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2)
유진 오니일 지음/ 실개천 (김영관 ) 옮김
댄서: 매우 친절하고 착한 성품이었어요. - 선장 말이에요. 바로 그날 오후 산책 갑판 위에서 그가 내 의자 곁에 멈춰 서서 “오늘밤 당신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실 거라고 들었는데요. ”라고 말 했어요. “당신 춤은 대단한 기쁨이 될 것이며 당신은 매우 친절한 분입니다. 뉴욕에서 당신 춤추는 것을 볼 영광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선수를 쳐 이곳까지 오셨군요.” (잠시 말이 없다가) 그는 잘 생기고 건장한 어깨를 가진 사나이였다구요. - 선장 말이에요.
신사: 그의 영혼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댄서: 다른 사람 영혼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걸 발견했을 거예요. 그가 잘못을 저질지만 자기 목숨으로 보상했어요.
신사: 아니오. 그는 자살함으로써 보상을 회피한 거요. 죽은 자는 보상을 받지 못해요.
댄서: 그리고 죽은 자는 욕을 얻어 먹어도 대답을 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이요.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잠시 말이 없다.)
신사: (옷 안주머니를 더듬다가 커다란 카드 상자처럼 보이는 검은 색 물체를 하나 끄집어 낸다. 그것을 열어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나서 공허한 웃음을 웃으며, 그는 댄서가 보도록 그것을 건네준다.) 오, 빌어먹을 아이러니.
댄서: 그건 뭐예요? 전 잘 읽을 수가 없군요. 내 눈이 몹시 아프거든요.
신사: (놀리듯이 계속 웃으며) 더 가까이 굽히고 보시오! (더 가깝게 굽히고 보란 말이요! 이해할 가치가 있는 거요. - 나에게 가해진 운명의 장난이오.
댄서: (천천히 읽을 때 그녀의 얼굴은 거의 상자에 닿을 정도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국 클럽!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신사: (참지 못하고 그녀 손에서 상자를 낚아채며)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걸 설명해드릴 테니 들어봐요! 메. 에. 뉴. 메뉴 그게 장난 같단 말이요. 이것은 이 클럽이 나를 기념해서 베풀었던 연회 기념 메뉴요. (읽으며) “마티니 칵테일, 수프, 세리, 생선, 버건디 포도주, 닭고기, 샴페인” - 그런데 여기에서 우린 빵부스러기 한 조각, 물 한 모금 때문에 죽어가고 있으니 말이오! (그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갑자기 멈추고 광기어린 분노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들어대며 외쳐댄다.) 하느님! 하느님! 나에게 무슨 운명의 장난을 하고 있는 겁니까! (소리친 다음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메뉴판을 쥔 채로 그는 낙담하여 주저앉는다.)
댄서: (흐느끼며) 너무 무서워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다니 우리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요? 계속 일어나는 불행이 우리의 고통을 더욱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것 우스꽝스러워요. 던져 버리세요! 그걸 보고 있노라니! (신사가 메뉴판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 그것이 바다 위에 둥둥 떠서 거울 같은 물 위에 검은 점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런 걸 지니게 됐어요? 그걸 읽는 건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할 뿐인데요.
신사: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오. 저 우스꽝스러운 것이 하도 괴이해서 혼자만이 간직할 수가 없었소. 내가 어떻게 그걸 갖게 됐냐고 물었소? 말해드리리다. 농담이 씁쓸한 이야기로 변할 텐데. 배가 부딪힐 때 기억나지요? 우리는 모두 선실 안에 있었소. 당신이 노래하고 있었지 - 코크니 노래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댄서: 그래요. 런던의 궁궐에서 내가 처음 불렀던 노래 중의 하나예요.
신사: 그것이 살롱 안에 있었소. 당신은 노래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웠소. 한 여인네가 내 오른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하던 기억이 나요. “ 저 여자 정말 예쁜데! 저 여인 결혼했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순간에 어떻게 그런 바보스러운 말이 사람 머릿속에 간직될 수가 있을까 이상도 하더라구요. 비극이 일어난 후 우리의 가장 분명한 기억들 중의 하나가 그건 지하철에서 어깨 너머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쯤이란 거요.
