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15)
유진 오니일 작/실개천 번역
로버트: 아냐. 난 일출을 보러 가야겠어. 그건 행운의 징조이니깐. ( 그가 왼쪽 뒤편에 있는 창문으로 재빨리 가서 커튼을 밀어 재치고 내다보며 서 있다. 루스가 일어서서 왼쪽 식탁으로 재빨리 와서 긴장되고 뭔가 예감을 갖는 태도로 로버트를 지켜보며 서 있다. 그가 밖을 내다보고 서 있을 때 그의 몸은 점차 축 늘어져 휘청거리다가 기진맥진한다. 그의 목소리는 그가 말을 할 때 슬픔으로 가득하다.) 아직 해가 뜨 지 않겠지. 그럴 시간이 아니지. 내가 지금 볼 수 있는 거라곤 기어 오르는 잿빛을 배경으로 빌어먹을 산언덕의 까만 가장자리의 윤곽 정도겠지. ( 그가 돌아선다; 커튼을 내리고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벽에 손을 내뻗는다. 한 순간의 일시적인 힘이 소진되어 그는 얼굴을 내려 뜨리고 눈은 휑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려는 안타까운 시도를 한다.) 그건 그렇게 행복한 징조는 아니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태양은 떠오를 거야- 금방. ( 그가 힘없이 비틀거린다.)
루스: ( 그의 옆으로 서둘러 달려가서 그를 지탱하며) 제발 잠자리에 드세요, 제발, 로브. 전문의가 도착했을 때 완전히 녹초가 돼 있지 않고 싶으면 말예요.
로버트: ( 재빨리) 아냐. 됐어. 그가 현재의 나보다 더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리고 지금은 잠도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 쾌활하게)- 아주, 곤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니깐.
루스: ( 그를 도와서 침실 문으로 데려가며) 당신이 가장 필요한 게 바로 그거라구요. (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에 말대꾸를 하면서 다시 나타난다.) 당신이 조용히 있도록 문을 닫아 놓겠어요. ( 그녀가 문을 닫고 그녀 어머니쪽으로 재빨리 가서 그녀의 어깨를 흔든다.) 어머니! 어머니! 일어 나세요!
애트킨스 부인: (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며) 하느님께 영광이! 무슨 일이야?
루스: 로브였어요. 그가 금방 여기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니깐요. 그를 잠자리에 데려다 놓고 왔어요. ( 그녀는 어머니가 잠이 깬 것을 확인하자 두려움이 가시고 힘없는 무관심으로 빠져 든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스토브를 쳐다본다- 멍하게) 그가 행동했어요- 이상스럽게; 그리고 그의 눈은 그렇게 보였어요 - 아주 격렬하다고나 할까.
애트킨스 부인: ( 퉁명스럽게) 그 일 때문에 곤하게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놀라게 한단 말이냐?
루스: 전 두려웠다구요. 그는 아주 돌아 버린 사람처럼 말을 했다니깐요. 그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런 식으로 그와 단 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구요. 그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쟎아요.
애트킨스 부인: ( 경멸하듯이) 흥! 내가 너를 돕는다구,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는 내가! 왜 달려가서 재이크를 데려 오지 그랬어?
루스: ( 힘없이) 제이크는 여기 있지 않아요. 간밤에 그만 뒀어요. 3개월 동안이나 돈을 못 받았거든요.
애트킨스 부인: ( 화가 치밀어) 그를 나무랄 수가 없다. 어떤 바보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겠니? ( 갑작스럽게 분노가 폭발하여) 오, 네가 저런 인간과 결혼 안 했으면 좋았으련만!
루스: (지쳐서) 그가 지금 병석에 누웠는데 그런 이야기 마세요.
애트킨스 부인: ( 차츰 분노에 사로잡혀) 루스 매이오, 넌 잘 알 거다, 만약 내가 저축해 둔 것에서 몰래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너희 둘이는 거지같은 이 집에서- 그런데도 우리가 빠져 있는 상황을 앤디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그 돼지 대가리 속에 든 자존심 때문에. 내 말년을 위해 저축해 두었던 것으로부터 내가 그를 도와야 하는 그 잘난 짓을 하다니- 그리고 나는 돌봐 줄 사람 없는 병자 취급을 받다니!
루스: 앤디가 다 갚아 줄 거예요, 어머니. 로브 몰래 내가 그에게 말하겠어요.
애트킨스 부인: ( 코방귀를 뀌며) 로브는 너와 그가 함께 사는 걸 어떻게 생각하던, 난 그게 알고 싶은 데?
루스: (힘없이) 그는 그런 생각 않는 것 같아요. ( 잠시 말이 없 다가) 앤디가 돌아오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작정했다고 로브가 말했어요. ( 부엌의 시계가 6시를 울리자) 6시인데. 앤디가 곧장 이리로 온다고 했는데.
애트킨스 부인: 이번 전문의는 로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니?
