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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연 미친거유?

김영관 2007. 5. 21. 05:34

           

 

               

 

                   등장 인물

                              

                    민호: 50대 초반의 직장인
                    형식: 40대 중반. 민호의 직장 동료
                    찬호: 20대 초반의 학생. 교통 사고 피해자로 의식 불명의 상태  
                    경철: 찬호의 아버지
                    경철의 아내  
                    여학생: 찬호의 여자 친구
                    술집 주인 마담, 경찰1,2 , 간호사, 찬호 아버지, 그밖의 사람들

 


                             1막 악몽
                            

         

 장면I. 가랑비가 내리는 쌀쌀한 초 겨울 날씨 저녁 6시 경, 신호등 이 없는 교차로
               

장면II,같은날 저녁 7시 30분경, 00대학 부속병원 응급실                                      

             

장면III, 1개월 전, 민호의 아파트 거실 
                           

장면IV, 장면I, II와 같은 날 저녁 9시 경, 장면II와 같은 장소 
                            

장면V,며칠 후.00대학 부속 병원 중환자실
                            

장면VI,장면 V와 같은 날, J시에 있는 예수 병원 205호 병실
                          
                             2막 현실
                      

장면I, 11월 20일 민호의 아파트 거실
                      

장면II, 같은 날 저녁 10시경, 술집
                      

장면III, 같은 날 저녁 11시 30분경. 길가 인도. 

 


                    

 


                
                    1막 악몽

 

                      장면I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는 초 겨울 이른 저녁. 제법 쌀쌀한 날씨이다. 승용차 한 대가 좌회전을 하려고 커브를 도는 순간, 앞에서 질주해 오던 오토바이와 충돌을 한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가 뒹굴고 타고 있던 두 사람이 아스팔트 위에 내팽겨쳐진다. 부딪친 승용차도 앞 유리와 오른 쪽 유리가 박살이 나서 아스팔트에 흩어져 있다. 차가 많이 찌그러져 있는데도 라이트가 켜져 있고 좌측 깜박이가 켜져 계속 깜박 거리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순간에 일어난 것이다.옆을 지나던 자동차들이 서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황급하게 내려 사고 현장 주변에 몰려 든다. 보도 위를 걸어 가던 사람들 역시 이곳에 모인다.)

 

사람1: 많이 다친 모양인데....

 

사람2: 하난 여자 앤데요. 쟤가 뒤에 타고 남자 애가 오토바이를 몰고...

 

사람3: 어이 젊은이! 괜찮아? (젊은이의 이마에 피가 흐른다. 젊은이가 흔들어도 반응이 없자 사람 3이 그의 심장에 귀를 대 본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은데 뇌를 다친 모양이요.

 

사람1: 뇌를 다쳤으면 큰 일인데... 어서 택시를 불러 와요!

 

사람4: 이 여자애는 별로 다친데가 없는 모양인데.. 여봐 학생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 다친데 없어?

 

사람5: 어데를 얼마나 다쳤는지 본인이 알겠어요? 아무튼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으니 다행이군...
      (박살난 승용차 주변에도 사람들이 모여 든다.)

 

사람6: 안에 두 사람이 탔는데요.

 

사람7: 조수석에 탄 사람 얼굴에 피 좀 보세요.

 

사람8: 오른 쪽이 충돌해서 그러는 지 운전 한 사람은 별로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승용차 문을 열려고 주변 사람들이 애를 쓰지만 문이 찌그러져 있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운전자석 문은 잠시 후에 열린다.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앉아 있던 운전자가 정신을 가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7: 여보시오. 괜찮소? 어디 다친데는 없소?

 

운전자: 난 괜찮소만... 내 옆 사람 좀 살펴 봐 주시오.(조수석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여보게, 형식이! 많이 다쳤어? 어? 얼굴에 이 피 좀 봐!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시오!

 

사람8: (주변 사람들에게) 운전자 부터 끌어 냅시다. 저 쪽 문이 안 열리니 이 사람을 먼저 내리게하고.....(사람들이 먼저 운전자를 끌어 내리고 다음에 조수석에 타고 있는 사람의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낸 후 겨우 끌어 내린다.)

 

형식: 얼굴에 유리 조각이 밖힌 모양이요. (발을 절뚝이는 운전자에게) 민호 형! 다리를 다친 거요?   많이 다쳤수?

 

민호:  약간 다친 것 같은 데 견딜만 해.(그들도 오토바이에 탔던 사람들에게 다가 간다.)

 

람1: 당신들이 사고낸 사람들이지? 운전은 누가 했소?

 

민호:  제가 했는데요.

 

사람2: 운전을 똑바로 해야지! 이거 무슨 불상사요?

 

사람3: 이 사람들은 잘못이 없어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저걸 타고  오던 애들이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무서운 속도로 달려 왔다구요.

 

사람6: 무슨 소리요?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좌회전하는 차는 무조건 직진하는 차에게 차선을 양보해야 한다구요. 장애물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요?

 

사람4: 사람 생명이 위독한 데 무슨 한가한 소리요?  택시에 다친 사람을 싣고 병원에 빨리 가 봐야 하는 것 아니요?

 

주변 사람 모두: 맞아요! 그렇게 합시다.
    (금방 도착한 택시에 오토바이에 탔던 두 사람과 자동차에 탔던 두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태운다.)

 

사람7: (택시 기사에게) 젊은 친구가 위독한 것 같소. 00대학병원 응급실로 빨리 싣고 가시오.

 

민호: 경찰에 신고해야 할텐데........

 

사람8: 병원에 가서 신고해도 늦지 않소.(택시 기사에게 ) 여보시오! 뭘하고 있소? 빨리 병원으로 가라는 내 말이 안 들리요?(택시가 출발한다.)

 

사람4: 젊은 친구가 걱정인데.... 무사해야 할텐데......
                                                (조명이 어두워 진다.)

 

                                 장면II


  (00대학 부속병원 응급실. 의식을 잃은 젊은이에게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응급환자를 위한 모든 조치들을 다하고 있다.팔에 링거주사도 꽂혀 있다.)

 

민호;(의사에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의사: 뇌를 다친 것 같은 데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데요....

 

민호: (힘없이) 죽지는 않겠지요?

 

형식: 무슨 말씀이요? 그렇게야 되겠어요?

 

민호: (안절 부절하다가 응급실 침상에 누워 있는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형식도 그의 뒤를 따라간       

다.그녀 팔에도 역시 링거 주사기가 꽂혀 있다.) 학생! 좀 괜찮아?

 

여학생: .............

 

민호: 남자와는 어떤 관계이지? 젊은 친구도 학생인가? 그 사람 전화 번호가 어떻게 되지? 저 사람 집으로 연락을 해 줘야 겠는데....

 

형식: 민호형! 그건 제가 알아서 할께요.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는다.형식은 호주머니에서 볼펜과 수첩을 끄집어 낸다.) 학생! 저 젊은이 이름이 어떻게 되지?

 

여학생: 찬호,....김찬호 인데요.

 

형식: (수첩에다 이름을 받아 적는다.)전화 번호를 알고 있어?

 

여학생: 062-357-8545예요.

 

형식: 그건 이곳 지역 번호가 아닌데.. 그리고 학생 전화 번호는? 학생도 그곳에 사는거야?

 

여학생: 062-392-2547인데요.

 

형식: 학생!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목격자의  말로는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과속으로 질주해왔다던데....

 

여학생: 저녁 8시 까지 집에 도착을 할 일이 있어서... 찬호가 군에 입대하게 되어 식구들이 파티를 열어 주기로 했거든요

 

형식:(얼굴에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여긴 뭐하러 왔는데?

 

여학생:찬호가 군대 입대하기 전에 만나 볼 친구가 있다면서 같이 이곳에 오자구 하더라구요

 

형식: 다친 학생,그러니깐 찬호란 학생과 아가씨는 애인 사이인가?

