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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ynge의 <바다로 떠난 사람들>에 나타난 고통(suffering)의 문제

김영관 2007. 7. 16. 17:00


                                실개천 (연극 평론)

 

   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미링턴 싱(Jhon Millington Synge1871-1909)의 자연주의적 경향의 극작품, <바다로 간 사람들>(Riders to the Sea)은 1903년에 출간되고 1904년에 더블린 몰스워즈 홀에서 첫 공연된 바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은 싱은 피아노 연주에 관심이 있었으나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몇몇 극작품을 써 봤으나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버나드 쇼를 만나게 되었는데 쇼는 그에게 아일랜드 전통 민담에 바탕을 둔 작품을 써 볼 것을 권했다. 그의 권유를 받아 드린 싱은 주로 아일랜드 민담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썼는데 거의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다로 간 사람들> 외에도 <서쪽 나라의 장난 꾸러기> <성자의 샘물> <땜장이의 결혼>등이 있다.

  <바다로 간  사람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일한 무대 위에서 아들 다섯을 바다에 잃은 노파 모리야, 마지막 남은 아들 바트리, 그녀의 딸 자매인, 캐서린과 노라 네 사람이 등장하는 비교적 짧은 극이다.

  막이 오르면 어머니 모리어 몰래 두 딸들인 캐서린과 노라는 지금 보따리를 열어 봐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 바다에 나간지 일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실종으로 간주되고 있는 마이클 오빠의 유품인지를 확인하려는데, 비통해 하는 모리어 몰래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온 셔츠와 양말이 마이클 유품인지를 확인해 보라고 건네 준 것인데 만일 그게 아니라면 다른 실종된 어부의 집에 확인해 보도록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모리어가 나타나자 노라는 얼른 그 옷 보따리를 석탄 창고에 감추어 두고 석탄을 꺼내는 척 한다.
   노파가 마이클 실종으로 비탄에 빠져 있는 순간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바트리는 집에 남은 마지막 재산인 암말과 그 새끼 망아지를 팔러 육지로 나가려 한다. 몰려오는 폭풍우에 집안 식구들은 모두가 바트리의 출항을 만류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이다.
  무대 위에는 죽은 자에게 사용할 관을 만들기 위한 널빤지가 유난히 눈에 띄고 못에는 마이클이 입던 셔츠, 마당에는 탁자 등이 보인다.
  싱은 섬사람들의 애환을 여과 없이 그려보기 위해서 아란이라는 섬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민담, 사투리, 기독교 신앙과 샤머니즘까지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전통적으로 섬사람들에게는 죽은 자의 망령은 황천에 혼자 가기를 꺼려하여 평소 가까이 지내려는 사람과 동행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그이 유품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망령이 따라 다니며 재앙을 부린다는 이교적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산업 혁명으로 기계화된 아일랜드 본토 사람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낙후된 섬사람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 속에서도 말을 팔러 육지에 배를 타고 나가야 할만큼 절박한 이 모리어의 가족들의 가난한 실상이 무대 곳곳에 드러나 보인다.
  불행한 징조로 자신의 낡은 셔츠 대신 형 마이클 옷을 입고 바트리가 암말은 몸소 타고 그 뒤에 망아지를 끌고 집을 나선다. 집을 떠나는 자에게 집에 남은 사람들은 잘 다녀오라고 말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아들이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축복의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리어는 그가 가는 것도 쳐다보지 않는다.
  집에 남은 두 누나들은 동생에게 주려고 굽던 빵을 전해 주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어머니 모리어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지름길로 빨리 내려가 바트리를 만나라고 한다, 도시락을 전해 주면서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도 반드시 해줄 것을 다짐받는다.
  모리어는 도시락을 받아 들고 비틀거리며 걸어 내려 가려하자, 딸들이 마이클의 지팡이를 모리어에게 건네준다. 이것 또한 불행한 징조이다. 왜냐하면 지팡이 역시 죽은 자인 마이클이 사용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없는 사이 두 딸은 감추어 두었던 보따리를 다시 풀어 오빠의 유품인지를 확인해 본다. 처음에는 구별하기 힘들어하던 자매 중 동생 노라는 오빠의 양말의 땀을 세어 본 후 그게 자기가 오빠를 위해 짜준 양말임을 확인한다. 60땀으로 짜다가 양말 목 부분에서 네 땀을 뺀 56 땀으로 짜 주었기 때문이다. 실종 이후부터 마이클이 죽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들이 이를 확인하고 나서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 할 것이지 안타까워 하다가 동생 바트리가 육지에 나갔다가 돌아 온 후에 이 사실을 모리어와 바트리에게 알리자고 이야기한다.
  이때 모리어가 도시락을 든 채 다시 무대에 힘없이 등장한다. 딸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모리어는 가장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고 질겁하며 말한다. 바트리가 타고 간 암말 뒤에  망아지가 따라 가는데 그 위에 마이클이 새 옷을 입고 멋진 신발을 신고 있더라는 것이다. 죽은 자의 망령이 바트리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인데 이는 아일랜드 섬사람들의 미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바트리에게 불행한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 랄 수가 있다. 왜 도시락을 그대로 가져 왔느냐는 딸들의 질문에 모리어는 그걸 전해 주려는 순간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죽은 마이클의 지팡이 때문에 모리어는 아들 바트리에게 도시락을 전해 주며 잘 다녀 오라는 축복의 말을 해 주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망아지 뒤에 타고 있던 존재가 허상임을 모리어에게 증명 해주려던 노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이클이 죽었음이 확실하고 그 증거로 오빠의 유품을 보여 준다. 마이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 드리는 모리어는 그 순간 바다에 나가 죽어 돌아 오거나 실종된 이 집 남자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현실과 과거를 혼동한다.
  바로 그 순간 아일랜드 섬사람들의 장례 풍속대로 여성들이 낮은 울음소리를 내고 성호를 그으며 마당에 꿇어 앉는다. 다음에 남자들이 망자, 즉 바트리의 시체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돛 조각에 얹은 채 들어 선 다음, 마당의 탁자에 시체를 올려 놓는다.
  모리어는 즉시 현실로 돌아와 아들을 위해 집에 마지막 남은 성수를 망자의 머리와 발에 뿌려 주고 마이클 옷에다도 뿌려 주며 그들이 평안히 잠들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독백처럼 "이제 바다가 나에게 더 이상 슬픔을 줄 수가 없다, 내게 남은 모든 자식들을 다 앗아 갔으니..."라고 절규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그렇지만 이 극은 결코 비관주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꿋꿋하고 생명력 있게 살아 남는 섬사람들의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극이며, 이 극의 주제인 고통(suffering) 속에서도 그 것을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강인함을 싱은 이 극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