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세퍼드>
등장인물
다지:70대의 노인
헤일리:다지의 아내. 60대 중반
틸덴:다지의 장남
브래들리:차남
빈스:틸덴의 아들
셀리:빈스의 애인
듀이스:목사
[페이지] 003
[막] 1막
(낮. 무대 전면 왼쪽에 오래된 나무 계단. 빛바랜 낡은 카페트가 덮여 있다. 그 계단은 무대 왼쪽
윙으로 오르게 되어있다. 무대 후면 오른쪽에는 여기저기 속이 틀어져 나온 오래된 초록색 소파. 그
소파 오른쪽에 빛바랜 노란색 갓을 씌운 스탠드가, 그 옆의 작은 탁자 위엔 몇개의 약병이 놓여 있다.
소파 오른쪽 약간 옆으로 커다란 구식 텔레비젼이 놓여 있다. 그스크린에선 푸른 빛이 껌뻑거리고
있으나 내용도 알 수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안는다. 어둠속에서 램프와 텔레비젼 화면이 서서히
밝아진다. 무대 후면의 소파 뒤는 베란다로서 베란다와 소파 사이의 커다란 거실창은 방충용
스크린으로 되어 있다. 소파 오른쪽에 실내로 들어오는 문이 있다. 무대 왼쪽에 베란다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스크린 도어가 있다. 그 바깥으로 짙은 느릅나무의 형상이 보인다.
얼굴에 푸른 빛을 언듯언듯 받으며, 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다지의 모습이 서서히
보인다. 그는 낡아빠진 티셔츠와 카키색 작업복바지에 멜빵을 하고 갈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거기다
갈색 담요를 둘러쓰고 있다. 매우 허약하고 병색이 있어보이는 70대 후반의 늙은이다. 그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동안 조명이 서서히 무대를 꽉 메운다. 가벼운 빗소리. 다지는 고개를 젖혀 천정을
응시한다. 그리고 잠시 동안 빗소리를 듣는다. 다시 고개를 바로하여 텔레비젼을 본다. 고개를
왼쪽으로 천천히 돌려 옆자리의 방석을 바라본다. 둘러쓰고 있는 담요에서 왼팔을 내밀어 그 방석밑에
손을 넣는다. 그 속에서 위스키병을 꺼낸다. 왼쪽 계단을 쳐다보며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살핀 후에
병마개를 열어 길게 한모금 마신 후에 막는다. 술병을 다시 넣어놓고 텔레비젼을 본다. 천천히 작은
기침을 시작한다. 점점 거칠어진다. 한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진정시키려고 애쓴다. 기침소리 점점
높아지다가 층계 위에서 마누라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멈추어 버린다.)
[헤일리] (소리) 여보?
(다시. 말없이 텔레비젼만 본다. 오랜 사이. 한두번 콜록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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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소리) 여보! 약 드세요, 여보. 왜 기침이 나는지 아시죠? 비 때문이예요.날씨 탓이라구요.
그래요. 번번히 비때문에 기침을 하시죠. 비가 오기가 무섭기 시작한다니까요.(사이) 여보?
(대답은 않고 스웨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다시 텔레비젼을 본다. 사이)
[헤일리] (소리) 저 비를 좀 봐요. 억수로 쏟아져요. 다리도 금새 물에 잠길것만 같아요. 당신은
저게 뭐로 보여요?
(다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어깨 너머로 베란다를 내다본 후 다시 텔레비젼을 본다)
[다지] (혼잣말로) 난리로군!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당신 방금 뭐라 그랬어요, 여보?
[다지] (큰 소리로) 그게 비지 뭐긴 뭐야! 그저 평범한 비라구!
[헤일리] (소리)비자루요? 물론 비예요---여보, 당신 지금 어디 불편하세요? (사이) 대답 안하시면
내려갈 거예요.
[다지] 내려오지 마.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큰 소리로) 내려오지 말라구!
(다시 기침이 시작된다. 멈추고)
[헤일리] (소리) 그러니까 약을 드셔야죠. 왜 약을 안드실려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다지, 병을 꺼내 한모금 마시고 제자리에 둔다.)
[헤일리] (소리) 약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듣는다구요. 하나님의 뜻이
아무데나 필요한 건 아니예요. 우리가 뭘 알아요. 이 세상에는 목사님도 대답 못하는 문제가 많아요.
약 먹는게 뭐가 나빠요? 고통은 고통일 뿐이예요. 왜 사서 고생이죠?(사이) 여보, 당신 지금 야구
중계를 보세요?
[다지] 아니.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큰소리로) 아니라구.
[헤일리] (소리) 그럼 뭘 보세요? 자극적인 걸 보면 안돼요.특히 경마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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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건.
[다지] 일요인엔 경마가 없어.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큰소리로) 일요일엔 경마가 없다구.
[헤일리] (소리) 잘됐어요. 일요일엔 경마같은 건 없어야 해요/
[다지] 그래, 없다니까.
[헤일리] (소리) 좋아요. 아직도 그런 규칙이 있다니 놀랍군요. 굉장해요.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굉장하다구!
[다지] 굉장하지.
[헤일리] (소리) 그래요. 정말 굉장하죠. 옛날에는 크리스마스에도 경마가 있었어요. 커다란
크리스마스 츄리가 결승점에 반짝거리고 있었죠.
[다지] (고개를 저으며) 천만에.
[헤일리] (소리) 설날에도 경마를 하곤 했죠. 생각이 나요.
[다지] 설날에는 경마를 안했어.
[헤일리] (소리) 어떤 때는 했다구요.
[다지] 안했다니까.
[헤일리] (소리)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는 했단 말이예요.
(다지, 계단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소파에 기대 텔레비젼을 본다.)
[헤일리] (소리) 한번 가본 적이 있어요. 어떤 남자하구.
[다지] (흉내내어) 오, 남자하구.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아무것도 아니야.
[헤일리] (소리) 근사한 남자였어요. 사육사였죠.
[다지] 뭐였다구?
[헤일리] (소리) 사육사요, 말사육사. 진짜 전문가였죠.
[다지] 전문가---? 대단하군.
[헤일리] (소리) 그럼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구요.
[다지] 그치가 뭐 한둘은 가르쳐 줬겠지. 마굿간 구경깨나 시켰을게야.
[헤일리] (소리) 말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었죠. 그날 걸린 상금은 모두 따먹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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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뭐라구?
[헤일리] (소리) 상금말이에요.돈! 그날 경기를 다 맞췄던 것 같아요.
[다지] 상금이라구?
[헤일리] (소리) 단식경기는 다 이겼어요.
[다지] 상금---?
[헤일리] (소리) 그게 바로 그런날들 중의 하나였어요.
[다지] 설날?
[헤일리] (소리) 그래요. 아마 플로리다였을 거예요. 어쩌면 캘리포니아였는지도 몰라. 어쨌든 둘중
하나예요.
[다지] 내가 맞춰 볼까?
[헤일리] (소리) 플로리다였어요.
[다지] 그래!
[헤일리] 아주 멋진 날이었어요. 태양이 작열했죠. 홍학이 춤을 추고 분꽃에다가 승리의 종려나무!
[다지] (흉내내어) 승리의 종려나무.
[헤일리] (소리) 온 천지가 활기에 차 있었어요.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모두들 옷을
빼입었어요. 요즈음 같지 않아요. 요즈음 옷입는 것과는 달랐다구요.
[다지] 그게 도대체 언제지?
[헤일리] (소리) 당신을 알기 오래 전이죠.
[다지] 그렇겠지.
[헤일리] (소리) 훨씬 전이죠. 어떤 남자가 동반해 줬다구요.
[다지] 플로리다까지?
[헤일리] (소리) 그래요. 플로리다까지. 아니, 캘리포니아인지도 몰라요. 확실치 않아요.
[다지] 거기 도착할 때까지 계속 동반했단 말이지.
[헤일리] (소리) 아무렴요.
[다지] 그리구서도 그치가 당신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단 말이지? (오랜 침묵) 그래?
(대답 없다. 오랜 사이.)
[헤일리] (소리) 당신 오늘 외출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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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비를 가리키며) 이 빗속에?
[헤일리] (소리) 난 지금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고 있다구요.
[다지] 날씨가 화창해도 잘 안나가는데 저 빗속엘 나가?
[헤일리] (소리)오늘도 쇼핑을 할 수가 없어서 물어본 거예요. 필요한 거 있으면 틸덴한테
부탁하세요.
[다지] 틸덴은 여기 없어.
[헤일리] (소리) 부엌에 있을 거예요.
(다지, 무대 왼쪽을 바라본 후 다시 텔리비젼을 향한다.)
[다지] 알았어.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큰소리로) 알았다구!
[헤일리] (소리) 소리지르지 말아요. 당신 기침이 도지게 돼요.
[다지] 알았어.
[헤일리] (소리)필요한 거 있으면 틸덴한테 말하세요.(사이) 브래들리는 늦을 거예요.
[다지] 브래들리가?
[헤일리] (소리) 당신 이발해 주러 온다고 했어요.
[다지] 내 머리를? 난 머리 깎지 않을 거야.
[헤일리] (소리) 아프지 않을 거예요.
[다지] 필요없어!
[헤일리] (소리) 벌써 2주일이 넘었어요, 여보.
[다지] 필요없다니까.
[헤일리] (소리) 난 듀이스 목사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요.
[다지] 당신, 브래들리에게 분명히 일러둬. 만일 이발기구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구.
[헤일리] (소리) 늦지 않을께요. 늦어도 네시 전으로 올 거예요.
[다지] 분명히 일러두라구.지난 번에도 그녀석은 내 머리털을 다 뽑아놨어. 그런데 나는 깨지
않았어. 자고 있었다구. 깨보니 가고 없더군.
[헤일리] (소리) 그건 내 탓이 아이예요.
[다지] 당신이 그애를 부추겼지.
[헤일리] (소리) 됐어요. 그만 하세요. 왼종일 그딴소리! 더이상 들을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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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없지.
[다지] 그녀석한테 말하는 게 좋을걸.
[헤일리] (소리) 당신이 직접 말하지 그래요. 그앤 당신 자식예요. 아들하고 얘기도 못한단
말이예요?
[다지] 잠자면서 어떻게 얘길해? 내가 자는 동안에 머릴 깎았다니까.
[헤일리] (소리) 다시는 안그럴 거예요.
[다지] 어떻게 알아?
[헤일리] (소리) 그애가 당신 허락없인 깎지 않도록 할께요.
[다지] (사이) 그 녀석은 여기 올 이유가 없어.
[헤일리] (소리) 그 애는 책임을 느껴요.
[다지] 내 머리에 대해서?
[헤일리] (소리) 당신 외모에 대해서요.
[다지] 내 꼬락서니가 그녀석한테 무슨 상관야? 내가 어떻게 보이건 나도 상관 안하는데. 내 모습은
사라져 버렸어. 난 이제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
[헤일리] (소리) 또 우스광스러운 소리!
[다지] 그 녀석에게 제발 관두라고 그래. 할말은 이것 뿐이야.
[헤일리] (소리) 틸덴이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다지] 텔덴이 브래들리의 짓거리를 막을순 없어.
[헤일리] (소리) 그애가 형이 잖아요. 왜 못 막아요?
[다지] 텔텐은 제몸 하나도 지키질 못해.
[헤일리] (소리) 소리가 너무커요. 다 듣겠어요. 그애는 지금 부엌에 있단 말이에요.
[다지] (부엌을 향해 소리지른다) 틸텐!
[헤일리] (소리) 여보, 뭘 하려고 그러세요?
[다지] 틸텐, 이리 들어와!
[헤일리] (소리) 왜 그렇게 소란떨기를 좋아하세요?
[다지] 좋아한다구?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
[헤일리] (소리) 그런 무서운 말일랑 하지 마세요.
[다지] 틸덴!
[헤일리] (소리) 그런말은 모든걸 포기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구요.
[다지] 틸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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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소리) 사라들이 예수를 믿는 것도 당연해요.
[다지] 틸덴!!
[헤일리] (소리) 사람들이 거리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것도 이상할게 없다구요.
[다지] 틸덴!!!
(다지, 발작적으로 기침을 한다. 무대 왼쪽에서 틸덴이 옥수수를 한아름 안고 들어온다. 그는 다지의
장남으로 40대 후반. 무거운 군화에 진흙이 묻어있고 암녹색 작업복 바지와 격자무늬의 셔츠에 빛바랜
갈색 쟈켓차림. 머리는 비에 젖어있다. 옥수수를 안고 무대 중앙에 서서 다지의 기침소리가 멈출
때까지 다지를 쳐다본다. 다지, 천천히 틸덴을 쳐다본다. 옥수수를 본다. 한참 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헤일리] (소리) 여보, 당신이 약을 드시지 않겠다면 강요하진 않겠어요.
(두 사람 다 그 소리를 무시한다.)
[다지] (틸덴에게) 너 그거 어디서 났니?
[틸덴] 꺾어왔어요.
[다지] 그걸 전부 꺾어왔어?
(틸덴, 끄덕인다.)
[다지] 무슨 손님이라도 오는 거냐?
[틸덴] 아뇨.
[다지] 그건 어디서 꺾었냐?
[틸덴] 이 뒤에서요.
[다지] 뒤 어디?
[틸덴] 바로 이 뒤라고 했잖아요.
[다지] 거긴 아무 것도 없어.
[틸덴] 옥수수가 있어요.
[다지] 1935년 이후로는 이 뒤에 옥수수가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심은 게 그때야.
[틸덴] 지금은 있다니까요.
[다지] (층계 윗쪽을 향하여 고함친다.)여보!
[헤일리] (소리)네,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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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틸덴이 여기 옥수수를 한아름 안고 왔는데 이 뒤에 어디 이런 게 있었지?
[틸덴] (혼자서) 얼마나 많다구.
[헤일리] (소리) 잘 모르겠는데요.
[다지] 거봐, 내 말이 맞지.
[헤일리] 1935년 이후로는 없었을 걸요?
[다지] (틸덴에게) 봐. 1935년 이라고 하잖아.
[틸덴] 지금은 있다니까요.
[다지] 빨리 가! 있던 곳에 갖다 둬.
[틸덴] (사이. 다지를 응시하며) 내가 꺾어온 거예요. 이 빗속에서. 한번 꺾은 것은 도로 붙일 수
없어요.
[다지] 난 57년 동안 여기서 남에게 폐를 끼쳐본 적이 없어. 이웃이 누군지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빨리 도로 갖다 놔.
(틸덴. 다지를 빤히 쳐다보며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무릎에 옥수수를 쏟아놓고 물러선다. 다지.
옥수수를 쳐다본 후 틸덴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오랜 사이.)
[다지] 틸덴, 너 무슨 문제라도 있니? 무슨 문제가 생겼어?
[틸덴] 아무 문제도 없어요.
[다지] 말해 봐.그래도 난 네 애비가 아니냐?
[틸덴] 아버진 줄 잘 알아요.
[다지] 뉴멕시코에서 약간 문제가 있던 건 안다. 그래서 이리로 온거지.
[틸덴]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다지] 네 에미가 내게 죄다 말해줬어.
[틸덴] 뭘요?
(틸덴, 자켓으로부터 씹는 담배를 꺼내서 한 잎 털어 넣는다.)
[다지] 다시 되풀이 할 필요는 없지. 아무튼 네 에미는 다 이야길 했단 말이다.
[틸덴] 부엌에 가서 의자를 좀 갖고 오겠어요.
[다지] 뭐라고?
[틸덴] 의자를 좀 갖고 오겠다구요.
[다지] 좋아, 가서 갖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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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왼쪽으로 나간다. 다지, 무릎에 있는 옥수수를 바닥으로 밀어버린다. 화가 나서 담요를 벗어
소파 끝으로 던진다. 병을 꺼내 한모금 마신다. 텔덴. 밀킹 스툴과 양동이를 들고온다. 다지, 틸덴이
보기 전에 방석 밑에 술병을 감춘다. 틸덴, 스툴을 소파 옆에 내려놓고 그 위에 앉는다. 양동이를 놓고
앉아서 옥수수를 한 개씩 집어서 껍질을 깐다.)
[다지] (사이) 그 옥수수 참 실해보이는구나.
[틸덴] 모두가 알찬 것들 뿐이라구요.
[다지] 개량종인가?
[틸덴] 뭐라구요?
[다지] 그것들이 개량종인가 말이야.
[틸덴] 아버지가 심으셨잖아요. 제가 어떻게 알리 있겠어요?
[다지] (사이) 틸덴, 봐라. 넌 여기 아주 머물 수가 없어. 그건 너도 알잖니, 그렇지?
[틸덴] (침을 찍 뱉으며)안있을 거예요.
[다지] 그럴 줄 알았어. 그 문제는 걱정을 안한다. 내가 말을 꺼낸 이유는 그게 아니야.
[틸덴] 그럼 뭐예요?
[다지] 네가 무엇을 할 지 걱정이 되서 물은거야.
[틸덴] 아버진 제 걱정을 안하시잖아요.
[다지] 내가 걱정을 왜하니?
[틸덴] 아버진 제가 여기 없을 때, 뉴멕시코에 있을 때도 제 걱정은 한번도 안하셨죠.
[다지] 물론 그때도 안했지.
[틸덴] 바로 그때 제 걱정을 했어야 했어요.
[다지] 그건 왜 그렇지? 거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잖니?
