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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접어 함께 보내 온...

김영관 2006. 4. 17. 06:28

  여보게 친구, 나이든 탓인지...웬만한 일들은 덤덤하기만 한데 말일세...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니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아서 아침에 이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 내 볼을 몇 번이고 꼬집어 보았다네... 뜸만 들이지 말고 이야기 해보라구?
  이 편지와 고액 수표 한 장이 내게 보내져 왔단 말일세. 편지 내용이 궁금하단 말이지? 보낸 사람 이름은 아무래도 가명 같은데... 편지에는 30여년 전 우리 옷가게 불이 났을 때 이야기가 쓰여져 있단 말일세. 우리 부부가 피땀 흘려 일구어, 겨우 허리 펴고 살만 하다 싶던 순간 전기 누전으로 가게가 온통 다 타버렸던 적이 있다는 사실 자네도 들었을 걸세. 
  아내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고, 나는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손에 걸리는 대로 가게에 쌓아두었던 의류들을 밖으로 내던졌지 뭔가. 그런데 나와 보니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것들을, 내가 목숨을 걸고 건져내던 의류들을, 손에 닿는 대로 가지고 가버렸더라구.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은 아닌데 하면서 불타버린 가게에 대한 아픔 못지 않게 인정 없는 세상에 대한 배신감 또한 컸더라네.
  그런데 말일세... 다른 사람들 따라서 엉겁결에 내 의류를 들고 갔던 그 당시 어린 학생이었다는 사람이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았다며... 늦게나마 그 때 일을 사과 드린다는 글과 함께 이렇게 고액 수표를 보내 오지 않았겠나?
  세상은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더 많아서 살만 하다는 말... 이 나이에야 실감이 간다네. 내가 자네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내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난단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