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박사 (Mr.Know-All) 이야기|▒ 회원 수필방 ▒
김 영관
배가 운송을 주로 담당하던 시절... 원거리 여행중일 때는 배 위에서 몇 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동승자들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교분을 나누게 되는 겁니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일이랍니다. 승객들 중에 누군가가 어떤 화제를 끄집어 놓으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이야기를 혼자서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 배의 승객들은 이 사람의 해박한 지식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돌아서서는 그가 너무 많이 아는 것에 대해 질시가 생겼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든 면에 너무 많이 아는 이 사람의 별명을 "만물 박사"라고 붙인 건데 그 별명 속에는 칭찬 못지 않게 질시도 함축되어 있었던 거지요.
배 위에서 식사 중에 이 만물박사의 눈은 앞좌석에 앉은 부부 승객, 그 중에도 부부 승객중의 아내되는 여인의 목걸이에 시선이 멈춘 겁니다. 순간 만물박사는 "지금 이 부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그야말로 세상에 아주 드물고 귀한 목걸이"라고 말 한 겁니다. 아내 곁에 앉아 식사 중이던 남편은 싱긋 웃으며 " 지금 내 아내가 차고 있는 목걸이는 내가 형편이 풀리면 바꿔 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산 값싼 모조품 목걸인데요."라고 대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만물박사는 정색을 하며 "그렇다면 당신 아내의 목걸이가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우리 내기를 할까요?"라며 자기가 보석을 보는 안목이 대단함을 과시하려는 겁니다. 옆에서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제야 말로 배에서 뭐든지 아는 체하는 만물 박사의 실체가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게 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그들은 그녀 남편에게 내기를 하라고 부추기는 겁니다. 만물 박사도 인간인지라 틀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과 그 동안 배 안에서 기죽고 살았던 것에 대한 보복 심리가 작용을 한 겁니다. 만물 박사와 남편간에는 목걸이 진품 여부를 놓고 내기가 걸어지고 이제 감정하는 일만 남았던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세 등등하던 만물 박사는 목걸이를 차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기가 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기 건 돈을 그녀 남편에게 건네 준 뒤 그 자리를 총총히 사라지는 겁니다. 그걸 본 사람들 모두가 만물박사를 비웃으며 그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아는 체 했다며 고소해 하며 박장 대소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날 밤 늦은 시간에 만물 박사가 누워 있는 선실 문틈으로 누군가가 편지 한 통을 들이 밀어 넣었답니다. 전혀 놀라와 하지 않는 만물박사는 그걸 집어서 뜯어보는데, 그 편지에는 "감사합니다."라는 짤막한 여인네 필체의 글과 함께 만물 박사가 내기에서 잃은 것만큼의 돈이 동봉되어 있었던 겁니다. 만물 박사는 내기 건 순간, 여인의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에서 이들 부부간에 말못할 사연이 있음을 직감하고 목걸이 보석의 진위 파악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도 말입니다.
위 이야기는 사람은 해박한 지식도 물론 갖추어야 하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다툼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그 다툼에서 져주는 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말하는 글입니다.
|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