루스: ( 절망적으로) 모르겠어요. ( 두 여인네들은 풀이 죽어 스토브를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다.)
애트킨스 부인: ( 떨면서 성깔 사납게) 제발 난로 위에 장작 좀 넣어라. 얼어죽겠다!
루스: ( 뒤쪽 문을 가리키며) 그렇게 크게 말하지 말아요. 그가 잠들 수 있게요. ( 그녀가 의자에서 지친 모습으로 일어나 스토브에 장작 몇 개를 집어 얹는다.) 이게 마지막 장작이라구요. 재이크가 떠난 뒤에 누가 장작을 더 해 올지 모르겠어요. ( 그녀가 한 숨을 쉬며 왼 쪽 뒤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 을 재치고 밖을 내다본다.) 동이 트는 군요. ( 그녀가 스토브 로 돌아온다.) 날씨가 좋겠는 걸요. ( 그녀가 따사롭게 하기 위해 손을 내펼친다.) 간밤엔 서리가 많이 내렸던가 봐요. 그 동안 날씨가 너무 좋아 이러나 봐요.( 자동차의 붕붕하는 소리가 바깥 멀리에서 들려 온다.)
애트킨스 부인: ( 날카롭게) 쉬-위-이-! 들어 봐라! 자동차 소리 아니냐?
루스: ( 무관심하게) 그래요. 앤디인 모양이군요.
애트킨스 부인: (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며) 어리석은 거위처럼 거기에 앉아 있지만 마라. 이 방 꼬락서니 봐라! 처음 오는 의사가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니? 램프 굴뚝에 연기 좀 봐라! 제발, 루스-
루스: ( 무관심하게) 부엌에서 램프를 다 소제 했는데.
애트킨스 부인: ( 명령하는 어투로) 당장 저리로 휠체어 밀어 다오. 그가 날 보게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쪽 방에 누워 있겠다. 당장 내가 필요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 난 한 숨 늘어지게 자야겠다. ( 루스가 휠체어에 탄 어머니 오른쪽으로 밀고 간다. 자동차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자동차가 농장 앞 도로에 멈춰 서자 마침내 소리가 그친다. 루스가 다른 쪽 옆 식탁에 놓아둔 불켜진 램프를 손에 들고 부엌에서 되돌아온다. 길 위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나서 문 두드리는 날카로운 소리. 루스가 가서 문을 연다. 앤드류가 들어 오고 닥터 포세트가 작은 검정색 가방을 들고 뒤따라 들어선다. 앤드류는 많이 변했다. 그의 얼굴은 즉석의 판단이 정확 해야 하는 항상 긴장 속에서 생긴 결단의 표정으로 굳어져 예민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의 눈은 더욱 날카롭고 민첩하다. 눈 주변엔 무자비한 간교함의 암시까지도 풍긴다. 그러나 현재 그의 표정은 긴장된 걱정의 표정이다. 닥터 포세트는 땅 딸막하고 피부가 검은 중년의 반다이트 턱수염을 하고 있다. 그는 안경을 쓰고 있다.)
루스: 안녕, 앤디! 기다리고 있었어요.
앤드류: ( 그녀에게 성급하게 키스를 하고) 가능한 한 서둘러 여기 왔어. ( 그가 식탁 위에 모자와 외투를 벗어 던진다. 그가 그렇게 하면서 루스와 의사를 소개한다. 그는 값비싼 사업가 타입의 양복을 입고 있는데 더욱 뚱뚱해진 것처럼 보인다.) 내 제수씨인 매이오 부인- 이쪽은 닥터 포세트. ( 그들은 서로 말 없이 인사를 한다. 앤드류가 방을 재빨리 둘러 본다.) 로브는 어디 있지?
루스: ( 가리키며) 저 안에요.
앤드류: 외투와 모자를 벗으시죠, 의사 선생님. ( 그의 옷과 모 자를 거들면서) 아주 심각한가, 루스?
루스: ( 힘없이) 더욱 쇠약해져 가고 있어요.
앤드류: 제기랄! 이리 오세요, 의사 선생님. 램프 좀 가져 와, 루스. ( 그가 침실로 가고 그 뒤로 의사, 깨끗한 램프를 든 루 가 뒤따라간다. 루스는 그녀가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다시 나타나 그녀가 열어둔 바깥문으로 천천히 걸어가 통로에서 내다보며 서 있다. 앤드류와 로버트의 목소리가 침실로부터 들려 온다. 잠시 후 앤드류가 조용히 문을 닫으며 다시 들어 온다. 그가 앞으로 와서 그의 손을 머리에 기댄채 식탁 오른쪽 흔들 의자에 주저 앉는다. 그의 얼굴은 슬픔이 커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 그는 슬픔에 잠겨 앞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쉰다. 루스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리 고 나서 그녀는 문을 닫고 스토브 옆 의자로 돌아 와서 그를 볼 수 있도록 의자의 방향을 바꾼다.)
