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내려 오는데, 평생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여기다가 세상을 하직한, 내가 지금도 존경하여 바라마지 않는 어느 어르신의 묘지가 갑자기 생각나서 그분 묘지에 들러 그 앞에 소주 한잔 부어 올리고 절 두번 하고... 무엇 때문에 살아 온 지도 모른 채 한 세상 덧없이 살아온 내 삶에 회한이 느껴지기도 하여...
지갑을 뒤져 보니 만원 권 지폐 넉장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을 꺼내어 그분 묘지 앞에 놔두고 이것 때문에 다른 소중한 것들을 다 놓치고 살아온 내 삶이 허무하기도 하여...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 분처럼 살지 못했던 내 삶이 서럽기도 하여 나도 소주 한잔 따라 마시고 눈물 글썽이는데 ...
갑자기 하늘 저쪽으로부터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쳐 오더니 묘지 앞에 놔둔 지폐 넉장을 날려 보내는 겁니다. 엉겁결에 왼쪽발로 지폐 한장을 밟고, 반대편 방향으로 날아가는 또 다른 지폐 한장은 오늘쪽 발로 밟고, 내 앞으로 날아 오는 지폐 한장은 엎어지며 왼쪽 손으로, 그리고 또 한장은 바른쪽 손으로... 그렇게 지금 그것들을 발로 밟고 손으로 쥐고 있는 중이랍니다. 내 몸이 잠시 잠깐이라도 움직이면 지폐 어느 한 장이라도 날아 버릴 판이랍니다. 부와 명예를 초월하고 벗어나 살려 하지만 지금 밟고 움켜쥔 이 지폐 넉장만은 날려 버릴 수가 없으니 누구 빨리 와서 도와 주지 않으실래요? 그런데요... 돌아 가신 어른의 무덤속에서 그분의 너털 웃음 소리가 들려 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