[틸덴] 네, 아무 일도 없긴 했어요.
[다지] 그런데 왜 걱정을 했어야 하지?
[틸덴] 혼자서 너무 외로웠으니까요.
[다지] 외로웠기 때문이라고?
[틸덴] 그래요. 그땐 정말 외로웠어요.
[다지] 왜 그랬지?
[틸덴] (사이) 갖고계신 위스키 한모금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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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무슨 위크키말이냐? 위스키같은 건 없어!
[틸덴] 방석 밑에 있잖아요.
[다지] 방석 밑에 뭐가 있다고 그래? 네 할 일이나 잘해. 제기랄! 20년동안 보이지도 않던 놈이 난데
없이 나타나서 생트집이야.
[틸덴] 트집이 아니예요.
[다지] 방석 밑에 술을 감춰뒀다고 하는게 트집이 아니고 뭐냐?
[틸텐] 트집이 아니라구요.
[다지] 분명히 방석 밑에 술을 숨겨놨다고 말했겠다?
[헤일리] (소리)여보?
[다지] (틸덴에게) 네 에미도 알고 있니?
[틸덴] 어머닌 모르실 거예요.
[헤일리] (소리)여보,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다지] 지금 틸덴과 이야기하고 있어.
[헤일리] (소리) 틸덴 거기 있어요?
[다지] 그래, 여기 있어.
[헤일리] (소리) 뭐라구요?
[다지] (큰소리로) 있단 말이야.
[헤일리] (소리) 거기서 뭐해요?
[다지] (틸덴에게) 대답하지 마.
[틸덴] 전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니예요.
[다지] 나도 알고 있어.
[헤일리] (소리) 틸덴이 거기서 뭐하냐구요?
[다지] (틸덴에게) 잠자코 있어.
[틸덴] 알았어요.
[헤일리] (소리) 여보!
(두사람. 조용히 앉아있다. 다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틸덴, 계속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다.
담배껌을 씹으면서 이따금 침을 뱉는다.)
[헤일리] (소리)여보! 그애 지금 술먹고 있는 거 아니죠? 그애는 술을 먹으면 안돼요. 우리는 그애를
잘 돌봐야 해요. 그건 우리들의 책임이예요. 그앤 더이상 자신을 돌볼 수 없으니 우리가 돌봐야죠.
그애를 어디로 보낼 수는 없어요. 돈이나 많다면 보낼 수 있겠지만 우린,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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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앞으로도 그렇구요. 그러니 우리가 건강해야죠. 사실 우리를 돌봐줄 사람도 없잖아요.
브래들리는 우릴 돌볼 수 없어요. 제 몸 하나도 잘 추스르지 못하는 판이잖아요. 브래들리가 다리를
잃은 후 부터는 틸덴이 그애를 돌보길 바랐죠. 틸덴이 형이니까요. 그애가 모든 걸 책임질줄 알았는데
저 꼴이 될줄 누가 았았겠어요? 미국 대표팀의 선수였는데. 풀백인지 쿼터백인지 이젠 그것도 잘
모르겠어.
[틸덴] (혼자서) 풀백이었지.(옥수수 껍질을 계속 벗긴다.)
[헤일리] (소리) 틸덴이 저렇게 되고 난 후, 나의 희망은 오직 안셀이었지. 그녀석은 잘생겼다기보단
괜찮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거야. 그녀석이 제일 나았지. 확실히 브래들리보다는 나았어. 나가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오진 않았으니까 틸덴보다도 나았어. 그런 녀석이 죽자 나는 세상에 나혼자 남은 것 마냥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지. 그 녀석은 정말 괜찮았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녀석이었지.
(헤일리, 층계 끝으로부터 천천히 나타난다.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그녀의 발이 보이면서 한
발짝씩 계단을 내려온다. 마치 상중인양 온통 검은 색으로 입고 있다. 검은 핸드백, 베일 달린 모자.
팔꿈치까지 오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다.65세 정도로 보이며 완전히 백발이다. 내려오는 동안 그녀는
자기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담배를 피우고, 옥수수를 까고있는 두 사람이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헤일리] 그 녀석이라면 우리를 돌볼 수 있었을 거야. 틀림없는 우리 집안의 영웅이었어. 진짜
영웅이었지. 용감하고 강하고 지적이기도 했어. 살아있었다면 훌륭한 사람이 됐을 거야. 뭔가 훌륭한
일을 하면서 죽어갈 놈인데. 군인이 되었더라면 훈장깨나 받았을 게야. 그렇게 용기로 똘똘 뭉쳐져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듀이스 목사님에게 그 녀석의 조그만 비석이나 하나 세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지
목사님도 동의해 주셨어. 목사님 자신도 안셀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안셀의 동상을 건립해 주십사고
시의회에 건의까지도 하셨지. 한 손에 농구공을 들고 다른 손에 장총을 들고있는 커다란 동상을. 그게
다 목사님이 안셀을 좋아하신 때문이지.
(헤일리,무대에 내려서서 두 파로 얼굴을 감싸고 자기 말에 도취된 듯 무대를 빙빙돈다.)
[헤일리] 물론 그 녀석이 카톨릭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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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 틸덴이 카톨릭 여자는 악마의 화신이라고 누차 이야기 했건만 그녀석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사랑에 눈이 멀었던거야. 결혼식은 마치 장례식과 같았지. 결혼식에 참석한 이태리 사람들의
검고 번질번질한 머리카락과 값싼 향수 냄새는 잊을 수가 없어. 나에게는 주례를 서는 신부조차 마치
권총을 차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어. 그녀석이 신부에게 반지를 줄 때 나는 그가 죽으리란 걸 알았어.
그놈이 신혼여행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란 것을 말이야. 내가 그놈에게 키스할 때 그놈의 입술이
그렇게 창백하게 냉냉할 수가 없었어. 그전에는 그런 입맞춤이 한번도 없었어. 그래서 그년의 저주를
받았다는 걸 알았지. 그놈의 영혼조차도 깡그리 뺏겨버렸던거야. 난 정말 잊을 수가 없어. 신부란 년이
카톨릭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눈으로 당신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난
어쩔 도리가 없었지. 아무도리도 없었어. 그년이 악마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어. 그런 말을 했다간
그놈이 내게 등을 돌리고 날 미워했을 거야. 그놈이 날 미워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그냥 가게 내버려
뒀지. 그가 떠나는 걸 보고만 있었어. 그년을 리무진에 태우고 멀어져가는 걸 보고만 있었지. 차창으로
사라지는 그녀석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헤일리, 갑자기 멈춰서 옥수수 껍질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좌우를 살핀다.
갑자기 돌아서서 조용히 앉아있는 두사람을 쏘아본다. 다시 옥수수 껍질을 본다.)
[헤일리] (옥수수 껍질을 가리키며) 이게 다 뭐야? (발로 껍질을 차면서) 이런 게 우리 집에 왜
있지?
(틸덴, 옥수수 껍질까기를 멈추고 그녀를 쳐다본다.)
[헤일리] (다지에게) 당신이 틸덴을 부추겼죠?
(다지, 다시 담요를 당겨 목에 감는다.)
[다지] 이 빗속에 외출하려고?
[헤일리] 지금은 비가 안와요.
(틸덴, 다시 옥수수를 까기 시작한다.)
[다지] 플로리다에는 비가 안오지.
[페이지] 015
[헤일리] 플로리다는 무슨 플로리다요?
[다지] 경마장에도 비가 안올걸.
[헤일리] 약드셨우? 약만 드시면 엉뚱한 소리를 하신단 말이야. 틸덴, 아버지 약드셨니?
[틸덴] 아무 것도 안드셨어요.
[헤일리] (다지에게) 도대체 뭘 드셨우?
[다지] 캘리포니아에도 플로리다에도 그리고 경마장에도 비는 오지 않아. 오직 여기 일리노이
한곳에만 비가 내리고 있다구. 다른 곳은 모두 황금 햇살이 내려 쬐고 있단 말이야.
(헤일리, 탁자로 가서 약병을 확인한다.)
[헤일리] 어느걸 드셨우? 틸덴, 아버지 뭘 드시는지 지켜봤어야지.
[틸덴] 아무 것도 안드셨다니까요.
[헤일리] 그렇다면 왜 저렇게 이상한 소리를 하시지?
[틸덴] 저는 내내 여기있었어요.
[헤일리] 그렇다면 함께 뭘 먹었구나.
[텔딘] 전 옥수수만 까고 있었어요.
[헤일리] 그 옥수수는 어디서 났니? 왜 갑자기 집안이 옥수수 투성이지?
[다지] 대수확이지.
[헤일리] (무대 중앙으로 움직이며) 근 30년만에 옥수수는 처음이군.
[틸덴] 뒷뜰엔 옥수수 천지예요. 보이는 게 전부 옥수수예요.
[다지] (헤일리에게) 당신이 이층에 있는 동안 일이 일어났어. 당신이 이층에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돌아가구 있다구. 옥수수도 계속 자라고 비도 계속 내리구.
[헤일리] 나도 내 주변에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요.2층에서 세상 일을 많이 구경했어요. 창문으로
뒷마당도 봤구요. 그렇지만 옥수수는 없었어요. 절대로 없었다구요!
[다지] 틸덴은 거짓말을 안해. 그애가 있다고 하면 있는거야.
[헤일리] 틸덴, 이 옥수수들은 다 뭐냐?
[틸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뒷마당엘 갔죠. 비가 내리고 있는데 돌아오기 싫었어요. 추운 줄도
몰랐구요. 옷이 젖는 것도 상관 없었어요. 그냥
[페이지] 016
걸었죠. 진흙 투성이가 됐으나 그것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앞을 보니까 옥수수가 서있었어요. 옥수수
밭 가운데 서있었던 거예요. 옥수수에 파묻혀 있었죠.
[헤일리] 바깥에는 옥수수가 없어. 훔치거나 샀겠지.
[다지] 그애가 돈이 어디있어?
[헤일리] (틸덴에게) 그럼 훔친 거로군.
[틸덴] 훔치지 않았어요. 전 일리노이에서 쫓겨나기 싫어요. 뉴멕시코에서 쫓겨나고 여기서도
쫓겨나긴 싫어요.
[헤일리] 옥수수가 어디서 났는지 말하지 않으면 이 집에도 못붙어 있을줄 알아!
(틸덴, 울먹인다. 그러나 옥수수는 계속 까고 있다.사이.)
[다지] (헤일리에게) 왜 그애한테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어디서 났건 무슨 문제야? 왜
그래?
[헤일리] ((다지에게) 당신 잘못예요. 당신이 뒤에서 그렇게 시킨 거죠? 당신은 분명히 그런 걸
재미있게 하실 분이에요. 옥수수 껍질로 지붕이라도 이을 작정인가요? 브래들리가 보기 전에 빨리
치우는 편이 좋을 거예요.
[다지] 브래들리는 문전에 얼씬도 못해!
[헤일리] (옥수수 껍질을 발로 툭툭 차며 이리 저리 걸음을 옮기면서) 브래들리가 이꼴을 보면
발광할걸. 집안 어지러운 꼴을 못보는 애니까. 뭐 하나만 삐뚤어져도 참지 못하지. 당신도 그애를
알죠?
[다지] 그놈은 여기서 살지 못해!
[헤일리] 여기가 우리집이듯 그애의 집이기도 해요. 여기서 태어났으니까요.
[다지] 그놈은 돼지우리에서 태어났어.
[헤일리] 그런 소리 마세요. 제발.
[다지] 그놈은 더러운 돼지우리에서 났어. 거기서 태어났으니 그게 제집이지. 이 집 식구가 아니야.
[헤일리] (멈춘다.) 당신 도대체 뭐에 홀렸어요? 뭐에 홀렸냐구요? 점점 악마가 돼 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그렇게도 좋던 사람이.
[다지] 오십보 백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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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밤낮 방구석에 쳐박혀서 악마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자기 혈육에 대해서 못할 소리나
해대고.
[다지] 그놈은 내 혈육이 아니야. 내 혈육은 이미 뒷마당에 묻어버린지 오래야.
(모두 얼어 붙는다. 오랜 사이. 두 남자. 헤일리를 본다.)
[헤일리] (조용하게) 됐어요, 여보, 이제 그만 하세요. 전 듀이스 목사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요.
안셀의 기념비를 부탁할 거예요. 동상이든지 기념패만이라도.
(헤일리, 오른쪽 문으로 건너간다. 멈춰서)
[헤일리] 필요한 거 있으면 틸덴한테 얘기하세요. 식탁에 돈 좀 두고가요.
[다지] 필요한 거 없어.
[헤일리] 그럴 줄 알았어요.(문을 열고 밖을 본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네. 난 비개인 후의
냄새가 좋아요. 땅 냄새 말이예요. 늦지 않을께요.
(문을 닫고 나간다. 무대 왼쪽 스크린 도어로 가느라고 베란다에 모습이 보인다. 베란다 한가운데
멈추면서)
[헤일리] 여보, 틸덴을 뒷뜰에 못나가게 하세요. 비가 오는데 뒤에 가는건 좋지 않아요.
[다지] 당신이 직접 말해. 여기 앉아 있잖아.
[헤일리] 어디 제 말을 들어야죠. 전부터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다지] 좋아, 내가 하지.
[헤일리] 우린 계속해서 그애를 보살펴야 해요. 여태까지 처럼. 틸덴은 아직 어린애예요.
[다지] 내가 보살피지.
[헤일리] 좋아요.
(헤일리, 왼쪽 스크린 도어로 건너간다. 우산을 펴들고 문 밖으로 나간다. 문이 쾅 닫힌다. 오랜
사이.틸덴, 계속 옥수수를 깐다. 양동이를 보면서. 다지, 담배에 불을 붙여 문다. 텔레비젼을 본다.)
[틸덴] (옥수수를 까면서) 어머니께 이야기 하지 말아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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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텔레비젼을 보면서) 뭐 말이냐?
[틸덴] 아까 한 말요. 아시잖아요.
[다지] 네가 거기 대해서 뭘 알아?
[틸덴] 알아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아요. 우리 모두 알아요.
[다지] 결국 마찬가지 아니야. 온 식구가 알고 온 식구가 잊었으니!
[틸덴] 어머니는 잊지 않았어요.
[다지] 네 에미도 잊었을거야.
[틸덴] 여자들은 달라요. 어머니가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겠어요.
[다지] 그 얘긴 하고 싶지 않다.
[틸덴] 무슨 얘길 하고 싶으세요?
[다지]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썽이라든가 50년 또는 30년전에 일어났던 일이나
경마장이나 플로리다 또는 내가 옥수수를 마지막으로 심은 때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구.
[틸덴] 그럼 죽고 싶으세요?
[다지] 죽고 싶지도 않아.
[틸덴] 그럼 말을 하세요. 안그러면 죽어요.
[다지]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하든?
[틸덴] 내가 알았어요. 뉴멕시코에서요. 죽는 줄 알았는데 목소리만 잃었어요.
[다지] 누가 같이 있었냐?
[틸덴] 혼자였어요. 죽는 줄 알았죠.
[다지] 넌 거기 그대로 있는 편이 좋았을거야. 여긴 뭐하러 돌아왔지?
[틸덴]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어요.
[다지] 넌 이제 어른이야. 네 나이엔 부모가 필요 없어. 널 위해 우리가 해줄 건 이제 없어. 거기선
먹고 살 길이 없더냐? 너하나 입에 풀칠도 못하겠더란 말이냐? 왜 돌아왔어? 죽을 때까지 우리가
먹여주길 바라냐?
[틸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다지] 나는 양친께 돌아가지 않았어. 결코. 그런 생각조차 안했지. 독립했던 거야. 늘 독립해서
혼자 살았지.
[틸덴] 뭘 해야할 지 몰랐어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더라구요.
[다지] 생각할 게 뭐 있니? 그저 나아가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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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일어선다.)
[틸덴] 모르겠어요.
[다지] 어딜 가니?
[틸덴] 뒤에요.
[다지] 거기 가면 안된다. 네 에미말 들었지? 네가 무슨 귀머거리라도 되니?
[틸덴] 전 뒤가 좋아요.
[다지] 비가 오는데도?
[틸덴] 비 올 때가 더 좋아요.
[다지] 넌 내 시중을 들어야 돼. 나한테 필요한 걸 갖다주기도 하면서 말이야.
[틸덴] 뭐가 필요하세요?
[다지] 아무 것도 필요없어. 그렇지만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지. 언제 뭐가 필요하게 될 지 몰라. 단
일분이라도 혼자 있을 순 없어.
(다지, 기침을 시작한다.)
[틸덴] 바로 밖에 있을께요. 필요하시면 큰소리로 부르세요.
[다지] (기침을 하면서) 안돼. 너무 멀어! 나가지 마! 너무 멀다구! 들리지 않을 거야.
[틸덴] (약병있는 데로 가면서) 왜 약을 안드세요? 약 드릴까요?
(기침 소리 거칠어진다. 다지, 목을 움켜쥐며 소파에 몸을 던진다. 틸덴, 어쩔도리 없이 보고만
있다.)
[다지] 물, 물 좀 다오!
(틸덴, 왼쪽으로 달려간다. 다지,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면서 탁자위의 약병들을 더듬는다. 몇개의
약병이 마루바닥에 떨어지고 결국 한 약병을 움켜쥐고 약을 꺼내 삼킨다. 틸덴, 물을 한 컵 들고
뛰어온다. 다지, 그걸 받아 마신다. 기침 가라앉는다.)