 

여학생: 그냥 친구예요. 집에서 알면 제 입장이 곤란해지는데....

 

형식: 학생 술한잔 한 것 같은데?

 

여학생: 이곳에 사는 찬호 친구와 한잔 했어요.

 

형식: 찬호도 술을 했겠는데?

 

여학생: ........

 

형식: 맥주 마셨나?

 

여학생;(고개를 끄덕인다.)

 

형식: 몇 잔이나 마셨는데?

 

여학생:(심문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별로 많이 마시지는 않았어요.

 

형식: 찬호는 언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여학생: 찬호 오토바이가 아니에요.

 

형식: 그럼 남의 오토바이를 타고 왔단 말이야? 헬멧도 쓰지않고 고속도로를 달려 왔단 말이지? 도대체 운전 면허증은 있어?

 

여학생:............

 

형식: (제법 자신을 갖는 표정으로) 민호형!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낮은 목소리로)쟤들 무면허에 음주 운전이라구요. 형은 빨리 경찰한테 신고를 해야지요.

 

민호: 알았네.(공중 전화있는데로 걸어간다.)(한참 후) 여보세요. 경찰서 이죠?
 교통사고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잠시 기다리라구요? 담당 부서를 바꿔 주겠다구요?  예, 알겠습니다.(한참동안 수화기를 들고 기다린다.)예. 그래요. 저녁 6시 쯤일 거예요.거기가 어디냐구요?  지금 다친 사람들을 데리고 00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 와있는데요.사고 장소가 어디냐구요? 터미널에서 시내쪽으로 가는 교차로 있죠? 첫 번째 교차로,예, 신호등 없는 교차로인데요. 누가 다쳤는냐구요? 젊은 남녀 대학생들인데요. 여학생은 별로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남학생이 많이 다친 모양예요. 의식을 잃었는데 지금까지.... 가족에게 연락했느냐구요? 아뇨. 지금 빨리 연락하라구요? 예,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이곳으로 금방 오신다구요? 제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구요? 박민호입니다. 두분이 오신다구요? 예, 이곳에 있겠습니다.(그가 발을 절뚝거리며 형식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형식: 경찰에 연락하셨어요?

 

민호: (고개를 끄덕인다.) 응...

 

형식: 뭐라고 하던가요?

 

민호: 금방 이곳으로 온다고 하던데,,,,,,.(한참 말이 없다가) 다친애들 가족에게 전화를 해주라던데.

 

형식: 그건 제가 할께요.(수첩을 펼쳐들고 공중전화쪽으로 걸어간다.)

 

민호:(혼잣말로) 오 하나님! 세상에 이런 가혹한 형벌을 제게 내리십니까? 전 이제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 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다구요. 한 시간 전으로 만 되돌아 갈 수  있다면..... 하기사 지금까지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생각만 했는데..... 그렇지만 이런 일이 터지고보니......(점점 목소리가 낮아진다.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으나 관객은 들을 수가 없다.)

 

형식: 연락을 했습니다. 두집 식구들이 같이 오겠다는데요.

 

민호: 자네 얼굴에 계속 피가 흐르는데 않되겠어. 간호원을 불러서 어떤 조치를 해달라고 해야겠어.(간호원이 있는 쪽으로 민호가 걸어간다. 잠시후 그가 간호원과 같이 온다.)

 

간호사: (형식을 가리키며) 이 분이신가요? 얼굴을 다치셨다구요?(형식의 얼굴을 가까히 가서 살펴 본다.)

 

형식: 얼굴이 쑤시고 아파요. 차 유리파편이 박힌 모양이요.

 

간호사: 많이 다치진 않았어요. 보시다시피 오늘은 비가 내려서 인지 응급환자가 많아요. 이런 정도의 상처를 치료할만큼의 여유가 없다구요. 근처 개인 병원이 있거든요. 그곳으로 가보세요.

 

민호: 형식이! 그렇게 하게. 내가 이곳에 있으면 됬지 두 사람이 다 있을 필요가 있겠나?

 

형식: 혼자 계셔도 되겠어요?

 

민호: 그래, 걱정말고 근처 병원엘 다녀오라구.

 

형식: 정말 괜찮겠어요?

 

민호: 그렇다니깐! 뒷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자네 돈 없지?

 

형식: 걱정 마세요.형은 어떤 일이 벌어 질 줄 모르니 돈을 가지고 있어야해요. 마음이 안 놓이지만 그럼 금방 치료받고 올께요.(형식이 응급실을 나간다.)

 

민호:(혼자 남게 되자 무척 초조하고 불안해 한다.)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일이 내게 터지다니!
  (교통사고 부상자들이 들 것에 실려 들어 온다. 그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따라 들어 서는데 그 중 한 사람 손에는 다친 사람의 피묻은 점퍼를 들고 있다. 이 소란스런 광경에 민호는 더욱더 불안해 한다.그는 더 이상 응급실에 있지 못하고 문 밖으로 나온다. 찬 바람이 민호의 왜소한 몸에 엄습해 온다. 그는 담배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문다. 라이터를 켜는 그의 손은 몹시 떨린다.)  (그는 잠시 회상에 빠진다. 장면 3은 그의 회상 장면이다.)

 

 

                         장면III

 
( 1개월 전. 민호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 민호와 그의 아내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현관에는 옷 가방 몇 개가 놓여있다.)

민호 아내: 나 없더라도 자식들 잘 키워 보라구!

 

민호: 당신 지금하는 행동이 뭘 의미하는 줄 알기나 해? 이런 식으로 집을 나가면 다시는 나도 자식들도 못 본다는 걸 몰라?

 

민호 아내:마누라 없이 어디 잘 살아봐! 나 없이도 얼시구나 잘 살 사람이니깐 걱정은 않소만...

 

민호: 당신 이럴 순 없어! 대학 입시를 눈 앞에 둔 재수하는 자식은 어떻허구. 그리고 군대간 아들 놈이 이 사실을 알면 탈영할 수도 있다는 걸 몰라? 

 

민호 아내: 그렇게 사리가 밝은 사람이 마누라를 볶아대면 어떻게 살겠어?

 

민호: 그걸 말이라고해? 어떤 남편이 당신 같은 여자를 그냥 놔두겠어? 그러고도 자신의 행동을 반성치도 못하고.......

 

민호 아내: 반성하니깐 이렇게 집을 나가는 것 아니요?

 

민호: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면 다야? 인생을 그렇게 계산없이 무모하게 사니깐 뭐라하지 이유없이 내가 소리치느냐구?

 

민호 아내: 한 소리 또하고 또하고...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 집을 나가는 거라구. 좋은 여자 있으면 데려다 잘 살아봐!

 

민호: 내게 무슨 여자가 있다는 거야?

 

민호 아내: 하기사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인데...

 

민호: 뭐라고 했어?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민호 아내: 그만 둬요. (가방을 집어든다. 민호가 가방을 낚아 챈다. 민호의 아내가 그걸 뺏으러 한다.)

 

민호:뭘 잘했다고 이런 소란이야. 여자가 도박을 해서 하루 저녁에 몇 백만원을 잃고 경찰이 출동을 해서 하마터면 유치장 신세를 질 뻔한 여자가 조금이라도 반성을 해야 되지 않아?

 

민호 아내: 그걸 가지고 평생을 볶아댈 당신하고는 살 수가 없으니깐 나가는 것 아녜요?

 

민호: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럴수록 반성을 하고 가족과 오손도손 살아야 할 것 아냐?

 

민호 아내:그럴려고 했지만 당신 성격을 난 잘 안다구요. 평생을 시달릴 일을 생각하면....  (가방을 다시 집어든다.)

 

민호: 자식들과 한번 살아보라 이거지? 골탕 먹어 보라는 거 아냐?

 

민호 아내: 당신 같은 똑똑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골탕을 먹는단 말이요?

