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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샘물>에 나타난 환상과 현실의 문제

김영관 2007. 2. 19. 10:08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 1871-1909)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충분히 꽃피우지 못하고 38세의 나이로 요절한 극작가이다. 그는 <바다로 간 뱃 사람들>을 포함하여 불후의 명작 몇 편을 남겼는데, <성자의 샘물> 역시 그의 대표작 중의 한편이다.

 

1905년 아일랜드의 애비 극장에서 첫 공연을 한 바 있는 이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맹인인 도울 부부가 담을 더듬거리며 무대에 나타난다.
  그들은 발걸음 소리만 듣고서도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가는지 짐작으로도 다 알 수가 있다. 태양의 따스함 정도만으로도 그들은 계절의 변화를 감지 할 수가 있다. 늦가을 햇볕 아래 그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주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지만 그들은 조금도 자신들을 불행하게 생각지 않는다.

 

  도울 부부는 후천적인 맹인들이어서 어린 시절 보았던 세상에 대해 막연한 아름다움으로 그 추억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는 서로의 용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고 있다. 남편 마틴 도울은 아내가 아일랜드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으며 아내 매어리 도울 역시 남편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 앞을 지나치면서 동전을 주는 동네 사람들이 마귀 할멈처럼 추하고 못생긴 매어리를 동정하여 "아름다운 매어리"라고 건네는 말을 도울 부부는 사실로 믿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어리는 비록 맹인이지만 자신이 아주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미인이라는 착각 속에 살며 남편인 마틴에게 그걸 주입시켜 마틴 역시 자신의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미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구걸하며 살고 있어도 다른 누구도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쪽 지역의 성자 한 분이 네 성자들의 무덤 옆 샘에서 길러온 물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러 이곳에 온다. 맹인 부부의 딱한 이야기를 들은 성자는 성수로 이 부부가 눈을 뜨도록 치료를 해준다.

   먼저 남편 마틴부터 치료를 해주는데 그가 눈을 뜨자 제일 먼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아내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는 동네 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아내인가를 확인해 본다. 동네 사람들은 마틴의 이런 행동이 재미가 있어서 "한번 맞춰 보라" 놀려댄다.

  다음에 그의 아내 매어리가 성수로 치료받고 세상을 보게 되면서 그녀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져 버린다. 마틴 역시 마찬가지이다.

 

  2막에서는 도울 부부가 서로의 외모에 실망하게 되어 그들은 서로 만나도 모른 채 지나치는 정도로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낸다. 이제 눈을 뜨게된 이 부부는 마냥 구걸만 하면서 살 수가 없다. 남편 마틴은 대장장이 티미 집에서 잔 심부름을 하면서, 아내 매어리는 과부 오브리언 집 밭 일을 하며 목에 풀칠을 하며 산다. 동네 사람들은 사람의 외모 따위에는 관심 없이 살다가 이 맹인 부부 때문에 차츰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마틴은 아내 외모에 실망한 나머지 아름다운 몰리 번이라는 처녀에게 관심을 갖는다. 몰리는 홀아비가 된 티미가 이미 마음속으로 점을 찍어 두고 있는 여자이다.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마틴은 몰리에게 티미와 결혼하지 말고 자신과 남쪽 나라에 가서 살자고 유혹을 하나 몰리는 이를 비웃고 조롱한다.

  그녀에게 거절당한 마틴은 세상을 저주하게 되고 이들 부부는 다시 옛날처럼 시력을 잃게 된다.

 

  3막에서 맹인이 된 부부가 서로 다른 쪽 방향에서 1막과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 실망했던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 것도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 화해를 한다. 도울은 이제 하얀 수염을 기르겠다고 말하며 수염을 기르게 되면 동쪽에서 제일 멋진 사나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매어리는 수염 긴 남편 마틴에 대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다시 성자가 이 마을에 나타난다. 티미와 몰리의 결혼 미사를 집전해 주기 위해서 이다. 성자는 도올 부부가 다시 맹인이 되었음을 알고 기왕 이 곳에 들린 김에 이들 부부에게 다시 성수로 눈을 뜨게 해주려고 한다.  이번에 치료를 받으면 그들은 여생을 맹인이 될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성자는 도울 부부에게 말해 준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는 단호하게 맹인으로 살기를 고집한다.

 

  맹인으로 살면서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졌던 것들이 눈을 뜨고 현실로 보니 실망뿐이었음이 그들이 맹인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였다. 동네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는 맹인으로 살기를 원했고 환상이 깨진 이 마을을 떠나 멀리 멀리 다른 곳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며 그들은 그 마을을 떠나며 이 극은 끝난다.

  아일랜드 민담을 소재로 하여 쓴 이 작품에서 싱은 인간의 환상과 현실이 매우 차이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