나가서

 

정미: 도대체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오늘 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현미: (생각에 잠겨) 방파제 위에 형부가 벗어 놓은 양복 상하의, 구두와 안경, 그게 모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정미: (의아한 눈빛으로) 그것들이 왜?

 

현미: 언니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구! 죽을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걸 다 벗어 놓았겠어?

 

정미: ?

 

현미: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언니,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본능적으로 추운 날 팬티바람으로 바닷속으로 뛰어 든다는 게 가능하겠느냔 말이야!

 

정미: ?

 

현미: 혹시 형부가 자살로 위장한 것은 아닐까?

 

정미: 무엇 때문에?

 

현미: 바다 밑을 아무리 뒤져 봤어도 형부 사체를 발견 못 한 걸 보면 분명

 

정미: 그래서 실종 처리 한 것 아니니?

 

현미: 아무래도 형부 자살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경찰에서는 형부 사체를 지금까지 발견 못했으니

 

정미: 그럼 형부에 대한 네 생각은 자살이 아니라?

 

현미: 자살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그 자리를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입고 간 옷을 거기에 벗어 놓은 채

 

정미: 무슨 쓸데없는 소리...너 무슨 추리 소설 쓰는 건 아니냐? 이제 피곤하니 나는 좀 쉬어야 겠다.

 

현미:(한참 넋 나간 듯이 앉아 생각에 골몰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편히 쉬어요, 언니. 내일 와서 짐 정리 해줄 테니

 

정미: 잘 가라. 그래도 너라도 가까이 있으니 내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현미가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가고 정미가 그녀를 배웅하며 조명이 어두워진다.)

 

 

 

 

2

 

 

 

 

(현미의 집, 안방 . 컴퓨터를 켜 놓은 채 현미 혼자 앉아서 전화 통화 중이다.)

 

 

 

 

현미: 여보세요! 거기 <문학의 즐거움>인가요?

 

전화 목소리: 안녕 하세요? <문학의 즐거움>인데요. 무얼 도와 드릴까요?

 

현미: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전화 목소리; 말씀 하세요. 궁금한 게 뭔가요?

 

현미: 제 형부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전화 목소리: 형부가 누구신데요?

 

정미: 몇 년 전 실종된 분인데요.

 

전화 목소리: 실종된 분이라구요? 아 그렇다면 이 정환 시인 아닌가요?.

 

현미: 맞아요. 그럼 선생님께서는 제 형부를 알고 계시는가요?

 

전화 목소리: 그럼요. 그분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데요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분이예요.

 

현미: 그랬군요. 오늘 우연히 형부 서재를 청소하다가 오랫동안 사용 안한 컴퓨터를 켜놓고 보니 제일 먼저 뜨는 화면에 선생님이 운영하는 문학 사이트가

 

전화 목소리: 그래서 이곳으로 전화를 하셨군요?

 

현미: 형부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을까 해서요.

 

전화 목소리: 이 시인님께서는 우리 사이트에 가끔씩 시를 게재하기는 했지만 독자들이 그분 시를 아주 좋아 했답니다. 어떤 독자는 이 시인의 시가 발표될 때마다 그림카드를 만들어 올릴 정도였답니다.

 

현미: 저는 문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형부가 이쪽 지역 문인들과도 상당한 교류를 하고 지낸 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전화 목소리: 참 안 되셨어요. 아까운 분이 그렇게 빨리 가셨다는 게

 

현미: 고맙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니그런데 형부가 실종될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납득이 안가는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화 목소리: 납득이 안가는 점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현미: 어젯밤 언니하고도 이야기했지만, 추운 날 자살하실 분이 방파제에 자신이 입고 있는 양복과 양말, 구두, 안경까지를 다 벗어 놓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니 그게 이상해서요.

 

전화 목소리: 그럴듯한 이야기로군요. 그렇지만 그런 일을 벌여 가족들에게 아픔을 줘야할 이유가?

 

현미: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전화 드려 보는 겁니다. 혹시 형부에게서 무슨 낌새를 느끼지 못 했는가 해서요. 실종 전에 무슨 느낌이나 예감 같은 것 말입니다.

