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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젖어

김영관 2006. 3. 10. 07:12

  봄비에 흠뻑 젖은 늙은 생쥐는 포장 마차에 들려 손님들이 먹다 바닥에 흘린 소주 몇 방울을 거푸 들이킨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와 새끼 생쥐들이 생각나서 포장 마차를 나오면서 먹을 것 약간을 포장지에 싸서 안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 담는다. 

 지친 몸에다 그것도 공복에 마신 탓인지 취기가 한 순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흘러간 노래들을 구성지게 불러 제치며 비틀 걸음으로 집앞에 와서 대문을 발로 쿵쿵 차는데 주인집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 동안 안집 고양이 기세에 눌려 대문간에 세들어 살면서 목소리 한번 크게 내본 적이 없던 늙은 생쥐는 봄비  탓인지, 아니면 빈속에 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참고 살아온 고양이 멱살을 잡고 그의 목을 흔들어 댔다. 

 고양이는 겁에 질려 주인 집 방향으로 도망을 친다. 생쥐는 도망치는 고양이 뒤를 쫓아가 아예 끝장을 내줄까 하다가 "아서라, 고양이도 막판에 몰리면 쥐를 물려고 달려든다." 는 옛 속담이 머리에 떠올라서 더 이상 고양이 뒤를 쫓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 동안 내가 고양이에게 시달렸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와 내 생쥐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면 이 고양이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봄비에 젖고 술에 취한 늙은 생쥐는 부은 간덩이가 제 자리에 있는지 손으로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 본 다음, 방문을 열고 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