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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13)/ 유진 오니일

김영관 2007. 8. 7. 11:21

 

             수평선 너머(13)


                       유진 오니일 작/실개천 번역

                 

                  3막

                  1장

 

   2막 1장과 같은 곳- 5년 후 10월 말 쯤의 어느 날 아침 6시 경, 농장 거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지만 극이 진행되어 가면서 창밖의 어둠이 점차 회색으로 변해 간다.
   식탁 위에 서 있는 굴뚝이 달린 차양이 없는 기름 램프 빛으로 보이는 방은 몰락과 붕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에 걸린 커튼은 찢겨져 있고 더러우며 그 중의 하나는 떨어져 나갔다. 닫혀진 책상은 수 년 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쌓인 먼지로 뿌옇다. 습기로 얼룩져 벽지가 흉한 상태이다. 부엌과 바깥문으로 향하는 색이 바랜 카페트에 초라함이 드러나 보인다. 덮개가 없는 식탁 위는 뜨거운 요리와 흘린 음식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흔들 의자의 가로댄 나무가 원목으로 볼썽 사납게 수선되어 있다. 갈색 빛깔의 녹이 검은 스토브의 색을 변질시켜 버렸다. 장작 더미가 스토브 옆벽에 부주의하게 쌓여 있다.
  몇년 전과 대조적인 방의 전체적 분위기는 만성적인 가난에 너무 절망적으로 체념을 해서 더 이상 수치심 따위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막이 오르자 루스가 방 공기가 습하고 추워 양손을 펴 따사롭게 한 채 스토브 옆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두터운 쇼올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깊은 슬픔의 옷자락을 반쯤 가리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몹시 나이 들어 보인다. 그녀의 창백하고 깊게 주름진 얼굴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일어날 게 없다는 그래서 감정이 메말라 돌처럼 굳어진 표정이다. 그녀가 말을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와 생기가 없다. 그녀가 의복에 대한 무관심한 무질서,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 자란 티가 보이는 머리카락에 대한 부주의한 매무새, 진흙이 묻어 있는 굽이 부러진 힐이 그녀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무관심의 확연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담요를 몸을 감싸고 뒤쪽을 향해 스토브 옆에서 휠체어에 탄 채 잠이 들어 있다.
누군가가 잠자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뒤쪽 열린 침실 문에서 소리가 들린다. 루스가 무감각한 성가심의 표정으로 그쪽을 향한다. 잠시 후에 로버트가 통로에 나타나는데 몸을 지탱하기 위해 그것에 나약하게 기댄다. 그의 머리카락은 길고 덥수룩하고 얼굴과 몸은 수척하다. 그의 광대뼈 위로 진홍색 빛을 환하게 띠는 부분들이 있고 그의 눈은 열로 타오르고 있다. 그는 코르덴 반바지와 플란넬 천으로 된 셔츠를 입고 있으며 맨발에 카페트 용 슬리퍼를 신고 있다.

 

루스:( 활기 없게) 쉬이이! 어머니가 잠들었어요.

 

로버트: ( 말하려고 애를 쓰며) 깨우지 않을 께. ( 그가 식탁 옆 흔들의자로 힘없이 걸어가서 기진 맥진하여 그곳에 털썩 주 저앉는다.)

 

루스: ( 스토브를 바라보며) 따뜻한 불 옆으로 오세요.

 

로버트: 아니오,. 지금 몸이 끓고 있소.

 

루스: 그건 열병이에요. 의사가 일어나 돌아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요.

 

로버트: (화가 나서) 그 늙은 구닥다리!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 구. 자리에 가서 쉬는 게- 그게 그 삶의 유일한 처방이라구.

 

루스: ( 무관심하게) 지금은 좀 어때요?

 

로버트: (쾌활하게) 더 좋아졌어! 전 보다 훨씬 더 좋아졌어. 정 말 이젠 좋아- 매우 허약해지긴 했지만. 그게 전환점인가 봐. 지금부터 계속 빨리 빨리 좋아져서 당신을 놀라게 해줄 거야- 그렇지만 시골 돌팔이 의사의 어리석음엔 감사하지 않을 거야.

 

루스: 그가 항상 우리를 보살펴 왔다구요.

 

로버트: 항상 우리가 죽도록 도와 왔단 말이지, 그렇지! 그는 아 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 그의 소리가 중단된다.)- 그리고 - 매어리도 돌봐 왔지.

 

루스: ( 힘없이) 그가 알고 있는 최선을 다 했다구요, 내 생각엔. ( 잠시 말이 없다가) 그래요, 앤디가 돌아올 때 최고의 전문의를 데려 올 거예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맞을 거예요.

 

로버트: (통렬하게) 그게 당신이 밤새 내내 기다리고 있는 이유란 말이요?

