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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향한 발걸음이 이리도 더딘 것은

김영관 2005. 11. 2. 10:47

그때 왜 내가 좀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백운동 로터리에서 동승하신 분들을 내

려 드렸더라면 내가 지금 이런 고통은 

겪지 않을텐데... 그 분들 댁에 조금이

라도 더 가까이 차로 모셔다 드린답시

고 도청 앞까지 갔던 게 불씨가 아니었

던가. 점차 고통이 엄습해 와 참을 수가 

없다. 기왕에 참은 김에 조금만 더 참아 

보자. 그런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차가 우

회전해 끼어 들어 온다. 그 차 운전자가 

보이거나 이곳 지리에 익숙치 못한 자가 

분명하다. 왕복 이차선이라서 추월도 불가

능하다. 참자, 지금까지 잘 참고 견뎌 온 

내가 아닌가. 처음에는 완만하게 그렇지만 

지금은 아주 템포 빠르게 고통이 나를 엄습

해 온다. 

 마침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 선다. 밤 

늦은 시간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몇 

바퀴 둘러 보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몰라. 겨우 임시 방편으로 대충 차를 세워 

두고 나는 허겁 지겁 집을 향해 달렸다. 

 

 늦은 시간이면 으례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멈춰 서 있곤 했는데, 오늘 밤은 맨 꼭대기

층인 16층에 멈춰 서 있지 않는가. 오늘은 

왜 이리 모든 것들이 집을 향한 내 발걸음을 

더디게만 하는가. 내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겨우 내 집에 도착하여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열쇠 고리를 찾는데...

그 순간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겨우 문을 열고 내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허리띠를 급하게 풀고 화장실 문을 열어 

좌변기에 앉았다.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의 그

와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이마엔 

땀방울이 송올 송올 맺혀 있더라. 나는 오늘

 정말 사소한 일에 내 인내를 시험하며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더욱 쓰다"라는 말을 

얼마나 뼈저리게 실감하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