 

민호: 그런 심보가 아니면 뭐야? 지난번 아파트도 나 몰래 계약해서 팔아 버리고... 내가 그렇게도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호 아내: 빚 때문에 판 거 아니요? 자식들 가르치면서 진 빚 말이요.

 

민호: 자식들 가르치면서 빚을 졌다구? 허구 헌날 집 밖에 나돌아 다니던 여자가...

 

민호 아내: 당신이 웬만히 잔 소리를 하는 사람이어야지. 오죽하면 집 밖으로 맴돌겠어요?

 

민호: 무슨 소리야? 난 싫더라도 자식들이 있잖아! 걔들에게 당신이 관심이나 있어?

 

민호 아내: 서방 복 없는 년이 무슨 자식 덕을 보겠소? 요새 세상에 자식 덕 볼 걸 기대하는 사람들 다 미쳤다구들 합디다.

 

민호: 자식 덕을 보자고 그런 소리하는게 아니야! 가르치는 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 하라는 이야기 이지. 우리 때문에 태어난 애들인데 걔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구!

 

민호 아내: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매일 소란을 떠는 이유가 도대체 뭐유?

 

민호: 정말 답답하네. 가정 주부답게 일찍 집에 들어와서 집안 일도 하란 말이야!

 

민호 아내: 요새 세상에 집에만 붙어 있는 여자가 어딨어요? 내가 이 집 종이유?

 

민호: 그러니깐 집만 나가면 하루 종일 전화 한통화 없이 늦는단 말이야?

 

민호 아내: 전화 하면 뭘해요! 내 말 들어 보지도 않고 욕부터 해대니.. 누가 기분 좋아서 전화를 걸겠어요?

 

민호: 그러니깐 일찍 일찍 집에 들어 오라는 이야기 아니야?

 

민호 아내: 그러니깐 집을 나가는 것 아녜요? 복종 잘하는 여자를 데려다 살면 될 거 아뉴?

 

민호: 아휴 답답해. 이런 여자하고 수 십년을 살아온 내 신세가 처량도 하지....

 

민호 아내:이혼 서류 보낼테니 도장이나 꽝 찍어 보내슈!이 똑똑한 양반아!

 

민호: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화낼 사람은 난데... 모임에 간다고 해 놓고 딴데로 새버리지를 않나...

 

민호 아내: 내가 모임 아닌 곳에 갔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유?

 

민호: 떳떳한 행동을 하고 다니면 자기 행적을 못 밝힐 이유가 없지!

 

민호 아내: 당신은 그럴 때가 없어요?

 

민호: 지갑에 은행 나무 잎사귀를 곱게 접어 넣어 가지고 다니던데?

 

민호 아내:......?

 

민호: 자기가 무슨 10대 소녀야? 어떤 남자가 함께 걷다가 은행나무 잎사귀를 집어 준게지?

 

민호 아내:당신 내 지갑을 훔춰 봤수? 남자가 오죽 못 났으면 여자 소지품이나 뒤져 보다니....... 저런 사람하고 이 세월을 살아왔으니 내가 얼마나 피곤 했겠어!

 

민호: 전에 내가 그런 적 있었어? 요 몇 년 싸돌아 다니는 행실에 문제가 있으니 그러는 거지!아무튼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보건데 문제가 많다구. 가정 주부로서 저럴 수가 있을까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구. 지난 번 희순이 집에서 잔다고 전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야. 분명히 그 집에서 잔다고 전화해 놓고 다른 곳으로 새 버렸잖아? 오죽하면 당신 친구가 내게 그걸 알려 줬겠어? 나한테 전화한 다음 어딘가에다 전화하더니 밤 11시 넘어서 친구 집에서 나가 버렸다면서? 다음 날 당신이 그렇게 존경하는  오빠인지, 애인인지 하는 사람과 점심 먹자고 희순이 한테 전화 했다며? 오죽 했으면 그런 말을 내 친구도 아닌 당신 친구가 해줬겠어?


                   장면IV


    (장면 II와 같다. 회상에 잠겨 있는 민호 쪽으로 두 사람이 다가간다. 밤 날씨는 차갑고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병원 밖 벤취에 앉아 있던 민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고 손에는 재를 털지 않은 담배를 들고 있다. 담배 불이 꺼진 지 한참 지난 것으로 보인다.)

 

민호: (혼잣말로) 그렇게 집을 떠나다니.... 남은 식구들은 어떻게 살라고.... 집을 나간지 오늘로 꼭 1개월이 되었으니.... 

 

경찰1: (깡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 빛의 40대의 사고 처리반 경찰이다.) 실례 합니다. 박민호씨 인가요?

 

민호: (겁 먹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벤취에서 일어 선다.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버리고 그들 앞에 힘없이 선다.) 그렇습니다만...

 

경찰1: 아까 교통 사고 신고를 하신 분 맞지요? (동료 경찰을 가리키며) 우리는 경찰인데 신고 받고 왔습니다.

 

민호: ...........

 

경찰2:(정복을 한 두툼한 몸집의 30대 중반의 사나이이다.) 지금 다친 학생을 살펴 보고 오는 중이요. 뇌를 다친 모양인데...

 

경찰1: 당신 혼자 타고 있었소?

 

민호: 한 사람 더 탔는데요.

 

경찰1: 그사람은 어디 갔소?

 

민호: 얼굴을 다쳐 근처 병원에 치료 받으러 갔는데요.

 

경찰2: 당신 보험은 들어 있소?

 

민호: 종합 보험에 들어 있는데요.

 

경찰2: 그럼 치료비 걱정은 않해도 되겠구먼... 우리가 사고 현장에 들렸다 오는 길이요. 당신이 잘못 했더구먼..... 사고 난 곳의 교차로는 신호등이 없다는 걸 아시죠?

 

경찰1:(경찰2에게) 여기서 그런 이야기 할 필요가 있어? 좀 있다가 경찰서에서 조사하면 될거 아냐?

 

경찰2: 그곳은 비보호 좌회전 구역이란 말이요. 직진 차량이 우선이란 말이요. 정면에서 오는 모든 장애물이 다 지나간 다음에 당신은 좌회전을 할 수가 있단 말이요.

 

민호: 오토바이에 탄 사람들이 과속을 했는데요. 그리고 라이트도 켜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이 말하던데요.

 

경찰1: 그건 문제가 안된다는 걸 모르세요? 그건 다친 학생의 의식이 깨어난 다음에 우리가 조사해서 처리하면 되는 것이요. 당신 사고 처리와는 아무관계가 없어요.

 

민호: 같이 오토바이를 탄 여학생 말로는 사고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던데요. 음주 운전을 했다는 겁니다.다친 학생의 알콜 측정을 해 주세요.

 

경찰2: 저렇게 위급한 환자의 음주 측정을 하란 말이요? 당신 이제보니 형편 없는 사람이구먼?  사람 살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순간에 뭘 잘했다고 음주 운전 타령이야? 당신 저 학생 죽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기나 해? 철창 신세라구! 쟤 안 죽기만을 빌라구!

 

민호: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제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경찰1: 지금 경찰서로 가실까요?

 

경찰2: 같이 차를 탄 사람은 언제 오는 거요?

 

민호: 잘 모르겠는데요.

 

경찰2:그 사람 치료 받고 오면 같이 경찰서로 오시오. 그런데 피해자들 가족에게 연락 했소?

 

민호;(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1: 그럼 그렇게 하시오. 그 사람 오면 같이 경찰서로 오시오.꼭 와야 됩니다.(경찰2에게) 어이! 우린 가세.(경찰 두사람이 퇴장한다.)