댄서: 나도 그래요. 뚱뚱하고, 대머리에다 자그마한 사람이 하나 있었지요. 배가 충돌한 후 갑판 위에서 였지요. 곳곳에서 사람들이 구명선을 타려고 싸우고 있었어요. 그 불쌍한 조그마한 사나이가 혼자 서 있었지요. 달덩이 같은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어요. 그는 크고도 화가 난 어조로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지요. “늦게 될지도 몰라 전보를 쳐야겠는데! 잘 안되니 말이야!” 밀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쓰러져 바닷속으로 빠질 때 깨어진 자신의 약속에 그는 계속해서 울먹이고 있었어요. 나는 지금도 그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선장 곁에 서 있던 유일한 사람이란 걸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신사: (힘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당신은 매우 아름다웠소. 나는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은 어떤 종류의 여성일까 생각하고 있었소. 내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 단지 갑판 위를 산책하면서 당신을 보았을 뿐인데. 그리고나서 배가 부딪쳤소. 무시무시하고 둔중한 충돌이었소. 우리 모두가 마룻바닥으로 내팽개쳐졌지. 그리고나서 울부짖음, 맹세, 기절하는 여인네들, 칸막이벽이 무너지고 나는 특등실로 뛰어가서 내 지갑을 집어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 거요. 그런데 지갑 대신 집어든 것이 저 메뉴판이었음에 틀림없소. 그 다음에 사람들 틈에 끼어 몸부림치며 갑판 위에 있었소. 그리고 겨우 구명선을 탄 거요-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즉시 물이 차오르더군. 그 보트도 역시 얼마 후에 물 속에 잠겼어요. 익사해 가는 사람들의 꾸르륵거리며 숨막히는 울부짖음! 물 속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인광을 내품으면서 내게 돌진해 왔지요. 자신의 몸에 구명 벨트를 매고 내 곁에 있던 한 사람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더니 사라져 버렸소.- 그 다음 내가 깨달은 바로는 - 그게 상어라는 거였소.! 나는 두려움으로 떨었소. 나는 수영을 했소. 손으로 물을 쳤소. 배가 결국 가라 앉아 버렸소. 나는 수영을 하고 또 했소.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 - 그 무시무시한 것으로부터 멀어져 가야겠다는 생각만을 했소. 물 위에 무언가 하얀 것을 보았소. 나는 그것을 붙잡고 기어올랐소. 그게 바로 구명선이었소. 당신과 저 친구가 타고 있더라구요. 나는 기절해 버렸지. 머리 속은 온통 무시무시한 악몽 뿐이었소. - 그러나 살롱에서 그 여자의 바보 같은 말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소. 인간이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댄서: 배가 충돌했을 때 나도 역시 특등실로 뛰어 갔어요. 이걸 집어 들었어요. (다이몬드 목걸이를 가리키며) 이걸 목에다 걸고 갑판 위로 달려갔어요. 나머진 당신에게 다 말했지요?
신사: 이 구명선에 어떻게 타게 됐는지 기억할 수가 있소? 탈 것이 없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 때 당신과 저 친구 두 사람만이 구명선 위에 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던데. 구명선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소?
댄서: 없었어요.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구요. 내 기억 속에 모든 것들이 희미해졌지만, 분명히 당신이 구명선에 탈 때까진 두 사람이었어요. 난 당신이 무서웠어요. - 당신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매우 창백해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신사: 상어 때문이었소. 상어가 다가왔을 때까지는 난 자제력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으나 상어를 보는 순간 두려움으로 떨었던 거요.
댄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원을 그리는 지느러미들을 바라보면서) 상어들이에요! 왜 저것들이 지금우리 주변에 몰려다니는가요? (질겁하여) 거짓말 했군요. 저것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 말이에요!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신사: 내가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그건 당신을 위해서요. 용기를 내세요! 우리가 구명선을 타고 있는 한 안전해요. 이겨 내야 해요. (극도로 낙담한 어조로) 상어 따위가 무슨 상관이오? - 상어가 있는 없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텐데.