[틸덴] 괜찮으세요?
(다지, 끄덕인다. 물을 좀 더 마신다. 틸덴, 다가선다. 다지, 물 컵을 탁자 위에 놓는다. 기침이
완전히 가라앉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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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좀 누워 쉬세요. 잠시만요.
(다지를 소파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준다.)
[다지] 안나갈 거지?
[틸덴] 알았어요.
[다지] 내가 깼을 때 반드시 여기 있어야 돼.
[틸덴] 있을께요.
(틸덴, 담요를 여며준다.)
[다지] 여기 꼭 있거라.
[틸덴] 의자에 앉아 있을께요.
[다지] 저건 의자가 아니야. 밀킹스툴이야.
[틸덴] 알아요.
[다지] 의자라고 부르지 마.
[틸덴] 알았어요.
(틸덴, 다지의 야구모자를 벗기려 한다.)
[다지] 뭐하는 짓이야! 벗기지 마! 벗기지 말라구! 이건 내 모자야.
(틸덴, 모자를 그냥 둔다.)
[틸덴] 알아요.
[다지] 이 모자를 안쓰고 있으면 브래들리 놈이 내 머릴 다 밀어버릴 거야. 이건 내 모자라구.
[틸덴] 아버지 모잔줄 알아요.
[다지] 내 모자 벗기지 마!
[틸덴] 걱정 마세요.
[다지] 여기 있어야 돼.
[틸덴] (스툴에 앉으며)이렇게 있을께요.
[다지] 절대 나가지 마. 밖엔 아무 것도 없어.
[틸덴] 안나갈께요.
[다지] 여기에 죄다 있지않니? 너에게 필요한 건 모두다 말이야. 식탁위에 돈도 있구. TV는
켜져있니?
[틸덴] 네, 켜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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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꺼버려!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짓거리야.
[틸덴] (텔레비젼을 끈다. 조명 어두워진다.) 아버지가 켜두셨잖아요.
[다지] 아무튼 끄란 말이야.
[틸덴] (다시 앉으며) 껐어요.
[다지] 다시 켜지 마.
[틸덴] 알았어요.
[다지] 내가 잠들면 켜서 봐도 좋아.
[틸덴] 알았어요.
[다지] 야구를 봐도 좋아. 너 레드삭스 팀 좋아하지?
[틸덴] 네.
[다지] 그럼, 레드삭스 팀의 게임을 봐. 그럼 피위리스도 볼 수 있을 거야. 너 피위리스 생각나냐?
[틸덴] 아뇨.
[다지] 피위리스가 레드삭스 팀이었냐?
[틸덴] 모르겠어요.
[다지] 피위리스 (잠에 빠져 들어가면서) 카디널스 팀도 좋지! 너 스탠뮤지얼은 생각나냐?
[틸텐] 아뇨
[다지] 스탠뮤지얼. (점점 잠속에 빠져 들어가면서) 만루. 6회초 만루. 주자는 1,3루에 있었지. 매우
빠른 너크볼. 딱! 공은 로켓트처럼 날아올라서 자동기록기와 버마면도기 광고탑사이를 똑바로
날아왔어. 나느 그쪽에 있는 첫번째 어린이였지. 첫번째 말이야. 나는 공을 줏으려고 열심히 싸웠어.
사람들이 내 귀를 찢을 듯이 덤벼들었지만 나는 공을 포기하지 않았어.
(다지, 깊은 잠에 빠진다. 틸덴, 잠시 다지를 바라보면서 앉아있다가 천천히 몸을 기울여 다지가
잠들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방석 밑에 손을 넣어 술병을 꺼낸다. 다지는 정신없이 자고 있다.
틸덴, 다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나서 술병을 따 죽 들이킨다. 술병을 막아 뒷주머니에 넣는다.
흩어진 옥수수 껍질을 보고나서 다지 쪽으로 시선이 간다. 무대 가운데로 나와 옥수수 껍질을 끌어모아
안고 다지 곁에 다가가 그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옥수수 껍질로 다지를 조심스레 덮는다. 몇 발자욱
물러나와 다지를 본다. 다지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뒷주머니에 넣는다. 바닥이 깨끗해질 때까지
옥수수 껍질을 모아 다지를 덮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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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결국 다지는 몸만 빼놓고 온몸이 옥수수 껍질로 덮힌다. 다시 한모금 더 마시고 잠자는 다지를
일별하고 조용히 왼쪽 문으로 나간다. 빗소리 계속되면서 오랜 사이. 다지, 계속 자고 있다. 왼쪽
스크린 도어로 부터 브래들리의 모습이 나타난다. 비를 피하려고 덮어 쓴 신문지가 푹 젖어있다. 문을
여는데 대단히 힌들어하며 미끌어져 넘어질 뻔한다. 다지, 계속 자고
[브래들리] 니미 씨팔!
(브래들리, 베란다에 신문을 벗어 던지고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기 위해 머리를 흔든다. 어깨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턴다. 그는 회색 털스웨터를 입고, 검정멜빵을 매고, 헐렁한 암청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덩치 큰 사나이다. 그의 왼쪽 다리는 목발이다. 무릎부터 절단된 것이다. 걸을
때마다 목발과 연결된 부분에서 가죽과 금속의 마찰음이 들린다. 다리대신 상체를 많이 사용해 팔과
어깨가 매우 단단해 보인다. 틸덴보다 5살정도 나이가 적어 보인다. 무대 오른쪽 문으로 매우 힘겹게
걸어가서 열고 들어간 후 닫는다. 다지를 알아보지못하고 층계 쪽으로 간다.)
[브래들리] (2층을 향해) 어머니!
(대답을 기다리다가 무대 안쪽으로 돌아서서 다지가 자고 있는 것을 본다. 옥수수 껍질을 덮고 있는
것도 본다. 천천히 소파로 다가간다. 양동이 옆에 서서 그 속을 들여다 본다. 옥수수 껍질을 본다.
다지, 흥얼거리며 계속 자고 있다.)
[브래들리] 빌어먹을! 이게 뭐야?!
(잠자는 다지의 얼굴을 보며 지겹다는 듯 머리를 흔든다.주머니에서 검정색 전기이발기를 꺼낸다.
코드를 풀고 램프옆으로 간다. 거북하게 무릎을 굽혀 플러그를 꽂는다. 일어나서 다지의 머리쪽으로
간다.소파를 지렛대삼아 의지한 채 옥수수 껍질 몇개를 난폭하게 밀어낸다. 다지의 야구모자를 벗겨서
무대중앙으로 던진다. 다지, 여전히 잠들어있다.브래들리, 다지의 머리를 깎는다. 이발기 소리와
빗소리가 섞인 채 조명, 서서히 어두워진다.)
[페이지] 023
[막] 2막
(무대는 1막과 같다. 낮. 빗소리. 다지, 아직 소파에서 자고 있다. 그의 머리는 완전히 삭발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다. 모자는 아직 무대 중앙에 버려져 있다. 옥수수 껍질과 양동이,
밀킹스툴은 치워져있다. 무대 왼쪽 밖에서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무대가 밝아진다. 다지는
계속 자고 있다. 스크린 도어를 통해서 셀리와 빈스가 나타난다. 비를 피하느라고 빈스의 코트를
머리위에 같이 덮어 쓴 채로, 셀리, 약 19세 정도 검은 머리의 예쁜 처녀이다. 달라붙는 진바지를 입고
굽높은 구두를 신고, 자주색 티셔츠와 짤은 토기털코트를 입고 있다. 진한 화장에 파마기가 강한
머리이다. 빈스는 틸덴의 아들로 22세 가량되어 보인다. 그는 격자무늬 셔츠에 바지, 검은 안경,
카우보이 구두를 신고 쎈스폰 가방을 들고 있다. 두사람, 베란다에 들어와서 비를 턴다.)
[셀리] (웃으면서, 집을 가리키며) 여기야?
[빈스] 여기야.
[셀리] 이게 집이란 말이야?
[빈스] 그렇다니까.
[셀리] 믿어지지 않아.
[빈스] 왜?
[셀리] 마치 노만 라크웰의 책표지에 나오는 집같아.
[빈스] 도대체 뭐가 어떻다는 거야? 미국 집들이 이렇지.
[셀리] 우유 배달부와 조그만 개는 어디 있죠? 그 개 이름이 뭐더라? 스팟? 제인? 딕?
[빈스] 집어쳐!
[셀리] 딕, 제인, 스팟, 엄마, 아빠, 쥬니어, 씨시!
(무릎을 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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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자, 자, 이게 우리 집야. 뭘 기대했어?
(셀리, 걷잡을 수 없는듯 신경질적으로 웃는다.)
[셀리] "그리고 터피, 토토, 두다와 본조는 어느날 마샬씨의 귀여운 고양이에게 먹이를 사주려고
모퉁이에 있는 식료품점으로 갔습니다."
(셀리,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아 웃는다. 빈스, 그녀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빈스] 셀리, 일어나!
(셀리, 배를 움켜쥐고 빙빙 돌면서 정신없이 웃는다.)
[셀리] "마샬씨는 휴가중이었으며 네명의 꼬마가 자기의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지를
몰랐답니다."
[빈스] 체면 좀 차려!
[셀리] (진정하려고 애쓰며) 미안해.
[빈스] 까불지 좀 마!
[셀리] (그에게 경례하며) 네, 알아모시겠읍니다.
(낄낄거린다.)
[빈스] 맙소사! 야, 셀리!
[셀리] (사이, 웃으면서)"그리고 마샬씨는---"
[빈스] 그만 두지 못해!
(셀리, 멈춘다. 빈스를 쳐다보며 서 있다. 웃음을 억누른다.)
[빈스] (사이) 이젠 다 웃었니?
[셀리] 네, 나으리.
[빈스] 그렇게 바보같이 굴면 같이 들어가지 않겠어.
[셀리] 알았어!
[빈스] 정말이야!
[셀리] 다신 애먹이지 않을께. 걱정 마.
[빈스] 걱정하는게 아냐.
[셀리] 아니긴!
[빈스] 셀리, 잘들어. 낄낄거리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고 싶진 않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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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널 이상한 아이로 볼거야.
[셀리] 이상해졌지 뭐.
[빈스] 그렇지 않아.
[셀리] 이상해도 한참 이상해졌어.
[빈스] 그렇지 않다니까.
[셀리] 빈스도 역시 이상해졌구.
[빈스] 나도 너처럼 잘못된 곳은 없어.
[셀리] 빈스한테 뭐가 문젠지 알아?
[빈스] 뭐가 문제지?
(셀리, 웃는다.)
[빈스] (왼쪽 스크린 도어 쪽으로 간다.) 난 가겠어!
[셀리] (웃음을 멈추고) 기다려. 기다리라니까!(빈스, 멈춘다.) 넌 매사에 너무 심각해서 탈이야.
그게 네 문제야.
[빈스] 난 그저 그들이 난데 없이 나타난 놈으로 생각하는 게 싫은거야.
[셀리] 그들이 어떻게 생각해주길 바라지?
[빈스] (사이) 그런 거 없어. 자, 들어가자.
(베란다를 건너 오른쪽 문으로 간다. 셀리,뒤따른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빈스,머리를 들이민다.
잠자고 있는 다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단을 향해 소리친다.)
[빈스] (2층을 향해) 할머니!
(셀리, 웃음을 터트린다. 빈스, 머리를 빼내고 문을 닫는다. 두 사람의 소리만 들린다.)
[셀리] (소리((웃음을 멈추고) 미안해. 미안해, 빈스. 정말이야. 다신 안 그럴께. 참을 수가 없었어.
[빈스] (소리) 뭐가 그렇게 우습니?
[셀리] (소리) 알아. 미안해.
[빈스] (소리) 나한텐 심각해. 6년 동안 그들을 보지 못했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라.
[셀리] (소리) 알았어. 다신 안그럴께.
[빈스] (소리) 입다물고 있는거지?
[셀리] (소리)"할머니"하고 부르지만 마. 알았어?(낄낄거리다 멈춘다.) 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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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할머니"라고 부르면 웃지 않을 수 없다구.
[빈스] (소리) 참아봐.
[셀리] (소리) 알았어.
(다시 문이 열린다. 빈스,입구에 머리를 들이민다. 셀리, 그 뒤를 따른다. 빈스, 계단 쪽으로 가서
섹스폰 가방을 코트를 내려놓고 계단을 올려다 본다. 셀리, 다지의 야구 모자를 발견한다. 그것을
주워서 써본다. 빈스, 계단을 올라 사라진다. 셀리, 빈스가 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리다가 소파에
있는 다지를 본다. 모자를 벗는다.)
[빈스] (소리) (2층에서) 할머니!
(셀리, 천천히 다지 곁에 다가선다. 그의 머리맡에 서서 깎여버린 머리의 상처를 만져본다. 만지는
순간 다지가 눈을 뜨고 소파에 일어나 앉는다. 셀리, 숨을 헐떡인다. 다지, 그녀를 본다. 그녀가 쥐고
있는 모자를 보고서는 재빨리 머리로 손을 가져간다. 셀리를 빤히보며 모자를 낚아채서 쓴다. 셀리가
물러선다. 다지, 셀리를 응시한다.)
[셀리] 저는---빈스와 함께 왔어요.
(다지, 계속 셀리를 응시한다.)
[셀리] 빈스는 2층에 있어요.
(다지, 계단을 보고 나서 다시 셀리를 본다.)
[셀리] (2층을 향해) 빈스!
[빈스] (소리) 잠깐만!
[셀리] 내려와봐.
[빈스] (소리) 잠깐만!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야.
(다지, 계속 셀리를 본다.)
[셀리] (다지에게) 막 도착했어요.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잠깐 머물기로 했죠. 빈스가 할아버질
매우 보고 싶어했죠.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고 하면서. (사이, 다지 계속 셀리를 본다.) 저희들은
뉴멕시코로 빈스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그의 아버지가 거기 계신다고 들었어요. 도중에
여기 들러 할아버지도 만나고, 일석이조라는 말 아시죠?
(사이. 다지, 셀리를 응시한다. 셀리, 2층을 향해 고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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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빈스, 제발 좀 내려와.
[빈스] (계단을 반쯤 내려온다.)잠깐 나가셨나봐.
(셀리, 소파와 다지를 가리킨다. 빈스, 다지를 본다. 내려와서 다지에게로 간다. 셀리, 계단근처에
머물러 있다.)
[빈스] 할아버지?
(다지, 빈스를 본다. 그러나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다.)
[다지] 술 가져왔니?
(빈스, 세리를 돌아본 후 다시 다지를 향한다.)
[빈스] 할아버지 저얘요. 빈스예요. 틸덴 아들요. 알아보시겠어요?
(다지, 빈스를 본다.)
[다지] 내가 시키는 대로 안했지. 여기 머물지 않았어.
[빈스] 할아버지, 전 지금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아니예요.
[다지] 나갔단 말이지. 나가지 말라는데도 뒷뜰에 나갔어. 이 빗속에.
(빈스, 셀리를 본다. 셀리, 천천히 소파고 다가간다.)
[셀리] 그 사람 괜찮아요?
[빈스] 모르겠어.(선글래스를 벗으며) 할아버지, 저 좀 보세요. 생각 안나세요? 손자 빈스란
말이예요.
(다시, 빈스를 보고 야구모자를 벗는다.)
[다지] (머리를 가리키며) 날 혼자 둬서 어떻게 되었는가 봐. 보라구. 이꼴이 됐어.
(빈스, 다지의 머리를 본다. 머리를 만져보려고 손을 뻗는다. 다지, 들고 있던 모자로 빈스의 손을
뿌리치고 머리에 쓴다.)
[빈스] 무슨 일예요, 할아버니? 할머니는 어딜 가셨죠?
[다지] 그 여편네 걱정은 마. 며칠간 안들어올 거야. 들어온다고 했어도 안올게 뻔해.(웃음 시작)
늙어도 바람기는 남아있지.(웃음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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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할아버니, 머리는 왜 그러셨어요?
[다지] 내가 그런게 아니야. 웃지는 마.
[빈스] 그럼 누가 그랬어요?
(사이. 다지, 빈스를 본다.)
[다지] 넌 누가 그랬다고 생각하니? 누구라고 생각해?
(셀리, 빈스 곁으로 간다.)
[셀리] 빈스, 우리 가는게 낫겠어. 이런 건 싫어. 좋은 시간을 갖겠다고 한건 이런 게 아니잖아.
[빈스] (셀리에게) 잠깐만 있어봐.(다지에게) 할아버지, 저는 방금 도착했어요.6년 동안 떨어져 있던
제가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사이. 다지, 빈스를 본다.)
[다지] 아무 것도 모른다구?
[빈스] 그렇다니까요.
[다지] 그거 좋은 일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편이 훨씬 좋지. 좋구 말구.
[빈스] 여기 혼자 계세요?
(다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대 왼쪽을 본다.)
[다지] 틸덴이 있었는데.
[빈스] 아녜요, 할아버지. 아버진 지금 뉴멕시코에 있어요. 제가 그리로 가는 길예요. 아버질
만나러.
(다지, 천천히 빈스를 돌아보며)
[다지] 틸덴은 여기 있어.
(빈스, 물러서서 셀리에게 간다. 다지, 그 두 사람을 본다.)
