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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신협

김영관 2006. 5. 11. 06:07

               연꽃 

                            신협

나는 죽어서 연꽃이 되리라
달력을 떼어 버리면 오직 계절만 보이고
옷을 벗으면 오직 알몸이 될지니
남은 지폐 행려인에게 건네주면 오직 배꼽만 남아서
떠도는 구름 뒹구는 낙엽처럼
해와 달을 벗 삼아 바람으로 떠돌다가
어느 해 백골을 뽑아 이슬이 되고 안개가 되어
연못가에 쭈그리고 앉아 연꽃을 바라보다가
목탁 소리에 문득 내 몸 연꽃이 되는 날
낮에는 햇볕과 함께 춤추고
밤에는 달빛 아래 시를 읊으리라

그러다가 나 또한 어느 날
낮도 밤도 없는 저 어느 별나라
동화 속의 나라에서 잠들고 싶어라
몇 겁의 잠 속에서 다시 깨어나거든
연꽃도 보이지 않는 연못가에서 소리로 떠들다가
그 소리 하늘가에 퍼져
우주에 넘치는 날
천둥이 먹구름 뒤에서 울 듯 
어느 명인의 가야금 소리
달빛 가득한 불국사 뒷뜰 여승을 울리듯
나의 소리 연꽃 뒤에서 들리리라.

 * 신협: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졸. 박목월 추천으로 <심상>지로 데뷔. 

           시집 <변명> <낙엽으로 돌아와서>외. 현재 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