 

전화 목소리: 잠깐요. 그분이 작년 겨울이니까그럼 작년 그분이 실종되기 직전에 우리 사이트에 올린 작품들을 한번 읽어 볼 게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실종 직전 마지막으로 올린 시 제목이 음위장 자살”? 아니 이럴 수가?

 

현미: 뭐라구요? 형부 마지막 시 제목이 위장 자살이라구요?

 

전화 목소리: 미쳐 몰랐어요. 정말 우연의 일치로군요. 마치 본인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현미: 그 무렵 작품들 제목을 한번 봐주실래요?

 

전화 목소리: 가면, 두 얼굴.

 

현미: 만남이라는 시 제목도 있나요?

 

전화 목소리: 이 사이트 들어오실 줄 아시면 작가 검색란으로 들어오셔서

 

이 시인님 신작 편을 열어 보시면

 

현미: 진즉 말씀해 주시지 그랬나요? 아 찾았어요. 여기 형부 얼굴과 더불어다음은 어디를 보라고 하셨나요? 신작아니 실종 된지 몇 년이 지났는데 그때 발표한 것도 신작에 해당되는 가요? “만남이라는 시가 여기 있군요. 그 무렵 형부가 누구를 만난 것은 아닐까요?

 

전화 목소리: 그것까지야 저희들이 알 수가 없지요.

 

현미: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 본 겁니다. 그럼 시 말고 컴퓨터를 통해서 그분 행적을 아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그러거든요.

 

전화 목소리: 그 분이 주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이메일이라든가, 메신저를 읽어 보시면 알 수가 있을 텐데요.

 

현미: 그걸 어떻게 읽어 볼 수 있나요?

 

전화 목소리: 그 분 아이디하고 비밀 번호를 입력 시켜 보시면

 

현미: 그걸 제가 모르는데요. 혹시 선생님께서 알고 계시면 좀

 

전화 목소리:(한참 머뭇거리다가) 본인만 알도록 하는 것이라서그래서 그게 비밀 번호라는 아니겠어요?

 

현미: 그럼 그걸 알면 형부의 행적 조회에 도움이 크겠군요? 형부가 자기 시에 심정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볼 때 말입니다.

 

전화 목소리: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문인들이 자기 심중을 작품에 드러내는 사람도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현미: 작품과 달리 형부 개인 사서함이나 대화록이니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전화 목소리: 그렇다면 그 분 아이디는 그분 이름으로 들어 와 보시면 사진 아랫 편에 나와 있을 테니 그대로 쳐 보시면……

 

현미: 잠깐만요아 여기 있군요. 그런데 패스워드라는 것이 있는데요?

 

전화 목소리: 그건 설령 내가 안다 해도 가르쳐 드릴 수가 없어요.

 

현미: 그럼 제 힘으로 찾을 테니찾는데 도움이 될

 

전화 목소리: 힌트라도 달란 말씀이시군요. 그분 주민 등록번호 뒷자리를 그대로 쓴 것 같았는데그 주민등록번호에다 앞 아니면 뒤에 어떤 숫자 하나를 첨가한 겉 같더라구요.

 

현미: 제가 그걸 알아 내볼 게요. 아무튼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전화 목소리: 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미안 하군요. 그렇지만 이 시인님이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제게도 불현 듯

 

현미: 선생님도 저와 같다 생각이든다구요?

 

전화 목소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 하나가

 

현미: 무슨?

 

전화 목소리: 이런 말을 내가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현미: 말씀 해보세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

 

전화 목소리: 서너 달부터 이 시인님과 아주 비슷한 시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현미: 뭐라구요? 제 형부의 어떤 점과 비슷하다는 말씀인가요?

 

전화 목소리: 어느 시골 읍에서 올라오는 시인데

 

현미: 그런데요?

 

전화 목소리: 마치 그분 시를 읽고 있노라면 이 시인의 시를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현미: 그분이 어디 사는 누구인가요?

 

전화 목소리: 바다 가까운 어느 한적한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현미: 어떤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시는가요?

