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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김영관 2005. 7. 9. 05:51

 

 

 

  에릭 프롬이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e)에서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면 그 원인을 꼼꼼히 분석해가면서 다음에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면서도, 왜 사랑에서만은 그렇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학 교양 영어에 자주 올려지는 글 중의 하나가 <사랑의 약속> (Appointment with Love>인데, 나는 이 글을  좋아하여 젊은이들에게 곧잘 읽어주곤 한다.

  6시6분전. 해군 항공 소속 중위인 브렌드포드는 그랜드 센트랄 역에서 6시에 그들의 인연을 맺게 해준 <인간 굴레에 관하여 >(Of Human Bondage)라는 책을 손에 들고, 장미꽃을 가슴에 달고 여기에서 자신과 만나기로 여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브렌드포드 중위가 지난날 그들이 처음 편지를 주고받게 되던 순간과 그 이후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는 과정으로 이 이야기는 진행된다.
  군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간 굴레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다가 책 모서리에 깨알처럼 주석을 달아 놓은 여인네 필체를 보며 참으로 이 여인은 진지한 독자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은 사회에서 군대로 보내어 기증된 여러 헌책들 중 한권인데 기증자의 이름과 주소가 그 책에 적혀 있었다. 중위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진지한 독자의 생각과 느낌에 공감되는 바가 커서 책의 장서표에 적혀진 주소와 홀리스 메이넬이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상당한 세월이 지나 메이넬로 부터 그는 답장을 받게 된다.
  책의 전 소유자가 아직 미혼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 중위는 그녀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들이 펜팔의 관계로 진전되면서, 그리고 브렌드포드 중위가 그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사랑이 싹텄다는 확신을 지니게 되면서, 그녀에게 사진 한장 보내 줄 수 없는지를 묻는다. 메이넬 양은 자신이 미인이어도, 미인이 아니어도 사진을 보내 줄 수가 없다며 그의 청을 일축해 버린다. 그리고 그녀가 사진을 그에게 보내 줄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만약 사진 속의 내가 미인이라면, 당신은 단지 내 외모만을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진심을 내가 의심하게 될 테고, 만약 사진 속의 내 얼굴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군대 근무 중 외로움이나 달래기 위해 당신이 나와 장난삼아 펜팔하는 정도쯤일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메이넬 양이 브렌드포드 중위에게 사진을 보내 줄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대신 그가 첫 휴가를 나오게 되면 그때 그들이 직접 만나서 앞으로의 관계를 진전시킬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 그녀의 제안이었다.
  이제 6시 2분전. 첫 휴가를 나온 브렌드포드 중위는 앞으로 2분 후면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그녀를 만나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와 펜팔을 주고받던 지난 13개월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한번은 그가 츨정하기 직전 가끔씩 두려움을 느낀다고 그녀에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녀의 답장에 다윗 왕 같은 훌륭한 인물들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것을 이기기 위해 다윗 왕이 쓴 시편 32장에 "내 비록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다 할지라도 나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왜냐하면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가 있다며, 보통 인간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용기 잃지 않도록 격려해준 적이 있었다. 그 편지를 받은 지 얼마 안되어 그가 적기들에게 포위되어 자신이 탄 비행기가 격추될 위험의 순간에 그녀가 용기를 잃지 않게 해준 그 말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나온 적이 있었음을 상기해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그녀를 브렌드포드 중위는 지금 만나게 되는 것이다.
  6시 1분전. 그가 담배를 꺼내어 불을 막 부치려는 순간, 아주 날씬하고 지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 한 사람이 그의 앞을 지나가면서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저와 가는 방향이 같으신 가요?"라고 유혹한다. 비록 가슴에 장미꽃을 가슴에 달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하마터면 그녀 뒤를 따라 나설 뻔했는데,...
  그때 그녀 바로 뒤에 뚱뚱하고 나이 지긋하게 보이는 여인이 가슴에 장미꽃을 달고 걸어오는 모습을 그는 순간 목격한다. 브렌드포드 중위가 기대했던 여인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그녀로 인해 그가 느끼는 실망은 대단했지만, 죽음 직전에 목숨을 건지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모두 이 여인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장미 꽃 여인 앞으로 다가 가서 인사를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따사롭고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난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모르겠소만, 아까 앞에 걸어가던 여인이 갑자기  장미꽃을 내 가슴에 채워 주며 당신 앞을 걸어가 보라고 하더군요. 만약 당신이 내게 함께 차라도 한잔 하자라고 말을 하면 내가 저 건너편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주세요. 그렇지만 만약 아무 말 없이 지나쳐 가거든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도 하더군요. 이것도 일종의 사랑의 테스트라고 그녀가 혼잣말을 하면서... 내게도 당신 같은 나이 또래의 아들이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답니다.
  만약 브렌드포드 중위가 미모의 여성이 하는 유혹에 끌려 그녀 뒤를 따라 나섰거나, 장미 꽃 여인을 보고도 그녀의 미모가 그의 기대와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모른 체하고 그녀를 지나쳐 버렸다면 세상에서 드문, 아니 평생을 두고 찾기 힘든, 배필을 만날 수 있었겠어요?

  평생을 함께 할 진정한 자기 배필을 찾기 위해 남녀가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소개해 본 거랍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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