 

루스: 그래요.

 

로버트: 앤디를 위해서?

 

루스: ( 아무런 감정도 없이) 누군가가 기다려 줘야겠죠.그가 떠난지 5년이 지난 이후 누군가가 그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죠.

 

로버트: ( 통렬한 조롱으로) 5년이라! 오래 됐군.

 

루스: 그래요. (달래듯이) 기다려 봐요! ( 무관심하게) 벌써 시간이 지났는 걸요.

 

로버트: 그래 시간이 지났어. ( 잠시 말이 없다.) 당신이 그의 전보를 두 통 받았지? ( 루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 봅시다. 전보가 왔을 때 내 머리는 온통 열로 가득해 그게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소. ( 조급하게)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괜찮소.그것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소. ( 루스가 품속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그에게 건네준다.)

 

루스: 여기 있어요. 처음에 온 것이 위에 있구요.

 

로버트: ( 그걸 펼치면서) "뉴욕. 금방 기선에서 내렸음. 여기를 돌아 볼 중요한 일이 있음. 거래가 끝나는 대로 집에 갈 것임." ( 그가 씁쓰레하게 웃는다.) 사업이 먼저라는 게 앤디의 생활 좌우명이라니깐. ( 그가 읽는다.) " 모두 건강하기를 바란다. 앤디." ( 그가 역설적으로 반복한다.) " 모두 건강하기 를 바란다!"

 

루스: (힘없이) 내가 답장을 쓰면서 그에게 이야기해줄 때까지 당신이 아팠다는 걸 그가 알 수 없었다구요.

 

로버트: ( 회한스럽게) 아무렴 알 수가 없었겠지. 난 천치라구. 요근래 난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신경과민이라구. 답장에 뭐라고 했소?

 

루스: ( 당치 않다는 듯) 수신자 부담으로 편지를 보내야 했다구요.

 

로버트:( 화를 내며) 당신이 글을 쓴 내용에 내 이야기도 썼소?

 

루스: 당신의 폐에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로버트: ( 갑자기 화를 약간 내며) 이 멍청이! 얼마나 종종 당신에게 내게 문제가 있는 건 늑막이라고 말을 해줬소. 늑막은 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 밖에 있다는 게 그렇게도 머리에 주입되지 않다니!

 

루스: ( 냉담하게) 단지 의사 선생인 스미스씨가 내게 말해줬던 걸 썼을 뿐이라구요.

 

로버트: ( 화가 나서) 그는 무식한 바보라구!

 

루스: ( 힘없이) 상관 없어요. 난 앤디에게 뭔가를 말해줘야 했거든요, 안 그래요?

 

로버트: ( 말이 없다가- 다른 전보를 열어 보며) 어젯밤에 보내 온 거지. 어디 보자. ( 그가 읽는다.) " 자정 열차로 집을 향 해 출발함. 금방 전보를 받았음. 로브에게 보이기 위하여 전문의를 데리고 감. 항구에서 농장까지 자동차로 갈 것임" ( 그가 계산을 해 본다.) 지금 몇 시지?

 

루스: 6시쯤 됐을 걸요.

 

로버트: 지금쯤 도착해야 하는데. 뭔가를 아는 의사를 데려 오면 좋겠는데. 전문가라면 나의 폐에 문제가 없다는 걸 금방 당신에게 말해줄 거야.

 

루스: ( 고집스럽게) 당신은 요즘 기침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구요.

 

로버트: ( 성질을 내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제발, 당신도 지독한 감기에 걸려 본 적이 없소? ( 루스가 침묵으로 스토브 를 쳐다보고 있다. 로버트가 의자에서 안절부절해 한다. 말이 없다. 마침내 로버트의 눈이 잠들어 있는 애트킨스 부인에게 머문다.) 당신 어머니는 억세게 잘도 주무시는구려.

 

루스: 어머니는 지쳤어요. 어머니는 밤새 내내 잠을 안자고 나와 함께 앉아 계셨다구요.

 

로버트: ( 조롱하는 투로) 어머니 역시 앤디를 기다리고 계시나? ( 말이 없다. 로버트가 한 숨을 쉰다.) 내 영혼을 구하기 위 하여 난 잠을 잘 수가 없었소. 양 한 마리를 세다 보면 천만 마리까지를 세어 본다오. 부질없는 짓이지! 결국 세기를 포기하고 우울한 생각에 빠져 누워 있지. ( 그가 말이 없다 가 부드러운 동정의 어조로 말을 계속한다.) 루스, 난 당신 생각도 한다오- 요 몇 년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나에 대해서. ( 애원하듯) 미안하오, 루스.

