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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비로소 깨달은 것 하나

김영관 2005. 10. 16. 10:11

  집안에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하던 시절이 어제 같았는데... 지금은 그 아이들 모두 집을 떠나고... 초로의 부부가 단 둘이서 할 말을 잃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무료하게 집 지키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삼복 더위에도 찬바람이 가슴에 몰아 치는 듯한 쓸쓸함을 느끼는 이 나이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 하나가 있다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두었다가 자네가 내 나이 되면 나같이 눈치 없는 사람되지 않도록 하게나.

  내가 외출하는 날 저녁 식사 무렵이면 반드시 걸려 오는 집사람 전화에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변치 않고 내 끼니 걱정을 해주는 아내가 감동스럽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휑한 집에 혼자 앉아 쓸쓸하게 저녁 먹을 아내가 눈에 선하여...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반드시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날 밤에도 여느 때처럼 저녁 먹고 들어 올 것인지를 아주 꼬치꼬치 물어서...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오늘은 내가 피치 못할 이유로 외식하고 들어 갈 테니 외롭더라도 그대 혼자 식사해야 겠노라.."고 말한 뒤,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을 막 덧붙이려는 찰나에...

  전화를 통해 들려 오는 아내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나는 순간 기절초풍하기 직전이었지 뭔가. 그 혼잣말이란 게 뭐냐하면 "어휴 잘 됐네... 행여 당신이 집에와 식사하면 반찬 때문에 어쩌나 걱정했는데..." 하면서 아주 잘 됐다는 안도의 한숨까지를 쉬는 것 아니겠는가?

  흐흐흐 내 여인이 저녁 식사시간이면 전화했던 이유가 결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이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되었지 뭔가... 나이 들어가면서 나처럼 눈치 없는 사람되면 이사갈 때 살림은 다 챙겨 가지고 가면서도 자네만 버려두고 가버리면 큰 일일 것 같아서 이런 말 해주는 것이니 내 말 귀담아 잘 들어 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