 

민호:(몹시 초조한 표정이다.)(혼잣 말로) 집에다 전화를 해줘야 겠는 걸. 재수하는 아들 놈이 집에 도착할 시간인데... 오늘 집에 돌아 갈 수가 없을텐데...(공중 전화기 쪽으로 향한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응 아빠다. 학원에 잘 갔다왔니? 대학 입시가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공부해야지. 공부가 잘 안된다구? 엄마는 언제 돌아 오느냐구? 넌 입시 준비나 철저히 하라니깐.하여튼 집에 별 일이 없으면 다행이다. 아빤 오늘 집에 못들어 갈 것 같다.무슨 일이 있느냐구?걱정할 일은 아니다. 운전하다가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별 일은 없을 것 같다. 저녁은 먹었지? 제 때에 식사는 꼭 해야 한다. 그래. 걱정마라. 그럼 이만 끊는다. 다시 전화할께.잘자라.(그 자리에서 잠시 안절부절하다가 다시 수화기를 든다.) 114죠? 00해상 보험 전화가 몇 번이죠?(양복 상의에서 종이와 볼펜을 끄집어 내어 메모할 준비를 한다.자동 응답기에서 불러주는 번호를 받아 적는다. 동전을 빼내어 다시 집어 넣고 불러준 전화 번호를 돌린다. 그의 손은 몹시 떨리고 있다.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초조하게 계속 전화의 다이얼을 돌려 대지만 통화가 안되는 모양이다. 그는 완전히 지쳐 초췌한 모습이다. 전화기의 동전 돈을 빼내어 들고 안절부절 전화기 앞을 서성 거린다.그는 애써 다친 사람 쪽을 외면하고 있다. 다시 응급실 문밖에 나와서 담배를 태워 물고 서 있다.또 다른  응급 환자가 들어 닥친다. 환자 가족들이 뒤따라 들어 서는 광경에 민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다.) 제발 이 자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이 모든 것이 차라리 꿈이라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내게 일어 날 수 있단 말인가.....
    (응급실 안 쪽에서 몇 사람의 남녀가 나오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민호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의 곁으로 온다.)

 

경철:당신이 자동차 사고를 낸 사람이요?

 

민호:...?

 

경철:당신이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냔 말이요!

 

여학생의 오빠: 간호사가 이 사람이라고 했지 않아요!

 

경철:야 이놈아! 내 아들 어떻게 할 것이야?(민호에게 달려 들어 그의 멱살을

잡는다. 민호는 힘 없이 끌려 다니다가 땅바닥에 쓸어진다.민호는 몹시 지쳐 있다.)

 

민호: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절규한다.) 어머니!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제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이까! 전생에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여보 마누라! 내가 무슨 잘못을 져질렀기에  당신에게 버림 받고 교통 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한단 말이요!아버님! 어머님! 하느님! 마누라!(소리가 점점 희미해 진다.)

 

경철:

 

여학생의 오빠:               (모두) 저 사람 정신 이상자 아냐?

같이 온 그외의 피해자 가족들:
                                    (조명이 어두워 진다.)


                                     


                            장면V

 

  (중환자실 입구에 민호와 형식이 서성이고 있다. 칠판에 쓰인 입원 환자의 이름 중에 김 찬호를 찾고 있다.)

민호: 지난 번 분명히 이곳 우리가 왔었잖아? 어젯밤 전화에서도 병실을 옮겼다는 말은 없었다구....헌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이 없어....

 

형식: 진정 하세요. 내가 좀 더 찾아 볼테니. (병원 칠판을 쳐다보며)김찬호, 김찬호, 김찬호....(칠판에 이름을 찾을 수가 없자 형식의 표정이 긴장되기 시작하고 굳어 진다.) 민호 형! 잠시 의자에 앉으시죠.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간호원에게 뭐가 어떻게 된 건 지 알아 보고 올께요.

 

민호: (얼굴이 창백해진다. 더 이상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휘청 거리자 형식이 그를 의자에 앉힌다.) 틀림없이 불상사가 생긴거야. 죽어서 이 병원을 나간거라구.

 

형식: 속단은 금물이라구요. 어떻게 된건지 알아 보지도 않구서 최악의 상황만,, 불길한 결과만, 머릿 속으로 그리면 안된다구요. 잠간만 마음을 진정하시라구요.

 

민호: 틀림없어! 죽어서 나간거라구. 어젯밤 새벽 3시 경에 찬호 아버지가 집으로 전화를 했더라구.(찬호 아버지의 목소리로) " 야 이 놈아! 넌 잠이 오느냐? 남의 자식을 식물 인간을 만들어 놓고서 너는 잠도 잘 자는구나. 나는 이놈아 죽어가는 아들을 쳐다 보면서, 마음 조리며 애타고 있는데. 너 이놈 역지사지란 말을 알아. 네 아들이 이렇게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봐. 내 아들이 만약 죽기라도 하면 넌 어떻게 되는 줄 알기나 해? 넌 그날로 철창 신세가 되는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네 놈이 고통 받는 걸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테니깐" 하더라구. 마치 귀신이 흐느끼며 말하는 것 같더라구. 밤새 내내 잠 한 숨을 못 잤다네.

 

형식: 화가 나니깐 그랬겠죠. 사람이 화가 나면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너무 신경 쓸 것 없어요.

 

민호: 아마 찬호가 죽은 다음에 나한테 전화한 모양이야.

 

형식: 죽었으면 그렇게 전화했겠어요? 아들이 죽었다고 이야기했겠죠.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면  오늘 아침에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왔을 거구요.

 

민호;( 그말에 약간은 진정된 듯) 그럼 어떻게 된 걸까? 지난 번 우리가 여기 왔을 때  찬호가 분명히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잖아? 어젯 밤 전화에서도 중환자실이라고 했는데.....그런데 얘가 어데로 간 거야?

 

형식: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뭔가 사연이 있을 거예요. 내가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 보고 올테니  여기 가만 계셰요. 아시겠어요?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걸어 간다.)

 

민호: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는 다시 혼자 있게 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벤취에서 일어서서 서성 거린다. 중얼거리듯이 혼잣말로)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자식이 죽었는데 연락을 않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고 있는 지도 모르겠고...지금 경찰들이 내 집이나 직장으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형식: (얼굴이 밝아져 민호에게 걸어 온다.) 형! 정말 잘된 일이구려! 찬호가 오늘 아침에 의식이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나갔다는데요.걔 부모가 자기 집 가까운 병원으로 찬호를 옮겨 갔다구요.

 

민호: (벼랑 끝에서 기어오르는 표정이 되어) 오 하느님 고맙습니다. 찬호 의식이 회복 되었답니다. 애가 다시 살아 났답니다.(민호에게 밝은 목소리로) 어떤 병원으로 옮겼데?

 

형식: 자기 집이 있는 J시 예수 병원이래요.

 

민호: 몇 호실인데?

 

형식: 그건 모르겠는데요.

 

민호:(믿겨지지 않는 표정이 되어) 이 모든 게 사실이 겠지? 정말 찬호가 의식을 회복했단 말이지?간호사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형식: 그럴리가 있겠어요? 내가 분명히 확인한 사실인데. 우리가 그곳 병원으로 갑시다.

 

민호: 그곳에 갈려면 버스 터미널로 가야겠군. 거기가는 버스는 자주 있겠지? (다시 불안한 표정이 되어) 그런 사실을 왜 찬호 아버지가 내게 알려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반가운 소식인데...

 

형식: 자 갑시다.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조명이 어두워 진다.)

 

 

                   장면VI

   (낮 11시 30분경. J시에 있는 예수병원 병실 205. 민호와 형식이 병실에 들어선다. 병실 침대에 찬호가 누워있고 그 옆에서 찬호 어머니가 그를 간호하고 있다. 찬호 아버지는 병실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가 술을 마시던 흔적으로 소주병과 오징어 포, 술잔등이 놓여 있다.그걸 한쪽으로 치우며 찬호 아버지가 민호와 형식에게 다가간다. 표정은 매우 쌀쌀하고 태도 또한 거칠다.)

 

민호: (어색한 자세로) 그 동안 안녕 하셨어요?