 

루스: ( 힘없는 목소리로) 모르겠어요. 이젠 다 지나간 일인 걸요. 우리 모두에게 힘들었죠.

 

로버트: 그렇소. 앤디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가. ( 순간 병든 질투심으로) 앤디는 대단한 성공을 했어- 자기가 원했던 방식으로. ( 조롱하는 투로) 그런데 지금 자기가 훌륭하게 된 걸 우리에게 칭찬해 달라고 집에 오고 있단 말이지.( 얼굴을 찡그리며-화가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 머리 역시 병 들어 가고 있어.( 말이 없다가) 그래, 요 몇 년은 우리 두 사 람에게 지독한 세월이었어. (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속삭임 으로 낮아진다.) 특히 매어리가- 죽은 이래로 지난 8개월이. ( 그가 발작적인 떨림으로 참아 낸다- 그리고 나서 격정적인 아픔 속에서 폭발한다.) 우리 행복의 마지막 희망! 내 영혼 밑바닥에서 부터 신을 저주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 그가 격렬한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서둘러서 그의 손수건을 입술에 갖다 댄다.)

 

루스: ( 그를 바라보지 않고) 매어리가 더 잘 됐는지 모르죠- 죽은 게.

 

로버트: ( 우울하게) 우리 모두에게 잘된 일인지 모르지.( 갑작스럽게 화를 내며) 매어리의 죽음이 나로부터 물려받은 허약한 체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어머니께 당신이 말하라구. ( 나약함의 눈물이 금방 쏟아질 듯) 제발 그만 하라고 해!

 

루스: ( 날카롭게) 쉬이이! 어머니를 깨우겠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귀찮게 할 거예요- 당신에게가 아니라.

 

로버트: ( 기침을 하며 허약하게 의자에 기대 눕는다.- 말이 없다.)당신 어머니가 성가시게 하는 일은 모두가 앤디에게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 분이 나를 몰아 부쳐 생기는 일이요.

 

루스: ( 화를 내며) 도와 달라고 하세요. 그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로버트: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그에게서 돈을 받을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요?

 

루스: ( 활기 없게) 해로울 것 없쟎아요. 그는 당신의 친형인 걸요.

 

로버트: ( 어깨를 움츠리며) 당신에게 얘기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소. ( 자랑스럽게) 그런데 난 신께 감사하게도 집안 일을 그럭저럭 잘 버텨 나왔소. 도움 없이도 내가 잘 해 왔다는 걸 당신도 부인하지 못할 거요. ( 그가 쓰디쓴 웃음으로 말을 중단한다.) 제기랄, 내가 무얼 자랑하고 있지? 이런 저런 빚, 세금, 못 갚은 이자! 난 천치라구! ( 잠시 그가 눈을 감은 채 의자에 누워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솔직해져야겠어, 루스. 난 처절한 패배자라구, 그러면서도 당신을 질질 끌어 왔다구. 난 모든 정의에 대해서 - 나를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을 나무랄 수가 없다구.

 

루스: ( 감정 없이) 난 당신을 증오하지 않아요. 역시 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에요.

 

로버트: 아냐. 당신은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 앤디를.

 

루스: ( 힘없이) 난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요.

 

로버트: ( 그녀의 말을 물리치며) 당신은 부인하지 못할 거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 말이 없다가- 부드러운 미소로) 루스, 당신은 알고 있소, 어둠 속에서 내가 무얼 꿈꾸고 있는지를? ( 짧은 웃음으로) 내가 건강해졌을 때의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소. ( 그녀가 자신을 비웃으면 어쩔까 두려워하는 것 처럼 호소하는 눈으로 그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그녀는 스토브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열정의 음조를 띄고 있다.) 결국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오. 우린 아직 젊소. 만약 우리가 이 저주받은 농장을 벗어 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을 파멸시킨 건 바로 이 농장이오. 빌어먹을! 그런데 이제 앤디가 돌아오고 있소- 난 어리석은 자존심을 굽힐 거요, 루스! 도시에 가서 좋은 출발을 하기 위해 그에게서 돈을 빌릴 거요. 침체되어 사는 대신 사람들이 사 는 곳으로 가서 다시 한번 시작합시다. ( 자신감을 가지고) 여기에서 처럼 거기 가서는 결코 실패자가 되지 않겠소, 루 스. 거기에 가서는 날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거요. 내가 해왔던 독서도 뭔가 쓸모가 있음을 당신에게 증명해 보이겠소. ( 막연하게) 글 쓰는 일이나 그와 유사한 일도 해보겠소. 난 항상 글을 쓰고 싶었다오. ( 애원하듯) 당신도 내가 그랬으면 좋겠지, 안 그렇소, 루스?

 

루스: ( 힘없이) 어머니가 여기 계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