 

전화 목소리: 요즈음 바다와 관련된 시가 계속 올라오고 있거든요. 그리고

 

현미: 그리고 또 뭐가?

 

전화 목소리: 아침저녁으로 산과 들을 산책하며 쓴 명상시로 봐서는

 

현미: 그러니까 바다가 가까이에 있고 그 주변에 산과 들도 있는 곳이란 말씀이로군요?

 

전화 목소리: 바닷가 어느 카페 이름이 헤밍웨이라는 곳을 찾으면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분 시에 그 카페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단서가 될 지도 모르겠군요.

 

현미: 하여튼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궁금한 것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 목소리: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현미: 바다 가까운 어느 한적한 마을이라그리고 헤밍웨이라는 카페가 있는아니 그렇다면?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참 생각에 잠기는 장면과 더불어 조명이 어두워진다.)

 

 

 

 

3

 

(어느 바다가 보이는 해변 카페. 정미가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주문한 차를 가지고 웨이터가 정미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온다.)

 

현미: 헤밍웨이라는 카페가 언제 이곳에 생겼나요?

 

웨이터: 이곳에 근무한지가 얼마 안 되어서요.

 

현미: 그래서 잘 모른다는 말씀인가요?

 

웨이터: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현미: 그렇지만?

 

웨이터: 이 집 사장님께서 미국에 살고 계실 때

 

현미: 사장님이 미국에서 살으셨다구요?

 

웨이터: , 우리 여 사장님께서 미국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신 분이랍니다.

 

현미: 여 사장님이라구요? 사장님이 여자란 말씀인가요?

 

웨이터: 맞아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셨답니다.

 

현미: 지금 이 카페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말인가요?

 

웨이터: 사장님한테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현미: 그런데 어떤 이유로 미국에 가서 살다가또 어떤 이유로 다시 이곳에 돌아 와서 살게 된 건가요?

 

웨이터: 저도 이것 사람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현미: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

 

웨이터: 아주 어린 시절 여기서 사장님은 부모를 여의고 친척 분 손에 이끌려 오빠 한 분과 읍내 고아원에 입양되어 가셨더랍니다.

 

현미: 그곳에서 미국으로?

 

웨이터: 맞아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거랍니다. 고아원에 남아 있는 오빠와 생이별하다시피하고 말입니다.

 

현미: 이곳에 아주 살려 오셨나요, 사장님은?

 

웨이터: 사장님은 미국에서 시민권도 얻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딸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미: 한국에 남아 있던 오빠를 만났나요?

 

웨이터: 그 오빠는 병으로 죽었대요. 이 나라에 사장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가까운 혈육도 남아 있지 않답니다.

 

현미: 그런데 왜?

 

웨이터: 이제 나이가 드셨으니 이곳과 미국을 오가면서 여생을 마치시려는 모양입니다. 지난해에도 6개월간 미국에 들어가서 딸과 함께 있다가 돌아 오셨답니다.

 

현미: 그럴 수도 있겠군요.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해지는 바다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웨이터: 사장님께서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바로 손님이 앉아 계시는 그 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시곤 한답니다. 해지는 바다 풍경을사장님은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시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곳 생활도 별로 행복스럽지 못했던지그곳 이야기는 일체 안 하시는 겁니다.

 

현미: 그런데 왜 이곳 카페 이름을 헤밍웨이라고 했는지 모르겠군요?

 

웨이터: 그 이야기는 제가 사장님한테서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요사장님께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 가는 길에 미 동북부 어느 곳에 헤밍웨이 고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 헤밍웨이 여관이라는 간판이 있더래요. 그게 궁금해서 같이 간 사람에게 물어 보니 헤밍웨이 처갓집이 그곳이라고 하더래요. 헤밍웨이 아내가 태어난 동네라고 하더래요. 헤밍웨이 작품과 바다를 좋아 하는 우리 사장님께서는

 

현미: 낭만적인 분이로군요, 사장님은

 

웨이터: 아직도 앳된 소녀의 낭만을 지니고 계신답니다, 우리 사장님은

 

현미: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를 가셨나 보군요?

