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는 바쁜 일정 속에 얽매어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도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이름과 직장을 말하고 만나 뵈어 반갑다느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사람과도 대충 앞에서와 비슷한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만남이고 헤어짐이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땐 상대방을 전혀 기억 못하고 앞에서와 같은 인사를 반복하여 나누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생활에 습성화되다 보니 자연히 상대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상대방을 평가하려 든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잘 나가는 서적류들을 보면 "성공비결 몇 가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여 주변 사람에게 신뢰와 신망을 통해서 인정받기보다는 가벼운 유머나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만담 몇 마디, 신문에서 읽은 시사성 이야기, 야한 음담패설 몇 가지를 기억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입담 좋게 늘어
놓으면 세상 살아가는데 별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를 남에게 잘 포장되어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은 내적인 가꿈보다는 외양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이것은 학창 시절 교육에도 큰 원인이 있다. 글의 내용파악 보다는 수능 위주, 다시 말해서 입시위주의 교육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정한 삶이 무엇이고, 참된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교사는 수업시간에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앞에서 개으름 피우는 교사쯤으로 전락해 버린 게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참된 삶을 말하는 교사에게 학생이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수업이나 합시다" 라고 이야기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삶의 지혜를 책에서, 특히나 양서에서 찾아야 한다. 요약된 서적이나 삶의 방법을 가르치는 요령서가 아니라 고전이나 양서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삶을 살아가지만 양서를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그 주인공의 또 다른 삶을 배우게 된다.
열 권의 양서를 통해 열 사람의 삶을 간접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만의 그릇된 가치관으로 인해 아들들의 성장을 막아 버리는 것을 보며 진정한 자식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비극적 결함을 통해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 결국 몰락해 가는 과정들을 보며 우리는 삶에 겸손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나친 야망으로 인해 맥베스가, 질투로 인해 오델로가, 감언이설로 인해 인간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리어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대단하다고 할 수가 있다. 자칫 발등에 떨어진 일상의 작은 일들에 너무 급급하여, 양서가 주는 더 크고 넓은, 그리고 다양한 세계를 우리는 놓치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신의 좁은 관점으로만 예단하는 위험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게 하는 것도 또한 양서가 주는 고마움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삶이 풍요로워 진다.
참된 삶과
우정, 그리고사랑은, 순간적일 수도, 외형적 포장일 수만도 없다. 오래 두고 볼수록 은은하고, 깊은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양서 안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양서 속에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있고 그 해답이 있음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