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유전과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요지의 문학 이론이 <자연주의>가 아닌가 싶다. 자연주의 대표적인 작가로 영국에서는 토마스 하디, 특히 그의 소설 <테스>를, 미국에서는 데오더 드라이저,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비극>을, 우리가 꼽는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덫, 그야 말로 얄궂은 운명 때문에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테스와 그리피스의 예를 들며 우리가 자연주의 작품들의 경향과 특징을 논하곤 한다.
그렇지만 문예 사조들, 예을 들면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자연주의니 하는 영미 문학 용어들을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자기네들 필요에 맞게 옮겨 놓은 것을 우리가 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nature란 말은 “자연”이라는 뜻도 있지만 the nature of drama라 할 때의 nature는 “본질, 또는 본성”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인간이 주어진 환경과 유전에 어떻게 반응 하는가를 연구 과제로 삼았던 Naturalism을, <자연주의>라 하는 용어 대신 <본성주의>라 하든가 아니면 <본질주의>라 하면 학생들이나 문학 지망생들이 이를 이해 하는데 더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자연주의> 하면 대 우주 속의 자연을 먼저 머리에 떠 올려 그 단어 때문에 우선 그들이 이 용어를 이해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생각이 자연주의 이론의 더 포괄적이고 광의적인 해석을 무시한 단견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말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늘 <자연주의>라는 문학 용어 대신 <본성주의>, 또는 <본질주의>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