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 마르코(마지막회)
유진 오니일 작/실개천 번역
사가: 우리는 인생의 짧음을 통탄한다. 인생의 가장 긴 삶 역시 찰라이다.
즐거움의 지혜에 비해 너무 짧고, 슬픔을 알기에는 너무 길다.
슬픔은 때 맞지 않게 젊은이에게 죽음이 왔을 때 절망이 된다.
오, 공주님의 아름다움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공주님의 젊음이 다시 새로워 질 수 있다면.
우리의 공주님은 봄처럼 젊고, 새나 꽃만큼 아름다우셨도다.
봄이 겨울의 습격을 받고, 새들이 풍만한 노래속에 죽고,
피어 오르는 꽃이 말라 죽을 때는 잔인하여라!
우리 공주님께서는 노래 중의 노래였으며 향기 중의 향기,
완벽한 분이셨는데, 그분께서 돌아가시다니 슬프도다!
우리의 흐느낌이 숨막히게 하고, 눈물이 땅을 적시고,
우리의 애통함이 서풍을 슬프게 하는구나.
(복종하듯이 머리를 숙인다- 말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지자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인다.
코러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사가: 죽음 앞에 모든 신들은 무력하다.
코러스: 모든 신은 무력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침묵으로 사라진다.)
쿠부라이: (사이 이후- 지친 듯) 공주를 평화롭게 그냥 두어라. 가거라. (궁궐 사람들은 그의 공식적이고 표정 없는 명령에 말없이 떠난다. 네 성직자들이 다시 말없이 기도를 하며 떠난다. 그들을 따라서 귀족들과 신하들이 나가고 그들 뒤에 여인네들이 나간다. 끝으로 어린 소년 소녀들이 향로를 쳐들고 뒤쪽을 향해 춤을 추며 악사들의 뒤를 따라 나간다. 코러스만이 남아서 영구차 뒤에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지 않은 채 무리지어 있고 추인은 쿠부라이의 왼편에 머물러 있다. 쿠부라이가 비통한 아이러니의 한숨을 쉬며 죽은 공주로부터 눈을 돌린다.)
쿠부라이: 오, 짐의 현인 친구, 추인, 짐이 그들에게 지혜를 가르쳤다는 기도였는가?
추인: 그것은 자부심의 지혜였습니다. 그것은 폐하의 지혜였습니다.
코러스: (슬픈 매아리로) 폐하의 지혜였습니다.
쿠부라이: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는가?
추인: 그것은 권력의 지혜였습니다. 그것은 폐하의 진리였습니다.
코러스: (앞에서 처럼) 폐하의 진리였습니다.
쿠부라이: 짐의 자부심, 짐의 권력이었다고? 짐의 지혜, 짐이 진리? 짐에게는 오직 남아 있을 뿐이다- 공주의 진리가! (그리고나서 잠시 쿠카친을 바라본 다음에- 비통하게) 그녀의 진리! 공주는 바보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었다!
추인: 아닙니다. 공주는 사랑을 했습니다. 그분은 아름다움 때문에 돌아 가셨습니다.
쿠부라이: 그대의 말은 머리속이 텅빈 매아리로다. 지혜로 내 마음을 바꾸려 하지 말라. 짐의 가슴에게 말하라! (슬프게- 그의 눈이 다시 쿠카친을 향하며) 공주의 귀여운 발이 추는 춤으로 군대의 진압을 막았다. 그녀의 미소가 짐으로 하여금 세상의 얼굴에 혹독한 미소를 잊게 해주었다. 그녀의 거울 같은 눈안에서 짐 자신이 그녀의 애정에 의한 삶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매일 기쁜 나날로 약간은 만족하며 죽어가는 순진한 노인네로 말이다.
추인: (머리를 숙이며- 연민을 느끼듯) 그렇다면 우십시오, 노인장. 겸손하게 폐하의 손녀를 위하여 우십시오. 노인은 슬픔을 소중히 간직하셔야 합니다. (그가 다시 절을 하고 조용히 나간다.)
쿠부라이: (사이 이후 일어서서 왕좌로부터 내려와 천천히 영구차로 다가가 부드럽게 죽은 공주에게 말을 한다- 떨리는 미소로_ 네가 네 눈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쿠카친. 너는 다시 소녀로구나. 너는 술래 잡기를 하고 있구나. 넌 모른척 하는구나. 우리가 한 때는 함께 그런 놀이를 하지 않았더냐, 너와 내가? 너는 얼굴을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차갑게 하고 있구나. 넌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입술을 다물고 있구나- 네가 죽었다는 것까지 감추고 있구나! (그가 이제는 그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더욱 더 강렬하게) 그만 놀자꾸나! 시간이 늦었다. 네가 잠들 시간이다. 눈을 뜨고 웃어라! 놀이가 끝났으니 웃거라. 너의 희미한 눈으로부터 눈가리개를 치워라. 내 귀에 네 비밀을 속삭이거라. 짐이- 짐이 죽고 네가 살거라! 나를 위해 울어다오, 쿠카친! 죽은 자를 위하여 울어다오! (그가 애원하듯 그녀를 향해 팔을 뻗는다- 사이, 시체 옆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 보며, 그리고나서 잠시 후에 그가 그녀의 얼굴로 손을 건넨다- 전률하듯- 아름답고 부드러운 슬픔으로) 그래서, 귀여운 쿠카친- 그래서, 귀여운 꽃- 너는 돌아 왔구나- 그들이 너를 보호해 줄 수가 없었더냐- 너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렸던 모양이구나- 넌 돌아 오고 싶었구나- 짐의 마지막 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슬픔을 억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허리를 굽혀 손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순진한 노인네처럼 흐느껴 운다- 상심한 장난스러움으로) 짐은 네가 집에 돌아 온 것을 환영한다, 귀여운 꽃! 네가 집에 돌아 온 것을 환영한다! (그녀의 말없이 창백한 얼굴에 눈물을 떨구며 그가 흐느껴 운다.)
(막이 내린다.)
종막
극이 끝났다. 극장안에 조명이 밝아진다. 첫번째 줄 통로쪽 의자에 앉아 있던 한 사나이가 일어서며, 손으로 하품을 가리며, 그가 다리를 너무 오랜 밤 꾸부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리를 쭉 펴고 서며, 의자로부터 모자를 집어 들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천천히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이 평범함에서 벗어난 어떤 일도 없지만, 그의 외모는 13세기 후반 베니스 상인의 차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말과 놀라움을 유발 시킨다. 사실상,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마르코 자신이었는데 그는 약간 졸음이 온 듯 보이며, 자신도 모르게 이제 금방 끝난 극에 대한 지난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당황한 듯하고 화가 꽤 난 듯 보인다. 자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의식이 없이 그들 중의 한 사람과 아주 흡사한 사람으로서 군중 속에 섞여 걸어간다. 로비에 도착해서 그의 얼굴은 무대 위에서 일어났던 것에 대한 혼란스런 추억을 털어 버리기 시작한다. 소음, 거리의 불빛들이 자신이 즉시 혼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참을성 없이 그는 자기 주변에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두리번 거리는데 그의 눈은 비인격적인 투기성을 지니고 있으며, 태도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신하는 사람의 위엄으로 굳어진 채 그는 자신의 차를 기다리고 있다. 고급 리무진인 그의 차가 모퉁이에 다가온다. 그가 재빨리 차를 타고 문이 닫혀지며 자동차가 모퉁이를 돌아 자동차 행렬 속으로 들어가자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편안하고 만족스런 한숨을 쉬며 마르코 폴로는 활력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