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 예술 <해프닝>에 관하여
뉴욕에서 케이지의 <4분 30초>라는 곡 연주를 감상하던 관객들은 그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 진 것에 대해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유럽에서 다다이즘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 오게된 케이지는 그날 자기 연주곡
<4분 30초>시간 내내 피아노 앞에만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나가 버린 것이다.
후에 그는 자신의
연주곡을 듣기 위해 모인 관객들에게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을 선사했으니 연주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을 한다. 자기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동안
객석에서 관객들은 연인끼리 귓속말을 나누었을 것이고, 아이와 함께 온 관객 중에는 아이 울음소리와 달래는 아이 어머니의 소리, 이 모두가 자기
음악 연주 시간에만 가능한 것이니 이보다 더 독창적인 음악은 없다는 말을 한 것이다. 케이지의 이 말에 그들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도 예술인지에 대해 매우 의아해 했다.
그걸 시발점으로 해서 또 다른 어느 피아노 연주자는 연주 대신에
피아노를 도끼로 부셔대기도 했다. 피아노가 부서지면서 내는 독특한 음을 감상시키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한다고 항변하는 전위 예술가들의 등장으로
차츰 관객들은 그런 부류의 음악가들도 존재한다는, 다시 말해 전위 예술이란 말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 많이 지나 다니는 광장에서 페인트를
아스팔트에 뿌려 대고 화가는 붓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다시 말해, 구도가 전혀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연극의 경우에는 대본 없이 배우들이 광장에서
공연하다가 다른 장소에 가서는 관객의 반응을 봐가며 거기에 맞는 내용으로 즉흥극을 공연한다.. 그러므로 한번 공연된 극과 똑 같은 극을 우리는
다른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가 없다.
그들이 예술에 끼친 공과를 떠나, 예술가들의 독창적 표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 전위 예술
<해프닝>도 엄연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