[셀리] 오늘 밤은 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오는게 어때? 아침엔 사정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잖아!
[빈스] (셀리에게) 염려하지마. 걱정할 거 없다구. 늙어서 그런거야.
[셀리] 걱정하는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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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너희들은 어울리지 않아.
[셀리] 그래요? 왜 그렇죠?
[빈스] 쉿! 대들지 마.
[다지] 그래 어울리지 않아. 틀렸어.
[빈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다지]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냐? 말이면 다 떠드는 거냐? 입술에 침도 안바르고?
[빈스] 그동안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다지] 그래?
[빈스] 네, 모든걸 다르게 기대했었거든요.
[다지] 뭘 기대해? 널 누구로 맞을 줄 알았냐?
[빈스] 저예요. 손자 빈스예요.
[다지] 빈스, 내 손자라---
[빈스] 틸덴 아들말예요.
[다지] 틸덴 아들, 빈스?
[빈스] 오랫동안 절 못보셨어요.
[다지] 언제보고 못봤지?
[빈스] 생각이 안나요.
[다지] 그래, 기억할 수가 없니?
[빈스] 네.
[다지] 기억을 못한단 말이지? 네가 기억을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기억해?
[셀리] 빈스, 좀 와봐. 우리 나가.
[빈스] (셀리에게) 걱정 마.
[셀리] 걱정하는 게 아니야.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잖아.
[빈스] (다지에게로 간다.) 할아버지, 저 좀 보세요.
[다지] 거기 서! 다가오지 마!
(빈스, 멈춘다. 셀리를 보고 다지를 본다.)
[셀리] 빈스, 못견디겠어. 저분은 우리가 여기 있는게 싫은 거야.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구.
[다지] 저 여자 이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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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고마워요.
[다지] 대단히 이뻐.
[셀리] 맙소사!
[다지] (셀리에게) 이름이 뭐지?
[셀리] 셀리예요.
[다지] 셀리라, 남자이름 아니냐?
[셀리] 전 여자예요.
[다지] (빈스에게) 똑똑한데.
[셀리] 빈스, 가!
[다지] 저 여자가 가고 싶어 하는구나. 금방 와 갖구선 가고싶데.
[빈스] 여기가 낯설어서 그래요.
[다지] 익숙해질 거야.(셀리에게) 어디서 왔니?
[셀리] 고향 말예요?
[다지] 그래,고향 말이야, 어디서 태어났어?
[셀리] LA요.
[다지] LA라구? 그 멍청한 동네.
[셀리] 도저히 못참겠어. 믿어지질 않아.
[다지] LA는 바보동네야. 플로리다도 그렇고. 모든 양지바른 고장은 모두 엉터리야. 왜 그런지
알겠어?
[셀리] 왜죠?
[다지] 내 일러주지. 거긴 똑똑한 체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거든. 그게 바로 이유야.
(셀리, 다지에게서 등을 돌려 계단으로 가 앉는다.)
[다지] (빈스에게) 나 저 여자에게 창피줄려고 한 말은 아니야.
[빈스] 할아버지, 체면 좀 지키세요.
[다지] 모욕을 당했군. 쟤 좀 봐라. 내 집에서 모욕을 당했어. 모욕을 당해서 토라졌어. 토라지긴 왜
토라져.
[셀리] (빈스에게) 흥, 기막혀! 근사하군. 내가 나쁜 인상을 줄까봐 걱정했단 말이지?
[다지] 저 여자 색골이군. 진짜 색골이야---. 나도 한창 시절에 몇씩 거느렸지. 모두 일주일도 채
넘기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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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할아버지---!
[다지]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마. 할아버지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가 난다. 나한텐 손자가 없어.
(다지, 방석 밑에 숨겨둔 술병을 찾기 시작한다. 셀리, 계단에서 일어난다.)
[셀리] (빈스에게) 어쩌면 집을 잘못 찾았는지도 몰라. 그런 생각 안들어?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같아.
[빈스] 잘못 찾은게 아니야. 마당까지도 생각이 나는데.
[셀리] 그렇지만 사람은 생각이 안나지? 저 할아버진 빈스를 손자가 아니라고 하잖아.
[다지] (술병을 찾으면서) 내 술병 어디갔어!
[빈스] 아프시든가 무슨 일이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다지] 내 술병 어디갔냐구?
(다지, 소파에서 일어나 방석을 더진다.)
[셀리] 뉴멕시코로 계속 가. 이 집안에 더 있는 건 끔찍해. 칠면조 요리, 애플파이같은 걸 먹게 될
줄 알고 왔단 말이야.
[빈스] 실망시켜서 미안해.
[셀리] 실망한 게 아니야. 무서워서 그래. 가고 싶어.
(다지, 무대 왼쪽을 향해 소리친다.)
[다지] 틸덴! 틸덴!
(다지, 술병을 찾느라고 다시 소파를 뒤적인다. 빈스와 셀리, 다지를 지켜본다.)
[빈스] (셀리에게) 정신이 완전히 나가셨나봐. 내가 도와드려야만 되겠어.
[셀리] 빈스나 도와. 난 가겠어.
(셀리, 가려고 나선다. 빈스, 그녀를 붙잡는다. 다지가 소파를 쥐어 뜯으며 소리를 지를 때 그들은
싱갱이를 계속한다.)
[다지] 틸덴! 이리와! 틸덴!
[셀리] 가겠어.
[빈스] 가긴 어딜 가겠다는 거야! 여기서 한발짝도 못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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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이거 놔!(내가 무슨 물건이라도 된단 말이야?
(무대 왼쪽에서 갑자기 틸덴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당근을 한아름 안고있다. 다지, 셀리, 빈스, 모두
틸덴을 보고 동작을 멈춘다. 틸덴, 당근을 안고 천천히 무대 중앙에 와서 선다. 다지, 기진맥진해서
소파에 주저 앉는다.)
[다지] (틸덴에게) 어디갔다 오는 길이냐?
[틸덴] 뒤에요.
[다지] 내 술병 어딨어?
[틸덴] 없어졌어요.
(틸덴과 빈스, 서로 쳐다본다 셀리, 뒤로 물러난다.)
[다지] (틸덴에게) 내 술병 몰래 가져갔지?
[빈스] (틸덴에게) 아버지?
(틸덴, 빈스를 본다.)
[다지] 내 술병 빨리 가져와! 이 나쁜 놈아!
[빈스] (틸데에게) 저예요. 빈스예요.
(틸덴, 빈스를 쳐다본 후 다지와 셀리를 번갈아 본다.)
[틸덴] (사이) 당근을 뽑아왔는데 필요하면 더 가져올 수도 있어.
[셀리] (빈스에게) 이 분이 아버님이세요?
[빈스] (틸덴에게) 아버지, 여기서 뭐 하세요?
(틸덴, 빈스를 본다. 당근을 안은 채, 다지, 담요를 끌어 덮는다.)
[다지] (틸덴에게) 빨리 술사와! 네 에미 오기 전에 빨리 사오란 말야! 돈은 식탁 위에 있어.(왼쪽
부엌을 가리킨다.)
[틸덴] (머리를 저으며) 전 마을에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셀리, 틸덴에게로 향한다. 틸덴, 셀리를 본다.)
[셀리] (틸덴에게) 빈스 아버님 되시나요?
[틸덴] (셀리에게) 빈스라구?
[셀리] (빈스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당신 아들이라는데 알아보시겠어요? 가족끼리 서로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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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빈스를 본다. 다지, 담요를 덮어쓰고 앉아서 바닥을 본다.)
[틸덴] 아들이 있긴 있었는데 우리가 묻어버렸어.
(다지, 재빨리 틸덴을 쳐다본다. 셀리, 빈스를 본다.)
[다지] 입닥쳐! 네 까짓게 뭘 안다고 그래.
[빈스] 아버지! 전 아버지가 지금 뉴멕시코에 계신 줄 알고 있었어요. 아버질 만나러 그리 가는
중이었다구요.
[틸덴] 상당히 멀텐데.
[다지] (틸덴에게) 넌 아무 것도 몰라. 그 일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어. 오래 전부터.
[빈스] 무슨 일이 있었군요, 아버지? 여긴 어떻게 된 거예요? 모든게 잘돼 가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구요. 할머닌 어떻게 되셨어요?
[틸덴] 나가셨어.
[셀리] (틸덴에게) 당근 받아드릴까요?
(틸덴, 셀리를 본다. 셀리, 팔을 벌리며 틸덴에게 다가선다. 틸덴, 셀리의 팔을 보면서 당근을
쏟아놓는다. 셀리, 당근을 안고 서 있다.)
[틸덴] (셀리에게) 당근 좋아하니?
[셀리] 그럼요. 야채는 모두 좋아하는걸요.
[다지] (틸덴에게) 할망구 오기 전에 빨리 술사와!
(다지, 주먹으로 소파를 친다 빈스, 다지에게로 간다. 그리고 다지를 위로한다. 셀리와 틸덴은 서로
얼굴을 보고 서있다.)
[틸덴] (셀리에게)뒤에가면 옥수수, 당근, 감자같은 게 많아.
[셀리] 빈스 아버님 맞죠?
[틸덴] 온갖 야채가 다 있어. 야채를 좋아한다고 했지?
[셀리] (웃으면서) 네, 아주 좋아해요.
[틸덴] 우리 당근으로 요리를 하자. 네가 다듬으면 요리를 할 수 있어.
[셀리] 그래요.
[틸덴] 양동이와 칼을 갖다줄께.
[셀리]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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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금방 갖다줄께. 어디 가지 마.
(틸덴, 왼쪽으로 나간다. 셀리, 당근을 한아름 안고 무대 중앙에 서있다. 빈스, 다지 옆에 서있다.
셀리, 빈스를 보고나서 다시 당근을 내려다 본다.)
[다지] (빈스에게) 너, 술 좀 사다 주겠니?(왼쪽을 가리키며) 돈은 식탁 위에 있어.
[빈스] 할아버지, 잠깐 누워 계시지 그래요?
[다지] 눕고 싶지 않아. 누워있을 때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난단 말이야. (모자를 벗는다.) 봐.
누워있다보면 이 꼴이 된단 말야.(모자를 다시 쓴다.) 누워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나 봐. 보라구.
술병을 훔쳐가지 않나 머리를 자르지 않나 어린애를 죽이지 않나! 그런 일이 생긴다구.
[빈스] 그만 고정하세요.
[다지] (사이) 한 병 사다줄 수 있겠지? 그걸 막을 사람은 없어.
[셀리] 빈스, 술 좀 사다드리지 그래? 술을 드시면 알아보실지도 모르잖아.
[다지] (셀리를 가리키며) 봐라! 쟤도 술을 사다줘야한다고 그러잖니?
(빈스,셀리에게 간다.)
[빈스] 그 당근 갖고 뭐하는 거야?
[셀리] 빈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
[빈스] 셀리, 당근 내려 놔! 이야기좀 하자구. 네 도움이 필요해.
[셀리] 돕고 있잖아.
[빈스] 넌 문제를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어. 사태를 악화시킨다구. 빨리 당근 내려 놔!
(빈스, 셀리에게서 당근을 빼앗으려 한다. 셀리, 피한다.)
[셀리] 가까이 오지 마! 그대로 있어!
(빈스, 물러 선다. 셀리, 아직 당근을 안고 있다.)
[빈스] (셀리에게) 너 왜이러니? 나를 놀리는거야? 우리 가족들 앞이잖아!
[셀리] 날 바보 취급하지 마. 누군 여기가 좋아서 있는 줄 알아. 천리만리 달아나고 싶단 말야.
여기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어. 하지
[페이지] 035
만 네가 원하니까 있는 거야 그러니 당근도 잘라야 하고 요리도 해야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하겠어. 뭔가 해야만 견딜수 있다구.
[빈스] 셀리, 그 당근 내려 놔!
(틸덴. 양동이와 밀킹스툴, 칼을 들고 왼쪽에서 들어온다. 양동이와 스툴을 무대 중아에 내려놓고
셀리를 본다. 셀리, 빈스를 흘깃보고 스툴에 앉아서 당근을 바닥에 내린다. 틸덴에게서 칼을 받아든다
다시 빈스를 보고나서 당근을 한 개 집는다. 당근 끝을 잘라 양동이에 담는다. 반복한다. 빈스, 셀리를
노려본다. 셀리, 웃는다)
[다지] 저 여자가 술을 사다주라고 그랬는데, 차라리 자기가 가면 한 병 값에 두 병도 가져올 수
있으련만.
(셀리, 계속 당근을 다듬으면서 웃는다. 빈스, 다지에게 간다. 틸덴, 셀리의 손을 보고 있다. 오랜
사이.)
[빈스] (다지에게) 전 하나도 안변했다구요. 키도 몸무게도 그밖에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예요.
(다지, 빈스가 얘기하는 동안 계속 셀리를 쳐다본다.)
[다지] 참 예쁜 여자야, 대단히.
(빈스, 다지 앞에 막아서서 시선을 차단한다. 다지, 셀리를 보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일때 빈스가
옛날 습관을 보이려고 애쓴다.)
[빈스] 보세요. 이거 생각나세요? 식사 때마다 손가락을 꺾곤 했죠. 기억 나세요?
(빈스, 손가락을 꺾어보인다. 다지, 언듯 보고나서 다시 셀리를 본다. 빈스, 다시 막아서며 다른
동작을 보인다.)
[빈스] 이건요?
(입술을 벌려서 손톱으로 자신의 이를 톡톡 친다. 드럼치듯이. 다지, 잠시 본다. 틸덴, 그 소리를
향한다. 빈스, 틸덴이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틸덴에게로 간다. 동작을 계속하면서. 다지,
텔레비젼을 켜서 본다.)
[빈스] 아버지, 기억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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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계속한다. 틸덴, 잠시 보고 나서 셀리에게로 눈길 돌린다. 빈스, 계속하면서 다지에게로
향한다. 셀리, 틸덴과 이야기하며 계속 당근을 다듬고 있다.)
[셀리] (틸덴에게) 저이는 때때로 날 당혹하게 하곤 해요.
[빈스] (다지에게) 이건 생각날 거예요. 내가 이런 장난을 한다고 집밖으로 쫓아내곤 했잖아요.
(빈스, 셔츠를 끌어올려 배를 내놓는다. 배꼽 좌우를 움켜쥐고 말하는 입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다지에게 보인후 틸덴에게로 간다. 다지, 틸덴, 모두 흘깃보고 무시한다.)
[빈스] "안녕하세요? 저도 좋아요. 매우 고맙습니다. 이 좋은 일요일 아침, 만나서 반가워요. 전 물
한동이를 가지러 철물점에 가는 길이예요."
[셀리] 빈스, 제발 장난은 그만 둬.
(빈스, 동작을 멈추고 셔츠를 여민다.)
[셀리] 오, 주님! 이분들이 결코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니죠?
(셀리, 계속 당근을 다듬는다. 빈스, 천천히 틸덴에게로 간다. 틸덴, 셀리를 본다. 다지,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빈스] (셀리에게) 이해가 안돼. 정말 모르겠어. 내가 틀렸나. 어쩌면 내가 뭘 잊고 있나봐.
[다지] (소파에서) 술사다주는 걸 잊고 있지 않니? 네가 잊고 있는 건 바로 그거야. 술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은 많은데 갖고 오는 놈은 하나도 없어. 당근 다듬고 이빨에다 피아노치는 일이 그렇게 급해?
너희들도 늙어봐라. 움직일 수 없게 돼봐.
(빈스, 다지에게로 간다. 오랫동안 그를 본다.)
[빈스] 술사다 드릴께요.
[다지] 그래?
[빈스] 네.
(셀리, 칼과 당근을 든 채 벌떡 일어난다.)
[셀리] 나혼자 두곤 아무데도 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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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셀리에게 가면서) 무슨 소리하고 있어? 아까는 사다드리라고 하더니!
[셀리] 그렇지만 여기 혼자 남아 있을 순 없어.
[빈스] 어떻게 된거야? 조금전만 해도 밤새 당근을 다듬을 것 같더니.
[셀리] 빈스가 여기 있을 때만 그렇지. 뭔가 일을 해야만 짜증을 부리지 않을 것 같았다구. 아무튼
혼자 있을 수는 없어.
[다지] 저 여자 말에 귀기울이지 마. 오래 같이 있을 여자는 못돼.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알아봤지.
[셀리] (다지에게) 그땐 잠들어 있었잖아요.
[틸덴] (셀리에게) 당근은 그만 다듬을 거야?
[셀리] 계속할 거예요.
(셀리, 스툴에 앉아서 당근 다듬기를 계속한다. 사이, 빈스,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다지와 틸덴을
번갈아 보면서 왔다갔다 한다. 빈스와 셀리, 눈길을 주고 받는다. 다지,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빈스] 참 이상하군! 정말 이상해.(주위를 빙빙 돌면서)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어. 내가 무슨
죽을 죄라도 졌단 말인가? 하긴 그렇지. 아직 결혼도 안했으면서.(셀리, 그를 흘긋 보고 계속 당근을
다듬는다.) 그렇다고 이혼을 한 것도아니잖아. 쌕스폰에 미친 적이 있었던 것밖엔.
[셀리] 빈스, 너 지금 뭐하고 있니? 저분들이 어디 그런 데 관심이나 갖고 있는 줄 알아? 그저 널
못알아 보는 것 뿐이라구.