댄서: (눈에서 손을 떼어 힘없이 물을 바라보며) 당신 말이 맞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신사: 맙소사! 저 놈의 바다가 너무도 적막하니 말이야! 하늘도 마찬가지이구! 세상이 온통 다 끝나버린 것 같군. 저 흑인의 저주받을 콧노래 소리가 적막함을 더욱 예리하게 느끼게 하는 것 같소. 상어 외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 같소.
댄서: 저 놈의 태양이 날 태워 죽일 모양이구로군! (애처롭게) 한 때는 그렇게 자랑스럽던 내 피부였는데. 요 모양이라니 원!
신사: (애써 일어나려 하며) 이봐요. 그런 생각하지 맙시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요. 흑인과 둘이서 탄 구명선에 당신이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 보시오. 아직 나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았소.
댄서: 어떻게 내가 말 할 수가 있어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내 귀에다 뭔가를 소리치던 거친 목소리였어요. - 그게 뭔지 기억할 수가 없군요.
신사: 그밖에 것은 없었나요?
댄서: 아무 것도 없었어요. (잠시 후) 잠깐요! 그래요. 내가 깜빡 잊었던 것이 있어요. 누군가가 나에게 키스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요, 분명 누군가가 내게 키스를 했었다구요. 그러나 아니, 분명치는 않아요. 내가 꿈을 꾸었는지도 몰라요. 이 무시무시한 며칠 밤낮 많은 꿈을 꾸었거든요. (그녀 눈이 빛나고 입술이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중얼거린다.) 미친, 미친 꿈 말이에요.
신사: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진정해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키스를 했다고 했소. 잘못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난 분명 그런 적이 없소. 그리고 저 선원도 그랬을 리가 없어요.
댄서: 분명히 누군가가 그랬어요. 이 구명선에서가 아니라 내가 기절하고 있는 있었던 배의 갑판 위에서였을 거예요.
신사 : 누가 그랬을까요?
댄서: 내 생각을 감히 말할 순 없어요.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키가 크고 잘 생긴 커다란 검은 눈의 젊은 영국인 2등 항해사 기억나세요? 모든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거든요. - 약간 말이에요. 그가 나를 몹시 사랑한 걸 알아요. 분명히 그 사람이었을 거예요.
신사: 그래요. 그였겠군요.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과 이 선원 둘만이 탈 수 있는 구명선을 던져줬음에 틀림없어요. 그는 아마 이 구명선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했을 거요. 자신의 의무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그가 당신을 사랑했던 모양이요. 그것에 대해서 저 선원에게 물어 보겠소. 아마도 우리의 의문점을 풀어줄 것이요. (흑인에게) 여봐요, 선원 나리! (흑인은 노래를 멈추고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바라본다.) 2등 항해사가 자네에게 저 여인을 배에서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을 했었나?
선원: 모르겠습니다.
신사: 이 여자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도 구명선에 태우지 말라고 하던가? - 그리고 그 자신도 후에 타겠다고 말하더란 말이야?
선원: (화를 내며) 모르겠는데요. (그는 다시 돌아서서 노래를 시작한다.)
댄서: 더 이상 이 사람에게 말 걸지 맙시다. 그는 뭔가에 화가 나 있어요.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신사: 미쳐가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러나 당신에게 키스를 하고 당신 생명을 구해준 사람은 2등 항해사가 분명한 것 같구려.
댄서: 그는 나에게 친절하고 용감했어요. 또한 호의적이었구요. 그러나 그가 나를 죽게 내버려뒀더라면 좋았을 텐데. 차가운 파란 물 속에 가라 앉아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잠들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차갑게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내 머리는 작열하는 태양으로 까맣게 그을리고 있어요. 그래서 미쳐가고 있다구요. 우리 모두 미쳐가고 있단 말이에요. 당신의 눈동자도 때때로 거칠게 불꽃으로 타 오르고 있어요. - 그리고 저 뱃사람의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무시무시해요. - 그리고 내 눈엔 바다 위에서 춤을 추는 많은 핏방울들이 보여요. 그래요, 우리 모두 미쳐가고 있어요. (말을 중단한다.) 제발! 오 하느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야 하는 겁니까?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수년간 삶에 몸부림치다가, 성공과 명예 그리고 돈을 벌어서 말이에요. 그런데 미친개처럼 구명선 위에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녀는 절망에 빠져 운다.)
