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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하의 남자> 발문/문병란

김영관 2007. 8. 4. 10:50

 

 

 

 

 

김 ** (필자) 신작 수상록 <내 연하의 남자> 발문  
 
  
 
                                                                    
                       문병란(시인)

 

                              I

  김 ** 교수는 영문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특히 그는 미국의 20세기 희곡작가인 유진·오니일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왔다. 그는 단순한 문학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그의 작품을 번역도 하였으며, 마침내는 그의 작품에 심취한 나머지 직접 극작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속칭 20대에 서정시, 30대에 소설, 40대에 희곡을 쓴다는 견해에 부합된 그의 문단 행각은 오히려 거꾸로 희곡부터 등단한 다음 시와 소설, 수필도 곁들이는 부지런함과 그 욕망을 맘껏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것도 1,2년을 두고 몽땅 해치우는 저력을 과시하였다. 그 결과물을 묶은 것이 희곡집 「미로」였고, 금번 1년도 채 못 되어 「신작 수상록」을 묶게 되었다.
  그런데 금번 펴내는 문집의 장르적 구분은 편의상 수상록으로 하였으되 자세히 세분하여 들여다보면 보통의 수필이나 수상과는 다르다. 「쪽지」라는 분류에 의하여 어떤 메시지 전달을 기도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 장르로는 수상이 맞지만 그 쪽지 속에는 뛰어난 서정시 형식을 취한 것도 있고 흔히 말하는 비평적 에세이에 속한 칼럼 류에 속한 기발한 글도 있으며 단편소설에 가까운 콩트 형식의 글도 뒤섞어 가히 탈 장르화 시대의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21세기는 바야흐로 문학의 위기라고들 말한다. 이유인즉슨 보다 새로운 매체에 의한 대중적 관심이 묵은 전통과 역사를 가진 과거의 문학 장르나 유산에서 많이 일탈하고 있어 과연 낡은 장르에 매어있는 문학작품의 독자가 존재할 것인가 걱정들 하고 있다. 이에 컴퓨터 시대에 대비하여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탈 장르를 시도하고 있고 이른바 해체론을 도입하고 있다. 김 ** 교수의 대수롭지 않은 듯한 쪽지 문학은 이런 쪽에서 보면 대단한 실험일 수도 있고 독자와의 어떤 승부를 거는 야심이 숨어 있음도 감지된다. 여기에 잡글 같은 그의 쪽지 글이 대단한 문제성을 감추고 있음을 이 글의 허두에 얹는 이유이다. 그러면 몇 편을 골라 그 새로움이 어디 있는가 찾아내 보기로 한다.

                    II

「미친 남녀가 싸우고 있다 미친 여자가 미친 남자에게 미친놈이라고 한다 미친 남자가 미친 여자에게 미친년이라고 한다 그걸 구경하던 정상적인 사람들이 미친년 놈들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중략… 미친 사람 안 미친 사람 모두가 서로를 미쳤다고 소리를 질러대니 이놈의 세상이 어떤 놈이 정상이고 어떤 놈이 비정상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내 머리가 돈다 나도 미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개판 세상 빙글빙글 돈다」- 누가 미친 건지

 

  쪽지 편에 실려 있는 글인데 산문시 형식의 글이다. 본래 모든 글은 독자를 의식하고 쓴다. 자기만 읽기 위한 글은 거의 없다. 표현 욕구라는 것도 자기 만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공감자를 원한다. 인기란 것이 바로 그 끼에서 온 말이다. 유독 자기 표현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광대이고 가수이고 배우이고 탤런트이고 문객이다. 그러니까 모든 글쟁이도 이 끼의 소유자이고 글을 쓸 때는 그 끼 발산에 의해서 관심을 끌려고 한다. 이 쪽지 글은 그 유도하는 바가 유달리 강하여 문학의 여러 장르를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라는 꾼 들을 자극하고 있다. 메시지 전달이라는 의도가 깔려있어 독자의 몫을 남기고 있다. 「누가 미친 건지」 역시 작가가 단정하거나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자기 의도를 숨겨 놓고 넌지시 독자에게 묻고 있다. 이것이 독자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유도 장치이다. 따라서 이 짤막한 글들을 아니 읽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의도가 있으되 독자의 몫을 많이 남김으로써 작위성이 상쇄되고 독자가 화내지 않고 이 쪽지의 여백에 참여하게 된다.

