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내가 좀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백운동 로터리에서 동승하신 분들을 내
려 드렸더라면 내가 지금 이런 고통은
겪지 않을텐데... 그 분들 댁에 조금이
라도 더 가까이 차로 모셔다 드린답시
고 도청 앞까지 갔던 게 불씨가 아니었
던가. 점차 고통이 엄습해 와 참을 수가
없다. 기왕에 참은 김에 조금만 더 참아
보자. 그런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차가 우
회전해 끼어 들어 온다. 그 차 운전자가
초보이거나 이곳 지리에 익숙치 못한 자가
분명하다. 왕복 이차선이라서 추월도 불가
능하다. 참자, 지금까지 잘 참고 견뎌 온
내가 아닌가. 처음에는 완만하게 그렇지만
지금은 아주 템포 빠르게 고통이 나를 엄습
해 온다.
마침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 선다. 밤
늦은 시간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몇
바퀴 둘러 보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몰라. 겨우 임시 방편으로 대충 차를 세워
두고 나는 허겁 지겁 집을 향해 달렸다.
늦은 시간이면 으례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멈춰 서 있곤 했는데, 오늘 밤은 맨 꼭대기
층인 16층에 멈춰 서 있지 않는가. 오늘은
왜 이리 모든 것들이 집을 향한 내 발걸음을
더디게만 하는가. 내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겨우 내 집에 도착하여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열쇠 고리를 찾는데...
그 순간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겨우 문을 열고 내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허리띠를 급하게 풀고 화장실 문을 열어
좌변기에 앉았다.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의 그
와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이마엔
땀방울이 송올 송올 맺혀 있더라. 나는 오늘
정말 사소한 일에 내 인내를 시험하며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더욱 쓰다"라는 말을
얼마나 뼈저리게 실감하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