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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관계" 헤아리기에 관하여

김영관 2005. 12. 5. 08:03
  군에 입대한 남자 친구를 면회 온 아리따운 아가씨가 면회 신청서 기입란을 채워 가다가 "관계란" 부분에 이르러서는 글쓰기를 멈추고 고개를 갸웃둥 합니다. 잠시 후 그녀는 "두 번"이라고 조그맣고, 흐릿한 글씨체로 관계란을 채워 넣은 다음에, 면회 신청서를 면회소 담당 군인에게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며 제출합니다. 면회 신청서를 훑어보던 그는 미모의 아가씨를 흘낏 쳐다보며, "관계란 부분을 좀더 구체적으로 써주시겠습니까? "라며 그것을 그녀에게 되돌려 주는 겁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 탓인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들판에서 한번, 뒷산에서 한번"이라고 적어 그에게 제출하는 겁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을 면회 온 듯 싶은, 중년 여인은 손가락을 폈다 구부렸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더니, 매우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담당 군인에게, "내게는 신청서 용지를 몇 장 더 줘 보실래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중년 여인 바로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손자를 면회 온 듯 싶은, 할아버지 한 분께서는 면회 담당관에게 "여보게 젊은이, 그렇다면 나는 오늘 손자 면회하기는 다 틀린 아냐?"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한 세상을 살아 가면서 많고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줄은 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살아온 연륜에 따라 그 관계 헤아리기가 복잡한 줄은 내가 여기에다 이 이야기를 써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