신사: 조용히 해요! 그렇게 실망해선 안 됩니다. 나도 역시 항의의 기도를 울먹일 수도 있어요. “ 오 하느님, 하느님! 20년간 부단히 고된 생활을 한 다음에, 그리고 지친 나날을 보낸 다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갖게 되었는데, 그런데 여기에 앉아서 비참하고도 버림 받은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잇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랜 세월의 내 노고에 대한 대가란 말입니까? 오 하느님, 이것이 바로 끝장이란 겁니까?”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로 정당하게 외쳐댈 수가 있어요. 그러나 무정한 하늘은 당신이나 나의 호소에 응답을 안 해줄 거요. 잔인한 바다 또한 우리 기도에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고 말이오.
댄서: 구명선 중 한 척이 육지에 닿아 우리 재난을 알려줄 희망은 없는 건가요? 생존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분명히 배를 보낼 텐데요.
신사: 우린 요 며칠 사이에 아주 멀리까지 표류해 나와 버렸소. 배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까 두렵소.
댄서: 그렇다면 우리는 발견될 수가 없겠군요! (그녀는 구명선 아래쪽을 향해 얼굴을 숙인다. 심한 흐느낌 소리가 그녀의 여윈 어깨를 들먹이게 한다.)
신사: 난 희망을 포기하지 않소. 내가 듣기로는 이 바다는 산호섬으로 가득하여 이제 곧 그것들 중 하나 가까이에 이를 것이 틀림없소. 우리 배가 부딪친 것도 해상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산호 암초였을 거요. 누군가가 “어떤 물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난 물 속에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소.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에게 하나의 의문점으로 남을 일이지만 말이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이 발작을 한다. 물을 마시면 살 것 같은데 - 조금만이라도 좋으니 - 물 몇 방울만 있어도 되는데. (강렬하게) 하느님, 마실 물이 약간만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댄서: 아마 섬에 이르면 물이 있을 테지요. 보세요, 자세히 보라구요! 우리가 말하는 사이 에 섬이나 배가 나타났을 수도 있으니까요. (말이 벗다. 갑자기 그녀가 일어나 앞을 똑바로 가리키면서 소리친다.) 보세요! 섬이에요!
신사: (떨리는 손으로 빛을 가리며 주변을 열심히 살펴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 핏빛 바다와 하늘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
댄서: (물위 멀리 어느 한 곳을 계속 바라보며 실망스러운 어조로 말한다.) 지나가 버렸어요. 그러나 분명히 섬을 보았어요. 우리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섬을 말이에요. 바라로 흘러 들어오는 맑은 개울물이 있는 온통 파랗고 깨끗한 섬이었어요. 돌 틈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요. 당신도 보았지요. 그렇지요? (흑인은 대답이 없다.)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나 틀림없이 보았다구요. 찾아봐야겠어요.
신사: (그녀 어깨를 흔들며)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 치워요. 당신이 말한 곳엔 섬이 없어요. 우리 주위엔 태양과 하늘, 바다 이외엔 아무 것도 없소. (흑인 선원은 노래를 멈추고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댄서: (화를 내며) 내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에요? 그렇담 내 눈을 못 믿는단 말인가요? 보았다고 말 했잖아요? - 시원하고 맑은 물을 말이에요. 돌 틈 사이로 흘러넘치는 물소리를 들었다구요.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전혀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어요. (갑자기 선원을 향해) 왜 노래를 멈춘 거요? 무서워서 인가요?
선원: (부르튼 혀를 내밀어 갈색의 긴 손가락으로 혀를 가리키며) 물! 물이 필요해요. 물 좀 주면 노래할게요.
신사: (격분해서) 우린 물이 없네. 바보 같으니라구! 우리가 물이 없는 것은 자네 때문이라구. 우리가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통 속에 남은 모든 물을 자네가 다 마셔 버렸지 않았어? 설령 우리에게 물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네에겐 줄 수가 없네. 자네는 고통을 받아야 싸지, 돼지 같은 친구! 우리 셋 중에 물이 남아 있다면 훔친 물을 감춘 자네일 걸세. (광기 어린 간교한 웃음으로) 그러나 자넨 그 물을 마시지 못할 걸세. 분명히 약속하지. 자넨 감시한다고. (흑인은 그들로부터 몸을 돌린다.)