 

경철: 그 동안 안녕하셨느냐구? 안녕했는지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슈!  안녕한 몰골이 이 모양이겠수? 당신 신수는 훤하게 보이는데 남 잠 못잘 때 당신은 잠을 퍽이나 잘도 잔 얼굴이구료!

 

형식: 서로 신경 곤두 세우지 맙시다. 의식을 되찾은 찬호를 생각합시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찬호 어머니!

 

찬호 어머니:(수심에 가득찬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천만 다행이지요. 하늘이 도운 덕분이지요.

 

경철:(아내를 나무라는 표정을 지으며) 천만 다행이라니? 이 애가 의식만 돌아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형식: 혼수 상태에서 의식 돌아온 것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가 있겠어요? 불행중 다행한 일이 아닙니까? 안 그렇소?(민호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한다.)

 

민호:(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고 말고.

 

경철:(민호를 향해) 당신에게 궁금한 것이 많으니 이리 앉으시오!(민호의 옷 소매를 잡아당겨 앉힌다.민호가 방바닥에 주져 앉는다.) 당신 운전 경력이 몇 년이나 되었어?


민호: 3년째 되는데요.

 

경철:  거짓말하고 있어! 3년 좋아하시네! 당신 초보 운전자라는 걸 내 모를 줄 알구? 보험든지 몇 달 안 됬던데?

 

민호: .........?

 

경철:운전을 시작한지가 얼마 안 됐으니 보험료 지불도 엊그제 한 거 아냐?

 

민호: 보험료 2차분 낸 것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그 돈 들어가는 것과 운전 경력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구요.

 

형식: (두 사람의 말을 가로 막으며) 찬호 의식이 회복 됐는데 이 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이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들 합시다.(일어 서서 찬호의 병상으로 걸어 간다.민호도 일어서자 경철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 선다. 모두 찬호의 병상 곁에 서있다.) (경철을 향해) 언제 어떻게 찬호의 의식이 회복된 겁니까?

 

경철: 오늘 아침이었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아들을 참담한 심정으로 쳐다보며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는 내 심정 당신들이 어찌 알겠소. 하두 기가막히고 답답하여 아들 놈을 마구 흔들어 댔다우." 이놈아 제발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이 애비에게 뭐라고 말 좀 하거라. 이대로 있다간 영영 너는 식물 인간이 되고 만다. 제발 이 애비 소원이니 뭐라고 한마디만이라도 하거라."라며 계속 몸을 흔들어 대는데 갑자기 찬호가 꿈틀 거리드라구요. 그리고 눈을 뜨고 두리번 거리더니 내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한참 날 응시합디다. 나를 알아 보더라구요. 헌        데 말을 못하는 거 있죠? 날 처다 보면서 말을 못할 때 쟤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찬호를 향해) 그렇지? 찬호야!(찬호는 말없이 자신의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을 처다보고 있다.)

 

형식: 그러면 지금가지 말은 한 마디도 못했나요?

 

경철 아내:본인은 아무 말을 못하면서도 나나 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이예요. 쟤 어버지가 말은 못해도 글로 쓸 수는 있겠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구요. 막상 종이와 볼펜을 가져다주니깐 손에 힘이 없어서인지 글을 못 쓰고 말던데요.

 

경철:아들 놈에게 빨리 힘을 되찾아 그 동안에 있었던 경위를 전부 글로 쓰라고 했소. 말을 못하고 있는 저 애는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 하겠소? (민호를 향해) 쟤가 글로 모든 걸 쓰게 되면  당신의 잘못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될 거요! 그 동안 당신이 잘했다고 경찰서에서 주장한 모든 게 얼마나 거짓이었는지 밝혀질 거란 말이요! 

 

민호: 내가 뭘 거짓말을 했다는거요? 그리고 당신이 경찰서에 가서 내가  조서받은 걸 한 번 읽어 보시오. 당신 아들에게 불리한 말은 한 마디도 안했소. 음주 운전을 했다든지 무면허 운전을 했든지 등등....

 

경철: 이 자식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내 아들이 음주 운전한 걸 당신이 봤어?

 

형식:(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으며) 제발 진정들을 하세요! 병실에서 이게 무슨 창피한 일입니까?

 

경철: 이 자식이 계속 잘했다고 하니깐 그렇지.

 

민호: 내가 잘한 것도 없지만 당신 아들도 특별히 잘한 것이 없단 말이요!

 

경철: 야 이놈아 병문안을 온거야 남 약을 올리려고 온거야?

 

형식: 제발 부탁이니 이제 그만들 싸우구려. 서로 말 안해도 다 아는 사실들 아니요. 이미 경찰서에서 다 조사를 받은바 있고 그리고 누가 얼마나 잘못했는 지를 경찰이 알고 있지않소!

 

경철: 이 자식이 약을 올리니깐 그렇지.

 

민호: 내가 언제 당신 약을 올렸단 말이요. 아무튼 난 당신 아들에게 불리한 말은 경찰서에서 한 마디도 않했으니 그렇게 아시오.

 

형식: 그건 사실이요. 나도 경찰서에 같이 있었는데... 찬호가 치료 받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해주는 게 우리의 도리라고 민호 형이 말하더라구요. 그 말을 민호 형은 그대로 지키더라구요. 찬호쪽에서 보험이 들어 있지 않으니 이쪽에서 최선을 다해줘야한다고 나도 민호 형에게 말했구요. 불리하게 사건을 몰고가 찬호 측에서 보험금 지급을 받는데 어려움을 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우리끼리 했다구요.

 

경철:  경찰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 당신들이 성의를 보여야 할 차례인데. 그 성의란 도대체 뭐요?

 

민호와 형식:.........?

 

경철: 보험 회사의 보상은 그렇다치고 사고낸 당신이 내 아들에게 뭘 어떻게 해주어서 보상을 할 것인지를 말해보란 말이요!

 

형식: 따로 무슨 보상을 하란 말이요?

 

경철: 그럼 전혀 그런 생각을 안해 봤단 말이요?

 

민호: 도의적으로는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

 

경철 아내;(분통을 터뜨린다.) 야 이놈들아. 찬호 똥 오줌을 받아내는 이 기저귀를 좀 봐라 (병상 이불밑에서 기저귀를 끄집어 두 사람 얼굴 앞에 들이댄다.)너희들이 인간이란 말이냐? 하루 아침에 이 무슨 청천 날 벼락이란 말이냐? 너희들은 자식도 키우지 않는단 말이냐? (민호의 얼굴에 결국 찬호에게 채웠던 기저귀를 던져 버린다.그리고 그녀는 울부 짖는다.)

 

경철:(민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형식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으며) 그래도 찬호 의식이 회복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 아니오. 이 기쁜 날 도대체 왜들 이런 소란을 피우시오?


                                                (조명이 어두워진다.)

 

 

 

                     2막 현실

 

                   장면I

    ( 1막 장면III과 같은 장소인 민호 아파트의 거실. 민호와 민호 아내가 소파에 마주 앉아 있다. 아침 8시경. 집안에는 단 둘이만 있다.아침 식사 후인 것으로 보이며 민호 앞에 탁자에는 커피잔이 놓여 있다.민호는 아직도 잠 옷을 입고 있으며 어젯 밤 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부석 부석하다. 탁자 위에는 놓여 있는 일간지를 민호가 훑어 본다. 신문의 제목만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민호 아내: 어젯 밤 당신 무슨 악몽을 꿨수?

 

민호:(신문에서 얼굴을 떼지않고) 왜? 그런 걸 물어?

 

민호 아내: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당신이 헛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구요. 깨어나서 보니 당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던데요? 식사를 제때 하시라구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신경을 써야한다구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며칠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사람이 쓰러졌데요. 과로 때문이랍디다.

 

민호: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지.....(그러나 대답은 건성이다.)

 

민호 아내:요근래 직장에 무슨이라두 있수?