 

  「미인은 자신이 미인임을 안다 미인은 아름답다고 말하면 그런 이야기 한 두 번 들은 게 아니라는 투로 겉으로는 겸손을 가장하면서 마치 그 단어는 자신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인 양 당연한 미소지어 보인다 자신이 미인임을 아는 대부분의 미인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해하는 모양이다 외형의 아름다움에 내면의 향기까지 그윽한 미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든 듯 싶다 여러분 내 생각이 어떤가요 혹시 틀렸나요?」- 미인은 자신이 미인임을 알고 있다-

 

  착각 속에 산다 착각도 자유다 공주병 환자 보바리즘 등등 이 글들을 읽으면 떠오르는 말이 많다. 자기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며 거울 앞에 앉아서 그 호박덩이를 화장품으로 다듬는 많은 여인들은 이 미인 병 환자인지 모른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시즘이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엠마도 그런 류의 여자다. 엠마는 자기가 매우 잘 생기고 특별난 여자여서 늙은 의사 남편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뭇 남자와의 간통이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하였다. 이 부덕한 미인이 파탄에 이르렀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이 착각 속에 사는 도덕의식이 마비된 공주병 환자를 일컬어 보바리즘이라고들 했다. 간통하고도 자기가 남다른 미인이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대판 보바리 부인은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쪽지 글의 여러분이라는 필자가 노골적으로 그 작위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감동이나 공감을 강요하는 인상이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품 장르를 쪽지하고 분류한 필자의 의도를 직감했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고 그녀가 내 곁을 떠난 다음에 어쩌면 그토록 대중 가요들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가사 한 구절 한 구절마다가 내 사연과 꼭 맞아 떨어졌던지… -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의 일부 -

 

  이 글의 제목은 노래방이나 시내버스 타면서 라디오 방송을 들은 사람은 누가 부른 대중 가요인지 잘 알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말은 연애 도사의 말이다. 그만큼 단수 높은 연애철학이다. 유행가를 날개에 나오는 진통제 아달린에 비유한 사람이 있다. 이 가사도 사회 집단적 가상실연환자 치료제로선 꽤 잘 들을 것 같은 신품 진통제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역설의 미화법 체관의 경지에 돌입한 매우 시적인 표현이다. 유행가의 명구를 시비하는 사람을 유치하다고 한다. 유치하지만 고 단수의 도사가 쓴 가사로써 대중을 사로잡는 아편 이상의 중독증 요소가 들어있다. 덧붙여 ''이별, 이별,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은 혼자랍니다'' 이 가사에 애절한 반주와 애상적 목소리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가사에 감정이입되어 자기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으로 착각되기 일쑤다. 김 ** 교수가 이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이 소모품 감상 저질 낭만이 분명하지만 불만 많은 세상에서 아편 대신으로 명약이 분명하다.

 

철 지난 바다
백사장
눈부신 황혼 불
그 카페
커피와 음악
모두 그대로인데…

그 사람
얼굴은 도대체
기억해낼 수가 없다니…

    -내게 가장 슬픈 것은의 전문

 

  대중가요의 무드를 연상시키는 모던한 서정시다. 나름대로 여백도 있고 교수답지 않은 변도 있으나 모던 보이 같은 시체풍 감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요즈음 세상을 흔히 인스턴트 시대라고 하는데 연애나 사랑도 그런 인스턴트가 흔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가슴에 기대어 한없이 울던 그 여인''이 가사에 나오는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가 바로 인스턴트 섹스이다. 다만 한없이 느껴 울던 은 사기로 넣은 문구이고… 아무튼 김영관 교수는 노래방 실력을 발휘하여 대중가요의 대중적 그 진통 효과에 대하여 무언가 발언하고 있는 듯하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카페에서 만나 손 한번 잡아봐도 그것은 연애가 아닐까. 그래서 이 시대는 사랑 병 시대, 연애 병 앓는 환자로 들끓는 시대가 아닌지 모르겠다.

 

  「제 시를 읽으셨다구요? 별 볼 일 없는 제 시를 다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그냥 긁적거린 것에 불과한 시를, 다작하는 편이냐구요? 맞아요. 하룻밤에도 수십 편씩 시를 쓴답니다. 혼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구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내 겸손히 좀 지나쳤나요의 일부

 

  참 요새 시인 많다. 별 걸 다 시비한다고? 그 말도 맞다. 하루에도 몇십 명씩 양산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시인이다. 질적, 양적 그 주가가 폭락함은 물론이고 어디 가서 나 시인이요 하기 부끄럽다. 도둑질도 안하고 사기도 안치고 폭행도 안 하는데 왜 시비냐구요. 허지만 그 시 잘 들여다보면 폭행도 있고 간통도 있고 사기도 있으면 어쩌랍니까. 나도 시인이니까 시비는 이쯤하지요. 하지만 책방에 가서 베스트 코너에 있는 시집 보셔요. 정신 바짝 차리라구요. 잘 팔리고 부가가치 높은 시가 무언 줄 아셔요? 김영관 교수의 이 쪽지가 유발하고자 하는 현대시 반성론, 자성론은 생각보다 심각함을 적어둔다.

