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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어지기와 익숙해지기

김영관 2015. 11. 27. 22:17

낯설어지기와 익숙해지기

 

김 영 관 123ykkim@hanmail.net

 

우리 인간은 똑 같은 날들의 반복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고 까뮈는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우리네 인생을 다람쥐 쳇 바퀴 돌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계곡을 흐르는 물이 같은 물일 수 없듯, 매일 반복해서 뜨고 지는 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같을 수는 없다.

오래전,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 어떤 일이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무너지는 경우를 나는 몇 번 경험했다.

뉴질랜드에서 일 년 간 체류 한 후 고국의 집에 돌아온 나는, 떠나기 전까지 매일 외출할 때면 손수 찾아 신던 양말 넣어둔 통의 위치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외출 중인 아내에게 양말통의 위치를 전화로 묻는 나를 아내는 퍽이나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자동차 운전 핸들이 우리나라 것과는 반대쪽에 위치해 있고, 차선 또한 우리와 반대다. 불과 1년간 이지만 그 나라 운전 습관에 익숙해진 내가 귀국하여 집 근처 봉선로 길을 들어서면서 뉴질랜드 습관으로 차선을 달려오는데 앞에서 달려오던 버스 운전자가 헤드라이트를 켜며 매우 당황해 한 적이 있었다.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낯선 것에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에 낯설어 하게 되는지를 새삼 느낀다. 불과 일 년 전의 일이 낯설어지는 것이 이럴 진데, 하물며 수십 년 전 발생한 일에 대한 기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신뢰성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이루어지 못한 첫사랑 연인이 일본으로 떠난 지 수 십 년 만에 지인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가무잡잡한 피부에 눈망울이 큰 여고생 시절의 내 첫사랑 여인의 윤곽은 모두 사라진 낯선 중년 여인이 내 앞에서 서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 우리가 우연히 스쳐 지난다 해도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그동안 다만 머릿속에서만 첫 사랑 여인의 그 윤곽을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을 뿐이었던 것이다.

어느 작가의 작품에서 그 여인과 함께 했던 그 장소를 혼자서 찾아가 보았는데 그 장소, 그 추억은 그대로 인데 정작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서 가슴 아프다.’ 라는 부분이 내겐 실감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반대로 어떤 예기치 않는 일의 발생에 대해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던 사람들이 그 일에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는지에 대한 감회도 크다.

 

Y 여인이 건강 검진 결과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라는 통보를 받고 그녀가 병원을 가는데 나는 보호자로 동행을 한 것이다. 처음 가보는 병원엔 각 분야마다 환자들이 보호자와 더불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후 링거 병을 달고 걸어 다니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항암 투여주사로 탈모되어 머리에 캡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나는 우울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y여인과 나는 담당 의사를 만나 정밀 검사 소견을 들었다.

앞으로의 치료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치명적인 이야기인데도 의사도 간호사도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는 그야말로 무감정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난생처음 그런 상항을 접하게 된 내게는 그 모든 현상들이 이 낯설기 그지없었고 로봇만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예정된 날짜에 첫 항암 주사를 맞는 날,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투여 받고는 주사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우울한 얼굴을 쳐다보며 참으로 낯선 곳에 와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20여일 후 다시 항암 투여를 위해 병원을 찾은 Y여인은 벌써 병원 환경에 익숙해져 이곳저곳을 불편 없이 찾아다니며 치료 받기 위한 절차를 잘도 밟는다. 보호자 도움 없이도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린다거나 다음 가야할 곳을 안내원에게 묻지도 않고 찾아다닌다.

어떤 환자와 동반한 사람을 보면서 내게 금방 내가 아는 체 한 저 사람은 젊은 시절 자신과 함께 교직에 근무한 바가 있는 K 여선생님인데, 20여년 차이가 나는 유부남 선생님과 눈이 맞아 아이들도 여럿 있는 가정을 이혼케 하고 결혼해서 두 아이까지를 두었다나! 곁에 서 있던 머리 하얀 분이 아마 남편일 건데 그분 몸이 안 좋아 병원 온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여유를 보인다.

나도, 처음 다섯 시간 여를 침상 곁에서 가슴 조이며 투약 과정을 지켜보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을 책을 가지고 가서 틈틈이 읽는 여유까지 부리게 되었다.

주변 환자와 가족들을 곁눈질해 본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죄인 된 표정으로 누워 있는 환자를 보면서는 저 사람 젊어서 가족들에게 많은 잘못을 했나보다.’라든가, 노인 환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가족들을 보면서는 지난 세월 잘 살아 온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다가 저리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늘이 시샘이라도 한 건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바로 옆자리에서 항암 투여를 받는 젊은 남자 곁에는 한국말을 잘못하는 동남아 여인이 보호자로 와서 곁에 있음을 보며, 행복 찾아 타국까지 왔는데 참 안됐다. 싶은 생각까지 오지랖을 펴본다.

내가 보호자로 있는 환자는 링거 병을 안은 채로 화장실도 혼자서가고, “배가 고프니 지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갑시다.” 한다. 사람이란 게 이렇게 극한 상황에도 적응을 잘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무표정하고 지극히 감정이 절제된 표정이나 말투에도 차츰 익숙해져가는 나에 대해서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아들인 듯싶은 사람이 밀고 가는 휠체어를 타고 가는 어떤 노인환자의 그야말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몰골을 보면서도 별 느낌 없이 나는 그 분 곁을 곁은 스쳐 지나간다.

누구에게나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게 마련이지만, 죽음은 조금 낯선 곳에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암울한 현장을 드나들며 그런 환경에 내가 얼마나 쉽게 익숙해지는지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2015하반기 광주수필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