 

민호: 일을 무슨 일.(신문에서 눈을 떼 아내를 쳐다보며) 둘째 준이는 학원에 잘 다니고 있지? 아들 놈이라고 해야 아침에 얼굴 잠깐 보는게 고작이니...학원 생활은 어떻답디까?

 

민호 아내: 준이야 원래 낙천적이지 않수? 집에 늦게 와서도 밥은 꼭꼭 챙겨 먹는 놈이고. 밥 먹으면서도 노래를 흥얼 거리고. 겉으로 봐 가지곤 전혀 재수하는 놈 같지가 않다구요. 속이 깊어서 그러는지 속이 없어서 그러는지....

 

민호: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식놈 건강에 각별히 신경 좀 쓰라구. 그리고 큰 놈 현이 한테 편지 안 왔어? 훈련은 잘 받고 있는지. 워낙 고생을 안해 보고 큰 놈이라서.

 

민호 아내: 남들 다가는 군대에 가서 젊은 애들 누구나 받는 훈련인데 걔라고 못 받을 리가 있겠어요? 당신은 애들을 너무 옹옹하니깐 문제라구요. 남의 집은 애들이 아버지를 보면 벌벌 떤다는 데 우리 집은 어쩌다가 거꾸로 되어 가지고 악역은 내가 다 도맡아서 하니... 애들 한테 듣기 싫은 소리는 내가 다하고.....

 

민호: 지금 애들이 부모가 뭐라고 한다고 듣나? 훈련 중에 감기들었다고 하던데...

 

민호 아내: 별 걱정을 다하고 있수. 사내 놈이 그까짓 감기 좀 걸리면 어때요.

 

민호: 애들이 다 커 버리니 집안이 참으로 조용하군. 곁에서 떠들던 때가 어제 같은데..아무튼 준이란 놈 시험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집안에 일찍 들어 와서 간식도 만들어 주라구. 애 신경 건드리지 않도록 하라구.

 

민호 아내: 얼른 직장에 나갈 준비나 서두르슈. 내가 언제 밤 늦게까지 돌아 다닙디까? 당신은 시간이 좀 남으면 한 이야기 또하고 또하는 사람이란 걸 모르슈? 나이 들어가면서 부쩍 더 잔소리가 심해져 간다구요. 늙어서 잔소리께나 해댈 당신하구 살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걱정이 태산이라우.

 

민호:요즘 당신 귀가 시간이 자꾸만 늦어져 간다구. 전과 달라져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민호 아내: 집에만 박혀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있는 줄 아슈? 그리고 나도 애들 다 키웠으니 숨 좀 쉬고 삽시다.

 

민호:요즘 당신 만나고 다니는 친구들 하나같이 못 마땅하다구. 부동산 중개하는 여자가 없나... 지나 다니면서 보면 그곳에 남녀가 모여 화투 치고 그러던데?

 

민호 아내: 나이가 들었는데 그게 별 대수예요? 할일 없으니 여가로 시간 보내기인걸요.

 

민호: 장난내기가 커지면 도박이 되는 줄 몰라? 그리고 남자들과 앉아서 그런 짓 하는게 건전한 일이야? 요근래 여러 군데 건전하게 시간 보낼 곳들이 많잖아?

 

민호 아내: 또 그 잔소리 시작이구려. 제발 그만하고 얼른 출근 좀 하세요!

 

민호: 요즘도 오빤가 뭔가하는 사람 만나? 난 이해가 않가는데도 하두 건전한 만남이라고해서 참고 있긴 하지만.직장 동료들한테 남의 이야기인 척하고 남녀의 우정이 가능한가를 물어 더니 열에 아홉은 그런게 어디 있느냐며 웃던데.물론 순수한 우정이야 존재하겠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 일이 겠느냐면서....

 

민호 아내: (얼굴이 약간 붉어 지면서) 당신답잖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가정을 버릴 사람 같아요? 어디 내가 10대 소녀유?

 

민호: (불안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하지만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일어서서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아무튼 나이가 들수록 품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라구.품위가 손상되면 자식들 혼사에도 지장이 생긴다구.

 

민호 아내: 당신이 이상해져 간다는 걸 난 느낄 수가 있다구요. 저녁엔 무슨 악몽을 그렇게 꾸어 대는지 헛소리를 해대고 눈만 뜨면 끊임없이 잔소리나 하고....
                                              (조명이 어두워진다.)

 

 


                      장면II


  ( 저녁 10시경.민호와 형식이 호프 집에 앉아 있다. 희미한 조명에 조용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앞에는 여러 병의 맥주병과 잔이 놓여 있다. 이미 상당한 양의 맥주를 마신 것 처럼 보인다.  민호가 훨씬 더 취해 있고 그가 주로 말을 한다. 형식은 가끔씩 탁자 밑으로 자신의 시계를 훔쳐 본다.)

 

형식: 집안 일에 너무 매달리지만  말고 취미 생활도 가져 보시지 그래요? 직장생활 하나만으로도 요즘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불경기라고 해서 곳곳에 감원 바람이라 너나 없이 불안에 떨고 있잖아요? 쉰 다섯살에 옷 벗는 건 그래도 약과더라구요. 그 나이에 그만 둬도 눈 앞이 캄캄할 텐데...자식 놈들 한참 가르쳐야 할 나이에 그만 두고 나와서 사회 경험 없는 사람이 뭘 해먹고 살지 생각만 해봐도 오싹 하잖아요? 그래도 우리 정년 나이는 좀 여유가 있어서 다행 아뉴? 불경기 감원 바람만 잘 피해 나가면 말이유. 아무튼 형은 너무 지쳐 있다구요.

 

민호: 그말이 맞아. 자식들도 크면 다 소용이 없더라구. 자기 살기도 바쁘더라구. 하기사 내 경우를 봐. 부모님들이 날 얼마나 기대하셨는데....명절 때 한번씩 들리는게 고작이었는 걸. 이제 좀 여유가 있다 싶으니깐 다 돌아가셔 버리고. 나 같은 걸 자식이라고 믿었던 부모님 실망이 얼마나 컸겠어?

 

형식: 이제 형수씨하고 등산도 하시고 낚시도 다니세요.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니깐 자꾸만 그럴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이번 주 일요일 부터라도 당장 시작해 보세요.그렇게 일요일을 보내시면 평일에 기분도 상쾌하실거고 저녁엔 잠도 잘 잘 수 있을  거예요. 

 

민호: 자네 말이 맞아. 당장 이번 주 일요일부터 시작해 봐야겠어. 문제는 아내가 어데를 같이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야. 지난 번 어느 일요일 드라이브 가자니깐 나 혼자 다녀 오래 .김이 팍 새 버리더라구.

 

형식: 그러면 혼자라도 다니세요.요즘 등산을 혼자 다니는 여자들도 많다던데요. 등산 다니시다가 좋은 여자 친구 사귀게 될지 누가 알아요? (형식이 소리내서 웃는다가 민호의 심각한 표정에 어색해 한다.) 제가 시간이 있으면 가끔씩 동행을 해 드릴게요. 헌데 아까부터 말할 듯 하면서도 그만 둔 악몽이란게 도대체 어떤 겁니까? 어떤 꿈을 꾸셨기에 오늘 이렇게 술을 드시는 거예요?

 

민호:꿈이란 원래 논리성이 없잖아? 순서도 없고 허황되고 그런 거 아냐? 헌데 난 이상하게도 한편의 줄거리를 엮어낼 수 있는 꿈을 꿨다네. 꿈에서 깨어나 이 모든게 현실이 아니라는게 얼마나 다행이었는 줄 아나? 그 꿈 아니 악몽 속에는 자네도 있었어. 내가 운전을 하고 자넨 내 곁에 타고......(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이 몸서리를 친다.)

 

형식: 내가 형하고 같이 차를 탔었단 말이죠? 그리고 어데를 갔는데요?