[빈스] 어떻게 못알아 볼 수가 있냐 말이야. 내가 그들의 피붙이가 분명한데.
[다지] (텔레비젼을 보면서) 넌 내 피붙이가 아니야. 나도 있긴 있었는데 너는 아니야.
(오랜 사이. 빈스, 다지를 보고나서 틸덴을 본다. 그리고 셀리에게 돌아선다.)
[빈스] 셀리, 나 좀 나갔다 오겠어. 술 사가지고 바로 올께. 혼자 있을 수 있지?
[셀리]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빈스]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러나 뭔가 하기는 해야 돼.
[셀리] 그냥 가버리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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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안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야겠어.
[셀리] 너 왜 내 생각은 조금도 안해주는 거지? 이 사람들이 나를 못알아볼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분들을 본 적이 없어. 누군지 전혀 몰라.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나봐.
[빈스] 그렇지않아. 필시 관계가 있을거야.
[셀리] 그건 빈스 생각이지!
[빈스] 틀림없는 우리 가족이야. 내가 그걸 모르겠어? 시간을 좀 줘,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잠깐
나갔다 올께. 별 일 없을 거야.
(셀리, 그를 본다. 사이.)
[셀리] 좋아.
[빈스] 고마워,(다지에게로 가서) 가서 술 사올께요.
[다지] 좋아.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빈다.(왼쪽을 가리키며) 돈은 식탁 위에 있어.
(빈스, 셀리에게로 간다.)
[빈스] (셀리에게) 괜찮지?
[셀리] (당근을 다듬으면서) 괜찮아. 빈스 없는 동안 열심히 일하지 뭐.
(빈스, 셀리의 손을 열심히 보고 있는 틸덴을 본다.)
[다지] 초지일관, 알았지? 그게 중요한 거야. 초지일관, 인내, 결단이 인생의 세가지 미덕이야. 이
세가지만 지키면 만사형통이지.
[빈스] (틸덴에게) 아버지, 필요한 거 없으세요?
[틸덴] (빈스에게) 나 말이냐?
[빈스] 저 지금 할아버지 술을 사러 가게에 가는 길이예요.
[틸덴] 그분은 술을 마시면 안돼. 어머니가 아시면 야단이 나.
[빈스] 저렇게 마시고 싶어하는 데도요?
[틸덴] 아무튼 마시면 큰일난다구.
[다지] (빈스에게) 그녀석 말 듣지 마! 아까 내게 한 말 꼭 지켜야 돼.
[빈스] (다지에게) 아버지께서 술마시면 안된다고 그러시는데요.
[다지] 저 녀석은 제 정신이 아냐. 저 녀석을 봐라. 보라구.
(빈스, 틸덴을 본다.틸덴은 여전히 당근을 다듬는 셀리의 손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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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자, 이제 날 봐. 여길 보라구.
(빈스, 다시 다지에게 시선을 옮긴다.)
[다지] 우리 둘중에 누가 더 믿을만 하냐? 그야 바로 나지? 아무데서나 야채를 뽑아오는 녀석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 다시 한번 저 녀석을 잘 보라구.
(빈스, 다시 틸덴을 본다.)
[셀리] 빈스, 빨리 갔다 와.
[빈스] (셀리에게) 정말 괜찮겠어?
[셀리] 괜찮아. 이젠 이 집이 편해졌어.
[빈스] 그래?
[셀리] 당근이 있으니까 모든게 편해.
[빈스] 금방 올께.
(빈스, 무대 왼쪽으로 나간다.)
[다지] 어디가는 거야?
[빈스] 돈 가지러요.
[다지] 돈 가지고선?
[빈스] 가게에요.
[다지] 다른데 가면 안된다. 어디가서 한잔하지 말고 곧장 와야 돼.
[빈스] 알았어요.
(빈스, 왼쪽으로 나간다.)
[다지] (빈스를 불러) 꼭 사와야 돼! 뒤에는 가면 안된다. 가던 길로 곧장 와야 돼. 지금부터 너를
기다릴거야. 뒤에는 가지 마.
[빈스] (소리) 딴데로 새지 않을테니 염려마세요.
(다지 돌아와 틸덴과 셀리를 본다.)
[다지] 아무래도 염려스러워. 뒷뜰에 갔다간 빠져죽을걸. 구덩이에 빠질거야. 그럼 내 술은 어떻게
되는 거지.
[페이지] 040
[셀리] 걱정마세요. 조심해서 잘 갔다올테니까요.
[다지] 그렇겠지? 틀림없이 그렇겠지?
(빈스, 2달러를 손에 쥐고 무대에 나타난다. 다지를 지나 무대 오른쪽으로 간다.)
[다지] (빈스에게) 돈 가지고 가는 거야?
[빈스] 네, 2달러 가지고 가요.
[다지] 2달로도 돈이야, 웃지 마.
[빈스] 무슨 술 사올까요?
[다지] 위스키! 골드 스타 사워 매쉬를 사오라구. 길 잃지 말고 잘 다녀와.
[빈스] 알았어요.(빈스, 오른쪽 문으로 간다. 문을 연다. 틸덴의 소리를 듣고 멈춘다.)
[틸덴] (빈스에게) 뉴멕시코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지?
(빈스, 틸덴을 돌아본다. 시선이 마주친다. 빈스, 고개를 저으며 문밖으로 나간다. 틸덴, 그를
보고있다. 사이.)
[셀리] 정말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시겠어요? 두 분중에 한 분이라도 말씀이예요.
(틸덴, 다시 고개를 돌려 당근 다듬는 셀리의 손만 바라보고 있다.)
[다지] (텔레비젼을 보며) 누굴 알아봐?
[셀리] 빈스요.
[다지] 빈스의 뭘?
(다지. 담배를 피워문다. 가벼운 기침을 하면서 텔레비젼을 본다.)
[셀리]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에요. 옳지 않다구요.
(다지. 담배를 피우면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틸덴] 그를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해.
[셀리] 그래요?
[틸덴] 그를 닮은 얼굴이 생각나는 것 같아.
[셀리] 빈스의 옛날 얼굴일 거예요. 6년이나 못보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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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6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다구?
[셀리] 빈스의 말로는요.
(틸덴, 그녀 앞에 서성거리고 셀리는 계속 당근을 다듬는다.)
[틸덴]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게 어디지?
[셀리] 그걸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빈스를 안게 겨우 몇달 전인데. 빈스는 나에게 모든 걸 다
얘기하진 않았어요.
[틸덴] 죄다 얘길 안해줬다구?
[셀리] 자세한 얘긴 없었어요.
[틸덴] 무슨 말을 해주든?
[셀리]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틸덴] 그래.
(틸덴, 셀리 뒤로 간다.)
[셀리]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어요.
[틸덴] 말하자면?
[셀리] 모르겠어요. 그가 느낀 걸 일일이 얘기할 순 없어요.
[틸덴] 왜?
(틸덴, 셀리 주위를 빙빙 돈다.)
[셀리] 빈스가 내게 사적으로 얘기한 거니까요.
[틸덴] 그래서 내게 얘기해줄 수 없다?
[셀리] 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다지] 틸덴, 부엌에 가서 커피를 끓여 줘. 그 여잔 혼자 내버려두고.
[셀리] (다지에게) 괜찮아요.
(틸덴, 다지를 무시하고 계속 셀리 주위를 빙빙돈다. 머리카락과 코트를 보면서. 다지,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틸덴] 나에게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구?
[셀리] 얘기할 수도 있죠. 대화는 할 수 있다구요.
[틸덴] 우리가 대화를 ?
[셀리] 그래요. 지금도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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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우리가?
[셀리] 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게 대화예요.
[틸덴] 그렇지만 넌 내게 얘기할 수 없는게 있잖니, 안그래?
[셀리] 그건 그래요.
[틸덴] 나도 너한테 얘기할 수 없는게 있어.
[셀리] 왜요?
[틸덴] 모르겠어. 아무도 그걸 들으면 안돼.
[셀리]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하세요.
[틸덴] 해도 될까?
[셀리] 그럼요.
[틸덴] 근사한 얘기가 아닌데.
[셀리] 괜찮아요.
[틸덴] 끔찍한 얘기가 될 지도 몰라.
[셀리] 좋아요. 근사한 얘기는 없나요?
(틸덴, 셀리 앞에 멈춰서서 그녀의 코트를 본다. 셀리. 그를 마주 본다. 오랜 사이.)
[틸덴] (잠시후) 코트 좀 만져봐도 괜찮겠니?
[셀리] 코트요? 그러세요.
[틸덴] 괜찮겠지?
[틸덴] 상관없어요. 만져보세요.
(셀리, 팔을 쭉 뻗어 만져보게 한다. 다지, 텔레비전에 빠져있다. 틸덴, 셀리의 팔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간다. 아주 느리게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만진후 손을 내린다. 셀리, 계속 팔을 뻗고
있다.)
[셀리] 토끼털이예요.
[틸덴] 토끼?
(틸덴, 다시 아주 천천히 팔을 뻗어 만져보고 내린다. 셀리. 팔을 내린다.)
[셀리] 팔이 아파요.
[틸덴] 내가 한번 걸쳐봐도 될까?
[셀리] 코트를요?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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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옷을 벗어 틸덴에게 넘겨준다. 틸덴, 천천히 받아서 털을 만져보고 입는다. 셀리, 입은 옷을
여미는 틸덴을 본다. 틸덴, 웃는다. 셀리 당근을 다듬으러 간다.)
[셀리] 원하신다면 드릴 수도 있어요.
[틸덴] 내가 가져도 된다구?
[셀리] 네, 차안에 레인코트가 한 벌 더 있거든요. 전 그거면 충분해요.
[틸덴] 차도 갖고 있니?
[셀리] 빈스의 차예요.
(틸덴, 털을 쓰다듬어보며 이리저리 걷는다. 입을 벙긋거린다. 셀리, 옷을 보고 있는 틸덴을 본다.
다지, 담요를 둘러쓰고 소파에 퍼져서 텔레비젼을 본다.)
[틸덴] (주위를 서성거리며) 나도 예전에 차가 있었지. 하얀 차였어. 내가 운전을 했지. 안가본 곳이
없어. 산속이든 눈속이든 가보고 싶은 곳은 다가곤 했었지.
[셀리] 재미 있었겠어요!
[틸덴] (계속 서성거리며 옷의 촉감을 즐긴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타고 다녔지. 사막을 지나고
도시를 지나서 아무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봤다구. 정말 운전을 좋아했어.
[다지] (텔레비젼을 보며) 시끄러워!
(틸덴, 멈추고 셀리를 본다.)
[셀리] 지금도 운전을 많이 하세요?
[틸덴] 지금? 지금은 운전을 못해.
[셀리] 왜요?
[틸덴] 이젠 늙었어.
[셀리] 늙었다구요?
[틸덴] 이젠 애들이 아니야.
[셀리] 애들만 운전을 하나요?
[틸덴] 그건 운전이 아니었어.
[셀리] 그럼 뭐였어요?
[틸덴] 모험이었지. 안간 곳이 없었으니까.
[셀리] 지금도 그렇게 하시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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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덴] 지금은 안돼.
[셀리] 왜 안돼죠?
[틸덴] 방금 이야기 했잖아. 넌 아무 것도 못알아 듣는구나.내가 어떤 얘길 해줘도 넌 이해하지 못할
거야.
[셀리] 어떤 얘기를요?
[틸덴] 진실에 관한 거지.
[셀리] 어떤 이야긴데요?
[틸덴] 아주 조그마한 애기 이야기야.
[셀리] 당신이 어릴 때 같은 그런 이야긴가요.
[틸덴] 내가 얘길 다 해주면 넌 필시 코트를 돌려달라 그럴거야.
[셀리] 아니예요. 약속할께요. 이야기 해주세요.
[틸덴] 안돼. 아버지가 못하게 하실 거야.
[셀리] 못들으실 거예요. 괜찮아요.
(사이, 틸덴, 셀리를 주시한 후 가볍게 다가간다.)
[틸덴] 애기가 하나 있었어.(다지를 가리키며) 그가 그랬지. 아버지가 그랬어. 한 손으로 들어서
다른 손으로 던졌지. 조그만 애기를. 아버지가 그 애기를 죽여버렸어.
(셀리, 일어선다.)
[틸덴] 일어서면 안돼. 일어서지 마!
(셀리, 다시 앉는다. 다지, 소파에서 일어나 앉아 그들을 본다.)
[틸덴] 그 애길 물에 처넣어 버렸어!
[셀리] 더 이상 얘기하지 마세요! 알았죠?
(틸덴, 좀더 다가간다. 다지, 그들에게 점점 더 호기심을 갖는다.)
[다지] 틸덴! 그 여자를 혼자 내버려두지 못해!
[틸덴] (더이상 다지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물 속에 던져 버렸어.
[다지] (텔레비젼을 끄고서) 틸덴!
[틸덴] 아무도 차지 못했지. 그냥 사라진 거야. 경찰에서도 찾았고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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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찾아봤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지.
(다지, 일어나려고 애쓴다.)
[다지] 틸덴! 그 여자에게 무슨 얘길 하고 있는거야? 틸덴!
(다지, 일어나려고 계속 애쓰고 있다.)
[틸덴] 결국 모두들 포기하고 말았지. 조사도 중단했어. 내려진 결론은 각기 달랐어. 유괴라느니
살인이라느니 사고라느니 별 말이 다 있었지.
(다지, 틸덴에게로 다가가려고 애쓰다가 쓰러진다. 틸덴, 그를 무시한다.)
[다지] 틸텐 입 닥쳐! 제발 그 얘긴 하지 마!
(다지, 바닥에 쓰러져서 기침을 시작한다. 셀리, 스툴에 앉아서 다지를 본다.)
[틸덴] 작고 귀여운 애기는 사라져 버린 거야. 너무 작아서 거의 보이지도 않는 애기가.
(셀리, 다지를 부축하러 가려고 하자 틸덴이 그녀를 못하게 스툴에 눌러 앉힌다. 다지, 기침을
계속한다.)
[틸덴] 아버진 이유가 있다고 하셨어. 오래된 곡절이 있다는 거지. 하지만 아무한테도 얘기를
안하셨어.
[다지] 틸덴! 제발 그만해 둬! 그 여자한테 말하지 말란 말이야!
[틸덴] 그 애기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야. 무슨 보물마냥 아주 비밀스럽게 묻혀있다구.
우리한테도 말을 안 하셨어. 나나 어머니 브래들리한테도. 특히 브래들리에게. 브래들린 알아내려고
어지간히 애썼으나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구. 그 일을 저지른 이유조차도 말하려고 안했어. 그저 어느날
밤 애기를 죽인 거야.
(다지의 기침소리 가라앉는다. 셀리, 스툴에서 다지를 보며 앉아있다. 틸덴, 천천히 코트를 벗어
셀리에게 내민다. 오랜 사이. 셀리, 떨면서 앉아있다.)
[셀리] 당장 코트를 받아가 버리고 싶지.
(셀리, 코트를 보기는 하지만 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브래들리의 삐걱거리는 목발소리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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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왼쪽에서 들린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그대로 있다. 브래들리, 스크린 도어의 바깥 왼쪽에서 노란색
비옷을 입고 나타난다. 베란다를 건너 오른쪽 문으로 들어온다. 비옷을 벗어서 턴다. 멈춰서서 무대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틸덴, 그에게로 돌아선다. 브래들리, 셀리를 본다. 다지, 아직 바닥에 쓰러져
있다.)
[브래들리] 무슨 일이야?(셀리를 가리키며) 저 여자는 누구야?
(셀리, 일어선다. 브래들리가 다가서는 것만큼 뒤로 물러난다. 브래들리, 틸덴 옆에 멈춰선다.
틸덴이 들고 있는 코트를 보고서 그것을 빼앗는다.)
[브래들리] 누구냐니까?
[틸덴] 뉴멕시코로 가는 사람이야.
(브래들리, 셀리를 본다. 셀리, 굳어있다. 브래들리, 손에 코트를 들고 절뚝거리며 다가간다. 그녀
앞에 선다.)
[브래들리] (셀리에게) 휴가차 가는 길이야?
(셀리, 떨면서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흔든다.)
[브래들리] (셀리에게, 틸덴을 가리키며) 저 사람을 데려갈 거야?
(셀리, 고개를 흔든다. 브래들리, 틸덴에게 가면서)
[브래들리] 데려가. 여기선 필요없는 사람이니까.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는 인간이지.(말을 멈추고
틸덴에게) 그렇지?(셀리에게) 아메리카 풋볼 대표선수를 지낸 분이거든.쿼터백인지, 풀백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 사람이 그 이야기 안해주던가?
(셀리, 고개를 흔든다.)
[브래들리] 한때는 날렸어. 멋진 유니폼을 입고 목에 메달도 몇개 걸어봤지. 정말 그때는 날렸어.
(혼자 웃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지를 본다. 다지에게로 다가가 선다.) 이 사람도 한때 잘나간
사람이야.(셀리에게) 이 사람꼴이 처음부터 이랬다곤 생각지 않겠지?
(셀리, 다시 고개를 흔든다. 브래들리, 셀리를 본다. 코트를 손에 든채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바로
앞에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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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여자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
[셀리] 네?
[브래들리] 날리는 남자말이야.
[셀리] 모르겠어요.
