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 일대를 주름잡는 광금씨를 따라 선암사를 들어 섰는데...사찰 입구 매표소 앞에서 그녀가 손 한번 흔드니 무료 통과, 그녀 덕에 조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종 본사인 선암사를 잘 구경하였고... 사찰에서 정성을 다해 끓여 준 차 대접까지 받은 나는 녹음 우거진 숲속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시원스런 계곡물에 발 담그고 세상사 번뇌를 잠시 잊은 채 ...나도 모르게 누더기 옷을 훨훨 벗어 던지고 계곡 깊은 곳에 들어가 세속에서 묻은 심신의 때를 벗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이제 싫지만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벗어 둔 옷을 찾는데...
세상에나 허름하기 짝이 없는 내 옷이 어디 갔는지... 난감한 마음으로 물 속에서
쩔쩔매는데... 한참 후에 계곡에 나타난 광금씨 하는 말은... 주지 스님과 담소하고 내려오던 중에 보니 선녀가 남정네 옷을 가슴에 안고 숲속에
몸 숨기고 있더라며...그대로 가만 물 속에 몸 담그고 앉아 있으면 자정 넘을 무렵에는 분명히 좋은 일 일어날 거라면서 자기는 바쁘니 먼저 집에
간다며 손 흔들고 가 버리는 겁니다.
광금씨 말대로 선녀가 자정 넘은 조용한 시간에 내 옷을 가지고 다시 나타날는지 궁금
하지만... 옛날에는 나뭇꾼이 선녀의 옷을 감추었다는데 이제는 선녀가 나뭇꾼 옷을 감추는 세상이 되었다니 믿기지가 않아서요.
여러분도 행여 선암사를 가시려거든, 승주군 톨게이트 건너 우체국 앞 대궐같은 집 주인 광금
씨와 동행 하시면 나처럼 계곡에서 선녀를 만나실 수도 있을 겁니다.