 

민호: 어디를 가던 중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사고 지점은 터미널 근방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앞에서 질주해 오던 오토바이와 충돌을 했다는 거지.

 

형식: 그래서 형이 죽기라도 했수? 아니면 내가 병신이라도 되었수?

 

민호: 자네가 좀 다치긴했는데...

 

형식:(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멀쩡한 내가 어디를 다쳤더란 말이요?

 

민호: 이마에 자동차 앞 유리 파편이 박혔다더라구. 문제는 오도바이를 타고 오던 대학생이 다쳤는데 의식을 잃어 병원에서 식물 인간이 되어 버렸어. 결국 깨어 나긴 했지만. 자네와 내가  몇번이나 그 병원에 찾아가서 걔 부모와 언쟁을 한 줄 알기나 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기도 하구 말이야.

 

형식: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형 정말 안 되겠어. 그러다간 노이로제 걸리겠는 걸. 잠시 휴가라도 얻어서 쉬고 와야 되겠소.

 

민호: (진지한 자세로) 다친 학생의 전화 번호가 악몽에서 깨어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니깐.....062에 357국에 8545 음..... 맞아, 지금도 그 번호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니깐.

 

형식: 형! 맥주 더 하실까요? 취하신 것 같은데...(팔을 들어 시계를 들여다 본다.)

 

민호: 왜 그러나? 한잔 더 하세 그려. 모처럼 취하고 싶은 기분 이해 못 하겠어? 여보슈 주인 마담! 여기 맥주 몇병 더 가져 오슈! 

 

형식:(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다가 체념한 듯) 그럽시다. 형이 좀 취하신 것 같아서요.
  (주인 마담이 맥주 세 병을 들고 와서 잠시 이들 자리에 와서 앉는다.)

 

주인 마담:{민호에게) 김 계장님! 오늘 약주가 좀 과하신 것 같은데요. 마나님 한테 쫓겨 나시면 어쩔려고 그러세요?

 

형식: 그럼 마담이 우리 형 책임을 지면 될 거 아뉴! 요즘 우리 민호 형 생활에 변화를 찾고 싶답니다. (민호를 향해) 안 그렇수?

 

주인 마담: 왜 그러실까? 가정과 직장만 아시는 분이....

 

형식: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 밀려 오는 허전함 때문인 모양이요. 중년의 고독감이랄까 이니면 허탈감이랄까? 아무튼 우리 형 요즘 외롭답니다. 안 그렇수 형?

 

민호: 오늘 저녁은 한잔하고 싶으니 마담은 술이나 몽땅 가져오슈!

 

주인 마담: 술 파는 집에 맥주 없겠어요? 김 계장님이 과음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죠. 몇 병이나 더 가져 올까요?

 

형식: 금방 가져온 거 다 마신 후에 필요하면 말할테니 그때 가져 오세요.(주인 마담이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민호에게 술잔을 건네며) 자 한잔 받으세요!

 

민호: 지금까지 내가 헛 세상을 산 걸까?

 

형식: 무슨 말씀이세요? 형처럼 열심히 산 사람이 어딨어요?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준이가 입학 시험에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우리 나라 최고 대학 최고 학과를 지망했었잖아요? 형 만큼 행복한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있나요? 취미 생활로 지금의 단조로움만 극복하면 될 걸 가지고서.....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세요? 그런 걸 고민이라고 한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 자살하고 말겠소. 주변 사람들 한꺼풀만 벗겨 보면 고민 없는 사람 없더라구요.

 

민호: 우리 집이 옛날 같지 않다구. 아내의 눈 빛이  어딘가 먼데를 헤매고 있어. 전혀 내 얘기를  듣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구. 준이가 학원에서 돌아 올 때 맞춰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아. 집에 금방 들어 온 아들 앞에서 부부가 싸움할 수도 없고... 참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지고.그래서 악몽에 시달리나봐. 아내가 사귀는 친구들이 별로 건전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애.가정적인 여자들 답쟎은 여자들 같다니깐.여자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데... 도대체 내 말은 안중에 없으니 말이야.

 

형식: 결혼 생활에 권태기란 거 있잖아요? 지금 그럴 나이도 됐잖수?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이야  있겠어요? 하여튼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해 보시구려.

 

민호: 직장에서 돌아와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가 많아. 혼자 있으니 별에 별 생각이 다들고.... 요사인 내가 무척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구.

 

형식:(민호에게 술을 권하며) 세상에 태어날 때도 원래가 혼자이고 죽을 때 역시 혼자 아녜요.  인생 살이가 고독과 소외의 연속이 아닌가요?  형이나 나나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 아니겠수? 삶이 뭐 별 건가요? 우리가 세상에 의미를 부여 하며 사는 거지. 무등산을 한번  생각 해봐요. 내 기분 좋은 날 무등산을 올라 가 보면 이름 모를 꽃 한송이 까지도 내게 미소를 보낸 다구요. 그곳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에게 따사로운 정감이 느껴진다구요. 하지만 속상한 날에 무등산을 올라 가 보면 모든게 낯설게 보이고 그곳에 올라 온 사람이 내게 이방인으로 보인다구요. 심지어 그들이 날 비웃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구요. 세상은 원래 의미가 없는데 우리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구요. 형! 내 말 아시겠죠?요즘 형은 원래 그대로 있었던 사람이나 주변의 상황 등에 비관적인 의미를 부여 하고 있는 거예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도록 노력해 보시라구요.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형은 그렇지 않다구요. 어떤 땐 형이 답답하게 보인단 말이에요.

 

민호:(술을 마신다. 꽤 취해 있다.) 자네 제법 철학적인데.. 자네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기도 고... 하여튼 난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지만 내 가정 생활이 예전 같지 않단 말일세. 난   그걸 본능적이랄까 직감적이랄까 난 알 수가 있다구.(민호의 눈에 눈물이 글성인다.) 어떤 땐 이상한 전화가 집에 걸려 오는데 내가 받으면 말없이 끊어 지고......(혼잣말 처럼) 아내가 전화를 받을 경우엔 아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자기가 다음에 걸겠다는 둥 대충 전화를 끊어 버리기도 하고.....전화를 받다가 내가 곁에 있으면 금방 끊기도 하고.... 뭔가 허둥대는 아  내 모습에 난 한없이 초라하고 허전하단 말일세.

 

형식: 난 형과 친하게 지내니깐 이해하지만..... 이러다가 형! 병 나겠수. 삶의 의미를 집에서 못 찾겠으면 밖에서 찾도록 노력해 보라니깐요. 세상은 원래 중립인데 내가 의미를  찾으면서 살라니깐요.

 

민호: 그게 아니라니깐. 난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내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니깐. 내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는단 말일세. 난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가정도 아내도....

 

형식:원래 형이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 난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구요. 호수에 조그만 돌맹이 하나 던져진 것에 불과하다구요. 잠시 파문이 일어 났다가 곧 조용해지듯이 우리 태어난 날 주변 사람들이 잠깐 즐거워 했던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도 마찬가지 일거요. 주변 사람들이 잠시 슬퍼하다간 며칠후면 그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갈 라구요. 호수에 파문이 사라지듯 말이요. 내가 없어도 충장로에는 젊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며 걷도 있을 테고.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일테고. 그들도 우리처럼 고민하며  한숨을 쉬기도 하면서 그들도 우리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날테고........제발 형! 너무 심각하게 세상을 살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하루하루를 낙관적으로 살으시라니깐요.

 

민호: 알겠네. 헌데 오늘이 11월 20일 맞지?

 

형식: 맞아요.

 

민호: 악몽 속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 난 날이 바로 오늘 이었다구. 경찰이 조서를 받을 때 그렇게 말하면서 쓰던 기억이 내겐 지금도 생생하단 말이야.

 

형식: 솔직히 말하건데 난 형의 말을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어떤 땐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싶다가도..... 자꾸만 형이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구요.