 

 올 겨울 내 왼쪽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라고 말하니 그럼 방사선과에 가서 X-ray를 찍어 보라고 한다. 폐에 이상이 있나 확인해 보라면서...... 그래서 이번엔 올 겨울이 유난히 춥다고 말했다니 옷을 두텁게 입어보라고 대꾸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내가 아무래도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해보았더니 아직도 그런 구실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느냐며 어이없어 한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내 마음을 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학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심 딴심의 전문

 

   정말 어이없는 글이다. 이신 전심을 개조한 야유조의 글인데 단절의 시대 소외와 절망의 허망한 언어의 비극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큐피드의 화살은 고전쯤 되는 고급 관능 물일까 그저 ''딴심''에 대하여 경탄할 뿐이다.

 

「연인들끼리는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며」
그녀는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오늘도 커피 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녀는 내 심중의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듯 내 눈빛을 살핀다.
난 화장실이 급하고 점심을 먹지 않아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프지만 눈빛만 보고도 과연 알아 맞추는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정말 내 여인은 내가 화장실 가고 싶어하는 것과 배가 엄청 고프다는 것을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을까?
      -가깝고도 먼 당신의 전문

 

  연애를 소유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남녀의 관계도 물질 같은 소유욕의 하나라면 그것은 실패한 연애의 표본이다. 하루 저녁 잠 한번 자고 나서 연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간식도 식사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유행가처럼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진다? 허허허 한바탕 웃고 넘어가죠.
  흔히 진지성의 문학은 싸르뜨르 류의 실존주의 문학에서 막을 내렸다고 한다.
까뮈의 「페스트」나 「전락」 사르뜨르의 「구토」, 「자유에의 길」에서는 자아추구의 심층까지 파고들면서 많은 고민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실존주의도 싸가지 없는 여인 싸강이 나오면서 그 심각성마저 웃음거리가 된다. 기롱, 야유, 기지, 해학, 인생을 한바탕 우스개로 처리한다. 진지한 고민 대신 표일과 도피와 농담.....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에 생각해 낸 시, 소설, 컴퓨터 키만 두드리면 거기서 독자 꼬시기는 너무 쉽다? 김영관 교수는 외국문학, 그것도 미국식 영문학을 살펴본 사람이다. 영문학의 현대적 왕초 T.S. 엘리엇트는 「삼류작가는 모방하고 일류작가는 표절한다」 고 매우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모방은 쉽게 들통나고 표절은 좀처럼 들통이 안 나거나 완전 범죄적 모자이크 재능이 뛰어나서 삼류평론가가 찾아내지 못한다 이것일 것이다. 그러면 요새 영문과 출신이나 영어 잘하는 세계적인 작가나 비평가들 혹여 완전범죄 표절 아닐까. 문학작품의 독창성? 이 말처럼 위험한 말은 없다. 몇 천년 동안 수 천만 권의 시집 소설집이 발간되었는데도 독창적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아예 이 시대는 모자이크나 미미시즘이 특징이라고 터놓고 베끼기 시인 도둑 소설가도 있다는데 김영관 교수의 쪽지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야유는 신랄미가 겨자 맛이다.
   김 교수는 재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 제일주의 시대 그는 영어라는 또드랑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 국문학과 출신들이 기가 팍 죽어 있는 이유가 영어 때문이다. 혀가 꼬부라지지 않으면 이 땅에서 제 구실하기 틀렸다. 유아유학 조기유학 붐이 일고 초등학생들의 영어 과외 붐,  컴퓨터 붐 안다면 이 쪽지글 구석구석에 스민 그 허망의 실체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야말로 骨貧놈들이 판치는 骨貧主義 시대요, 영어붐 미국붐에 따라 親美놈들이 판치는 親美主義 시대이다.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 눈부신 부시가 腐屍가 되는 시대이다. 김교수의 영어야말로 이 상스러운 시대의 뺨 때리기 풍자문학의 무기일 것이다. 아니 쪽지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서 그의 쪽지글마따나 노벨상도 영어만 있으면 해결 가능한 일이다. 한글은 이제 다시 언문으로 암글로 전락, 부가 가치가 없는 언문시 쓰는 사람들 다 거덜난 시대이다.
  그러나 김**교수의 독자의 몫, 그 여백에 숨겨둔 말 찾기에 성공한다면 이 날나리 시대의 날나리즘을 야유하는 눈물겨운 파라독스가 숨어 있음을 알 것이다. 재능+ 영어+ 부지런함 이 세가지를 가졌으니 그가 컴퓨터 세계를 제패할 날도 멀지 않음을 알겠다.
  끝으로 나의 신작 쪽지글 감상이 필자의 입장에서 사뭇 빗나가지 않았기를 빌면서 이 졸고를 마친다.

                  

                    20001.3
 
                     지산동 우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