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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김영관 2017. 11. 2. 22:19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김 영 관

123ykkim@hanmail.net

원로 시인 한 분께서 후배 교수를 만나기 위해 모교 대학을 방문한 날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어느 강의실을 지나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시를 강의하고 있는 겁니다. 발을 멈추고 들어 봤더니 바로 원로 시인인 자신의 시에 관해 후배 교수가 강의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가 자신의 창작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순간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그건 이미 내 것이 아니 로 구나"라고 그 원로시인께서는 탄식했더랍니다.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한 평론이 있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인 평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작품 속에는 작가도 모르는 함축된 의미가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한 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서 의미하는 ''은 실제로 백담사에 기거한 바 있던 어느 보살을 근거로 쓴 시라고, 한 전기 작가는 밝히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차원 높은 여러 의미의 ''을 우리는 이미 그 글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가 해변을 걷고 있는 여인을 묘사하다가 과거 작가의 머릿속에 하얀 모자 쓴 여인이 인상 깊게 남아, 작품 속에 그 기억을 되살려 흰 모자 여인을 등장시킨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평론가가 이 작품을 평하는 가운데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에서 흰색은 여주인공 미리엄을 연상시킨다며, 흰색은 순수와 불모를 상징하는데 이 여인의 흰 모자는 바로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작가는 그냥 미소만 지을 뿐 할 말이 없었지요. 작품이 자신의 손을 떠나면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미 자신이 아닌 독자와 평론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모자는 보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내포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가 자기 작품을 설명하려고 한다든가 사족을 달려고 한다면 자신의 작품을 오히려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조용히 바라보는 자세가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내 작품 속에 보물찾기의 보물처럼 감춰 놓은 것들을 독자들이 찾아내 평해주지 못함을 아쉬어 하면서도 이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에 감춰 두려 합니다. 그걸 찾아내는 것은 순전히 독자나 비평가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백경>의 작가 허만 멜빌이 서거 당시엔 원로 작가의 사망 정도로 미국 신문에 게재 되었지만, 백년 후 안목 높은 비평가를 만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지금은 미국의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작가는 후세에 남을 작품 창작을 위해 치열한 작가 정신을 불태우고 그 작품에 평가는 느긋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