 

민호: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린 어차피 자기인생 자기가 살아야 하니깐...아까도 말했지만 악몽을 꾸면서 들었던 전화 번호가 잊혀지지 않아. 062에 357국에 8545 그곳으로 전화 한번 해  봐야겠어.....

 

형식:(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래 살래 흔든다.) 그 악몽이 설령 마음에 걸린다해도 이미 오늘이 다 지나 가지 않았수?

 

민호:(자리에서 비틀 거리며 일어난다.) 아냐. 자꾸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그리고 그냥 한 번 전화해 보는게 어때서? 재미있을 것 같잖아?(계산대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 쪽으로 걸어간다.  형식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서 민호 뒤를 따라 간다.) 마담! 나 전화 한 통화 할게.

 

주인 마담: 그러세요. 마나님한테 늦으신다고 전화하실 거예요?

 

민호: 아니 시외 전화 할려고.

 

주인 마담: 어디 먼 나라에 전화 하실려구요? 그럼 돈이 많이 나올 텐테데요. ( 내심으로는 못 마땅해 한다.)

 

형식: ( 전화 거는 것을 만류하려 하며) 형! 취 했수? 그냥 집에 갑시다. 민호의 옷소매를 끌어 당긴다. 그러나 민호는 막무가내이다. 형식은 주인 마담에게 계산서를 달라며 술값을 지불한다. 민호는 형식이 술값을 계산하는 것도 모른 채 전화번호를 누른다.) 

 

민호: 062에 357국에 8545.... 여보세요. 밤 늦게 죄송합니다. 거기 357국에 8545죠? 실례지만 찬호 있어요? 그런 사람 안 산다구요? 그럼 함께 살고 있는 아드님은 없어요? 있다구요. 헌데 그 아드님이 군대에 곧 가나요? 뭐라구요?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구요? 학생이나요? 학생이라구요? 오토바이릉 타고 다니나요? 오토바이는 없다구요. 집안 일을 돕기 위해 가끔씩 용달차를 몰고 다닌다구요. 여자 친구는 있나요?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구요? 졸업하면 결혼할  사이라구요? 왜 자꾸 그런 걸 묻느냐구요? 지금 집에 없는 모양이지요? K시에 배달을 보냈는데 아직도 오지 않아 걱정이라구요?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구요? 예. 그냥  궁금해서 전화 걸어 봤어요.뭐라구요? 미친 놈 아니냐구요? 할 일이 되게 없는 놈이라구요?

 

형식:( 전화 수화기를 빼앗아서 끊어 버린다.) 제발 그만 두시오. 많이 취했다구요. 옛날의 형 답쟎게 이 무슨 해괴망칙한 일이유?

 

민호: 그집에 아들이 있긴 있대....학생이래...(비틀 거린다. 형식이 그를 간신히 지탱하고 술집을 나가려 한다.)

 

주인 마담: 잘 가세요. 오늘 김 계장님이 너무 취하셨는 데요.

 

형식: 밤 늦게 까지 떠들어 대서 죄송합니다. 잘 있어요.

 

민호: 나 안 취했어.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안 취한다니깐. 마담! 내가 취한 것 같아? (비틀 거리며 형식에게 의지하며 술집을 나간다.)
                                         (조명이 어두워 진다.)

 


                   
                   장면III

   ( 늦은 저녁. 차도 옆 인도. 제법 쌀쌀한 날씨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그러나 그들은 가랑비 내리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듯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민호를 형식이 부축하며 걷고 있다. 그들은 잠시 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형식: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삶이란 게 그렇게 익사이팅한 것은 아니랍니다. 단조로움의 연속이라구요.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 안 읽어 보셨수? 끊임없이 바위 돌을 산 정상에 올려 놓으면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고. 시지프스가 하는 고달프고 단조로운 일의 반복이 우리 삶이 아니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순 없지 않소. 한번 태어난 목숨 열심히 살아야 한다구요. 내 삶을 누가 대신 살아 주겠수? 자기 책임하에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 가야한다구요. 내  말 아시겠어요?

 

민호: 알았어.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고되도 열심히 살란 말이지? 긍정적으로 말이지? 하지만 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열심히 살고 있어. 단지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 뿐이지 난 변하지 않았다구.( 민호는 계속 비틀거린다.) 헌데 오늘이 11월 20일 맞지? 오늘 내게 아무 일이 일어 나지 않았지? 맞지?

 

형식: 무슨 일이 일어 나면 쓰겠어요?  또 그 악몽인가 뭔가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제발 그런 망상에서 벗어 나세요. 형! 내일 부턴 옛날의 그 밝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죠?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이야기하세요. 고통을 함께 나누면 그 아픔은 절반이라 했쟎수?

 

민호: 오늘 정말 고마웠어. 너무 시간이 늦었네. 이제 가세.( 둘이서 비틀거리며 걷는다.) 내가 오늘 차를 안 가져 오길 잘했어. 불길한 날에는 더 더욱 그렇지. 마음이 불안하니깐.... 나  길 건너 가서 차를 탈테니깐. 그럼 잘 가게 안녕! (갑자기 차도로 뛰어 간다.)

 

형식: (깜짝 놀래며) 형! 거긴 횡단 보도가 아냐! 잠깐!
 

   (순간 길을 달려 오던 용달차에 형식이 부딛혀 나가 떨어진다. 차가 급하게 멈춰 선다. 형식이 길 옆에 쓰러져 있고 차에 타고 있던 운전사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를 향해 달려 온다.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차에 탔던 여자도 차에서 내려 그를 따라 달려 온다. 형식 역시 뛰어 온다.)

 

운전자: 여보시오. 괜찮소? 어디 다친데는 없소?

 

민호:(길 옆에 누워 의식이 없다.)........

 

형식: 형! 형! 대답 해보슈! 형!형!(한참 민호의 몸을 흐늘어 깨우려 한다.)

 

운전자:(여자에게 길 안 쪽 공중 전허를 가리키며) 빨리 집으로 전화 좀 해. 사고가 나서 집에 오늘 못 들어 갈지 모른다고. 가계에는 아무도 없을테니 안 집으로 전화해!

 

여자: 오빠! 안 집 전화가 몇 번이지? 357국에.....

 

운전자:여긴 지역이 다르니깐 지역 번호를 눌러야 되. 062하고 357에 8545 알겠지?
  (여자가 전화를 걸려고 뛰어간다. 그순간 민호가 눈을 번쩍 뜬다.)

 

형식: 형! 깨어 났수? 정말 다행이유. 어디가 아프세요? 어디를 다친 것 같소?

 

민호:(형식을 멍하니 쳐다보며) 이게 꿈이겠지? 내가 지금 악몽을 또 꾸고 있는게지?

 

운전자:(형식에게) 당신과 아는 사람이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길 가운데로 뛰어드는 사람이 어딨어요?

 

민호:(신음 소리를 내며 왼쪽 다리를 만진다.) 여기가 아파!(형식이 그의 다리를 만지자) 아이쿠 아파!

 

형식: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요. 그리고 다른데 아프지는 않소? 다른 부위를 만져 보나 민호는 다리만을 만지며 신음한다.) 다른데는 이상이 없는 모양이요.(운전자에게) 여보쇼! 빠리 택시 한대 잡으시오!

 

민호: 내가 다치고 만게 천만 다행이지. 가해자가 받는 고통을 생각만 해도 지겹다구.

 

형식과 운전자:...?

 

민호:형식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살라고 했지? 히히히....오른 쪽 다리는 안 부러졌어. 얼마나 다행이야? 응 형식이, 안 그런가?

 

운전자:(형식에게) 이 사람 과연 제 정신 맞는 거요?

 

민호: 난 그대로 가만 있는데 세상이 변하고 있다니깐.세상이 빙빙 돌고 있다니깐....히히히.....
                                      (조명이 어두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