[브래들리] 다 알면서 뭘 그래. 수작부리지 마.(셀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틸덴과 함께 지냈지?
[셀리] 무슨 소리예요!
[브레들리] (틸덴에게 돌아서며) 틸덴, 이 여자와 함께 지냈지?
(틸덴, 대답이 없다. 바닥만 내려다본다.)
[브래들리] 틸덴!
(틸덴, 펄쩍뛰며 부엌으로 달아난다. 브래들리 웃는다. 셀리에게 말을 건다. 다지, 누구에겐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우물거린다.)
[브래들리] (웃으며) 죽을까봐 겁은 나서.(브래들리, 웃음을 멈추며 셀리에게) 너도
겁나지?(웃는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웃음을 멈춘다.) 겁낼 필요없어.
(셀리, 바닥에 있는 다지를 본다.)
[셀리] 저분은 어떻게 해야되지 않겠어요?
[브래들리] (다지를 보며) 총으로 쏴 죽일 수도 있고 물 속에 던져버릴 수도 있지.(웃으며) 물 속에
던지는 게 어떨까?
[셀리] 닥치세요!
(브래들리, 웃음을 멈추고 셀리에게 더 다가간다. 셀리, 얼어붙는다. 브래들리,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야기한다.)
[브래들리] 이봐, 아가씨! 나한테 그따위로 말하지 마! 그런 어조로 말하지 말라구.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어.(다지를 가리키며) 저 영감쟁이한테서도 들었고 지금 막
달아난 저 머저리한테서도 들었지. 그러나 이젠 그들도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진 못해. 이제 모든게
달라졌어. 돌고 도는 세상이지. 우습지 않아?
[셀리]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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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입벌려.
[셀리] 뭐라구요?
[브래들리] 벌리라니까?
(셀리, 가볍게 입을 벌린다.)
[브래들리] 더 크게!
(셀리, 더 크게 벌린다.)
[브래들리] 가만 있어!
(셀리, 입을 벌린 채 브래들리를 본다. 브래들리, 손가락을 셀리의 입에 넣는다. 셀리, 밀어내려고
한다.)
[브래들리] 가만!
(셀리, 얼어붙는다. 브래들리, 손가락을 셀리 입속에 넣은 채 그녀를 본다. 사이, 손가락을 뺀다.
셀리, 계속 브래들리를 보면서 입을 다문다. 브래들리, 웃는다. 다지를 보면서 그에게로 간다. 셀리,
계속 본다. 브래들리, 다지 옆에 서서 셀리에게 웃음을 보낸다. 셀리의 코트를 들고 있다. 다지를
내려다보고 코트로 머리까지 덮어버린다. 셀리를 건너다 보며 웃고 있다. 조명,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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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막
(무대, 전막과 같다. 아침. 태양이 빛난다. 빗소리 그쳤다. 당근과 양동이, 그리고 스툴은 깨끗이
치워져 있다. 빈스의 쎈스폰 케이스와 코트만이 층계 끝에 놓여있다. 브래들리는 다지의 담요를 덮고
소파에서 자고 있다. 머리는 무대 왼쪽을 향해 있다. 그의 목발이 머리맡소파에 기대있다. 그 목발에
신발이 신겨있다. 다지, 야구모자를 쓴 채 무대 왼쪽을 향해 텔레비젼에 기대 앉아있다. 셀리의 토끼털
코트를 어깨에 걸쳤다. 무대 왼쪽을 응시한다. 훨씬 약하고 어리둥절해 보인다. 새 소리와 함께 조명이
서서히 밝아진다. 무대 위의 두사람이 보인다. 브래들리,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다지.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셀리, 웃음을 머금고 무대 왼쪽에서 나타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 그릇을 접시에
받쳐들고 천천히 다지에게 건너간다. 다지, 다가오는 셀리를 보고 있다.)
[셀리] (다가오면서)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빈스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 못마땅해 하셨지만요.
[다지] 그 녀석이 내 돈을 가지고 달아났으니 너라도 잡아놔야겠다.
[셀리] 걱정마세요. 곧 돌아올 거예요.
(셀리, 다지 옆에 무릎꿇고 앉아서 스프 그릇과 받침을 그의 무릎에 놓는다.)
[다지] 벌써 아침인데! 술은 커녕 돈만 떼였지.
[셀리] 이거 좀 드세요. 쏟지않게 조심하세요.
[다지] 그게 뭔데?
[셀리] 스프예요. 드시면 몸이 훈훈해질 거예요.
[다지] 스프라구? 스프같은 건 싫어! 치워버려.
[셀리] 방금 끓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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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일주일 걸려 끓여왔다고 해도 볼일없어. 술이라면 몰라도.
[셀리] 그럼 이걸 어떻게 하죠?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몸에 좋은 거예요.
[다지] 썩 치우지 못해!
(셀리, 컵과 쟁반을 들고 일어선다.)
[다지] 내몸에 뭐가 좋은지 네가 어떻게 알아?
(셀리, 다지를 보고나서 시선을 돌린다. 계단으로 가 걸터 앉아서 스프를 마신다. 다지, 그녀를
본다.)
[다지] 내몸에 좋은게 뭔지 알아?
[셀리] 뭐예요?
[다지] 약간의 마사지야. 약간의 접촉.
[셀리] 어머, 안돼요! 전 짧은 동안에 충분한 접촉을 했어요.
(셀리, 앉아서 스프를 마시고 있다. 다지, 그녀를 본다.)
[다지] 왜 안돼지? 그밖에 할 일도 없잖아. 그 녀석은 안돌아 올거야. 그녀석이 나타나리라고
그대하는 건 아니겠지?
[셀리] 틀림없이 올 거예요! 악기도 두고 갔는걸요.
[다지] 악기라고? (웃으며) 네가 그놈의 악기란 말이지?
[셀리] 재미있으시군요.
[다지] 그놈은 내 돈을 갖고 달아났어. 다신 나타나지 않을거야.
[셀리] 올 거예요.(사이, 베란다를 보며) 비가 그쳐서 기뻐요.
[다지] (베란다를 보고 셀리에게) 내 말이 그거야. 너는 지금 비가 그친 걸 좋아하고 있어. 모든게
달라 질거라구 생각하구 있지? 태양이 나왔다구해서?
[셀리] 벌써 달라진 게 있어요. 간밤에 겁이 났었거든요.
[다지] 뭐가 겁이 나?
[셀리] 그저 겁이 났어요.
[다지] 브래들리? (브래들리를 보며) 그놈이라면 문제없어. 특히 지금은 문재없지. 그 녀석 목발을
집어서 뒷문 밖으로 버리면 그만이야. 꼼짝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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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얼굴을 돌려 목발을 본 후 다시 다지를 본다. 스프를 홀짝거린다.)
[셀리] 할아버지같으면 하시겠어요?
[다지] 나? 난 숨쉴 기운도 없어.
[셀리] 기운만 있으면 정말 하실 거예요?
[다지] 놀라긴! 어리석게. 사람이 못할 짓이 어딨어?
[셀리] 벌써 해보셨군요.
[다지] 거기 앉아 국물이나 홀짝거리면서 날 판단하지 마. 여긴 우리집이야.
[셀리] 깜박 잊고 있었어요.
[다지] 잊고 있었다고? 이 집이 누구 집이라고 생각했니?
[셀리] 우리집인 것만 같았어요.
(다지, 그녀를 본다. 오랜 사이. 셀리, 컵을 홀짝거린다.)
[셀리] 우리집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다지] 어떤 느낌?
[셀리] 이집에 저 혼자만 살고 있는 것같은 느낌말예요. 아무도 없는 것같았어요. 할아버지도
안계시고(브래들리를 가리키며) 저 사람도 없는 것 같았어요.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집이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런가 봐요. 모든 게 제집같이 편했어요. 할아버지도
그런 느낌 받아본 적 있으세요?
(다지, 말없이 셀리를 본다. 사이.)
[다지] 없어! 절대로 그런 적 없다.
(셀리, 일어나서 스프 접시를 들고 이리저리 서성거린다.)
[셀리] 간밤엔 2층에서 잤어요.
[다지] 2층 어디?
[셀리] 사진이 많이 걸려 있는 방 말이에요.
[다지] 헤일리 방말이야?
[셀리] 네, 그래요. 그런데 헤일리가 누구죠?
[다지] 내 마누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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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그럼 그분을 기억하세요?
[다지] 그게 무슨 말이야! 기억하다니! 그 여편네가 나간지 하루도 안됐는데. 하루가 다 뭐야?
반나절이나 됐을까?
[셀리] 그 분이 빨강머리였던 때 생각나세요? 사과나무 앞에서 찍은 사진요?
[다지] 무슨 소릴하고 있는 거야! 네가 뭔데 내 여편네에 대해 개인적인 것까지 묻는거야?
[셀리] 그 사진 한번도 본 적이 없으세요?
[다지] 무슨 사진?
[셀리] 할아버지의 전 생애가 그 벽에 붙어 있던데요. 할아버지의 지금 모습과 과거의 사진들.
[다지] 그건 내가 아니야! 옛날 사진도 그렇구. 이게 나야. 바로 네 앞에 앉아 있는 이게 나라구!
[셀리] 그러니까 할아버진 과거가 없단 말씀이로군요.
[다지] 과거라구! 맙소사! 네가 과거에 대해서 뭘 안다구 그래?
[셀리] 잘 모르지만 농장이 있었던 건 알겠어요.
(사이.)
[다지] 농장이라구?
[셀리] 농장이 있었어요. 커다란 농장요. 소도 있구, 밀, 옥수수도 있었어요.
[다지] 옥수수라구?
[셀리] 꼬마들이 옥수수 밭에 서 있었어요. 커다란 밀짚모자를 바람에 날리면서. 한 꼬마만 모자가
없던데요.
[다지] 그게 누군데?
[셀리] 애기였어요. 부인의 팔에 안겨 있었죠. 그 빨강머리 여자요. 그 여자는 정작 사진을 찍을려구
했던건 아닌 것 같았어요. 거기에 서게된 이유도 잘 모르는 채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니까요.
[다지] 그 여자도 알고 있었다구! 도시로 나가면 안된다고 골백번 더 이야기를 했단 말이야! 주의도
많이 줬다구.
[셀리] 남의 애기를 보는 것처럼 애기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자기 애기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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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대단한 걸 찾아냈구나. 넌 어떻게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사람들이 이뻐만 해
줄려고 자식을 낳는 줄 알아? 자기 새끼 잡아먹는 개도 못봤어. 그런데 넌 대체 어디서 왔니?
[셀리] LA요. 그 얘긴 벌써 했잖아요.
[다지] 그렇지. LA. 생각난다.
[셀리] 멍청한 동네죠.
[다지] 맞아. 그건 틀림없어.
(사이)
[셀리] 이 집에 무슨 일이 있었죠?
[다지] 네가 뭔데 그런걸 물어? 무슨 상관야? 무슨 사회 사업가라도 된단 말야?
[셀리] 전 빈스의 친구예요.
[다지] 빈스의 친구라구! 그거 좋지. 좋구말구. "빈스!" "빈스씨!"차라리 "도둑씨"라고 그러지. 그
이름은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어. 내가 낳은 자식이 몇명인 줄 알아?
[셀리] 그 중에서 아무도 기억을 못하세요?
[다지] 뭘 기억해? 여편네가 가족 앨범을 가지고 있어. 거기 가서 물어봐. 우리집 혈통을 잘
일러줄거야. 그 여잔 우리 혈통을 무덤까지 꿰뚫고 있으니까.
[셀리]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지] 무슨 말이냐구? 어디부터 이야길 시작해야 되는 거지? 케케묵은 옛날부터? 내 조상 중엔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단 한 사람도.
[셀리] 틸덴이 한 말이 사실인가요?
(다지. 잠시 멈춘다. 셀리를 본다. 머리를 흔들면서 무대 왼쪽 바깥을 본다.)
[셀리] 사실예요?
[다지] 틸덴? (셀리를 향해. 조용히) 틸덴 지금 어디있지?
[셀리] 어젯밤 틸덴이 애기에 대해서 얘기한 게 사실이냐구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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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무대 왼쪽을 돌아본 후) 틸덴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 틸덴이 왜 여기없지?
[셀리] 브래들리가 내쫓았어요.
[다지] (잠자고 잇는 브래들리를 보고) 브래들리? 저 녀석이 왜 내 소파에 자빠졌지?(다시 셀리에게)
내가 밤새도록 바닥에서 뒹굴었단 말이지?
[셀리] 브래들리는 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가 잠들 때까지 밖에 숨어 있었죠.
[다지] 밖에? 그럼 틸덴도 밖에 있겠구나. 그를 이 빗속에 나가게 하면 안되는데.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단 말이야. 여기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르거든. 그 녀석은 혼자 서부로 가서 몹쓸
지경이 돼 버렸어. 여기서 또 일을 저지르면 안돼.
[셀리] 그 분이 어쨌게요?
(사이.)
[다지] (조용히 셀리를 보면서) 틸덴? 정신이 이상해 졌어. 그래서 혼자 내버려둘 수가 없어.
(왼쪽 바깥에서 헤일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셀리, 컵과 쟁반을 든 채 일어선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며 있어야 할지 달아나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다지] (셀리에게 손짓하며) 앉아! 앉으라구!
(셀리, 앉는다. 다시 헤일리의 웃음소리.)
[다지] (코트를 끌어당겨 숨으며 셀리에게 속삭인다.) 나혼자 두지 마! 약속할 수 있지?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해. 틸덴조차 지금 여기 없으니 너라도 있어야 해.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약속해!
[셀리] (앉은 채로) 가지 않을께요.
(헤일리. 베란다에 등장. 듀이스목사와 함께다. 밝은 노랑색 드레스를 입고 흰장갑을 끼었다. 모자는
없다. 노랑 장미를 한아름 들고있다. 목사는 검은 양복에 흰 셔츠 차림이다. 회색머리의 60대 신사.
둘다 약간 취해있고 들떠있다. 그들이 베란다에 들어서자 다지가 코트를 얼굴까지 뒤집어쓴다. 셀리,
다시 일어선다. 다지, 코트를 내리고 셀리를 향해 속삭인다. 헤일리와 듀이스 목사. 모두 집안에 있는
그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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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셀리에게) 약속 잊지 마.
(셀리, 다시 계단에 앉는다. 다지, 다시 코트를 뒤집어쓴다. 헤일리와 듀이스 목사,오른쪽으로
이야기하며 간다.)
[헤일리] 어머나, 목사님! 끔찍한 일이예요. 정말 끔찍해요. 그러구서두 벌 받을 일이 두렵지
않으세요?
[듀이스] 이태리사람한테서 벌을 받아요? 그들은 서로 벌주느라고 바쁘답니다.
(둘이 같이 낄낄거린다.)
[헤일리] 하나님은요?
[듀이스] 하나님께서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시지요. 저와 당신의 사이처럼 말입니다.
(다시 낄낄대며 무대 오른쪽 문에 이른다.)
[헤일리] 목사님, 주일날 설교에서도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없잖아요?
[듀이스] 정말 재미있는 농담은 사석에서 하려구 아끼니까요. 돼지 앞에서 진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들은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셀리를 보고서 멈춘다. 셀리, 일어선다. 헤일리, 듀이스 목사
뒤에서 문을 닫는다. 다지의 소리 코트 안에서 들린다. 셀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지] (셀리에게) 앉아! 앉으라구! 내 말 안들려!
(셀리, 앉는다. 헤일리. 바닥에 있는 다지를 본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브래들리도 본다 또 목발도
본다. 당황해서 외친다.)
[헤일리] 아이구 맙소사! 이게 어떻게 된 꼴이야!
(헤일리, 장미를 듀이스 목사에게 준다.)
[헤일리] 실례해요, 목사님.
(헤일리, 다지에게로 가서 코트를 벗겨 그것으로 목발을 덮는다. 브래들리, 계속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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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잠시만 집을 비워도 이꼴이라니까.
[다지] 그 코트 빨리 줘! 빨리 달라구! 얼어 죽겠어.
[헤일리] 코트 안 덮는다고 안 얼어 죽어요. 태양이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얼어 죽긴 왜 죽어요.
[다지] 그 코트 빨리 줘. 그 코트는 산사람을 위해서 있는거지 목발 덮으라고 있는 건 아냐.
(헤일리, 브래들리가 덮고있던 담요를 홱 벗긴다. 그것을 다지에게 던져준다. 다지, 그 담요를
둘러쓴다. 브래들리의 불구인 다리가 방석 밑으로 내밀어져 보인다. 브래들리, 담요가 벗겨져 나가자
벌떡 일어나 앉는다.)
[헤일리] (담요를 던지며) 이걸 덮어요. 당신 꺼니까.
[브래들리] (고함친다.) 담요 이리 줘. 그 담요는 내꺼란 말이야.
(헤일리, 장미를 가지고 있는 듀이스 목사에게로 간다. 브래들리, 담요를 잡으려고 애쓴다. 다지,
담요를 더욱 깊숙이 뒤집어쓴다. 셀리, 컵과 쟁반을 들고 계단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
[헤일리] 목사님, 이해하세요. 이 꼴을 뵈드리려고 모셔온 건 아니었어요.
[듀이스] 원 별 말씀을. 생활이란게 이런 거지요. 이런 모습들을 보기 민망해 한대서야 어찌
성직자라 할 수 있겠오.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웃는다. 헤일리, 셀리를 의식하고 그녀에게로 향한다. 셀리, 계속 앉아 있다.
