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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시대에 즈음하여

김영관 2010. 11. 18. 11:52

 

 

 

 

인문학 위기 시대에 즈음하여

 

           김 영관

 

사물엔 외면과 외면 이면에 숨어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내면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과학발달과 더불어 외면에 드러나 보이는 현상을 중시하다 보니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간과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만능 사회는 오감으로 감지가 가능한 외면 세계 탐구에만 열을 올리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논리적이고 실증 가능한 것만을 신봉한 나머지 우리 인간들은 오감으로 감지되는 것이 아닌 것은 불신하려 듭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태도는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물을 2+2=4라는 공식으로 보려는 우를 범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이치가 2+2=5로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분야를 주로 다루는 학문이 인문학인 것입니다. 실증주의 중심의 과학을 만능으로 생각한 나머지 형이상학적인, 다시 말해,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학문, 인문학 경시 풍조의 도래는 매우 우려스러운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추세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삶이어서 나무랄 데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감지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고, 사람으로서 살아가야할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행하도록 가르치는, 윤리학, 철학, 그리고 이것들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문학을 경시하는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세상을 만듭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사람이 살아야할 바른 길을 인도하는 정신문화엔 무관심하게 되어 균형감각을 상실한 현대인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물에 존재하는 양면성 탐구엔 소홀케 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케 한 것입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삶을 살아가는데 편리는 하겠지만, 그 보다는 그 아파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인생관, 도덕관, 가치관 또한 이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린 언젠가부터 이런 것들은 무시한 채 그가 얼마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가가 인격을 재는 중요한 척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비싼 승용차를 탄 사람일수록 고귀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포장되어 보이는 사회야말로 기형적인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시대를 살아 가야할 사람들, 다시 말해 동시대인들에 대해 갖는 인간애, 부모와 은사에 대한 존경심, 부부애, 이 모든 것들이 가시적인 것들은 아니지만, 인문학을 통해 얻게 되는 귀한 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중히 하면 할수록 함께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귀한 학문이 인문학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문인들 역시 이웃의 사람들의 아픔과 고뇌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고 이의 표출에 심혈을 기우려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독자들로 하여금 인문학, 특히 문학을 기피케 하는데 문인들에게도 그 책임의 일부가 있지 않은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우리는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위기 극복에 심혈을 기우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