 

웨이터: 귀한 분을 만나러 가셨답니다.

 

현미: 귀한 분?

 

웨이터: , 어릴 때 고아원에서 함께 지낸 사람인데요. 오빠 친구이기도 하고외롭고 괴로울 때 함께 지냈던 사람이랍니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는 모르지만마치 죽은 오빠가 다시 살아 온 것처럼 우리 사장님은 그분을 만나는 순간감격해서 울고 또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현미: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사장님이 다시 만나셨다는 그분은?

 

웨이터: 일찍이 고향을 떠난 분이라더군요. 그분 역시 타향살이 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그러더군요.

 

현미: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긴다.) ?

 

웨이터: 두 분은 처음 만나던 날 마치 친 오누이가 만난 듯 울고 또 울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하시더래요. (그는 손님이 들어오자 자리를 일어선다) 미안합니다. 손님이 왔군요.

 

현미: 형부가 틀림없다. 여기가 형부 고향 아닌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라는 말을 자주 하시던 형부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곳이리라. 그렇다면 둘 사이는 어떤 관계라는 말인가. 단순히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오누이의 정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형부는 왜 실종이란 방법을 택해 이곳으로 잠적해 온 걸까?

 

(조명이 어두워진다.)

 

 

 

 

4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서 현수가 시골집 대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들고 있던 어구를 담 벽에다 걸어 놓고 잡아온 바닷고기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놔두고 빈손이 되어 다시 마당으로 나온다. 정미가 담 밖에서 그의 이런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현미: 형부가 아닌가? 저렇게 환한 표정의 형부를 본 적이 없다. 이런 한적한 시골의 그 무엇이 저분을 저 토록 평온하게 하는가를 알 수가 없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5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 카페 헤밍웨이. 갈매기 날아다니는 바다가 보이는 창 안쪽 좌석에 현미와 카페 여주인 미연이 앉아 있다.)

 

 

 

 

미연: 나를 찾으셨다구요?

 

현미: 여 사장님?

 

미연: 그런데요?

 

현미: 내 형부 찾아 여기 까지 왔는데요. 실종된 내 형부를 찾아서 온

 

미연: 이제야 오셨군요. 좀 더 일찍 누군가가 찾아 올 거라 생각했는데

 

현미: 우린 형부가 돌아 가셨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거든요.

 

미연:

 

현미: 최근에야 형부의 실종이 곧 죽음은 아닐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미연: 그토록 그분에 대해서 당신들은 모르고 계셨다니

 

현미: (얼굴이 붉어지며) 워낙 과묵한 분이시라, 형부는.

 

미연: 내 나라를 떠나 수십 년을 살고 있던 나 보다 당신들은 그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니.

 

현미: 전혀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분이라, 내 형부는.

 

미연: 그 분 마음속으로 진정 갈망하고 있었던 것은내 입으로 차마 말하고 싶지 않군요.

 

현미: 친남매처럼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미연: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가 마져 죽고세상에 혈육이란 단 한 사람 없는 내게 그분은

 

현미: 혈육 이상의 의미이었다는 말씀이죠, 내 형부가?

 

미연: (그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고아원을 나서는 나는

 

현미: 외국에 나가서도 결코 잊지 못했다는 말씀인가요?

 

미연: 물론 우리는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어도 서로 부르는 소리를 감지 할 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기어이 다시 돌아가리, 내 나라에그리고 그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어요.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사이) 나는 오랜 세월 지난 후에 그분을 만났지만아주 우연히 만났지만나는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었답니다.

 

현미: 알아 볼 수가 있었다니요, 도대체 그 무엇을?

 

미연: 소외와 고독 속에 몸부림치는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하는심지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런그런 사람이란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알아 볼 수가 있었답니다. (마치 독백처럼) 물론 그분 어려서의 성품 탓도 있겠지만

 

현미: (그냥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 한다)

 

미연: 물론 그분이 다 옳다는 건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나약하고.현실과 이상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꿈만 먹고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지만그 분은 남들이 볼 때는 한 없이 나약하게 보이긴 하지만 내면으로는 강한 면이 있지요.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에서는그분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신들은 알고 계시는가요?