헤일리, 멈춰서서 셀리를 응시한다.)
[브래들리] 내 담요 이리 줘. 달란 말이야.
(헤일리, 브래들리에게로 돌아서서 진정시킨다.)
[헤일리] 가만 있지 못해! 그만해도 지긋지긋해.
(브래들리, 기가 꺾여 소파에 다시 눕는다. 헤일리에게 등을 돌린채 혼자서 군지렁거린다. 헤일리,
다시 셀리를 향한다.)
[헤일리] (셀리에게) 내 컵과 쟁반을 들고 뭐 하는거지?
[셀리] (그릇을 보고나서) 할아버지께 따뜻한 국물을 좀 끓여드렸어요.
[헤일리] 영감쟁이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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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네.
[헤일리] 그래 영감이 들던가?
[셀리] 아니요.
[헤일리] 네가 먹었지?
[셀리] 네.
(헤일리, 셀리를 본다. 오랜 사이. 갑자기 셀리로부터 돌아서서 듀이스 목사에게 간다.)
[헤일리] 목사님, 우리집에 낯선 아가씨가 하나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기독교적일까요?
[듀이스] (머뭇거리며) 아---네---저---저는---정말이지---
[헤일리] 술이 좀 남아 있을 거예요. 그렇죠?
(다지, 천천히 담요에서 목을 빼 듀이스 목사쪽을 본다. 셀리, 일어선다.)
[셀리] 난 먹은 게 없어요. 다만---
(헤일리, 셀리에게로 표독스럽게 돌아선다.)
[헤일리] 가만히 앉아 있어.
(셀리, 다시 계단에 앉는다. 헤일리, 다시 듀이스 목사에게 돌아선다.)
[헤일리] 위스키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렇죠, 목사님?
[듀이스] 그럴거야. 자, 당신이 꺼내요!
(헤일리, 낄낄거린다. 술병을 꺼내려고 듀이스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찬으면서 장미꽃 향기를
맡는다. 듀이스는 뻣뻣하게 서 있다. 다지, 헤일리가 술병을 찾고 있느 것을 유심히 본다.)
[헤일리] 장미꽃 냄새는 정말 좋아. 안그래요, 목사님?
[듀이스] 정말 좋아요.
[헤일리] 장미 향기는 이 집안에 있는 죄의 악취를 덮어주거든요. 안셀의 동상밑에도 장미를 갖다
놔야겠어요. 제막식날 말예요.
(헤일리, 듀이스의 안주머니에서 은색의 위스키병을 하나 찾는다. 그것을 꺼집어 낸다. 다지,
열중하여 본다. 헤일리, 다지에게로 가서 술병을 열어 한 모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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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다지에게) 안셀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어요. 기념패가 아니라 동상이라구요. 한 손에는
농구공을 들고있고 한 손에는 장총을 들고있는 청동상을 말예요.
[브래들리] (헤일리를 등진채) 그 녀석은 농구를 안했어.
[헤일리] 입닥쳐, 이놈아! 네 녀석은 안셀에게 한마디도 입댈 자격이 없는 놈이야. 안셀은
누구보다도 농구를 잘했어. 네놈도 알거야! 그 녀석이 미국대표 선수를 지냈다는 걸 말이야. 찬사를
받지 못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헤일리, 브래들리에게서 듀이스에게로 간다. 술병을 홀짝거리면서 웃는다.)
[헤일리] (듀이스에게) 안셀은 정말 훌륭한 선수였다구요.
[듀이스] 나도 안셀을 잘 알아요.
[헤일리] 물론 아실테죠. 그놈이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도 기억하실수 있을 거예요. (셀리에게로
돌아서서) 요즘 농구는 많이 변해버린 것같아. 더욱 저질스럽게 되어버린 것같더라구. 그렇게 생각지
않아?
[셀리] 전 그런 거 몰라요.
(헤일리, 셀리에게로 다가가면서 술병을 홀짝거린다. 셀리앞에서 멈춘다.)
[헤일리] 훨씬 저질이 됐지. 일부러 부닺치고 상대편의 이를 부러뜨리고 코트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 야만스러운 것들.
(헤일리, 셀리에게서 컵을 빼앗아 술을 따른다.)
[헤일리] 연습도 전처럼 안 하지. 전혀 안해. 온통 마약과 여자에게만 빠져있다구. 특히 여자에게.
(헤일리,컵을 셀리에게 내민다. 셀리, 그것을 받는다.)
[헤일리] 여자라면 사죽을 못 쓰지. 병적인 계집애들한테.(다시 듀이스에게로) 이게 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죠. 그렇죠, 목사님?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말해 주는 거죠?
[듀이스] 다 시대탓일 거요.
[헤일리] 정말 망조라구요. 젊은 것들이 다 괴물처럼 돼간다니까요.
[듀이스] 하지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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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목사님. 제 생각과 다르시면 말씀하세요. 기꺼이 토론해 드릴께요. 토론이란 서로에게
유익하니까요.(다지에게로 가서) 난 정말 오랫동안 별 걱정없이 지내 왔어요. 모든 일들이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할때, 당신은 태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가 않던가요? 옛날을 다시 들추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예요.
[듀이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일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느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요.
[헤일리] 알아요.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사실이지요.(다지를
보며) 잘못하면 이 사람모양 인생의 끝을 맞이하게 될런지도 몰라요. 목사님. 이 사람 눈을 한번
보세요.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아시겠지요.
(다지, 담요를 다시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헤일리,듀이스에게서 장미 한송이를 받아 다지에게로
천천히 간다.)
[헤일리] 믿음이 있어야 해요. 믿음이 없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요.
(헤일리, 장미를 다지의 담요위에 살며시 던진다. 장미를 다지의 두 무릎사이에 떨어진다. 오랜사이.
헤일리, 장미를 보고있다. 셀리, 갑자기 일어선다. 헤일리, 그냥 장미만 보고 있다.)
[셀리] (헤일리에게)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으세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지
알고싶지 않으세요? 나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구요.
(셀리, 헤일리에게로 간다. 헤일리, 천천히 돌아본다.)
[헤일리] 너 술 취했니?
[셀리] 천만에요. 앞으로도 술은 입에도 안 댈거구요.
(헤일리, 웃으며 듀이스 목사에게로 간다.)
[헤일리] (듀이스에게) 에이, 신경질나! 당신이 여기로 오자고 했지요?
[셀리] 당신 손자하고 잠시 다니러 온 거예요. 그저 잠시 들렀다구요.
[헤일리] 내 손자?
[셀리] 그래요. 그런데 아무도 기억을 못했어요.
[헤일리] (듀이스에게) 저 애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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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돌아온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얘기했죠. 지나간 장소에 미련을 갖지 말라고.
[헤일리] 그게 어딘데?
[셀리] 그가 여길 떠나기 추억이 남아 있는 곳. 6년전, 10년전, 언제든지 말예요.
[헤일리] 그 사람이 네 얘길 듣지 않은 모양이로군.
[셀리] 그래요. 그인 내말을 듣지 않았어요. 자기 기억에 남는 시골동네, 조그만 소녀와 키스해본
적이 있다며 도우너츠 가게에도 들러보고, 뼈를 부러뜨려 본적이 있다며 축구장에도 들러 보곤 했어요.
[헤일리] (갑자기 놀라며 다지에게) 틴델 어디 갔어요?
[셀리] 저하고 이야기 계속하세요.
[헤일리] 여보! 틸덴 어디 갔냔 말예요.
(셀리, 거칠게 헤일리에게로 간다.)
[셀리] 저하고 이야기 계속 하잔 말이예요.
(브래들리, 벌떡 일어나 앉자 셀리, 뒤로 물러선다.)
[브래들리] (셀리에게) 우리 어머니한테 대들지 마!
[헤일리] 여보! (다지를 발로 차며) 그러게 틸덴을 잘 지키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그 녀석 어디 간
거예요?
[셀리] 술 좀 주면 얘기해 주지.
[듀이스] 헤일리, 아마 내가 잘못 온 것같소.
(헤일리, 듀이스에게 간다.)
[헤일리] (듀이스에게) 내가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제 한 몸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라구요. 저
영감쟁이도 그걸 알고 있어요. 내가 나갈 때 얘길 했으니까요. 틸덴을 잘 살피라고 얘기했죠.
(브래들리, 손을 내밀어 다지의 담요를 홱 잡아 당긴다. 소파에 벌렁 누워 담요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다.)
[다지] 저 놈이 내 담요를 가져 갔어! 내 담요!
[헤일리] (브래들리에게 돌아서서) 브래들리! 그 담요 썩 내놓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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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브래들리에게 다가간다. 셀리, 갑자기 컵과 쟁반을 무대 오른쪽 문에다 던진다. 듀이스,
움찔한다. 컵과 쟁반, 산산조각이 난다. 헤일리, 멈춘다. 셀리를 향한다. 모두들 잠잠하다. 브래들리,
천천히 담요에서 고개를 내밀어 무대 오른쪽 문과 셀리를 본다. 셀리는 헤일리를 본다. 듀이스, 장미를
가지고 머뭇머뭇한다. 셀리, 천천히 헤일리에게로 간다. 오랜 사이. 셀리,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셀리] (헤일리에게) 전 정말 무시받기 싫어요. 마치 내가 여기없는 것처럼 취급받기 싫다구요.
어릴 때부터 그런 대접 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어요.
[브래들리] (소파에 일어나 앉아서) 야! 우린 너한테 아무 얘기도 할 필요없어. 아무것도. 네가 무슨
경찰이라도 된단 말이야? 아님 무슨 관리라도 된단 말이야? 넌 그저 틸덴이 데려온 창녀에 불과하다구.
[헤일리]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집에서 어떻게 그런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할수가 있어!
[셀리] (브래들리에게) 어제밤엔 내 입에 손을 넣더니 이젠 창녀라구!
[헤일리] 브래들리! 저 애 입에 손을 넣었다구? 정말 창피하구나. 잠시도 혼자 내버려 둘수가 없어.
[브래들리]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요.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라구.
[듀이스] 헤일리! 난 이제 가봐야 겠어요. 장미는 부엌에 두고 가겠어요.
(듀이스, 무대 왼쪽으로 간다. 헤일리, 그를 세운다.)
[헤일리] 목사님, 지금 가시면 안돼요. 가지 마세요.
[브레들리] 난 정말 안 그랬어.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구. 저 여자가 나를 유혹했지만 내가 밀어
버렸어. 밀어 버렸다구.
(셀리, 갑자기 코트와 목발을 들고 무대 앞쪽으로 간다.)
[브래들리] 어머니! 어머니! 저 여자가 내 다리 갖고 가! 내 다리 갖고 간다구!
(브래들리, 다리를 쫓아서 허공에 손을 내젓는다. 셀리, 목발을 바닥에 놓고 재빨리 코트를 입은후
다시 집어든다. 다지, 기침을 시작한다. 심한 기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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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셀리에게) 아가씨와의 볼 일은 끝났어. 그만하면 충분해. 아가씨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뭐하러 왔는지도 모르지만 나가줬으면 좋겠어.
[셀리] (웃으며, 목발을 들고) 나가 달라구!
[브래들리] 어머니! 내 다리 저기 있어. 빨리 뺏어 달라구! 저게 없으면 난 꼼짝도 못해!
(브래들리, 낑낑대며 목발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헤일리] 목발은 돌려줘. 빨리 돌려 주라구!
(다지, 가벼운 기침을 하는 중에 혼자 웃는다.)
[헤일리] (듀이스에게)목사님! 어떻게 좀 하세요. 내 집에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 수도 있나요?
[브래들리] 내 다리 줘!
[헤일리] 브래들리 조용히 있지 못해! 그 목발 지금 당장 뭐 그리 급하다구 그래! 입 닥치고 가만
있어.
(브래들리, 끙끙댄다. 누워서 담요를 끌어 당긴다. 한 팔을 담요 바깥으로 내놓고 목발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듀이스 목사, 장미를 안고 조심스럽게 셀리에게 다가간다. 셀리,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목발을 가슴에 꼭 껴안는다.)
[듀이스] (셀리에게) 저, 아가씨! 말로 하지 그래요. 이성을 되찾아서.
[셀리] 이성이라구요? 이 집에 이성이 어디 있어요.
[듀이스] 두려워할 것 없오. 여기 이 분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오. 정의로운 사람들이지.
[셀리] 두려워 하는 건 아니예요?
[듀이스] 아무튼 여긴 아가씨 집은 아니잖소. 예의는 차리셔야지.
[셀리] 자기집 아니기는 당신도 마찬가지 잖아요.
[헤일리] 해도 너무 하는 것 같군.
[듀이스] 헤일리, 나한테 맡겨 둬요.
[셀리]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아무 말도 듣기 싫어요. 누굴 겁주려고 이러는 건 아니예요. 나
자신도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당신들은 빈스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죠? 좋아요. 어쩌면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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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죠. 어쩌면 빈스가 미친 건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몽땅 꾸며냈는 지도
모르죠 저도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어요. 난 빈스가 차를 태워 준다기에 따라왔을 뿐이예요. 빈스는
여러분들 이름이 저에게 상당히 친숙해지도록 했답니다. 그가 가족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를 때 난
속으로 그 얼굴 하나하나를 그려봤어요. 정말로 당신들 한사람 한사람의 이미지가 내 마음속에 너무
또렷하게 박혀있어서 난 그게 당신들이라고 믿었어요. 저 문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이집 식구들이 다
내가 상상했던 그 사람들일 거라구 믿었어요. 그렇지만 한사람도 알아볼 수 없었어요. 단 한사람도.
닮은 데라곤 조금도 없었어요.
[듀이스] 당신이 생각해 온 망령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남을 비난할 수는 없지요.
[셀리] 망령이 아니예요. 그건 예언과 같은 거예요. 당신은 예언을 믿으시나요?
[헤일리] 목사님, 더 이상 그 애와 입씨름 하지 마세요. 경찰을 부르든지 해야겠어요.
[브래들리] 안돼, 경찰을 부르지 마! 경찰을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해선 안돼. 여긴 우리 집이야!
[셀리] 브래들리 말이 맞아요. 당신들은 대개 집안 일을 조용히 처리하시잖아요. 어둠 속에서
처리하시죠? 뒷뜰에서?
[브래들리] 꺼져! 네가 뭔데 자꾸 끼어드는 거야!
[셀리] 끼어들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구요.
(셀리, 사람들을 하나씩 보면서 주위를 돈다.)
[브래들리] 네가 뭘 알아? 우리가 무슨 일을 겪어 왔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셀리] 비밀이 있다는 건 알아요. 당신들 모두에게. 꼭꼭 묻어둔 비밀이라서 당신들은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확신하는거죠.
(헤일리, 듀이스에게로 간다.)
[헤일리] 오! 목사님!
[다지] (혼자 웃으며) 저 여자는 우리에게서 뭔가 캐내려고 하고 있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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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진상을 밝혀보려고 생각하고 있어. 무슨 탐정이나 되는 것처럼.
[브래들리] 난 아무 얘기 안할거야! 잘못된 것이 없거든!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어 갔으니까. 잘못된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우리 모두는 다 착한 사람들이라구!
[다지] 저 여잔 과거의 모든 걸 한꺼번에 벗겨 놓을려고 생각하고 있어.
[듀이스] (셀리에게) 이 사람들을 편히 있게 해 둬요. 아가씬 자비심도 없소? 이 사람들이 아가씰
해롭게 한 것도 아니잖소.
[다지] 저 여잔 속속드리 알고 싶다구.(셀리에게) 그렇지? 꼬치꼬치 다 알고 싶지? 내가 말해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까? 사실 나도 말해 버리고 싶어.
[블래들리] 저 영감쟁이 말 듣지 마! 저 영감이 기억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다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 그 놈이 태어난 날짜까지도 기억하고 있다구.
(사이.)
[헤일리] 여보, 당신 그 이야길 하면 나하곤 끝장예요. 우린 끝나는 거예요.
[다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여기 이 여잘 좀 봐. 너무나 알고 싶어하고 있어. 나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 친구에게 얘길 해 주고싶어.
[블래들리] (다지에게) 우린 약속이 있었잖아요? 그 약속을 깰 참예요?
[다지] 약속 같은 건 기억 못 해!
[블래들리] (셀리에게) 보라구! 기억 못하고 있잖아.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사람
뿐이야. 나 혼자뿐이지.그렇지만 난 너에게 말해줄 수 없어!
[셀리] 난 지금 뭘 알아 낼려고 이러는 게 아니예요.
[다지] (혼자 웃으며) 겁 먹고 있구만.
[셀리] 겁먹은 게 아니예요.
(다지, 웃음을 멈춘다. 오랜 사이. 다지, 셀리를 본다.)
[다지] 겁나지 않는다구? 좋은 일이다. 나 역시 겁나지 않아. 들어봐. 우리 가족도 한때는 잘
살았어. 잘 살았지. 애들도 다 크고 생산해 낸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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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는 미시간 호수를 두 배나 채울 수가 있었지. 나와 여편네는 안락한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지. 모든
것은 안정되고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어. 그때 여편네가 또 임신을 했지. 난데없이 임신을 한거야.
그때 우리는 자식을 더 이상 가질 생각이 아니었어. 이미 있는 애들만 해도 적지는 않았거든. 사실 6년
동안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았단 말이야.
