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별 이후의 만남
김 영 관
123ykkim@hanmail.net
영화 ‘남과 북’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는 노래와 함께 KBS TV 기획프로 이산가족 찾기의 헤어진 가족 상봉 장면은 지금도 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오면서, 혹은 남진해오는 북괴군에 쫓겨 서울 등지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헤어진 부모 형제를 찾는 프로였다.
어쩌면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혈연들은 만남의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가 닮았을까? 서로의 고향과 부모, 일가친척, 형제자매들의 나이와 이름 등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찾는 가족임을 알아보는 순간 그들은 서로 껴안고 오열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함께 울던 그 프로를 어찌 세월이 흘렀다고 잊을 수 있겠는가?
회고해 보건데 내게도 그에 못지않은 극적 상봉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서울에 사는 큰 집 형이 내게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형이 지방 출장 중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흘러나온 방송청취 중 중국 연변에 살고 있는 동포가족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일가친척을 찾는데 고향, 주소, 찾는 사람이 모두 형의 기억 속에 생생한 이름들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당숙 네 다섯 형제들 중 세 형제분들이 중국 연변으로 이주해가서 잠시 살다가 막내 당숙네만 남겨 놓고 두 당숙 네는 고국에 돌아와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어린 시절 가끔 들은 바가 있었다.
내 기억의 두 번째는 3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초등학교 여자 동창과의 해후였다. 친구들 어느 누구도 그녀가 고향을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랬던 그 애가 우리들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세 번째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금년 봄 어느 저녁 시간, 대학 3학년 시절 어떤 모임의 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열정이 넘치던 그때 이후 몇 년 만인가! 이 또한 내 극적 만남에 해당되는 일 아니겠는가?
중국에 살던 당숙모, 오랜 세월 소식이 궁금했던 여자동창생,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두절됐던 친구 이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내겐 모두 극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가족이 상봉할 때의 기쁨은 잠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심했을 경우, 어느 한쪽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만큼 큰 기쁨이 어디 있을까 마는 피보다 물질이 더 중시 되는 현실이 이산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아픔이 되고 있다. 상봉의 기쁨 이후에 내 가족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껴지는 것은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막내 당숙모가 고국에 와서 형제분들을 만나려고 고향 방문을 했지만 당숙들은 모두가 이승을 떠나고 셋째 당숙모만 살아 계셔서 다른 가족들은 두 분이 느끼는 상봉의 감회에 공감하지 못했다. 이미 많이 변해 버린 고향, 익숙하지 않는 얼굴들을 쳐다보며 어색해하는 막내 당숙모가 안타까웠다. 고락을 함께 한 적이 없는 그들을 대하는 우리 역시 공통적인 대화의 부재가 어색한 분위기만을 만들어 내고 있음에 마음만 아플 따름이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아 왔는데 할 말을 잃어버린 막내 당숙모는 실어증에 걸려버린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일본에서 귀국해 만난 여자 동창은 머릿속으로 그리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른 데서 만났더라면 서로 모른 채 지나칠 정도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봐도 낯선데 왜 그녀만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기대한 걸까? 그녀 역시 그리던 고향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도 거의 모두가 떠나고 없음에 얼마나 낯설어 하는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여자 동창의 부모 형제 안부를 물은 후, 대화의 부재로 오는 침묵이 주는 어색함을 어떤 식으로 털어내야 할지 안절부절 못했다.
50여년 만에 목소리를 들은 대학 친구를 남 광주시장 술집에서 만났다. 우리는 술잔을 들고 재회를 반기며 축배를 들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광주를 떠나 살아야 했던 이유,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가 잡힌 후 예전 친구들을 찾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친구나 막내 당숙모나 옛 여자 동창생과의 만남에서 함께 공감할 이야기 소재의 부족으로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가 이야기를 겉돌게 만들곤 했다.
어떤 형태로든 변함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려한다면 늘 만나거나 소식을 주어야한다. 그래야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여 서로를 결속시키는 끈이 되는 것이다. 해서 우리는 자주 만나야 한다. 이것이 필자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