앤드류: ( 재빨리 쳐다보며-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된 게 언제부터이지?
루스: 당신 말은- 아픈지 얼마나 됐느냐는 말이죠?
앤드류: ( 퉁명스럽게) 물론! 또 다른 일도 있어?
루스: 그의 상태가 처음 나빴던 건 지난 여름이였죠, 하지만 매어리가 죽은 이래로 줄곧 앓았어요- 8개월 전부터.
앤드류: ( 거칠게) 왜 내게 알려 주지 않았어- 전보를 치지 않았어? 그가 죽기를 바랬단 말이야, 당신 모두?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걸! ( 말을 중단했다가) 불쌍한 동생! 돌팔이 의사 외에는 그를 돌봐 줄 사람 하나 없이 이런 막다른 토굴속에서 병들어 있다니! 수치스러운 일이야!
루스: ( 힘없이) 당신에게 한번 소식을 보내려 했지만 내가 그에게 이야기를 하자 노발대발하기만 하더라구요 그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 어떠한 부탁도 않겠다고 하던데요.
앤드류: 자존심? 나한테 부탁하는데? ( 그가 벌떡 일어서 신경질적으로 이리 저리 걷는다.) 루스가 한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걸. 그가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겠어? 모르겠어- 왜 내가 그를 보는 순간 거의 덜썩 주저 앉았는지를! 그가 보이는 걸 - ( 그가 어깨를 떤다.)- 처참하게! ( 격렬한 경멸로) 루스는 그가 허약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그가 아픈 걸 당연한 일로 치부해버린 모양이지. 저런, 내가 알기만 했어도!
루스: ( 감정이 없이) 편지가 당신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린다구요- 그런데 우리는 전보를 칠 돈도 없었구요. 이미 우리는 빚을 너무 많이 걸머졌어요,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고. 어머니는 거의 바닥이 날 만 큼 저축해 둔 돈을 내게 주었거든요. 그런 말은 로브에게 전 혀 하지 마세요. 그에게 말 안 했어요. 그가 알면 난리칠 거라구요. 그렇지만 말해야 겠어요, 왜냐하면 -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지냈을지 아무도 모를테니깐요.
앤드류: 루스의 뜻은- ( 그의 눈이 처음으로 방의 가난에 찌들은 모습을 감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게 수신자 부담으로 전보를 쳤구먼. 그게 그 때문이었군 ( 루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앤드류가 주먹으로 탁자를 때린다.) 빌어먹을! 그런데도 난 모른채 지내고 있었으니- 모든 걸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 그가 의자에 앉아서 그것을 루스쪽으로 끌어 당긴다- (감정에 사로잡혀) 그런데- 난 조금도 생각을 못했으니. 왜? 왜 그랬을까? 왠 일이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단 말이지? 말 좀 해봐!
루스: ( 힘없이) 할 말이 별로 없어요.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졌거든요- 그게 전부예요- 그런데 로브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는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좀 나아졌던 이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구요. 그 이후 그는 일할 사람들을 구했지만 그들 모두가 그를 속였어요- 그는 말하지도 못하고-그리고 나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떠나가 버렸어요. 그리고 매어리가 죽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아무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집안에만 머물러 있고 다시 책 읽는데 빠져 들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없는지 부탁드렸어요.
앤드류: ( 놀라 질겁하여) 아니, 제기랄, 이거 기절초풍할 일이군! 내게 이런 사실을 알려 주지 않다니 로브는 미쳤음에 틀림없군. 자존심 때문에 내게 도움을 청하지 않다니! 제발 그 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 순간 강한 의심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루스! 사실대로 말해 줘. 그가 제 정신이 아니었나, 그랬어?
루스: (힘없이) 모르겠어요. 매어리의 죽음이 큰 충격이 였던 모 양이에요- 그렇지만 지금쯤 그녀 죽은 것에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도 말이에요.
앤드류: ( 의아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루스도 그렇다는 말이야?
루스: ( 힘없는 어조로) 때가 와요- 상관없을 때가- 어떤 일에도.
앤드류: ( 잠시 그녀를 꼼짝하지 않고 바라본다- 대단한 동정심으로) 미안해, 루스- 내가 루스를 나무란 것처럼 보였다면. 난 몰랐어-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지고 병상에 누워 있는 로브를 보고 있으니-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화났던 거야. 용서해 줘, 루스.
루스: 용서할 것도 없어요. 상관 없어요.
앤드류: ( 다시 벌떡 일어서서 이리 저리 걷는다) 너무 늦기 전에 온 것만도 감사할 뿐이지. 이 의사는 해야 할 걸 정확하게 알고 있을테니깐. 그것이 생각해야 할 최우선이지. 로브가 다시 일어서게 되면 한번 더 탄탄한 기초 위에서 농장이 운영되도록 할 수 있어. 내가 돌보겠어- 내가 떠나기 전에.
루스: 다시 떠난다구요?
앤드류: 난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