 

현미:

 

미연: 현실적인 관점으로 보면

 

현미: 그런데요?

 

미연: 아주 우연하게도 미국에서...내가 자주 찾아다니던 교포 서점에 그분 시가 함께 실려 있는 시집을 발견한 겁니다. 시를 보는 순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것 같은아직도 때 묻지 않는 시심을 지니고 있는 그분이 내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책 서문에 씌여 있는 무슨 문학 동인들 이름을 찾아서 출판사로 연락해서 내 그리던 그분을 찾아 낸 겁니다. 그분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문학 사이트를 통해 우리는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문학인 사이에는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렇지만 그분 시속에는 항상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방황이 도사리고 있음 나는 금방 간파할 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중대 결심을 했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겠다는그리고 그분께 내가 태어나 살던 바닷가 그 집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답니다. 그리고 그분께 이곳을 사서 바다로 큰 창을 만들어 내가 사철 바라 볼 수 있는 까페를 하나 개업케 해달라고 했답니다. 이곳에 와서 말년을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그리고는

 

현미:

 

미연: 딸아이에게 이별을 고한 겁니다. 물론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오겠노라고 딸 아이에게 말하고는 이곳으로 와 버린 겁니다.

 

현미: 그러면 제 형부를 이곳으로 부르신 겁니까, 당신이?

 

미연: 누가 먼저 불렀다고 말하긴 곤란 합니다. 서로가 갈망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현미: 그렇지만 당신네들이 한 행동은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형부의 무모한 행동이 내 언니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이 무슨 철모르는 아이들 같은 짓인가요? 가슴조리며 살아 온 사람들을 생각해야지바닷가 방파제 위에다 몽땅 벗어 던지고 사라진 형부는 참으로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 떳떳하게 말하고 대문 앞을 나서지 못했는지언니에게 헤어져 달라고 왜 말 못했는지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가는군요.

 

미연: 뭐라고 하셨나요? 방파제 위에다 모두 옷을 놓고 집을 떠났다구요? 그게 사실인가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에 오겠다던 그분이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다니세상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분이라서요.

 

현미: 그게 말이라고 하는가요? 형부에 대한 배신감을 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겁니다.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당신들이 마치 어느 여류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로 착각하는 모양이로군요.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원혼이 되어 고원을 헤매는 연인들처럼

 

(현미가 퇴장하며 조명이 어두워진다)

 

 

 

 

5

 

(조명이 밝아지면 다시 제 1장과 같은 장소. 현미와 .정미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 있다.)

 

현미: 요즘 언니 얼굴이 아주 좋아 보여.

 

정미: 음 어제도 하루 종일 닥터 박하고 골프를 쳤거든. 내 얼굴이 까맣게 그을지는 않았니?

 

현미: 다시 쾌활해진 언니를 보면 나도 기분이 좋거든. 그런데 언니 잘 되어가우?

 

정미: 뭐가?

 

현미: 닥터 박과는?

 

정미: (눈을 흘기며, 싫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제도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데

 

현미: 그랬는데?

 

정미: 아직 내가 뭐라고 대답할 입장이 못 되잖니? 네 형부가 실종 상태인데

 

현미: 무얼 꾸물대우? 실종된 형부가 살아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정미: 하지만?

 

현미: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정미: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현미: 그럴 리도 없지만 설령 살아서 다른 곳에 있다면그건 언니를 배신 한 것 아니우? 살아 있으면서 언니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미: ...

 

현미: 아마 형부는 자신이 필요로 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언니도 잊어버리고 재혼해요. 닥터 박이 언니를 그토록 원한다면세상에는 인연이라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그런 인연의 사람이 닥터 박인데 이제서야 비로소 만났다고 생각해봐 언니, 내 말 뜻 알겠수, 언니?

 

정미: 그 사람이 싫지는 않다만

 

현미: 그럼 됐어. 형부와는 인연이 안 될 사람이었는데 만났다 생각 하구려. 어쩌면 언니가 재혼하는 게 형부를 풀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미:.......?

 

(조명이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