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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문정희

김영관 2006. 2. 2. 07:15

                                                          내 마음을 사로 잡는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문정희'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되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 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정효구의 <시 읽는 기쁨 2> (도서출판 작가 정신) 17쪽에서
 
  학창 시절에는 여학생들이 저마다 화려한 꿈을 지니고 살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존재를 낮추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여인네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문정희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높은 편견의 벽이 여성들의 활동을 가로 막고 있는 우리 현실이 마음 아파 문 시인의 시를 여기에 소개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