댄서: (신사의 팔을 잡고 그의 귀에 대고 말한다. 그녀는 몹시 흥분해 있고 그는 미친 듯이 킥킥대며 웃고 있다.) 그가 물을 좀 가지고 있을까요?
신사: (킥킥대며)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요. 가지고 있을 거요.
댄서: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신사: 그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잖소? 뭔가 감춰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게 뭘까 생각해봤소. 그 다음 갑자기 혼자 생각했소. “물을 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요. 그리고나서 그에게 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소. 그가 우리들 중에 가장 나은 입장에 있도록 놔두지 않겠소. 그를 계속 감시할 거요. 우리가 그를 감시하고 있는 동안 그는 물 한 모금 못마실 거요. 할 수 있는 한 저 친구를 감시할 거요.
댄서: 물을 어디다 감추어 두었을까요? 내가 보기엔 아무데도 넣어둘 곳이 없는데요. (그녀가 갑자기 그의 광기어린 집착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신사: 알 수 없죠. 그가 옷 속에다 휴대용 물통을 감춰뒀을지도 모르니. 확신컨대 그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거요. 그러기에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견뎌내는 것 같지 않소? 그는 힘들이지 않고 일어설 수 있지만 우리는 움직일 수도 없잖소, 왜 그럴까요?
댄서: 그게 사실이에요. 그는 힘들이지 않고 일어서서 배를 찾고 있어요. 마치 배고픔이나 갈증 따위는 못 느끼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당신 말이 맞아요. 뭔가를 감춰두고 있음에 틀림없어요. -음식이나 물을 말이에요.
신사: (자신의 고정된 생각을 증명하고 싶은 강한 열정으로) 아니오. 그는 음식은 가지고 있지 않소. 음식은 결코 갖고 있지 않을 거요. 그러나 물은 있을 거요. 내가 왔을 때 구명선 위에는 물이 가득한 조그만 통이 하나 있었소. 내가 이곳에 온 두 번짼가 세 번째 날 저녁인데,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깨어나 보니 물통에 물을 어딘가에 부어 놓았는지 어제 밤의 물통에서 물을 마시려고 했을 때 물이 없었소. (격분해서 흑인의 등에다 그의 주먹을 흔들어대며) 오 돼지 같은 녀석! 망할 놈의 돼지! (흑인은 못들은 체한다.)
댄서: 물만 있으면 우리 목숨을 구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살인자나 다름없어요.
신사: (제 정신아 아닌 채 ) 내 말 들어봐요.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휴대용 물통에다 물을 부어 놨을 거요. 거기엔 상당한 양의 물이 들어 있을 거요. 그는 전혀 물을 마시지 못했소. 오 저 간사한 인간! 저 노래는 - 그건 단지 속임수에 불과해요. 우리가 보지 않을 때 그는 마실 거요. 그러나 더 이상 못 마실 거요. 왜냐하면 내가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 그를 감시할 것이오.
댄서: 당신이 그를 감시한다구요? 우리 두 사람에게 그게 소용 있는 일일까요? 감시한다고 해서 우리의 죽음이 늦추어질까요? 안돼요!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 물을 그로부터 빼앗아야 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구요.
신사: 우리들에게 물을 결코 주지 않을 거요.
댄서: 자는 동안에 훔쳐요.
신사: 자지 않을 거요. 저 친구가 잠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더군다나 우리는 그를 깨어 있게 해요.
댄서: (격렬하게) 그렇다면 우리가 그를 죽입시다. 그는 죽어도 싸요.
신사: 우리 보다 저 친구가 힘이 더 센데 - 그리고 그는 칼을 가지고 있소. 안돼요. 그렇게 할 수는 없소. 나도 기꺼이 그를 죽이고 싶소. 당신 말처럼, 저 친구는 죽어도 싸지. 그러나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소. 난 힘이 남아 있지 않아요. 무기도 없고. 그가 비웃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