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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단상 (2)

김영관 2011. 12.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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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단상/실개천

   

지는 낙엽을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쓸어가는 만추의 아침이다.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낙엽을 바라보는 순간 미국의 자연주의 소설 대가인 데오더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에 관한 비평서에서 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낙엽에 비유한 것이 내 머리를 스친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결국엔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처지임을 망각이라도 한 것처럼 하늘 높이 날아가는 데만 열중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나무에서 떨어지자마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쳐 하수구로 쳐 박혀 재기불능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져 목적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경우도 있다. 나무와 작별을 고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 그 비평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스터 캐리>에 등장하는 세 인물들 중에 캐리는 하늘 높이 치솟기만 하려는 여인이고, 드루에는 목적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인물이며, 허스트우드는 처절이 몰락하여 나락에 빠지는 인물들인데 비평가는 이들을 앞서 이야기한 낙엽에 비유한 것이다.

 낙엽은 또한 나무의 겨울나기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도 해본다. 엄동설한의 겨울나기를 위해서 나무는 에너지방출을 최소화해야한다. 나무는 다음해 봄 새싹을 위해 아쉽지만 낙엽을 떠나보내야 하고 낙엽은 이를 숙명처럼 받아드려 그 동안 정들어 왔던 나무로부터 별리의 아픔을 담담하게 받아 드리는 듯싶다.

 나무에게서 아쉽지만 떨어져 나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나는 머지않아 평생을 정들어왔던 직장과 별리의 아픔을 감수해야하는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나면 이별해야한다는, 다시 말해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회자정리라는 진리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산 정상에 올라섰으니 미련 없이 산길을 내려와야 한다. 자리 비움에 회한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나무와 낙엽, 이제 곧 맞이할 정년, 그리고 그 이후 분수에 맞는 삶 등에 관한 생각들로 문 밖을 나서던 중 문득 나는 아파트 주차장 앞으로 다가서는 경찰차를 목격하게 된다. 차안에서 정복 차림의 남녀 경찰이 내린다. 그들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 있다. 곧이어 119 구급차가 도착한다. 구급대원 몇 사람이 서둘러 차에서 내리더니 들 것을 준비한다.

 어젯밤 아내에게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위층인 8층에 홀로 사는 노인에 관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가 있어서인지 그들을 보는 순간, 그 영감님과 관련된 불길한 예감이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친다.

 우리 아파트 관리실에서 수도검침의 날을 매달 10일로 정해서 주민들이 수도 사용량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 옆문 메모장에 적어 넣게 했는데 8층 영감님이 일주일이 넘게 그걸 적어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비실에서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층, 즉 내가 사는 층, 앞집 사는 여자 통장님에게 그가 혼잣말처럼 “약 먹고 죽어버리면 그만 인 것을”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걸려 통장이 알고 있는 그분 여동생 집으로 연락을 했더니 경찰을 부르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우울한 이야기와 8층으로 올라가는 경찰과 119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출근길에 나섰던 나는 퇴근 후 경비원에게 그 영감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물었다. 멀리 서울에 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광주와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 모두와 절연하고 혼자서 사는 영감님, 명절 때 아내와 자식들이 찾아와도 아파트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자식들이 보내온 명절 선물마저도 돌려보낸다는 영감님, 그분의 가슴터질 듯한 그 분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경비원의 “ 그 어르신, 약을 먹고 죽은 지 꽤 됐더라구요” 라는 는 그 영감님의 세상과의 작별 방법이 내 마음을 참으로 무겁게 한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함께 잘 지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불효라는 회한의 멍에를 짊어지게 만드신 영감님.

 지는 낙엽의 긴 겨울나기를 위한 나무에 대한 배려 없는 그 영감님의 매정한 세상과의 단절에 <시스터 캐리>에 등장하는 허스트우드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올 가을 내 마음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