[헤일리] (계단 쪽으로 가면서) 난 듣지 않을거야! 들을 필요 없지.
[다지] (헤일리를 세우며) 어딜 가려구 그래? 2층? 2층에서 내 이야길 들어보겠다는 거야! 차라리
밖에 나가서 듣지 그래! 여기서 들어도 괜찮아.
(헤일리, 계단 옆에 멈춘다.)
[브래들리] 나한테 다리만 있다면 저 말을 못하게 할텐데.
[다지] (셀리를 가르키며) 쟤가 네 다릴 가지고 있지.(웃는다.) 그 목발 주지는 않을거지! 너도 내
이야길 듣고 싶지?
[셀리] 모르겠어요.
[다지] 네가 듣고 싶지 않다고 해도 난 이야기 할거야. (사이) 여편네가 애기를 가졌어.
사내놈이엇지. 난 혼자서 낳도록 내버려뒀어. 다른 녀석들은 훌륭한 의사와 간호원을 통해서 낳았지만,
그 애만은 마누라 혼자서 낳게했지. 난산이었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해내더군. 애는 살았어.
그리고 우리 가족의 한사람으로 살기를 원했지. 날 제 애비삼아서 말이야. 여편네도 내가 그렇게
믿어주길 원했던거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야. 모두가. 우리애들이 모두 알았지. 틸덴도
알았어.
[헤일리] 브래들리, 저 입 좀 막을 수 없겠니!
[브래들리]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다지] 틸덴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어. 그 녀석이 애기를 안고 수마일이나 걸어다니곤 했어.
헤일리가 그렇게 하도록 시킨거야. 때론 밤새도록 애기를 안고 다녔지. 애기에게 노래도 해주고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야. 애기가 그 얘기를 하나도 못알아 듣는데도 말이야. 우린 그런 일이 계속
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 그런 일이 우리들 삶의 한복판에 자라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거야. 그 일이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망친거야. 모든 것이 단한번의 실수로 끝장났지. 단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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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실수로---
[셀리] 그래서 할아버지가 애기를 죽였군요?
[다지] 그래. 내가 죽였어. 물에 쳐넣어버렸지.
(헤일리, 브래들리에게로 간다.)
[헤일리] (브래들리에게) 안셀이 있었다면 저 입을 막을 수 있었을 거야! 저런 거짓말을 못하게
했겠지. 안셀! 네 놈이 역시 난 놈이야. 그 좋던 시절의 이집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야!
(갑자기 왼쪽 스크린 도어를 통해 빈스가 들어온다. 문고리를 부서질듯 잡아 당긴다. 다지와
브래들리를 빼고 모두 돌아본다. 빈스, 술에 곤드래가 되어 쓰러진다. 빈 술병이 가득한 쇼핑백을
가지고 있다. 노래를 하면서 빈 병을 하나씩 꺼내 베란다 오른쪽으로 던져서 깬다. 셀리, 무대
오른쪽으로 간다. 목발을 들고 빈스를 바라본다.)
[빈스] (병을 던지며 노래한다.) "트리폴리 해변이여! 그 곳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리라."
(트리폴리와 해변에 악센트를 준다. 병을 던지다가 멈추고 오른쪽을 바라본다. 마치 적진을 살피는
병사의 눈빛이다. 손을 동그랗게 하여 입에다 대고 상상의 군대를 향해 고함을 지른다. 그밖의 사람들
겁에 질린듯 멍청히 보고 있다.)
[빈스] (상상의 군대를 향해) 병력은 충분한가? (쇼핑백 속의 술병을 가리키며) 여기도 많이 있어.
얼마든지 있지. 너희들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있어.
(병 하나를 들고 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며 베란다 오른쪽으로 던진다. 이때 병 깨지는 소리는
음향처리가 아니고 실제 음이어야 한다. 고함을 지르며 계속 던진다. 지쳐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춘다. 셀리, 브래들리의 목발을 든채 빈스에게로 간다.)
[셀리] (한동안 있다가) 빈스?
(빈스, 셀리를 돌아본다.)
[빈스] 뭐라구? 누구라구? 당신 누구야.
(빈스, 스크린에 얼굴을 갖다 대고 여러 사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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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내 술 어딨어?
[빈스] (다지를 보며) 뭐라구? 당신은 누구야?
[다지] 나야! 네 놈의 할애비! 능청 그만 떨라구. 내 돈 2달러는 어딨어?
[빈스] 당신 돈 2달러?
(헤일리, 스크린 쪽으로 쫓아가서 빈스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헤일리] 빈스? 너 빈스지?
(셀리, 헤일리를 보고나서 빈스를 본다.)
[빈스] (베란다에서) 빈스가 누구지? 너희들은 다 뭐야?
[셀리] (헤일리에게) 이보세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무슨 일이예요?
[헤일리] (스크린으로 더욱 다가가며) 우린 널 살인자나 강도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난폭하게
뛰어들어올 수가 있니?
[빈스] 살인자라구? 사람 우습게 보지 마시오! 난 심야의 교살자요! 당신들을 한입에 삼켜버릴 수도
있어.
(빈스, 병을 하나 들고 난폭하게 깬다. 헤일리, 뒤로 물러선다.)
[셀리] (헤일리에게) 누군지 아신단 말이죠?
[헤일리] 알구말구!
[브래들리] (소파에 일어나 앉아) 너 빨리 나가! 어디서 함부로 병을 던지고 난리를 피우는 거야!
어디서 굴러 먹던 물건이야!
[빈스] 들어가서 무찔러버릴거다.
[헤일리] (베란다쪽으로 가며) 어디서 감히 소란을 피워! 빈스, 너 뭐에 씌었니? 뭐 땜에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빈스] 들어가서 너희들의 땅을 점령할테다.
(헤일리, 돌아서서 듀이스 목사에게 간다.)
[헤일리] (듀이스에게) 목사님은 어째서 이렇게 구경만 하고 계시는 거예요?
(다지, 웃는다. 그리고 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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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스] 헤일리, 난 다만 한 사람의 손님일 따름이오. 그런데 어떻게 집안일에 참견할 수 있겠오?
(빈스, 다시 술병을 던지기 시작한다.)
[브래들리] 내 다리만 있다면 저놈을 그냥 두지 않을텐데!
(브래들리, 빈스를 치려고 주먹을 내두른다. 빈스, 껑충뛰어 피한다.)
[빈스] 우리 전선이 침투된다. 더러운 놈!
(빈스, 병으로 브래들리의 손을 때리려고한다. 브래들리, 얼른 손을 피한다.)
[셀리] 빈스! 그 병 놓지 못해요! 빨리 여길 떠나!
(빈스, 셀리를 본다.)
[빈스] (셀리에게) 너같이 젊고 싱싱한 여자를 누가 가둬놓기라도 하던? 앞길이 구만리 같은 네
인생을 누가 짓밝기라도 한단 말이야.
[셀리] 나가요, 빈스. 빨리 차를 타고 여길 떠나! 어디든 좋아요. 제발 여길 떠나.
(셀리, 빈스의 오바코트와 쎈스폰가방을 향한다. 무대 왼쪽 전면에 목발을 내려놓고 그것들을 든다.
빈스, 셀리를 보고있다.)
[빈스] 자, 우리 협상합시다. 포로교환이라도 할까? 우리 편 하나에 그쪽편 몇 명. 원한다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하지.
(셀리, 물건을 들고 무대 오른쪽 문으로 간다.)
[셀리] 가서 차를 타! 빨리 여길 떠나!
[빈스] 나오지 마! 감히 어딜 빠져나오려고 그래.
[셀리] (잠깐 멈추어) 왜 나가면 안되죠?
[빈스] 어느 누구도 그 선을 넘을 수가 없어! 금지구역이야. 아무도 올 수 없어.
[셀리] 내 마음대로 하겠어요.
(셀리, 문을 연다. 빈스, 주머니에서 사냥용 칼을 꺼내 스크린을 찢는다. 브래들리,소파 구석으로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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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스크린을 찢으며) 나오지 마. 경고한다. 죽이겠어.
(듀이스,헤일리를 부축하여 계단으로 간다.)
[듀이스] 헤일리, 여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2층에 가있는 것이 좋겠오.
[헤일리] 이해가 안 가. 정말 이해가 안가요. 그렇게나 온순했던 애가---
(듀이스, 계단 맨 밑의 목발 옆에 장미를 놓고 헤일리를 부축해 계단을 오른다. 헤일리 서둘러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 빈스를 돌아 본다.)
[헤일리] 정말 훌륭한 녀석이었어요. 모두 그 애를 좋아했었죠. 나무랄 데 없는 애였어요.
[듀이스] 곧 정신이 돌아올 거요.
[헤일리] 그녀석은 잠자면서도 노래를 부르곤 했죠. 한밤중에도 달콤한 목소리로 천사와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잠시 멈춰선다.) 자다가 그 노래 소리를 듣노라면 마치 천사가 내려와 노래를 불러주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녀석이 우리집을 지켜주는 천사라고 생각했답니다.
(듀이스, 헤일리를 데리고 2층으로 사라진다. 빈스, 스크린의 구멍을 통해서 소파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브래들리, 담요를 둘러쓴 채 소파에서 굴러 떨어진다. 빈스, 칼을 입에 물고 구멍을 벌린다.
셀리는 베란다에 나가 있다. 브래들리, 목발있는 쪽으로 천천히 기어간다.)
[다지] (빈스에게) 잘한다. 이 집을 네가 맡아라. 이 저주스러운 집을 . 이 집을 물려 받은 이후로
난 항상 목이 조여 드는것 같았어.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니 정리를 해야지.
(다지가 유언을 하는 동안 빈스가 입에 칼을 문 채 스크린의 구멍을 통해 들어와서 집안을 둘러본다.
상속받은 유산을 살피듯이. 목발을 잡으려고 기어가고 있는 브래들리를 우연히 본다. 목발을
브래들리로부터 더 멀어지도록 발로 차면서 계속 둘러본다. 장미를 집어들고 향기를 맡으며 움직인다.
셀리, 베란다 가운데로 가면서 빈스를 본다.)
[다지] 이 집을 손자 빈스에게 물려준다. 가구와 의복과 살림살이 등 이 지붕밑에 잇는 모든 것을
빈스에게 준다. 트랙터와 불도저 등 농기구 일체는 맏아들 틸덴에게 준다.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난다면
말이야. 그밖의 모든 것들은 농장 한가운데 쌓아 놓고 태워주기 바란다. 활활 타오를 때 내 몸을 불꽃
가운데로 던져 재만 남도록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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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빈스, 입에서 칼을 빼고 장미 향기를 맡고 있다. 관객을 향해 있을 뿐 셀리를 보지 않고
있다. 칼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셀리] (베란다에서) 나 가요, 빈스. 빈스야 오건 말건 난 떠나겠어.
[빈스] (장미향기를 맡으며) 떠나더라도 쌕스폰은 두고 가.
[셀리] (스크린에 난 구멍에 대고) 안 갈거야?
(빈스, 무대 앞 쪽에 그냥 서서 셀리를 돌아본다.)
[빈스] 난 방금 이 집을 물려받았어.
[셀리] (스크린의 구멍을 통하여) 여기 남겠다는 뜻이야?
[빈스] (브래들리의 목발을 더 멀리 밀어 버리며) 난 여기 머물면서 일이 어떻게 돼가는가를
지켜봐야 해!
(브래들리, 목발을 향해 기어가면서 빈스의 동정을 살핀다. 빈스, 계속 목발을 밀어 버린다.)
[셀리] 어젯밤엔 어떻게 된거야? 어디로 사라졌지?
[빈스] (사이. 그후 유창하게 이야기한다.) 난 어젯밤 계속 차를 달렸어. 아이오아주 경계까지 밤새
달렸지. 저 늙은이의 2달러를 옆에 놓고서 말이야. 비는 밤새 내렸어. 한번도 그치지 않았지. 비에
젖은 차창에 내 얼굴이 비쳤어. 나는 그 얼굴을 찬찬히 살폈어. 마치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의 뿌리를 캐기라도 할듯이. 처음엔 그 얼굴이 미이라 같았어. 살아있는 얼굴 같기도 하고, 죽은
얼굴 같기도 했지. 차창에서 얼어붙은 것 같기는 했으나, 숨은 쉬는 것처럼 보였다구. 이내 그 얼굴은
할아버지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로 바뀌더군. 그리고 다시 그 아버지의 얼굴로, 그런 식의 일이 계속
반복되었어.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지만 여전히 알아볼 순 있었어. 아이오아주 경계까지
가면서 내 조상들을 차례로 만난거야. 그때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됐어. 모든 문제가 해결됐지.
(셀리, 스크린 구멍을 통하여 빈스를 본 후 쌕스폰 케이스와 오버코트를 소파에 내려놓는다. 다시 한
번 빈스를 본다.)
[셀리] 안녕, 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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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 왼쪽으로 나간다. 빈스, 나가고 있는 셀리를 본다. 브래들리, 목발을 향해서 맹렬히
기어간다. 빈스, 재빨리 목발을 집어서 브래들리의 목에 건다. 듀이스, 계단을 내려오다 멈춰서서
빈스와 브래들리를 본다. 빈스, 브래들리를 끌고 무대 앞뒤로 다닌다.)
[빈스] (브래들리를 끌고 다니면 듀이스에게) 오, 목사님! 이거 참 죄송해요. 난 지금 이 집의
독충을 한마리 잡고있는 중이랍니다.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이제 내집이거든요. 농기구도 새로 사고
모든 걸 새론 장만해야겠어요. 지하실로 내려가 버려!
(빈스, 목발을 무대 왼편 바깥으로 던져버린다. 브래들리, 그것을 가지려고 열심히 기어간다. 빈스,
기어나가는 브래들리에게서 담요를 빼앗아 자기 어깨에 걸친다. 듀이스 쪽으로 가면서 장미 향기를
맡는다. 듀이스, 계단을 다 내려온다.)
[듀이스] 올라가서 할어니를 좀 뵙도록 해요.
[빈스] (2층을 보고 나서다시 듀이스에게로) 할머니라구요? 이집에 당신말고 누가 또 있던가요?
당신도 지금 가는 길이죠?
(듀이스, 무대 오른쪽으로 가며 빈스를 돌아보고)
[듀이스] 할머니에겐 지금 사람이 필요해. 난 그 여자를 도울 수가 없어. 어떻게 해줘야 좋을지
모르겠더라 이 말이요. 차나 한 잔 하려고 왔던 길이요.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지. 전혀 몰랐어.
(빈스, 듀이스 목사를 본다. 듀이스, 문을 열고 베란다를 지나서 왼쪽 출구로 나간다. 빈스, 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장미 냄새를 맡다가 2층을 한 번 보고나서 다시 장미 향기를 맡는다. 고개를 돌려 무대
뒤쪽에 있는 다지를 본다 다지 곁으로 가서 몸을 구부리고 다지의 눈을 살핀다. 다지, 죽어있다.
이것은 관객으로서는 예상밖의 일이다. 담요로 다지의 몸을 덮어준다. 소파에 앉아 장미 향기를
맡는다. 냄새를 맡다가 죽은 다지를 본다. 오랜 사이. 장미를 다지의 가슴에 얹어 놓는다. 팔베게를
하고 소파에 누워 천정을 응시한다. 잠시후, 2층에서 헤일리의 소리가 들린다. 헤일리가 말하는 동안
조명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어두워진다. 빈스, 계속 천정을 응시하고 있다.)
[헤일리] (소리) 여보,당신 거기 있어요? 옥수수 얘긴 틸덴이 옳았어요. 난 정말 그런 옥수수는 본
적이 없어요. 당신, 최근에 보신 적 있어요? 사람 키만큼이나 큰 것을 말이예요. 이렇게 이른 계절에.
당근도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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랐어요. 감자도 완두콩도 지천으로 있어요. 거긴 정말 천구과 같아요, 여보. 당신도 보셔야 해요.
기적이죠.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비 때문일거예요. 그래요, 비 때문이죠.
(헤일리가 이야길 계속하는 동안 틸덴이 왼쪽에서 나타난다. 무릎까지 진흙에 빠져있고, 팔과 손도
진흙투성이다. 두 팔에 어린애의 시체를 받쳐들고서 내려다 본다. 흙이 묻고 썩은 헝겊에 싸인 시체는
거의 뼈만 남았다. 그것을 안고 천천히 층계쪽으로 간다. 소파에 있는 빈스를 무시하고, 빈스, 틸덴이
거기 없는 것처럼 계속 천정을 응시한다. 헤일리의 목소리가 계속되면서 틸덴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조명 계속 어두워진다.)
[헤일리] (소리) 모든 영양분을 뿌리까지 내려보내는 줄기찬 비예요.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이루어지죠. 우리는 그것이 자라도록 강요할 수 없어요. 또 그것을 방해할 수도 없죠. 그것은 모두
숨겨진 힘이예요. 보이지도 않죠. 우리는 그저 그것이 지면을 뚫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어요. 작고 연약한 새싹. 작고 연약하고 하얀 새싹. 그러면서도 강하죠. 땅의 표면을 뚫고 나오기에
충분히 강하죠. 기적이예요, 여보. 평생 이런 수확은 처음 봐요. 아마도 태양때문일 거예요. 그래요,
태양때문이죠.
(틸덴, 이층으로 사라진다. 침묵.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